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 (1)
(175/200)
덫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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덫 (1)
2022.04.24.
-죄송합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가 다시는…….
삑-.
영부인은 리모컨으로 TV를 꺼버렸다.
병상에 앉아 있던 최준석 대통령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왜 꺼?”
“그만 봐요.”
영부인은 애써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최준석 대통령이 화를 낼 만한 일이었으나.
오늘만큼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받아들였다.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을 이곳에 입원시키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인해 딸이 구속되는 장면을 보는 건 쉽지 않았기 때문.
“밥이나 먹어요.”
영부인이 밥상을 내왔지만.
“입맛 없어.”
“먹어야 또 약을 먹지.”
“약은 무슨 약이야.”
최준석 대통령은 비관적인 말투를 내뱉었다.
“어차피 3개월밖에 안 남았는데.”
“여보.”
“솔직하게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그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슬프거나 우울해서 힘이 없는 게 아니야. 어차피 갈 사람이 된 마당에서 약 먹는 걸로 하루이틀 더 버티는 게 의미가 없으니까 하는 말이지.”
진심이었다.
그는 본인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마당에 굳이 발버둥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니까.
“당신은 억울하지도 않아요?”
“억울할 게 뭐가 있어? 다 내가 뿌린 거 내가 거두는 건데.”
“…….”
최준석 대통령은 옅게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잘못 살아온 탓이지, 뭐.”
“여보.”
“실제로 그렇잖아. 내가 당신한테도 미안한 게 많아.”
그는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
“따지고 보면, 내가 국정 운영한다고 가정에 신경 못 쓰고 소홀한 건 사실이니까. 당신이 애들 혼자 키우느라 고생 많았지.”
“아니에요.”
“그래도 후회는 없어.”
최준석 대통령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여섯 놈의 자식들 중에서 한 놈만이라도 제대로 키우면 되는 법이니까.”
“…….”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야.”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지만, 유독 마음에 걸리는 인물은 하나 있었다.
“넷째는 요즘 뭐 하고 살아?”
넷째 최지성.
그나마 막내는 늦게나마 그의 진가를 알아보고 돕기로 해서 괜찮았으나.
넷째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꿈만 꾸고 있어서 도와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당신은 연락하니까 알 거 아니야.”
“그냥 뭐 똑같죠. 연예계에서 일하고 있나 봐요.”
“그래?”
최준석 대통령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면 이번 주중으로 넷째 며느리 한 번 불러봐.”
“지성이랑 함께요?”
“아니, 어멈만 불러. 이번에 임신했다며.”
“알겠어요.”
“지성이 모르게 데려와.”
“그럴게요.”
* * *
딱.
딱딱.
차가운 독방에 손톱 물어뜯는 소리가 나지막이 울려퍼졌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텅텅.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삐걱.
배식구가 열리며 식판이 하나 들어왔다.
“점심입니다.”
최은실은 후다닥 배식구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는 식판을 가져와 숟가락을 드는 대신, 식판 밑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턱.
아니나 다를까, 손에 걸리는 전자기기.
휴대폰이었다.
구치소에는 들여올 수 없지만, 당연히 그녀가 이에 순응할 리는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밖과 소통해야만 했으니까.
그녀는 식판에 있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곧장 자신의 수족과 같은 한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이 들린 뒤에야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어, 나야.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
-밖은 난리입니다.
직접 보지 않아도 한 실장이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이 상상이 가는 목소리.
-여사님에게 대한 반발이 굉장히 거셉니다.
실제로는 최은실을 사형에 처해 달라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오고 있었으나, 감옥에 갇혀 있는 그녀에게 그 사실을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거야?!”
그녀는 입에 있던 밥풀까지 튀기며 소리쳤다.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야 될 거 아니야? 그러라고 내가 한 실장한테 월급주는 거 몰라?!”
-죄송합니다. 저도 최대한 비서진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긴 합니다만…… 이게 아무래도 사건이 사건인지라, 쉽지가 않습니다.
한 실장 또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제가 이번 일은 너무 위험성이 크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내 탓을 하겠다고?”
-그런 게 아니고…….
“하아.”
최은실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남편은 뭐래?”
-그게…….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시아버지 박태원은 책임 전가를 위해 이혼을 하라며 아들에게 종용하고 있었고.
남편 박홍성 또한 그게 옳은 길이라고 생각 중이었으니까.
“별 말 없었어?”
-제가 한 번 더 만나 보겠습니다.
“어떻게든 빨리 방법 찾아내.”
최은실은 들고 있던 숟가락까지 내려놓으며 말했다.
“직접 해결 못 하겠으면, 대한당 사람들 만나 보란 말이야. 아니면, 민국당이나 만세당에도 접근해서 방법 강구해내. 내가 죽으면 한 실장도 죽는 거 몰라?”
-알고 있습니다.
“한 실장 아들 이번에 고3이라며. 외국 대학 준비한다고 했지 않나?”
-……맞습니다.
“학비 꽤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이번에 나가야 그걸 전부 지원해 주든 말든 하지.”
한 실장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녀를 위해 십수 년간 일해 온 만큼,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되어 간다고 한들, 그에게 희망은 최은실뿐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우선 다른 정당에 접근해도 괜찮다는 말씀이시죠?
“그래. 정당뿐만 아니라, 해결해 줄 수 있으면 아무나 다 찾아가 봐. 정 안 되면 이번 사건 담당 판사라도 매수해 보든가.”
-예. 어떻게든 진행해 보겠습니다.
“진행되는 거 있으면 바로 연락해. 전화 가능 시간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전화를 끊은 그녀는 깊은 숨을 내뱉으며 휴대폰을 베갯잇 속에 숨겼다.
식판을 바라본 최은실의 얼굴엔 자괴감이 피어났다.
허나, 국정원이 직접 나선 탓에 변호사 면회마저 금지된 이 상황에서 그녀가 먹을 수 있는 거라고는 이 음식들이 전부였다.
그녀는 입술을 꾹 깨물며 다시금 음식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 * *
“매수가 들어왔다고요?”
“예, 그렇습니다.”
“허허…….”
절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벌써 4번째다.
구속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몇 명이나 접근을 했는지, 원.
허나, 그 중 대다수의 인물들이 내게 직접 말해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 여론이 이렇게 들끓는 상황에서 매수를 받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데다가.
내가 관련자들을 전부 찾아내서 국정원과 검찰에 넘기고 있는 마당이니, 오히려 내게 말하고 손을 잡는 게 장기적으로는 더 낫다고 판단할 테니까.
오늘 나를 찾아온 인물은 다름 아닌, 김정현 판사.
최은실 사건에 대해 전담하고 있는 판사이며.
가장 큰 특징으로는 민국당 성향을 진하게 갖고 있는 인물이었다.
“정확히 어떤 제안을 하던가요?”
“이번 사건에 대한 재판에서 좋은 판결을 내려주면 좋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반포에 아파트 한 채가 남는다면서요.”
“구체적으로 몇 년 형을 달라고 하지는 않았고요?”
“예. 그것까진 밝히지 않았습니다.”
꽤나 지능적이다.
정확히 어떠한 판결을 받고, 그에 대한 보상을 제안했다면 그건 정확히 매수로 확인되어 처벌이 가능하지만.
이처럼 모호하게 나올 경우엔 처벌이 불가능하니까.
물론, 실제로 보상을 해주겠다는 뜻은 명확했지만, 법적 판단에서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괘씸하기 그지없네요.”
“그렇죠.”
김정현 판사 또한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은 것 같습니다.”
민국당 성향을 갖고 있는 판사가 느끼기에도 부정적인데 대통령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아버지한테 사과할 생각은 안 하고…….”
나는 이를 빠득 갈았다.
그러나 최대한 감정을 가라앉힌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쪽에서 제안한 걸 제가 똑같이 들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는 오해하지 말라는 듯 손을 저었다.
“애초에 제가 그런 걸 원해서 말씀 드린 것도 아니고요.”
“이해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제가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약속드리긴 어렵고…….”
김정현 판사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그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기억한다.
특정한 약속보다도 그 한 마디가 더 큰 파급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건 김정현 판사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터.
“이번 판결은 법적인 기준에 맞게. 그리고 국민들의 생각에 어긋나지 않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물론입니다. 그게 제 일인걸요.”
그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보겠습니다.”
“예,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뒤 자리를 빠져나갔다.
다시금 홀로 남은 공간.
“후우.”
나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았다.
이런 상황이 오면, 최은실이 바닥을 보일 줄은 알았는데, 바닥을 뚫고 지하까지 내려간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점차 분노는 가시고 격앙된 감정은 가라앉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용서할 생각은 더욱더 사라졌다.
혈육만도 못한 인간, 최은실.
그녀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릴 것이다.
* * *
“최은실, 면회다.”
“……면회요?”
독방에 홀로 갇혀 있던 그녀는 눈을 번쩍 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널 살려 줄 사람이라고 전해 달라던데?”
교도관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고는 자물쇠를 풀어주었다.
최은실은 격한 기대감을 품었다.
‘한 실장, 이 자식 드디어 일 좀 제대로 했구나!’
보름이 넘도록 소식이 없기에 절망감이 점점 깊어지고 있었는데.
드디어 구한 모양.
게다가 국정원의 요청으로 인해 면회가 금지된 이 상황에서 자신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사람이라니.
평범한 힘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분명 자신이 이곳에서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써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일 터.
그녀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번졌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는 아무리 법치 사회라고 한들, 사람과 사람의 인연 및 인맥으로 인해 모든 게 해결 가능한 곳이었으니까.
실제로 사람을 죽이고 버젓이 정치 활동, 방송 활동을 하는 사람이 널려있는 곳이 대한민국이었으니까.
그녀는 짙은 기대감을 품고 면회실로 들어갔다.
“기다리면 올 거다.”
교도관은 최은실을 홀로 남기고 면회장에서 빠져나갔다.
일반 면회실도 아니고, 1:1로 만날 수 있는 면회실.
그것도 교도관이 입회하지 않고서 진행이 될 예정이라는 건 정말 평범치 않은 인물이라는 뜻.
그녀의 기대감은 점점 부풀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 10분쯤 지났을까.
끼익-.
무거운 철문이 열리고 등장한 인물은 예상치도 못한 남자였다.
“……지훈이 네가 왜 오는 거야?”
최지훈.
눈을 부비고 다시 봐도 최은실의 막내 동생 홀로 서있었다.
그는 차가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살고 싶으면 모든 걸 솔직히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
이내 그녀의 기대감이 무참히 깨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