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 (4)
(178/200)
덫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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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 (4)
2022.04.27.
끼이익-.
새벽 2시가 넘은 늦은 시간.
“여기서 내려주쇼.”
택시를 타고 있던 셋째 최지곤은 아파트 앞 산책로에서 하차했다.
술이라도 깰 겸 걸을 생각이었으니까.
“으어, 취한다.”
허나, 룸살롱에 다녀오며 양주를 들이켤 대로 들이켠 만큼, 술은 쉽사리 깨지 않았다.
거나하게 취한 그는 집에 들어가는 길로 천천히 걸었다.
주변은 고요했다.
서울 외곽지역인 만큼, 이 시간엔 사람이 많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이곳은 그의 은신처기도 했다.
대통령 암살 사태가 마무리되고 나면, 최지훈이 자신을 끌어주기로 약속한 만큼 지금은 언론을 피해서 숨어 있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저벅저벅.
얼마나 걸었을까.
아파트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정도 남긴 거리.
“……음?”
왠지 모를 육감에 그는 홱 뒤를 돌아보았으나.
‘기분 탓인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있을 리가 없지.’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아직 분양이 채 끝나지도 않은 소규모 아파트인 만큼 낮에도 사람이 많지 않았으니까.
‘최지훈이 그놈은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걸까.’
매일 같이 뉴스를 챙겨 보며 소식을 확인하고는 있지만, 걱정되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최지훈은 전부 다 파괴해 버릴 생각인지, 미쳐 날뛰고 있었으니까.
‘이러다가 혹시 나까지…….’
최지곤은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정보까지 주면서 약속했는데 배신하겠어?’
다른 사람이었으면 불안에 떨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막내 동생은 약속을 하면 지키는 인물이라는 건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무엇보다 그에게 정보를 넘길 때 자신이 드러난 부분은 최대한 도려냈으니까.
뚜벅뚜벅.
그때,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홱.
다시금 돌아봤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순간, 불길한 감각이 온몸을 스쳐지나갔다.
인기척이 분명히 들렸다.
자신이 술에 취했긴 하지만, 없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만취한 건 아니었다.
왠지 불안한 기운에 그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저벅저벅.
그러나 아파트를 향해 걸어감과 동시에.
뚜벅뚜벅뚜벅.
뒤에서도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최지곤은 서둘러 발을 옮기며 뒤를 돌아보았으나, 여전히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차도의 사각 지대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진 볼록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자신의 뒤에서 따라오는 한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끼고 있는 남자.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위험하다.’
이대로 있다가는 분명 변을 당할 게 분명할 터.
그는 몇 걸음 옮기기도 잠시.
타다다닥.
뛰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파바밧!
뒤에서도 자신과 속도를 맞춰 뛰어오기 시작했다.
최지곤의 온몸엔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정치권에 일을 하며 사주한 적은 있었어도, 직접 겪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허억, 허어억…….”
순식간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안 그래도 지방에서 술과 담배에 절어 살며 건강이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태라 제대로 뛰기 힘들었다.
이대로 집까지는 도망갈 수 없을 터.
가기 전에 따라잡힐 게 분명했다.
그때 그의 눈앞에 편의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최지곤은 망설일 것 없이 그곳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아르바이트생의 응대에도 최지곤은 무시하고서 불안한 동공을 흔들며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안쪽에서 얼마나 버텼을까.
수상한 남자는 편의점 앞을 서성이다가 어느 샌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최지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물 한 병을 사서 편의점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불안함에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나가는 대신 휴대폰으로 전화 한 통을 걸었다.
수신인은 최지곤이 국회의원이었던 당시 보좌관이었던 우원태.
지금도 잡일은 그가 도맡아서 처리해주고 있었다.
“어, 나야. 지금 당장 이쪽으로 와. 그리고 해외로 떠야겠어.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출국할 수 있는 곳 알아 봐. 북미든 유럽이든 동남아든 어디든 상관없어. 자금 세탁할 수 있는 곳이면 돼.”
* * *
“죄송합니다, 의원님.”
마돈나는 고개를 꾸벅여 사과했다.
“최지곤의 코앞까지 따라갔으나, 그가 눈치 채고 편의점으로 숨어들어갔다고 합니다.”
“아니야. 지현 씨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나는 팔짱을 끼고 천천히 생각했다.
“최지곤의 성격 상 겁을 먹었으니 숨으려 할 거야. 아니면, 아예 멀리 도망가거나.”
“해외 쪽으로 나갈 가능성도 있을까요?”
“굉장히 높지.”
최은실에게 들은 이야기가 맞다면, 최지곤은 백신 연구 개발을 포기하며 정치 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전부 자신의 주머니에 챙겼을 것이다.
자금 세탁이야, 큰 문제가 되지 않으니 아마 들고 해외로 갈 가능성이 높을 터.
“어떻게 할까요? 아마 해외로 가면 저희 쪽에서 쓰는 돈도 꽤 많아질 텐데요. 시간도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요.”
“그렇다고 해도 계속 추적해야지.”
마돈나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해외로 나가더라도 계획은 그대로야. 처리할 수 있는 틈이 생기면 바로 처리해. 자금은 내가 얼마든지 지원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마돈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처리되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최지곤.
쉽게 처리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한다.
살아 있는 동안 평생 죽음의 공포에게 쫓기도록 만들 것이다.
오히려 살아 있는 게 고통이 되도록.
그게 그의 죗값이 될 테니까.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발신인은 청와대 비서실.
“네, 최지훈입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각하께서 오늘 저녁에 일 끝나고 잠깐 들어와 달라고 전해 달라 하십니다.
“퇴근하고 바로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께서 호출이라…….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그것도 고태욱 비서실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비서실을 통해서 연락을 해왔다.
요즘 고 실장이 워낙 바쁘기에 그러려니 하긴 하지만…… 지금 시기에 부르시는 건 필시 이유가 있을 터.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 * *
똑똑.
“들어와.”
“안녕하세요, 아버지.”
청와대 집무실.
“오느라 고생 많았지?”
나를 보며 고개를 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아련함이 느껴져 왔다.
예전에 비해 훨씬 더 마르고 어깨가 좁아보였으니까.
허나, 변함없이 아버지의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 한 대가 끼워져 있었다.
“또 담배 피우세요?”
“어차피 이거 피운다고 달라지지도 않아.”
그는 클클거리며 말을 보탰다.
“그나마 다행이지, 폐암이었으면 죽기 직전까지 못 피웠을 거 아니야?”
“……아이고, 아버지.”
“농담이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바뀐다는 말이 문득 가슴속에서 도드라지는 느낌이다.
강인하고 차가우셨던 예전에 비해 유해지신 느낌.
그래서 더 서글펐다.
“저녁은요?”
“네 엄마가 지금 차리고 있어. 이야기 끝나면 같이 가서 먹자.”
“예.”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소파로 향하셨다.
“아들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여느 집안의 따뜻한 가장이었던 모습과 달리, 그의 눈빛은 순식간에 빛나기 시작했다.
대통령으로서의 권위가 느껴지는 기운.
“너에게 말할 게 있어서 불렀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그를 바라봤다.
“내가 얼마 남지 않은 건 너도 알지?”
이를 꽉 물고 최대한 태연하게 답했다.
내가 슬퍼하면 아버지가 더 울적해하실 테니까.
“예, 아버지.”
“내 빈 자리는 고 실장이 채울 게다.”
“……네?”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아버지의 후계자를 고 실장으로 정한다는 뜻인가?
내 눈빛에서 피어난 당황스러움을 읽었는지, 곧장 말을 이었다.
“너를 버리는 게 아니다. 어차피 너는 바로 대통령이 될 수 없지 않느냐?”
“그건 맞습니다.”
“네가 권좌에 오를 나이가 되기 전까지 고 실장이 이 자리를 지킬 것이야.”
“…….”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대통령 피선거권을 가질 나이가 되지 않기에 아버지의 뒤를 바로 이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에 다른 누가 앉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 또한 없었다.
그런데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은 고태욱 비서실장을 택하실 줄이야.
너무나도 예상외여서 오히려 걱정되어 아버지를 바라봤다.
허나, 그의 눈빛을 보면 죽음 앞에서 삶을 포기하거나 정신이 흐려지신 것 또한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확고해 보이셨다.
“고 실장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하셨다.
“나를 믿는다면, 고 실장도 믿어야 한다.”
“…….”
“고 실장에게도 이미 이야기해 두었어. 때가 되면 너에게 넘겨 줄 것이야.”
허나, 불안한 감정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돈이 그렇듯, 권력이라는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을 얼마든지 흔들 수 있는 법이니까.
실제로 역사에서는 자식에게도 권력을 물려주기 싫어서 자손을 유배 보내 버린 기록도 있을 정도고.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나 또한 충분히 고민하고 생각한 끝에 나온 결론이야.”
허나, 아버지의 목소리에선 확신이 느껴졌다.
“내가 정한 진정한 후계자는 너 하나뿐이다. 알고 있지 않느냐?”
아버지는 살포시 내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마라. 너는 오로지 네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최선을 다하면 되니까.”
멀리까지 바라보지 말라는 뜻이다.
아버지께는 대선에 나갈 수 있을 때까지만 버티면 고 실장이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였다.
“알겠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아버지의 설득하며 마음을 돌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고태욱 비서실장을 믿을지에 대한 여부는 차후 생각할 일이다.
“하나만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말해라.”
“다른 형제도 있는데 왜 굳이 고 실장입니까?”
아버지는 가볍게 조소를 머금었다.
“그 녀석들 중 하나가 대통령이 된다면, 네가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 같니?”
“…….”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절대 아니었다.
내가 선거에 나가기 위해서는 최소 10년은 더 버텨야 한다.
대선을 최소 2, 3번은 더 치러야 한다는 건데.
만약 최지원이나 최지만이 권좌에 올랐다면,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아니, 오히려 살려라도 두면 다행이겠지.
아버지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고 실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와 오랜 시간을 보내온 건 내가 아니라, 아버지였으니까.
“이해했으면 됐다.”
아버지는 말을 마치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 먹으러 가자.”
“예, 아버지.”
“참, 그리고…….”
아버지는 외투를 들어 올리시며 날 바라봤다.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이냐? 이미 상견례도 마쳤는데.”
“……아.”
“내가 살아 있을 때 네가 장가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최대한 빠르게 일정 잡아 보겠습니다.”
“손주도 있으면 더 좋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