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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치는 (4)
2022.04.20.


청와대 본관 앞.

끼이이익-.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주차장도 아닌 곳에서 정지한 차량에서 내린 인물은 다름 아닌, 둘째 최지원이었다.

그는 서둘러 집무실이 있는 본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101경비단 소속 청와대 경찰들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뭐야?”

최지원은 한껏 인상을 구기며 소리쳤다.

“당장 안 비켜?”

“죄송합니다.”

“너희들 내가 누군지 몰라?!”

“알고 있습니다.”

“근데 안 비킨다고?”

최지원은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너희들 다 징계받고 싶어!”

“그래도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단호한 거절에 최지원의 언성이 더 높아졌다.

“지금 실수하는 거야. 내가 지금 당장 경호실장에게 전화해서…….”

“전화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옆에서 등장한 인물이 최지원 말을 끊었다.

“박 실장님.”

최지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열었다.

“지금 뭐하는 짓이야?”

“큰 소리가 나길래 무슨 일인가 와봤는데…….”

그는 정색하며 최지원에게 다가갔다.

“알 만하신 분이 왜 그러시는 겁니까?”

“……뭐?”

처음 겪어 보는 무례함에 최지원은 존댓말도 나오지 않았다.

“박 실장 너 미쳤어?”

“대통령님 명령입니다.”

“……뭐?”

“각하께서 직접 지정한 인물 외에는 그 누구도 안에 들이지 말라는 명령이 있으셨습니다.”

“지금 장난해?”

최지원은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나 단순한 국회의원이 아니야. 대한당 당 대표이자, 최준석 대통령 아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박 실장 지금 실수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최지원의 으름장에도 그는 끄떡하지 않았다.

국가원수 최준석 대통령을 지키는 것.

오로지 그것만이 청와대 경호실과 경호실장에게 주어진 임무였으니까.

“지금 무슨 상황인 줄 알고 이렇게 막아서는 건데!”

“…….”

경호실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신 소리를 빽빽 지르던 최지원은 제 분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섰다.

“하, 내 어이가 없어서…….”

그는 다시금 박 실장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박 실장. 나 대한당 당 대표로 선출됐어. 그걸 몰라서 이러는 거야?”

“제가 이곳에서 해야 하는 건 정치가 아니라, 경호입니다.”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최지원이 무슨 소리를 해도 들어먹지 않는다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분하지만, 지금은 물러서야만 하는 타이밍.

허나, 분명 청와대에서 무언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아는데도 수확도 없이 돌아갈 수는 없었다.

“박 실장님.”

그는 냉철하게 호흡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내가 소리친 건 미안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래서 안에 지금 뭐하고 있는 겁니까? 그것만 알려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아니, 들어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최지원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면 안에 누구누구 들어가 있는데요? 아니면 출입 허락받은 사람 목록이라도 알려주시죠. 제가 데려올 테니까.”

“죄송합니다.”

“아, 박 실장님. 경호실장이 이렇게 융통성 없어서야 어떻게 하려고 하십니까?”

그는 부드럽게 속삭였다.

“제가 차기 대권 이어받은 뒤에도 계속 경호실장 맡으셔야 될 것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실장님. 그러면 제가 다음에 한 번…….”

최지원이 끝없는 설득을 하고 있던 찰나.

벌컥-.

그때 갑자기 본관의 문이 열리며 한 남성이 걸어 나왔다.

고태욱 실장이라도 되면, 옳다구나 하며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내야?”

최지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가 왜 거기서 나오는 거야?”

“…….”

최지훈은 그를 바라보고는 이내 외면하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최지훈, 너 어디가?”

최지원은 다급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안에 어떻게 들어간 거야? 아니, 무슨 일이 일어난 건데?”

최지훈은 대답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었다.

최지원은 답답한 마음에 최지훈의 팔을 붙잡았다.

“아니, 지훈아. 대화는 좀 해야지.”

그런데 그 순간.

최지훈의 두 눈시울이 붉어진 게 최지원의 시야에 들어왔다.

“……너 울었어?”

순간, 최지원의 머릿속에도 불길한 직감이 스쳐지나갔다.

“무슨 일인데?”

“놔.”

“말이라도 해봐. 지금 너만 문제가 아니라, 첫째 형부터 전체적으로…….”

“놓으라고!”

최지훈은 거칠게 최지원의 손을 뿌리치며 자신의 차에 올랐다.

그의 호흡은 이미 거칠기 그지없었다.

막내 동생의 모습을 본 최지원 또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최지훈이 이렇게나 흥분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

최지훈은 이를 꽉 깨물며 자신의 차에 올라 청와대를 나섰다.

홀로 남겨진 최지원은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모르는 새 커다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확실한데…….’

허나, 도저히 감이 오질 않았다.

‘심상치 않은 일인 건 분명한데…….’

그는 곧장 휴대폰을 들었다.

“김 보좌관.”

-예, 의원님.

“지금 당장 청와대에 무슨 일 있는지 알아 봐.”

-알겠습니다.

이후, 최지원은 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최 대표. 당 대표 되었다면서. 축하해.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실장님, 다름이 아니고 하나 여쭤볼 게 있어서요.”

-응. 말해.

“오늘 청와대에 무슨 일 있었습니까?”

-글쎄. 각하가 휴가 내신 것 말고는 없었는데.

“지금 집무실에 들어가려고 하니까 못 들어오게 막고 있어서요.”

-아, 그거 내부 공사한다고 그랬는데?

“내부 공사요?”

-응. 각하 마음에 안 드는 게 하나 있었나 봐. 그거 고친다고 오늘 자재들도 전부 들어왔던데?

자재를 싣는 것처럼 위장하고 병원 및 수술 물품들과 의사들이 들어온 것이지만, 알고 있는 이는 없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래, 특별한 일 없지?

“예. 나중에 제가 식사 한 끼 대접하겠습니다.”

-쉬어.

“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끊은 최지원은 고개를 저었다.

‘내부공사?’

말도 안 된다.

정무수석이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실제로 내부 공사라면 경호실장이 자신의 출입을 막을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을 이유도 없으니까.

‘대체 뭐지?’

허나, 청와대에 남아 있는다고 해서 더 정보를 얻을 수는 없을 터.

‘막내까지 개입할 정도인데…….’

아무리 고민을 해도 명쾌한 해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불길한 직감을 품에 안은 채 청와대를 나섰다.

* * *

띵동-.

초인종 소리와 함께 도착한 인물은 오성복 검사.

“오셨습니까?”

“어, 조카. 오랜만인데…….”

그는 내부를 확인하고는 당황한 듯 움찔했다.

“깜짝이야.”

그도 그럴 것이 거실에는 우리 의원실 보좌진들이 전부 모여 있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검사님.”

“안녕하세요.”

“어, 네. 간만입니다.”

보좌진들의 인사에 어색하게 답하고는 슬쩍 내게 목소리를 낮췄다.

“이게 무슨 일이야?”

“조금 심각한 일이 있어서요.”

“왜 사무실로 안 가고? 의원실이 자료 조사하기엔 더 편하지 않아?”

“외부에서 이야기할 만한 건이 아니라서요.”

의원실에서는 누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문을 잠가도 한계가 있기에 차라리 우리 집에서 회의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으니까.

“그래서 무슨 일인데?”

“이쪽으로 오시죠.”

나는 방으로 들어와 진지하게 그를 불렀다.

“당숙.”

“뭔데 그렇게 비장한 표정이야?”

“오늘 여기서 나온 대화는 저랑 당숙만 알고 계시는 겁니다.”

“당연하지.”

“지금 저희 아버지께서 암에 걸리셨습니다.”

“……뭐?”

오성복 검사는 인상을 찡그렸다.

“농담이 지나친데.”

“저도 농담이었으면 좋겠지만, 진실입니다.”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알고 있는 사람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아요. 청와대 주요 인물과 수술에 들어갔던 의사들 및 거실에 있는 보좌진들이 전부입니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예. 그리고 아버지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한부 판정 받으셨어요.”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굳었다.

“뭐 어떻게 된 건데?”

“최은실 아시죠?”

“알지. 네 누나 아니야?”

“그 인간이 저희 아버지 암을 유발했습니다.”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너 어디서 이상한 소리 듣고 온 거 아니야?”

“이걸 보시죠.”

나는 최지곤이 보내온 자료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부정했지만, 자료를 넘기던 오성복 검사의 얼굴은 점차 굳어갔다.

그는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담배 한 대 피워도 되나?”

“예.”

내가 창문을 여는 사이, 오성복 검사는 담배 한 대를 꼬나물고 자료를 읽어나갔다.

“지금 각하께서 췌장암에 걸리신 거야?”

“맞습니다.”

“시한부 얼마나 남았는데?”

“길어야 6개월입니다.”

순간,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거밖에 안 된다고?”

“안타깝지만 사실입니다.”

“주치의는 뭐했는데?”

“최은실이 매수했습니다.”

“하아.”

오성복 검사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욕지거리를 뱉었다.

“그 X같은 년 진짜…… 관상부터 심상치 않더라니만.”

나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구속은 할 수 있겠습니까?”

“못 해.”

오성복 검사는 고개를 저었다.

“자료에 구멍이 너무 많아.”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오히려 구속을 하게 되면, 관련자들이 전부 겁먹고 도망칠 거야.”

그는 다시 내게 자료를 돌려주며 물었다.

“자료는 어디서 구한 건데?”

“최은실의 조력자입니다.”

“그 인간이 추가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놈도 이 일에 가담했습니다. 본인이 드러날 부분만 전부 도려내고 저에게 자료를 넘겨준 거고요.”

“어떤 간 큰 새낀데?”

나는 씁쓸하게 조소를 지었다.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건드릴 수 없는 놈이야?”

“나중에 처리할 겁니다. 최은실부터 조진 후에.”

오성복 검사는 신중하게 생각하다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각하께 암을 유발한 거면, 내란죄로 볼 수 있어.”

“그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그렇게 가면 국정원으로 넘어가잖습니까?”

“하지만 여론을 구성해서 잘 밀어붙이면 가능할 거야.”

“그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아버지의 건강이 악화된 걸 언론으로 보도해야만 하니까.

그걸 밝히는 순간, 북한이 날뛰는 건 물론이고.

한국과 관련된 해외 정세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러면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움직여야하는데…… 이거 후벼 판다고 해서 쉽게 나오지 않을 것 같은데.”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외부로는 아예 나가면 안 되는 거지?”

“예, 맞습니다. 언론으로 나가면 대한민국의 정세 자체가…….”

한창 대책을 논의하던 와중.

똑똑.

다급한 노크소리와 함께 마돈나가 벌컥 문을 열었다.

“이야기 중에 죄송합니다. 의원님께서 꼭 확인하셔야 할 것 같아서요.”

“뭔데?”

“나와 보시죠.”

거실에 있던 보좌진들 전원이 TV를 응시하고 있었다.

-KTS 단독 보도입니다. 최준석 대통령이 위독한 상황으로 현재 청와대 특별 병동에서 입원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요, 이는…….

“이런 미친.”

입에서 육두문자가 절로 튀어나왔다.

“조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내부에서 배신자가 생긴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다.

보좌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와 함께 있었으니까.

잠깐만.

그렇다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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