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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 (5)
2022.04.28.


“최은실 건은 거의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마돈나는 차분한 목소리로 보고했다.

“최종 공판 이후, 판결인데…… 1심에서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외에는?”

“현재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책임자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최소 징역 3년에서 5년 사이로 선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나는 씁쓸하게 턱을 매만졌다.

“생각보다 형량이 약하네.”

“예. 아무래도 한두 명이 몰아서 한 게 아니라, 관련자들이 꽤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검찰 측에서는 어떻게 한다는데?”

“오성복 검사님과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눠 봤는데 전부 2심, 3심까지는 각오하고 있답니다. 검찰 측에서도 최대 형량이 나오지 않으면 항소하겠다는 마인드고요.”

“아마 그럴 거야.”

원래 이렇게 언론과 대중들이 주목하고 사건에서는 판결이라는 게 법적인 잣대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특히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그들에게 양형을 할 때 분명 대중들이 갈갈이 날뛸 테고, 판사는 그것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

“최은실 측에서 1심 선고 전에 한 번 만났으면 하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직접 간다고 해.”

“의원님께서요?”

마돈나는 흠칫 놀랐지만, 나는 완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할지는 뻔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희망을 줘야지.”

원래 사람이 낙담하고 기다리는 것보다 기대를 품고 있다가 무너지는 게 더 처참한 법이니까.

“며칠 안에 접견 간다고 해.”

“알겠습니다.”

마돈나는 태블릿 PC를 들며 말했다.

“그리고 오후에 민국당 회의가 잡혀 있습니다.”

“2시지?”

“예. 평소처럼 10분 전에 말씀드릴까요?”

“그렇게 해.”

* * *

“의원님. 민국당 회의 시간입니다.”

“그래.”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장에 도착하자, 평소엔 시간을 엄수하지 않던 이들도 오늘만큼은 예정보다 훨씬 일찍 도착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회의 주제는 ‘차기 대선 후보’에 관한 내용이었으니까.

최준석 대통령 사후 치러질 대선인 만큼, 민국당에서는 여느 때보다도 더 희망이 컸다.

누가 되든 간에, 민국당에서 대권을 쥐게 된다면, 최소한 이 회의에서 얼굴은 비쳐야 당내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실히 할 수 있으니까.

물론, 내가 이 회의에 참가하는 게 마냥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다른 이들이 나를 불쾌해 한다는 게 아니라.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뜻이지.

아니나 다를까.

“불편하면 쉬어도 되는데.”

나와 가장 친분이 깊은 당 대표 구태양도 이런 소리를 할 정도니까.

나의 아버지가 죽는 게 예견되었기에 펼쳐지는 회의니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하지.

“괜찮습니다.”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내 이름이 적힌 의자에 앉았다.

내가 앉은 자리는 구태양 의원의 왼쪽.

최고위원 중에서도 으뜸인 자리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당권을 흔드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다들 오신 것 같은데 시작해볼까요?”

“그러시죠.”

“오늘 회의 안건은 차기 대권 주자 선발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격적인 토의에 들어가기 전.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작하기에 앞서 저에 대해 부담스럽게 느끼실 필요는 없으니 편하게 대화 나누십시오.”

구태양은 고맙다는 의미로 가볍게 고갯짓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아버지의 빈자리를 잇는 차기 대선이라고 한들 민국당의 수뇌부 중 한 사람으로서 회의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당내에서 내 위치를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정체성’이라는 건 하루이틀 만에 확립되는 게 아니었다.

정확히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나 또한 반드시 대선에 출마할 날이 찾아온다.

그때가 되어서 뒤늦게 대한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것보다, 오히려 민국당에서 버티면서 이곳의 공천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을 터.

그러기 위해서는 ‘당위성’이라는 게 필요한데.

이는 단순히 당권을 쥐고 있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수뇌부를 포함한 당의 의원들, 당원들까지 모두 나를 민국당 일원으로 인정해야 시민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법이니까.

“우선, 대선 후보군을 먼저 뽑아봤는데…….”

원내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나는 자연스레 회의에 집중하며 몰입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번 대선에서 민국당을 지지할 생각은 아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한당을 서포트할 의향 또한 없었다.

어떤 결론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대한당에서 첫째 최지만과 둘째 최지원 중 한 명은 대선에 반드시 출마하리라는 사실.

그렇기에 민국당에서도 가장 그럴 듯한 후보를 내야만 한다.

그래야 대한당의 표를 갉아먹을 수 있으니까.

내가 지지할 인물은 단 하나.

고태욱 비서실장이다.

여전히 그를 신뢰할 수 없는 건 사실이었다.

허나, 그게 최선이었다.

대한당의 최지만이나 최지원이 당선된다면 절대 내게 기회가 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민국당에서 당선된다면, 오랜 야당이었던 만큼, 최준석 대통령이라는 후광을 어떻게든 삭제하려들 터.

그렇다면 나는 그의 핏줄이라는 의미가 옅어진다.

아버지의 혈육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형제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이번에 반드시 고태욱 비서실장을 당선시켜야만 한다.

사실, 아버지께서 여기까지 생각을 하셨는지 아니면 온전히 고태욱 비서실장을 믿어서 그런 결정을 하셨는지는 알 수 없다.
허나,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지금의 나는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게 최선이라는 뜻.

“최준석 대통령이 서거하게 되면, 대권 구도가 크게 변할 겁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대한당에서 어떤 후보가 나오느냐가 중요한데…….”

똑똑.

그때 회의실에 다급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벌컥.

문이 열리며 뛰쳐 들어온 인물은 다름 아닌, 민국당의 대변인.

“무슨 일이야?”

“국무총리를 재임명한다는 소식입니다.”

“누구로 바뀌는데?”

“고태욱 비서실장입니다.”

“……뭐?”

“비서실장직은 당분간 공석이 될 것 같습니다.”

순식간에 회의장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가 국무총리가 되었으면…….”

“대놓고 아들들을 지원하겠다는 소리지?”

“그런 것 같습니다.”

“첫째나 둘째 중에 한 명이라는 건데…….”

아직까지 다른 의원들은 고태욱 비서실장의 출마까지는 가늠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허나, 나는 아버지의 생각을 선명하게 읽을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면, 다음 대선이 치러지기 전까지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이 된다.

그런데 고태욱이 대선에 출마한다?

즉, 대통령의 입장에서 재선을 치르는 형세가 되는 것이지.

여느 선거가 그렇듯, 디펜딩 챔피언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리를 수성하는 입장이 되면 훨씬 더 유리해진다.

특히나 대선은 더욱더 그렇다.

국가전반을 통치하는 대통령이니, 당연히 선관위에도 개입을 할 수 있으니까.

부정선거를 할 리는 없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유리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버지께서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신다.

지금은 그를 놀라게 할 게 아니라.

원하는 대로 완성될 수 있도록 최대한 돕는 게 내가 할 일이다.

그래야 대권에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

* * *

“어떻게 할 겐가?”

“하아…….”

강원도의 한 별장.

평소엔 여자를 불러 더럽게 노는 곳이지만, 오늘만큼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여자는커녕, 대한당 수뇌부 남성들만 모여 있었으니까.

물론, 최지만과 최지원은 빠진 상태.

애초에 그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굉장히 은밀하게 약속을 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는.

“도대체 누굴 밀어야 될지 모르겠어.”

대선 후보로 누구를 지지할까에 대한 문제였다.

“처음에 고민했던 것과 방향이 너무 달라.”

“그러게 말입니다.”

이 모임의 수장과 같은 원내대표 차명건 의원도 쉽게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들은 당연히 최지만과 최지원 중 하나를 대선 후보로 밀어야 된다고 여기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오늘 아침, 최준석 대통령이 그들을 불러 모아 이야기한 건.

예상과는 달리, 고태욱 비서실장을 지지해달라는 소리였으니까.

“그게 진지하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혹시 저희를 떠본다거나…….”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고 실장을 국무총리로 올린 걸 보면, 확고하다고 봐야 해.”

“그렇겠죠.”

당연히 국무총리로 임명한다고 바로 총리가 되는 건 아니었다.

국회의 청문회도 거치는 등 과정이 있었으니까.

허나, 대통령의 건강으로 인해 여야 할 것 없이 모두 최준석 대통령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이 시점에서는 그의 뜻을 거스르는 게 불가능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고태욱은 워낙 신변이 깔끔한 사람이기도 하고.

만에 하나 그에게 먼지가 묻었다면, 이는 최준석 대통령과 직결되는 것이었기에 쉽게 건드릴 수가 없었다.

그의 국무총리 임명은 초재기라는 뜻이지.

“고 실장…… 아니, 고 총리님도 그 생각에 동의하시는 거겠죠?”

“그럴 거야.”

오랫동안 최준석 대통령과 고태욱을 옆에서 지켜봐 온 차명건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고태욱이 어떤 심정을 품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각하께서 결정한 일은 단 한 번도 거스르지 않았던 인물이니까.”

“이번 일도 각하께서 계획하셨다는 겁니까?”

“그렇겠지.”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자식들보다 고태욱 비서실장을 후계자로 지정한다는 건…….”

다른 의원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각하니까 그럴 만한 거야.”

“예?”

“최지만이나 최지원보다 고태욱 총리가 국정을 더 잘 운영할 수 있다고 판단하신 거겠지. 핏줄이 아니라, 조국을 택하신 것이지.”

차명건 의원은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봐도 그래. 고태욱 총리는 오히려 각하보다 대한민국 전반을 훤히 꿰고 있는 인물이야. 대한민국이 기업도 아니고, 오너 경영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오히려 고태욱 총리 쪽이 더 말이 되지.”

“맞긴 합니다만…….”

몇몇 의원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각하 의견이라도 고 총리는 조금 그렇습니다.”

원내대표 차명건은 그들의 의견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실제로 고태욱이 비서실장으로 있는 동안, 강압적인 태도 때문에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 적지 않았으니까.

“최준석 대통령이 살아 있을 때야, 각하를 봐서라도 말을 들었지만…… 이젠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려고?”

“최지원이나 최지만을 지지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나는 그래도 고태욱 실장 쪽이 낫다고 보는데. 사람은 마음에 안 든다지만, 우리 당에 이익을 가져다 줄 사람은 맞으니까.”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원내대표 차명건 의원이 중재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최준석 대통령을 필두로 모여 있는 대한당이었는데, 그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하나가 아니게 되니까.

한창 토의하던 이들은 서서히 느낄 수밖에 없었다.

머지않아 대한당이 분열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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