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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치는 (7) (174/200)


소용돌이치는 (7)
2022.04.23.


“막내가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예, 그렇다고 합니다.”

“허어…….”

최지만은 턱을 매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생각인지 예상이 가지 않는데.”

오늘 오후 2시를 기점으로 최지훈이 기자회견을 잡아 두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체 이 상황에서 뭘 하려는 거야?”

안 그래도 최준석 대통령의 암 투병 사실이 밝혀지며 모든 국민들의 시선이 청와대로 쏠려 있는 와중에 기자회견을 열 줄이야.

어떤 내용을 꺼내든 주목을 받기야 하겠지만, 자연스레 대통령의 건강에 대한 질문을 받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애초에 기자들은 그것에 대해 듣기 위한 목적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가는 것일 테니까.

“지금 최지훈이 따로 준비하고 있는 사건은 없지 않나?”

“예. 제가 알기로도 이번 각하 사건에 대해 배후를 밝히는 데 집중한다고만 들었어서…….”

오 실장도 가늠이 가지 않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혹시 실체를 안 거 아닐까요?”

그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셋째 쌍둥이들에 대하여라거나…….”

“쉿.”

최지만은 미간을 찌푸리며 눈에 힘을 주었다.

“오 실장, 그런 거 함부로 말하면 안 돼.”

“아, 죄송합니다.”

오 실장은 걱정된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왠지 분위기를 보면, 만에 하나 저희가 준비 상황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쪽에서 인지하는 순간, 꽤나 위험해질 것 같아서요.”

“그럴 리는 없어. 오 실장이랑 나만 입 다물면 돼.”

“그래도 중간에 알아챈 사람들이 꽤 있어서요.”

“정보 제공자들이 얼마나 있는데?”

“제가 조사하던 과정에서 알게 된 사람들이 조금 있죠.”

“그 정도는 괜찮아.”

최지만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어차피 그 인간들도 자기 살아남기 위해 정신 없을 테니까.”

“하긴, 그렇겠죠?”

“그래.”

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을 이었다.

“조사하게 되면 최은실에 대해서는 오래지 않아 알게 될 거야.”

“그렇긴 하죠?”

“당연하지. 아무리 셋째 쌍둥이들이 감춘다고 해도 청와대의 고 실장이 나섰는데 모를 수가 없지.”

“최지곤은 나가리 되었으니 둘째 치고, 최은실은 큰일 나는 거 아닙니까?”

“그렇기야 하겠지만, 증거를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거야. 정황이 있는 것과 확증이 있는 건 다르니까.”

“맞습니다.”

“우선, 오 실장은 오늘 기자회견장에 직접 가 봐. 최지훈의 몸짓, 어휘, 어미 하나하나 빠짐없이 체크해서 보고해.”

“알겠습니다.”

* * *

“준비되셨습니까?”

“어.”

최지훈은 옷매무새를 다잡고 문 앞에 섰다.

마돈나는 내 넥타이를 정리해 주며 그에게 문서 몇 장을 내밀었다.

“멘트 정리해 둔 대본입니다.”

“됐어.”

그는 손을 저으며 단추를 채웠다.

“어차피 다 외웠으니까.”

“알겠습니다.”

마돈나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난 뒤, 그가 직접 문을 열었다.

촤르르륵-.

카메라 셔터음이 들려왔다.

그는 곧바로 마이크 앞으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최지훈입니다.”

서론은 꺼낼 생각이 없었다.

사람들의 지지도를 얻기 위해 움직였던 평소와 달리.

오늘의 기자회견만큼은 정말 작금의 상황에 대해 알리기 위해 이곳에 선 것이니까.

“얼마 전, 아버지께서 췌장암에 걸리셨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용어 대신 아버지를 사용했다.

평소와 다른 단어 선택.

오늘 기자회견에서 말하는 내용은 전부 최지훈이 직접 쓰고 준비했다.

허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한 구절 한 구절에 대해 모두 체크하지 못했으나.

‘아버지’라는 단어가 오히려 듣는 이에게로 하여금 몰입감을 키워 주었다.

“처음엔 밝히지 않으려 했습니다. 후폭풍을 줄이기 위해 어느 정도 준비를 해 둔 뒤에 밝히려는 생각이었으니까요.”

실제로 그랬다.

단순히 최지훈뿐만 아니라, 청와대는 물론이고 최준석 대통령 또한 그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하였으니까.

“그런데 얼마 전 기사가 났죠. 그래서 저 또한 모든 걸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는 마이크가 있는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였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아버지의 췌장암은 자연 발생된 게 아닙니다.”

예상치도 못한 그의 발언에.

“……어?”

“뭐야?”

웅성웅성.

기자들은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재차 확인하며 술렁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췌장암은 제3자로 인해 유발된 것입니다.”

그의 발언은 인터넷은 물론이고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특정한 누군가가 아버지를 사망에 이르게 하기 위해. 즉 암살하기 위해 이 은밀한 사건을 벌였다는 것이죠.”

타다다닥.

기자들이 다급하게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회견장에 빠르게 울려퍼졌다.

“청와대에서 아버지의 상태에 대해 확인하고 조직 검사까지 시행해 자세히 분석해 본 결과, 일반 암세포와 달랐습니다. 유전자 변형을 거친 세포라는 거죠.”

최지훈은 거침이 없었다.

“물론, 그것만으로 확신하는 건 아닙니다. 정말 아버지의 신체 내에서 돌연변이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조사해 본 결과를 따져 보면 그럴 가능성은 극히 낮았습니다.”

그는 주먹에 힘이 꽉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확증은 아니나, 아버지에게 암세포 유발시켰던 기업을 찾아냈습니다.”

모든 걸 밝힐 생각이었다.

“미원제약입니다. 해당 회사에서 운영하는 세포 연구소 중 한 곳에서 연구 중인 암세포의 돌연변이 샘플과 일치한 걸 확인했습니다. 또한, 그곳이 특정인들로부터 부정한 투자금을 받은 것 또한 확인을 했고요.”

최지훈은 솔직하게 밝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100%라고 확답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정황으로는 확실하지만, 판결에서 따지는 법적 증거로는 부족할 수 있으니까요.”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국적인 관심이 쏠려 있는 만큼, 패소하면 엄청난 액수의 손해배상을 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모든 걸 감수하고 제가 여기서 기업의 이름을 밝히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의 생명을 앗아간 그 악마들에게 정의를 구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본인 당락이 걸린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긴장하지 않던 최지훈이 떨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해당 기업에서 독단적으로 아버지를 암살하려고 한 건 아닙니다.”

배후에 대해서도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공개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는 게 참으로 부끄러우나, 제 핏줄이자, 셋째 누나인 최은실이 이 모든 계획을 세우고 이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에 밝히겠다거나, 특정한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 밀당 따위는 없었다.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사필귀정’이었으니까.

“모든 증거는 검찰에 제출하였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조사를 해주시길 간곡히 요청드리며…… 국민 여러분께서도 꼭 주시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최지훈은 한 걸음 물러나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를 지켜보던 마돈나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마이크 앞에 선 만큼, 최지훈은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으나.

떨리는 목소리나 몸짓, 눈빛에서 알 수 있었다.

그가 절규하고 있다는 사실을.

국회의원 최지훈이 아니라, 인간 최지훈으로서.

누군가의 아들로서 말이다.

오래도록 지켜봐 왔기에 더욱더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최지훈은 어느 때보다도 처절하고 철저했다.

기자회견 자체가 아버지를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이 울부짖는 것처럼 들려오면서도.

이 자리에서 내뱉는 모든 한 마디 한 마디가 미원제약과 최은실에게 비수가 되어 꽂히리라는 건 확실했으니까.

그래서 마돈나는 몸소 체감했다.

최지훈이 두려운 존재가 되기 시작했다는 걸.

더 이상 그는 지금까지 알던 청와대의 막내 최지훈이 아니었다.

이전까지도 완벽하게 모든 걸 설계해 자신이 원하던 걸 철저하게 손을 넣었지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 그에게는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이유가 없었으니까.

한 마디로 각성을 한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최지훈이 기자회견을 끝내고 내려왔음에도.

그 유연한 마돈나 또한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최지훈은 차에 타고 나서야 문득 입을 열었다.

“지현 씨.”

“네?”

“빠른 시일 내로 최은실 끝장낼 겁니다.”

* * *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미원제약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압수수색부터 시작해서 경영진 구속을 거쳐 세무조사까지.

최은실은 잠적을 선택했다.

허나, 언론을 통해 얼굴과 신체사항, 특징들까지 밝혀진 사람이 숨기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땅덩이가 너무나도 작았다.

언론에서도 굳이 얼굴을 숨기지 않았다.

최은실은 대통령의 외동딸로서 이미 매스컴에 너무나도 많이 노출되었기에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인적사항은 물론이고 인상착의까지 나오기에 모자이크를 해도 의미가 없었으니까.

기자회견 직후,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들어갔고 당연히 구속 영장까지 발부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한참을 숨어 다니다가 3주 만에 그녀는 지방의 한 호텔에 숨어 있다가 검거되었다.

룸서비스를 하던 여성의 슬리퍼를 지적하다가 걸렸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

구속 직후, 언론을 피해 몰래 그녀를 만나러 갔다.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으러 출석했을 때 오성복 검사를 통해 직접 대면했다.

그러자, 최은실은 나를 보며 화들짝 놀라더니.

“지훈아!”

내 바짓가랑이를 잡으며 매달렸다.

“내가 미안해.”

도피 생활을 했던 사람치고, 얼굴이 아주 반질반질했다.

그래서 더욱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지 최은실은 두 손까지 모으며 간절하게 날 바라봤다.

“내가 잘못했어. 진짜 미안하다.”

기자회견부터 시작해서 모든 정보를 알고 있었던 탓에 내가 키를 잡고 있다고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지 오래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한 번만 어떻게 용서해 주면 안 되겠니?”

추하다.

흉하다.

온갖 역겨운 단어들을 나열한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을 정도의 추잡함.

나와 같은 핏줄이라는 게 부끄러울 수준이었으니까.

“누나.”

나는 그녀의 눈을 직접 바라보며 말했다.

“왜 나한테 사과를 해?”

“……어?”

최은실은 눈을 꿈뻑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니라, 아버지한테 사과해야지.”

“……아.”

“낳아 주고 길러 주고 권력은 주지 못해도 좋은 집안과 돈까지 쥐여 줬는데…… 돌아온 선물이라고는 췌장암이니, 아버지께서 얼마나 슬프시겠어?”

“…….”

최은실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지 입을 꾹 닫았다.

“그냥 거기서 평생 살아.”

“지훈아. 내가…….”

나는 그녀의 말을 끊어냈다.

“차가운 독방에서 죗값 받으면서 평생 땅 치고 후회하면서 절규하면서 살아. 그게 아버지께 사죄하는 유일한 길이니까.”

더 이상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지훈아!”

수갑을 차고 있는 최은실은 다급하게 일어섰지만.

나는 단호하게 외면하며 검찰청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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