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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 (2)
2022.04.25.


최은실이 최지훈을 만난 지 정확히 일주일 뒤.

그녀를 찾은 한 실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몰골이 상하셨습니까?”

“티가 나?”

“예. 꽤 많이요.”

이전에는 얼굴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었지만, 이제는 통통하던 볼이 갸름하게 보일 정도.

“막내가 왔다 갔어.”

“……최지훈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러면 저번에 말씀하셨던 게…….”

“최지훈 그 녀석이야.”

“허어…….”

최은실의 대답에 한 실장은 어안이 벙벙한 듯 입을 쩍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최지훈이 다녀간 뒤로는 몰래 숨겨둔 휴대폰까지 빼앗아 갔던 탓에 아예 소통을 하지 못했으니까.

그나마 오늘 만나게 된 것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면회가 가능해져서 찾아온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랍니까? 그 동안엔 변호사 면회도 불가능했잖습니까?”

“이 사건 담당 검사랑 손을 잡은 것 같아.”

“오성복 검사는 여사님이랑도 같은 핏줄 아니십니까?”

“그렇기는 한데…… 아무래도 이번 사건 훨씬 전부터 연이 있었나 봐.”

“아…….”

한 실장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래서 최지훈 그 녀석이 와서 뭐라고 합디까?”

그 이름이 나오자, 최은실은 슬쩍 몸을 움츠렸다

“살고 싶으면 다 뱉으라고 하더라고.”

“지금까지의 사실을요?”

“사실도 사실이고, 우리가 숨겨 놓은 비자금까지 전부 말이야.”

“…….”

한 실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5공화국 시절이라면 모를까, 그 뒤로는 권력을 빼앗거나 돈을 빼앗거나 둘 중 하나였다.

허나, 최지훈은 두 개 모두를 내놓으라는 소리를 한 것이다.

“그래서 둘 다 말씀하셨습니까?”

“아니, 일단 며칠 동안 생각해보라고 시간을 주더라고.”

“설마 다 말씀하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한 실장은 혹시나 해서 물었지만, 최은실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눈엔 두려움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막내와 달랐어.”

“……예?”

“지훈이라는 애 자체가 바뀐 느낌이었다고.”

실제로 느낀 바가 그랬다.

지난 면회에서 만난 최지훈에게서는 싸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알던 인간이 아닌 듯한 기운.

“평소의 눈이 아니었어. 눈깔이 뒤집어진 것 같았다니까.”

“그 정도입니까?”

“그래.”

한 실장은 이마를 감쌌다.

최은실의 눈만 봐도 그녀가 이미 두려움에 깊이 빠져 있는 상태란 건 알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진심으로 말씀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그걸 물어보려고 한 실장을 부른 거야.”

최은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될 것 같아? 말하지 않아도 방법이 있을 것 같아?”

“……아직까지 확신할 순 없습니다.”

여전히 대중들의 분노는 가시지 않은 상태.

국민청원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100만 명이 넘는 동의 서명을 받았고.

관심에서 잊히지 않도록 연일 뉴스에서도 그녀의 근황에 관한 이야기가 보도되고 있었으니까.

최은실은 탄식을 내뱉으며 말했다.

“말 안 하면 방법이 없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한 실장은 조심스레 물었다.

“최지훈을 믿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게 가장 문제였다.

사실대로 밝히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최지곤이 손을 떼고 최지훈에게 합류한 시점에서 진실이 밝혀질 수밖에 없는 건 기정사실화된 것이었으니까.

다만, 문제는 모든 걸 밝힌 뒤였다.

최지훈에게 일련의 사실들을 털어 놓으면, 그가 최은실을 도와줄까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

“만약에 막내를 믿지 않는다고 해도…… 검사를 통해서 지훈이 귀에 들어갈 거야.”

“하긴…… 그렇긴 하겠네요.”

“최지훈을 믿고 싶진 않지만, 우리에게 가진 카드가 그것밖에 없어.”

그녀는 뱀눈으로 한 실장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뭐라도 들고 왔으면 모를까…….”

“죄송합니다.”

그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나 최은실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실장이 아무리 뛴다고 해도 제대로 구원 투수를 데려올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자명했으니까.

“여사님.”

한 실장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다른 형제들에게 연락을 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내 오빠들?”

“예. 최지만이나 최지원 정도면 그래도 도와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날카롭게 덧붙였다.

“이번 결론이 어떻게 된다한들, 어쨌거나 최지훈의 세력이 커지는 걸 반대할 만한 사람들이잖습니까?”

“연락 안 해 봤을 것 같아?”

“……이미 해 보신 겁니까?”

“그래.”

물론, 들려온 대답은 뻔했다.

아버지가 조만간 돌아가시게 되면, 최지훈은 대통령 선거에 나갈 수 없는 나이다.

당연히 첫째 혹은 둘째에게로 시선이 쏠리게 될 테니 최지훈을 견제할 게 아니라, 대선을 대비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을 휘어잡아야 하는데, 이미 여론은 최은실에게 엄벌을 내려 달라고 하는 상황이니, 그녀와 손을 잡을 리 만무했으니까.

“그러면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지훈이밖에 없어.”

“…….”

“불길하지만, 그래도 믿어 봐야지. 혹시 알아?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용서해 줄지.”

* * *

“어, 지훈아 왔어?”

최은실은 반갑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의자를 꺼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곳은 구치소가 아닌, 검찰청 조사실.

그렇다고는 해도, 그녀와 나 둘뿐이었다.

매직미러로 보고 있는 인물도 없었고, 녹음 또한 켜두지 않았다.

“내가 오래도록 생각해 봤는데.”

최은실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네가 말했던 대로 솔직하게 말하려고.”

“말해 봐.”

“우선, 아버지를 췌장암에 걸리게 하려고 한 건 사실이야.”

그 말에 입을 꾹 닫았다.

치아를 꽉 물었지만, 최대한 포커페이스로 티를 내진 않았다.

“근데 돌아가게 하려고 한 건 아니었어.”

“췌장암이면 치사율이 가장 높은 암이잖아. 그 정돈 알고 준비한 거 아니야?”

“그래. 그걸 노리긴 했어. 그런데 정말 죽이려던 건 아니었거든.”

최은실은 눈을 꽉 감았다 뜨며 말했다.

“지곤이가 이 계획에 가담했던 건 알아?”

“알지.”

“아버지께 투입한 암세포는 돌연변이야. 일반 의료진이 쉽게 치료할 수 없는 세포라는 뜻이고.”

나도 모르게 감정이 또다시 격앙되려 했다.

“그게 돌아가시게 하려는 게 아니면 어떤 건데?”

“화내지 말고 들어봐.”

그녀는 날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원래는 내가 암을 유발하고, 지곤이가 그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돈을 투자한 거야.”

“……치료제?”

“어. 알다시피 아버지가 우리 쌍둥이에게 가장 관심이 적은 건 사실이잖아.”

그건 사실이었다.

다른 형제들에 비해 최지곤과 최은실 쌍둥이는 아버지의 눈 밖에 난 적이 많으니까.

“그래서 아버지가 암에 걸려서 투병 중일 때, 나랑 지곤이가 투자한 회사에서 치료법을 개발하고 아버지를 완쾌시키려고 했어.”

“그렇게 해서 마음을 사려고 했다고?”

“맞아. 그러면 조금이라도 우리가 정권의 중심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여겼거든.”

최은실은 허심탄회하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을 시행하던 중에 지곤이가 총선에서 패배했잖아. 그래서 아버지의 눈 밖에 나 버렸고. 이에 열 받은 지곤이는 치료제를 개발하는 회사에 투자한 돈을 아예 빼버린 거야.”

최지곤이 내게 설명했던 내용과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얼추 비슷하긴 하다.

치료제를 개발한 것까지는 팩트지만, 그 이후의 상황을 각각 자신에게 유리하게 변형해 이야기한 것이겠지.

“그러면 누나도 멈출 수 있었잖아.”

“나는 지곤이와 달랐어.”

그녀는 내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어차피 멈추더라도 돈을 회수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그러면 아버지를 죽이려고 마음먹은 건 맞네.”

“아니야.”

최은실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지곤이를 설득할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녀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지곤이가 투자만 하면, 모든 계획은 그대로 돌아가니까. 그런데 내가 지곤이를 설득하는 사이, 그쪽에서는 기회가 생겼을 때 아버지에게 암세포를 투입해버린 거고, 나는 막을 수가 없게 된 거야.”

“지곤이 형은 마음을 돌리지 않았고?”

“그렇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다.

워낙 약삭빠른 인물인 데다가 거짓말에 능한 인물이니까.

그러나 상관없었다.

그녀가 말하는 게 진실이든, 거짓이든 간에.

나는 최은실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누나가 말한 게 진실이라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관련자들 명단 전부 넘겨줘.”

“……전부?”

그녀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한 실장 통해서 접촉한 인물이든, 직접 이야기한 인물이든 상관없어. 이번 일에 연관된 사람들 명단과 그 과정 전부 내게 알려줘.”

“…….”

최은실은 잠시 고민하는 듯 입을 닫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선택권은 많지 않았다.

“다 넘기면 어떻게 되는 건데?”

최은실은 재촉하듯 내게 물었다.

“나는 살려주는 거야?”

“당연하지.”

물론, 거짓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거짓이 아니었다.

사형을 처하지는 않고.

무기징역으로 평생 감옥에서 ‘살아 있게’ 해 줄 테니까.

살아가는 게 죽는 것보다 더 고통이고 괴로운 것이라는 걸 알려줄 것이다.

허나, 최은실도 쉽게 넘어올 생각은 없는지 다시금 말을 꺼냈다.

“약속이 필요해.”

“약속?”

“응. 나를 다시 살려주겠다는 약속.”

그녀의 말에 코웃음 쳤다.

“이 상황에서 그걸 어떻게 해?”

“왜 못 써?”

최은실은 눈을 희번득 떴다.

“날 교도소에서 빼주겠다는 약속. 그것만 하면 돼. 어려운 것도 아니야. 그냥 도장 하나만 찍어주면…….”

“누나.”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정신 차려. 내가 그걸 쓰고 누나를 꺼내주면, 그 각서를 가지고 협박할 거라는 걸 모를 것 같아?”

“그렇지 않아. 난 진짜 그냥 이제 조용히 살아갈 거야.”

“그건 둘째 치고.”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여유롭게 물었다.

“대중들이 이렇게 화났는데 내가 그 위험한 각서를 쓸 것 같아?”

“…….”

“냉정하게 생각해. 내가 아니면 지금 상황에서 누나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없다.

단 한 명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도박이라는 것도 승산이 있을 때 하는 법이지, 지옥불이 훤하게 깔려 있는데 그곳으로 뛰어들 만한 미친놈은 없으니까.

정치판이라는 곳 자체가 원래 높은 곳을 위한 배팅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만 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안전한 곳을 지향하는 법이니까.

“싫으면 말아.”

“…….”

나는 단호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았다.

그리고 두 걸음 정도 걸었을까.

“할게.”

최은실이 다급하게 외치며 일어났다.

“한다고. 하면 되잖아.”

내 입꼬리가 거칠게 휘어졌다.

그러나 이내 꼭 부여잡고 다시금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

“사실대로 이야기 해. 전부.”

나는 테이블 위에 있던 A4용지와 펜을 그녀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누나가 알고 있는 거 적어. 하나도 빠짐없이. 누나가 했던 짓도 빠뜨리지 말고.”

최은실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알겠어.”

어렵사리 대답하며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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