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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치는 (5) (172/200)


소용돌이치는 (5)
2022.04.21.



“청와대에서 자료 조사 요청이 들어왔다고?”

“예, 그렇다고 합니다.”

한 실장의 보고에 최은실은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거 아무래도 위험해 보이지?”

“네. 다른 부서도 아니고 비서실에서 요청이 들어온 걸 보면, 아마 눈치챈 게 아닐까 싶습니다.”

“미원제약에 연락해 봐. 아니, 내가 직접 전화할게.”

그녀는 곧장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네, 최은실입니다. 뭐 하나 여쭤볼 게 있어서요. 혹시 정부에서 연락이 왔나 해서…… 아, 왔어요?”

그 이야기를 들은 한 실장은 빠르게 태블릿 PC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최은실이 미원제약과 연관된 자료가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네네. 안 넘기셨다고요? 예, 잘하셨습니다.”

그녀는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 찰나.

“……예?”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온 예상외의 이야기에 그녀의 안색이 차갑게 굳었다.

“네. 네. 네. 확실한 겁니까? 언제요? 예. 알겠습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마음을 놓으려던 한 실장도 허리를 굽히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지곤이가 다녀갔대.”

“……최지곤 전 의원님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걔가 어제 와서 자료를 받아갔다고 하네.”

“자료라면…….”

“최지곤과 내가 투자했던 내역. 이전에 녀석이 투자했던 걸 이어받은 것까지 전부 상세하게 나와 있을 거야.”

“……그렇다면 위험한 거 아닙니까?”

최은실을 차갑게 머리를 식혔다.

“청와대에서도 알아차렸고, 지곤이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이거 상황이 굉장히 나쁜데.”

“각하께서 췌장암 판정을 받으신 게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

과정이 어떻게 되었건 간에, 최준석 대통령이 암에 걸린 게 확인되었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이전에 그를 담당했던 주치의에게 문제가 있었던 걸 알 수밖에 없다.

이럴 줄 알고 최대한 빠르게 해외로 이민을 시켰지만, 그에 대해 조사가 생각보다 더 빠르게 이뤄진 탓에 꼬리가 밟히고 있는 모양.

“이렇게 되면 우리까지 유출 될 가능성이 있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최은실은 미간을 꾹 눌렀다.

쉽사리 판단이 되지 않았다.

단순히 청와대만 움직여서 추적하는 게 아니라, 최지곤까지 움직였다.

이는 즉, 여차하면 자신이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다는 뜻.

그녀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한참을 고민한 끝에.

“우선, 남편한테 연락할게.”

박홍성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지금은 회의 중이니, 잠시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자동 응답 메시지만 들려올 뿐이었다.

“서둘러 대책을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요.”

목을 죄어오는 압박감에도 최은실은 최대한 냉정하게 머리를 식혔다.

“한 실장이 보기에도 유출될 건 확실해 보이지?”

“예. 머지않아서 터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아아…….”

만에 하나, 최지곤까지 청와대에 붙는다면, 자신이 모든 걸 덮어쓸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자신과 손을 잡고 움직였던 최지곤이라면, 대부분의 자료를 들고 있을 테니까.

“이러면 어쩔 수 없어.”

최은실은 사나운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에게로 시선이 쏠리지 않게 만들어야 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판을 흔들어야 된다고.”

언론이 요동치고 소용돌이에 휩쓸려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지 않을 테니까.

“한 실장.”

“네, 여사님.”

“김 기자한테 연락해.”

“……예?”

눈을 번쩍 뜨며 만류했다.

“그건 너무 위험합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고태욱 비서실장한테 끌려갈래?”

“…….”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한 실장도 부정할 순 없었다.

가만히 있다가 모든 사실이 밝혀진다면, 구속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란죄로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사안이었으니까.

“김 기자에게 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이라 알리고 지금 당장 보도 내라고 해.”

“……저희가 출처라는 걸 알아챌 겁니다.”

“상관없어. 지금은 언론이 불타야 대중들이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릴 거야.”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췌장암이라고 보도하면 될까요?”

“아니지, 한 실장!”

최은실은 목소리를 카랑하게 내며 다그쳤다.

“방금 말했듯 우선은 위독하다고 알린 뒤에 시선이 모이면 시한부라고 뿌려. 그 이후에 췌장암인 걸 밝혀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못하도록 계속 쇼를 하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움직여.”

“예, 여사님.”

한 실장은 깍듯하게 고개를 꾸벅이고는 빠르게 사무실을 뛰어나갔다.

그가 떠난 뒤, 최은실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수신인은 前 국회의장이자, 자신의 시아버지인 박태원 의원.

“네, 아버님. 저예요. 예. 그이는 지금 회의 중인 것 같아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러는데 지금 찾아뵈어도 될까요? 네. 꽤 걸릴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30분 내로 갈게요.”

그녀는 핸드백을 챙기고는 서둘러 사무실을 나섰다.

* * *

-KTS 단독 보도입니다. 최준석 대통령이 위독한 상황으로 현재 청와대 특별 병동에서 입원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이는…….

“이런 미친.”

최지훈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절로 튀어나왔다.

놀란 건 최지훈뿐만이 아니었다.

“조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오성복 검사는 당연했고.

“의원님, 벌써 보도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보좌진들 또한 꽤나 당황한 눈치였다.

최지훈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내부에서 퍼져나간 사실은 아니다.

이들이 다른 이들에게 알릴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그렇지 않을 인물들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아니까.

“혹시 청와대에서 유출된 게 아닐까요?”

강선우 보좌관이 물었지만, 최지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 거야.”

고태욱 비서실장이 직접 진두지휘하고 있는 안건이다.

게다가 보통 건도 아니고, 대통령의 건강에 대한 사안.

고태욱 실장은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이들만 통해서 사건을 조사하고 있을 터.

그런 인물 중에서 고태욱을 거역할 만한 사람도 없을 터.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최은실이 퍼뜨린 거야.”

“……네?”

최지훈을 제외한 모든 이의 얼굴에 놀란 기운이 서렸다.

“본인이 그걸 직접 밝힌다고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있지.”

“왜죠?”

“우리가 최은실에게 혐의가 있다는 걸 알았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거야.”

“……아!”

마돈나는 눈을 찡그렸다.

“판을 흔들려고 하는 거군요.”

“그렇지.”

일단 대통령의 건강 악화에 대한 보도가 나가면, 대북 도발부터 시작해서 해외 정세까지 흔들리는 건 당연한 사실.

경제적 영향도 있을 테니 국민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몰리는 건 물론이고, 청와대 또한 이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그렇게 우리의 인력이 분산되어 정신이 빠져있을 때 증거 인멸을 하려는 셈이겠지.

“이런 X같은 년이, 진짜…….”

최지훈의 속에서 분이 치어올랐다.

몇 번이고 꾹 눌렀지만, 이번에는 아무리 하여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간 것도 모자라서.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이제는 병상에 누워있는 아버지까지 이용하려는 게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으니까.

한 번 죽이는 것도 모자라, 두 번 세 번 네 번 죽이려는 것이었으니까.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빠드득-.

그의 치아가 갈려나갔다.

최지훈을 지켜보던 마돈나는 움찔하며 몸을 움츠렸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그가 화를 내고 분한 감정을 느끼는 걸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허나, 이번엔 이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치 불타는 아우라가 보이는 듯한 느낌.

최지훈은 어느 때보다도 더 들끓고 있었다.

분노감이 차올랐고.

그게 겉으로도 드러나고 있었다.

최지훈은 주먹을 꽉 쥐는 것도 모자라.

주르륵-.

손톱이 살을 파고들어 피가 흘러내렸다.

자신의 팀이 아니었다면, 두려움을 넘어 공포감까지 들 것 같았다.

아니, 마돈나 또한 그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의 그와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여러분.”

보통 때보다 훨씬 낮게 깔린 목소리.

최지훈은 마치 각성이라도 한 것처럼 무섭게 입을 열었다.

“이미 밝혀진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전부 밝히고 가죠.”

“…….”

최지훈은 오래 끌지 않고 팩트체커로 전화해 김태원 기자까지 이곳으로 불렀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최지훈은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지금 바로 보도 준비해 주세요. 대통령의 암은 평범한 암이 아니라, 연구소에서 나온 변종이며, 정치권과 관련된 인물로 인해 암이 유발된 것이라고.”

키보드를 두드리던 김태원은 문득 멈추며 물었다.

“……그렇게 쓰면 후폭풍이 엄청 날 텐데요?”

마돈나 또한 그를 만류했다.

“위험합니다. 단순히 국내만이 아니라, 외신에서도 크게 다룰 거예요.”

“그게 진실입니다. 그대로 밝혀야 해요.”

최지훈은 단호하게 덧붙였다.

“그래야만 관련자들을 전부 처벌할 수 있습니다.”

단호하다 못해 결연하기까지 한 그의 목소리에 아무도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 * *

“어, 형.”

최지원은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대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나, 지금 다 왔어.”

-안으로 와.

“알았어.”

재건축이 진행되다가 모종의 이유로 중지되고 방치된 폐공사장.

최지원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워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굵직한 기둥을 돌아설 즈음.

“지원아.”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멈춰 섰다.

“형.”

형제 중 첫째 최지만이었다.

대통령의 건강 관련해서 보도가 나가기 시작하며 기자들이 자신들에게 시선을 주목하고 있던 탓에 이런 은밀한 장소에서 만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도 잘 모르겠다.”

둘째의 물음에 첫째 최지만은 모르쇠를 잡았다.

셋째 쌍둥이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해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으니까.

“너는 뭐 알고 있는 거 있어?”

“난 전혀 몰라. 오늘에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알았다니까.”

“……그래?”

최지만은 은연중에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데 확실한 건.”

최지원은 냉정하게 말했다.

“막내가 뭔가 있어.”

“지훈이?”

“어. 내가 오늘 청와대를 갔는데, 분명 출입 금지였거든.”

“아버지 췌장암 때문에 그러는 거잖아. 오기 전에 보도자료 보고 연락한 거 아니야?”

“그건 맞는데…… 나도 절대 못 들어가게 했거든?”

최지원은 말하기가 꺼려졌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상황에 대해서는 자신이 가장 아는 게 없기에 어떻게든 자료를 공유해야 최지만도 자신에게 손을 뻗으리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 안에서 갑자기 지훈이가 나오는 거야?”

“……집무실에서?”

“그렇다니까.”

최지만도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이 모르고 있는 부분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상태.

한창 정보 공유를 시작하려던 그때.

지이잉-.

둘째 최지원의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잠깐만.”

“왜?”

“팩트체커에서 기사 하나 터졌는데…….”

그는 기사 내용이 나온 휴대폰 화면을 직접 보여 주었다.

찬찬히 읽어가던 첫째 최지만은 눈을 찡그리며 말했다.

“팩트체커면 막내가 협력하는 언론사 아니야?”

“맞아.”

최지원은 손에 땀을 쥐며 고개를 들었다.

“……이거 아무래도 형이랑 나랑 협력해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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