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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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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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 (3)
2022.04.26.
“여기 나온 목록에 있는 사람들 조사해 주시면 됩니다.”
내가 건넨 문서를 확인한 고태욱 비서실장은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걸 어떻게 구하신 겁니까?”
“직접 받아 왔습니다.”
“예?”
“최은실에게 받아 왔습니다.”
“……아.”
고태욱 비서실장도 놀란 듯한 눈치였지만, 이내 고개를 주억거렸다.
“여기 있는 목록 위주로 조사 진행하면 될까요?”
“예. 이 외에도 분명 더 많은 사람이 연관되어 있을 겁니다. 전부 조사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고태욱 비서실장은 말하라는 듯 내 눈을 바라봤다.
“아버지 잘 좀 부탁드립니다.”
나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자식들보다도 고 실장님을 더 믿고 아끼시잖습니까?”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남은 시간 동안만이라도 편하실 수 있도록 고 실장님이 잘 좀 케어해 주세요.”
“물론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게 제 일입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잠깐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아, 도련님.”
“예.”
“각하께서 조만간 퇴원하실 겁니다. 그 이후에 한 번 뵙고 이야기 좀 나누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는 꾸벅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완전히 문이 닫힌 걸 확인한 뒤, 곧장 휴대폰을 들어 신혜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무수석실에서부터 나를 보조했던 인물.
“혜지 씨.”
-네, 의원님.
“조만간 청와대에서 움직일 거야.”
-최은실 관련 사건입니까?
“맞아. 어떤 인물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주시하고 정리해서 문서로 작성해둬.”
청와대에서 누가 고태욱 비서실장의 라인인지.
또 최은실 라인에 합류했던 인물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이건 청와대의 수뇌부보다도, 말단에 가까운 역할인 신혜지가 더 판단하기 쉬울 터.
-알겠습니다. 더 시키실 일 있으십니까?
“필요하면 연락할게.”
-예, 실시간으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내가 할 일은 끝이 났다.
남은 건 청와대와 검찰 그리고 국정원에서 처리해야 한다.
최은실을 포함하여 그녀와 함께 이번 일에 연루되었던 모든 이들이 책임을 물게 되겠지.
물론, 그건 공식적인 이야기일 뿐.
실제로는 아직 일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최지곤.
아버지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도록 만들었던 일등 공신.
아무리 그가 내게 정보를 제공했다고 한들, 용서할 생각은 없었다.
최은실의 말이 진실일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가 최은실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살아계셨을 테니까.
최은실도 나쁘지만.
최지곤이 더욱더 악질이다.
나는 자리에 앉아 수화기를 들었다.
“들어와.”
30초도 지나지 않아, 집무실 문이 열리며 마돈나가 들어왔다.
“문 꽉 닫아.”
“예.”
그녀는 눈을 빛내며 내 앞에 섰다.
“지현 씨가 할 일이 하나 있어.”
“맡겨만 주십시오.”
“최지곤을 처리할 거야.”
순간, 마돈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말씀은…….”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상에서 최지곤이라는 존재를 지우고 싶었다.
아니, 그렇게 할 것이었다.
그래야만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이 되는 듯 마돈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행하지 않으신 일이잖습니까.”
“내 의견은 확고해.”
“이건 의원님의 보좌관이 아니라, 곁에서 오래도록 지켜봐 온 입장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정치판에서 수많은 일을 자행하고 벌여 왔지만, 그래도 나만의 기준을 만들어 지켜왔다.
선을 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허나, 이번 일은 다르다.
최지곤을 이 세상에서 지우게 되면, 내 손에도 더러운 것을 묻히게 되는 것이니까.
“내가 정치판에서 나가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의 복수는 해야만 해.”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마돈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언제로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예. 곧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잠깐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시간이 흘러서. 만에 하나 세상에 밝혀지게 된다면, 그건 모두 제가 벌인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마돈나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의원님은 제게 지시하신 일도 없고, 시키신 적도 없는 겁니다.”
“그래, 고마워. 대신 최대한 깔끔하게 처리해. 난 지현 씨 잃고 싶지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마돈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햇다.
“완벽하게 해결되기 전까지는 추가 보고드리지 않겠습니다.”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게 더 안전할 테니까.
“그렇게 해.”
그녀는 고개를 꾸벅이며 뒤로 물러났다.
곧이어 나가기 위해 문고리를 잡으려던 마돈나를 불렀다.
“지현 씨.”
“예, 의원님.”
“진심으로 고마워.”
“별 말씀을요.”
그녀는 코를 찡긋거리며 말했다.
“재작년에 저희 어머니 수술하셨을 때 도와주셨잖습니까?”
커다란 일도 아니었기에 따로 생색을 내지도 않았다.
지인을 통해 미국에 있는 의학 교수에게 부탁해 따로 수술 날짜를 빼주고 일체 비용을 지불해준 것 정도였으니까.
“저는 그때 결심했습니다. 의원님 위해서 제 인생을 바치기로요.”
마돈나는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사무실을 떠나갔다.
* * *
-오늘부로 최준석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로 복귀하였습니다. 대통령은 밀린 업무를 해결하기 위해……
TV를 지켜보던 첫째 최지만은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나라 정세가 말이 아니네.”
“그러니까 말이야.”
곁에서 지켜보던 둘째 최지원 또한 동조했다.
“아버지 복귀 소식에 국민들이 눈물 흘리고 아주 난리야.”
“얼마 전에는 최은실 사형 해달라고 촛불 집회까지 계획됐었잖아. 물론, 아버지 부탁으로 취소되었지만.”
“아버지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지.”
“근데 우린 이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최지만은 TV를 끄며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대선은 어떻게 할 건데?”
“나도 생각을 조금 해봤는데…… 당내 경선으로 정하는 건 어때?”
최지만이 멈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난 당내 경선 패배 이후 불복하고 서울시장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었으니까.
덕분에 야당에 패배했었고.
그걸 알고 있는 최지원은 기다렸다는 듯 덧붙였다.
“대신 각서를 쓰는 거야.”
“각서? 무슨 각서?”
“패배한 사람은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각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렇게라도 해야지.”
최지원은 진지하게 말했다.
“단순한 각서가 아니야. 법적 효력이 있는 계약서를 쓸 거야. 만약 어길 시, 들고 있는 재산 전부를 상대방에게 넘긴다는 내용으로.”
최지만은 움찔했다.
그건 꽤 강력한 조항이었다.
아무리 권력이 중요하다지만, 정치인에게 돈이 없으면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참고로 말하는 건데.”
최지원은 눈을 부릅뜨며 덧붙였다.
“어길 시에는 나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아. 형수랑 조카들까지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최지만도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대선에 나가려면 대한당에서 공천을 받아야 승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너도 마찬가지인 거 알지?”
“당연하지.”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자.”
어렵지 않게 합의에 성공했다.
둘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고태욱 비서실장이 만약 다른 생각을 했을 때 절대로 이길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아버지 장례식도 준비해야 돼.”
최지원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국민 여론에 따라 최소 5일 이상은 해야 돼.”
“한 일주일 정도는 하는 게 낫지 않나?”
“그렇긴 하지만, 이게 또…….”
그들은 태연한 얼굴로 아버지의 장례식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직 멀쩡하게 살아 계신 상태에서 얼굴을 보러 가기는커녕, 죽음에 관한 이야기나 하고 있다는 걸 최준석 대통령이 들으면 어떤 반응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그에 대해 관심도 없었다.
“우리는 거기서 최대한 오열해야 돼.”
“당연하지. 언론의 관심이 자연스레 우리에게 넘어오도록 만들어야 하니까.”
그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장례식을 통해 자신들이 대권의 진정한 후계자로 보일지에 대해 고민하는 게 우선순위였으니까.
“그리고 장례식 전에 대한당 내부부터 확고히 해야 돼.”
“맞는 말이야. 고태욱 비서실장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꽤 골치 아파지니까.”
“은실이한테 시선 쏠려 있을 때 먼저 당권 장악하자고.”
“지원이, 네가 한 번 사람들 모아 봐. 최고위원이랑 수뇌부들 모아서 이야기 한 번 하자고.”
“알겠어.”
* * *
청담동의 한 음식점.
뜨끈한 음식이 차갑게 식어 가고 있음에도 모여 있는 열 명 중 그 누구도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 모인 인물은 대한당의 수뇌부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차명건 의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가만히 있지만 말고 말을 좀 해 봐.”
“우선, 최지원 대표가 불렀으니 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는 건 간다지만…… 누구를 지지할 거냐가 문제지.”
“그래도 최지만이나 최지원이 낫지 않겠습니까? 대통령 핏줄인데.”
“그렇기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둘 보다는 고태욱 비서실장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얼마 전에 만나서 이야기 들어 보니, 아무래도 고 실장님이 더 나을 것 같긴 하던데요.”
사실, 그들은 최지원이 호출하기 전, 이미 고태욱 비서실장을 만나고 왔다.
그는 최준석 대통령이 자신의 뒤를 이으라고 한 직후부터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정치 역량은 큰 문제가 없어. 다만, 고태욱 비서실장이 국정 전반을 휘어잡고 있으니 문제지.”
“그렇긴 합니다만, 또 정통성이라는 걸 따지면…….”
갑론을박이 한참 이어졌다.
여기서 라인을 한 번 잘못 서는 순간, 대선 직후에 자신의 자리가 사라지는 건 자명한 일이었기에 줄을 잘 서야 했으니까.
그렇기에 홀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랜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결국.
“각하께서 누굴 밀고 싶은지 확인하고, 그에 따르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동의하는 말이었다.
허나,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당연히 최지원, 최지만 중 하나 아니야? 핏줄인데 그걸 놓치고 싶겠어?”
“그건 모르는 일이야. 아들들에 대한 신뢰는 이미 깨졌어. 서울시장 선거를 보고 아직 모르나?”
아들을 밀지, 아니면 고 실장을 밀지를 알 수 없었으니까.
“게다가 각하께서는 핏줄보다도 대한민국을 더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야. 까놓고 말해서 우리 대한민국이 최고 선진국 반열에 오르기 위해서는 고 실장님이 훨씬 더 적합하지 않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곁에서 십수 년을 있어온 만큼, 어지간한 장관 및 실무진보다도 오히려 국내외 정세에 훨씬 더 훤하기 때문.
“고 실장님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핏줄이라는 건 절대 무시할 수 없죠. 끌림이라는 게…….”
다시금 이어지는 토론 끝에.
“자자, 조용.”
원내대표 차명건 의원이 입을 열었다.
“어차피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해 봤자 결론은 나지 않아. 그건 다들 인정하지?”
의원들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각하의 생각을 따르자는 데도 동의하는 거고?”
다들 침묵했다.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면 최대한 중립을 지키고 기다리자고. 각하께서 결론이 서시면 우리를 부르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