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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30.
“이거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데…….”
대통령의 넷째 아들 최지성은 신문을 보다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자신이 예측한 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모닝커피를 한잔하며 신문을 읽기도 잠시.
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최지성이 수장으로 있는 SA엔터테인먼트에서 그의 비서로서 온갖 잡다한 일을 맡아주는 인물.
“신문 읽고 계셨습니까?”
“어. 아무래도 일이 좀 커지네.”
최지성은 스읍 숨을 들이마시며 신문을 접었다.
“특별한 건 아니고, 오늘 오찬 약속 되어있었던 HS엔터 담당자가 조부상을 당해 스케줄을 캔슬하려고 합니다.”
“그래?”
그는 안타까움에 미간을 찌푸렸다.
“화환이랑 조의금 넉넉히 챙겨서 보내.”
“알겠습니다.”
박 실장은 고개를 꾸벅였다.
보고 사항은 이게 끝이었다.
허나, 박 실장은 나가는 대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요즘 괜찮으십니까?”
“뭐가?”
“신문에도 그렇고 뉴스에도 워낙 많이 나와서…….”
가정 일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박 실장이 선을 넘는 건 아니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함께 일하던 사이였기에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이였으니까.
“됐어. 내가 뭘 하겠어?”
최지성은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정치에서 손 뗀 지가 얼마나 오래됐는데…… 애초에 제대로 해보려고 손 대본 적도 없기야 하다만.”
그는 코를 찡그리며 말했다.
“박 실장은 신경 안 써도 돼.”
“그래도 최근 들어 기자들에게 연락이 잦더라고요. 전부 제 선에서는 컷하고 있는데…… 들어보니, 청와대 측에서도 대표님께 직접 연락을 꽤 하는 것 같아서.”
“괜찮아. 가족 일이니까 알려주는 것뿐이야.”
“아, 그렇습니까?”
“그래. 박 실장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알겠습니다. 필요한 일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고맙다.”
“아닙니다.”
그는 꾸벅 고개를 숙이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지이잉-.
그때, 최지성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막내동생 최지훈.
“여보세요?”
-어, 형. 통화 가능해?
“응. 괜찮아. 말해.”
-기사는 봤지?
“방금 신문으로 봤어. 은실이 누나 무기징역 선고받았네.”
-맞아.
“네가 수고가 많았다. 마음고생도 많았고.”
-아니야. 너무 늦어서 안타깝지.
“그것 때문에 연락한 거야?”
-하나 물어볼 게 더 있어서.
“말해.”
-아버지께서 내가 결혼을 좀 당겼으면 하시더라고.
“아…….”
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신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보고 싶으신가 보구나.”
-응. 그런 것 같아. 그래서 이야기 좀 할 게 있어서.
“내가 준비한 업체 소개해 줄까?”
-아니, 업체는 신부 측에서 다 준비해 줄 것 같아. 그것보다…….
휴대폰 너머의 최지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옆에 다른 사람 없지?
“응. 나 혼자야.”
-이번 결혼식에 부를 사람들 때문에 말이야. 이런저런 하객들을 다 부르지 않고 친지들만 부를 생각이거든. 그때 형한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
“뭐든 말해.”
-이게 꽤 쉽지 않은 거거든. 그러니까…….
설명을 들은 최지성은 턱을 매만졌다.
그리고 직감할 수 있었다.
자신이 이 상황에서 조커카드가 되리라는 것을.
다른 형제들이었으면, 당연히 거절했겠지만.
가장 아끼는 막냇동생 최지훈이었기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한 번 해볼게.”
* * *
-속보! 원내대표 김명석을 비롯해 대한당 무더기 탈당…… 대한당의 비상사태!
자극적인 기사가 뉴스 1면을 차지했다.
“예정된 수순대로 흘러가네요.”
마돈나의 말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께서 고태욱 총리를 찍으신 이상, 이렇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지.”
대한당은 순식간에 분열되었다.
최지원이 대한당의 당 대표를 맡고 있었기에 그를 지지하던 의원들은 대한당에 그대로 남았고.
그에 반해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고 최준석 대통령을 지지하는 인물들은 고태욱 총리를 따르기 위해 탈당했다.
김명석이 새롭게 ‘미래당’을 창당해 그 당대표가 되었다.
고태욱 총리는 아직 미래당에 입당하지 않았지만, 그건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차차 벌어질 일이었기에 순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대한당이 크게 분열을 한 덕분에 143석으로 거대 여당은 국소 여당으로 전락했다.
대한당은 63석, 미래당은 80석.
물론, 정치적 체계나 사상적으로는 대한당과 미래당이 일치한다고는 해도.
국민들은 둘 중 하나를 반드시 골라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까.
덕분에 민국당에서는 한 마디로 ‘노 났다.’
매번 대표 야당, 제2 정당 같은 소리만 듣다가 대한당이 분열한 덕분에 가만히 있던 민국당이 87석만으로도 제 1당 자리에 올라섰으니까.
그렇기에 우리 민국당 측에서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대한당과 미래당에서 전라도 표를 나눠먹기 할 건 이미 예견된 바.
민국당이 경상도의 몰표만 받아낼 수 있다면 정권 교체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만세당 또한 마찬가지.
이럴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고 칼을 갈고 있을 터.
개인적으로 아버지는 작금의 사태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는 모르겠다.
화를 내실지.
아니면, 그러려니 받아들이실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 모든 걸 예상하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셋 중에선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아버지께서는 한 수, 두 수만이 아니라 열 수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시는 분이니까.
그렇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신 거고.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최대한 중립을 지켜. 물론,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민국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알겠습니다.”
어느 쪽에도 붙어서는 안 된다.
국무총리가 된 고태욱이 당선되는 게 내게는 베스트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를 권좌에 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는 안 되었다.
오히려 그가 과하게 높은 지지율을 차지하게 된다면, 딴 생각을 품을 수도 있으니까.
아슬아슬하게 그가 당선되는 그림이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내가 그 자리를 이어받을 수 있을 테니까.
* * *
“……하아아.”
짙은 한숨을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최지만은 머리가 지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는 연일 노쇠하며 쇄약해지는 게 눈에 보이고 있고.
의회와 정당에서는 본격적인 대선 구도를 그리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최지만은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그의 현재 직위는 서울시장.
대한민국 역사에서는 대통령으로 가는 디딤돌 단계라고는 하나, 최준석 대통령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너무나도 빨리 드리워진 탓에 모든 게 어긋나버렸다.
만세당에서는 이미 성문종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미래당에서는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고태욱 총리가 출마할 게 뻔하다.
대한당에서는 둘째 최지원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고 있는 상태.
민국당 또한, 막내 최지훈을 비롯한 수뇌부들이 특정 후보를 밀어주기 위해 작전을 짜고 있다.
서울시장이라는 자리가 이렇게 초라한 건 처음이었다.
차라리 국회의원이었다면, 어떻게든 의원들과 부대끼며 작전을 짜 보겠으나.
서울시장은 일을 하는 곳이 여의도가 아닌, 종로의 서울시청이었으니까.
“후우…….”
한숨과 담배 연기는 쉬지 않고 내뿜어져 나왔다.
솔직히 말해서 최지만 자신이 보기에도 지금 당장 최지원과 붙는다면, 승리할 수 없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만에 하나 최지원을 운 좋게 쓰러뜨린다고 해도, 미래당을 달고 나온 고태욱 총리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이번엔 내주는 게 나을 수도…….’
허나, 누구보다 최지만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대선을 포기한다면, 다시는 자신에게 기회가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렇다고 해도 출마를 할 수는 없었다.
이미 대한당이 분열되며 미래당으로 탈당한 인물을 제외하면, 최지원을 필두로 모여 있는데 그들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결국 나가리였다.
타이밍으로나, 운명적으로나 최지만은 서울시장에서 더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최지원이 당선되는 걸 기대하고 한 자리 먹는 게 나을지도…….’
그는 좋은 자리를 약속했으니까.
최지원이 소시오패스적인 성격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건 자신이 이루기 위한 목적을 위해 주변을 살피지 않는 것이지, 본인이 말한 걸 뒤엎는 인물은 아니었다.
적어도 약속은 지키는 인물이었으니까.
그가 말한 대로 대통령에 버금가는 자리는 아닐 테지만.
나름대로 최준석 대통령의 아들로서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직위를 줄 터.
없으면 만들어서 주리라는 확신은 있었다.
그는 담배 연기를 폐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뱉고는 결심했다.
‘그래. 그러면 포기하고 최지원을 밀자.’
최지만은 곧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더 이상 지체해 봤자, 확신을 주지 않는다는 모습만 보여 줄 뿐이었으니까.
-여보세요?
“어, 지원아. 나야.”
-형. 밥은 먹었어?
“응. 조금 전에. 너는?
-나도 먹었지.
최지원은 기다렸다는 듯 넌지시 물어왔다.
-생각은 좀 해 봤어?
최지만은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네 말대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휴대폰 너머의 최지원이 씨익 입꼬리를 비트는 게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허나, 그는 티를 내지 않았다.
-잘 생각했어. 고마워, 형.
“아니야. 형제끼리 도와야지.”
-형이 함께하면 정말 큰 힘이 될 거야.
“그래. 내가 최대한 서포트할게.”
-응. 고마워. 내가 오늘 일 끝나고 다시 전화할게.
“알았다. 고생해라.”
-어, 쉬어.
최지만은 전화를 끊고 다시금 담배를 물었다.
그런데 그 순간.
‘잠깐만!’
그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하나 스쳐지나갔다.
‘굳이 내가 대선에 나갈 게 아니라면, 굳이 둘째에게 붙을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현재 최지만의 목적은 대선에 당선될 인물 옆에 붙어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
그 ‘당선될 인물’이 굳이 최지원일 필요는 없다.
아니, 오히려 그가 아닌 게 좋았다.
장남으로서 동생에게 대권을 빼앗긴 취급을 받는 것보다야, 차라리 아버지선에서 정권을 마무리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 섰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둘째가 당선되리라는 확신도 없는데, 그에게 붙을 필요는 없었다.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한 명 더 있었으니까.
최지만은 장초의 담배를 짓이겨 꺼 버리고는 곧장 고태욱 총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우. 뚜우우.
‘빨리 받아라…….’
초조함이 짙어질 즈음.
한참의 수신음 끝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도련님. 고태욱입니다.
“아, 실장님…… 아니, 이제 총리님이라고 해야겠네요.”
살가운 목소리에도 고태욱은 비즈니스적인 목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다름이 아니고,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오늘내일 중으로 뵈었으면 하거든요. 언제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떤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만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꽤나 중대한 사안이라서요.”
-……음, 그렇다면 오늘 오후 10시쯤에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좋습니다.”
-그러면 제가 댁 앞으로 가겠습니다. 가서 전화드리지요.
“알겠습니다. 이따 뵈시죠.”
최지만의 입가에는 음흉한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