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소용돌이치는 (3) (170/200)


소용돌이치는 (3)
2022.04.19.



“아들.”

아버지는 내 얼굴을 어루만지셨다.

“왜 울어.”

“…….”

차마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치아로 입술을 빠득 깨물 뿐이었다.

“지훈아.”

아버지의 목소리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여느 때보다도 더욱 인자했고 부드러웠다.

“걱정할 필요 없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오히려 잘된 일 아니겠냐? 네가 내 자리에 더 빨리 오르게 되었으니.”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내 손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네 엄마 잘 챙겨. 여린 사람이야.”

“그럴게요.”

“그리고 아들.”

“예.”

“네 형들 무서운 사람들이다. 알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잘 버텨.”

아버지는 허공으로 시선을 돌리며 허심탄회하게 입을 열었다.

“아들.”

“예.”

“수능 끝났을 때 기억 나?”

“납니다.”

“네가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했을 때 나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나, 막내라서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생각했으니까.”

죄송스러웠다.

아버지께 심려를 끼쳐드린 건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네가 정치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 정치를 위해서 네가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어.”

아버지는 찬찬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셨다.

“그때부터 내 자랑은 너였다.”

아버지의 자랑.

그 한 마디가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아들.”

나를 보는 아버지의 눈빛이 감상에 젖었다.

“넌 나의 자랑이야.

“아버지.”

“그래.”

“저는 나중에 아들을 낳으면 꼭 아버지 같은 아빠가 될 겁니다.”

그제야 아버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났다.

“고맙다.”

아버지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다시금 입을 열었다.

“분명 쉽지 않을 게다. 지만이, 지원이 그 두 놈…… 순순히 너에게 양보할 만한 녀석들이 아니니까.”

“제가 어떻게든 감당해 보겠습니다.”

“앞으로 10년이지?”

“예.”

내가 현재 만 25세.

지난번에 법령으로 선거 연령을 낮추긴 했어도 여전히 대선에 나가기 위해서는 만 35세는 되어야만 한다.

10년은 더 버텨야만 자격이 생긴다는 뜻이다.

“고 실장이 널 도울 게다.”

“믿어도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고 실장은 믿어도 돼.”

“알겠습니다.”

아버지는 부드럽게 내 손을 토닥였다.

“잘 해내리라 믿는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고 실장 좀 불러주겠니?”

“예, 아버지.”

홀로 남겨진 아버지를 뒤로하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고 실장은 복도에 있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집무실 뒤편으로 나가자, 홀로 나무를 바라보며 담배를 물고 계셨다.

물론, 불은 붙이지 않고 있었다.

언제든 아버지 곁으로 갈 준비를 해야 되는데, 건강도 안 좋은 환자에게 담배 연기를 뿜을 순 없으니까.

“고 실장님.”

“도련님.”

그는 나를 보는 대신, 뒷마당에 심겨 있는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나무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소나무 아닙니까?”

“맞습니다만, 각하께서는 이 나무를 ‘최송’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최송이요?”

“각하가 처음 대통령에 당선되셨을 때 옮겨와서 심은 나무거든요. 이 나무가 죽기 전까지 최 씨 일가도 이 집무실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의미로요.”

“……아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입니다.”

“그럴 겁니다. 저한테만 이야기하셨거든요.”

그는 코를 찡긋하며 날 바라봤다.

“외부로 퍼져나가면 ‘독재’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테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나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버지께서 찾으십니다.”

“알겠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고개를 꾸벅이고는 본관 안에 마련된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홀로 소나무에 가까이 다가갔다.

“최송이라…….”

이런 이름이 붙어 있다는 건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 나무를 심을 때 어떤 심정이셨을까.

머리가 복잡하다.

아버지가 쓰러져 계시는 걸 직접 보고 오니 더욱더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아.”

짙은 한숨을 내뱉었다.

담배는 물지 않았다.

여기서 니코틴을 흡입하면 더 머리가 뜨거워질 것 같았으니까.

천천히 머리를 식혀야 한다.

허나, 이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이 나무는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 * *

“각하.”

“어, 고 실장 왔나?”

고태욱은 고개를 꾸벅이며 다가왔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이제 좀 괜찮은 것 같아.”

최준석 대통령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누워 계시죠.”

“아니, 천장 보고 있는 것도 지겨워서.”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도와 그를 자리에 앉혔다.

“도련님이랑 이야기는 잘하셨습니까?”

“덕분에.”

최준석 대통령은 조심스레 부탁했다.

“물 한 잔만 떠다주겠나?”

“예.”

고태욱은 테이블 옆에 있던 물병을 들었다.

그러나 최준석 대통령은 고개를 저으며 냉장고를 바라봤다.

“시원한 걸로 갖다 주게.”

“각하, 담당 의사가 차가운 물은 지양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먹으면 며칠은 더 살 수 있다고 하던가?”

“…….”

“괜찮아. 어차피 몇 개월 안 남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네.”

고태욱은 더 이상 거역하지 않고 조용히 냉수를 가져왔다.

그렇다고 최준석 대통령은 많이 마시지도 못했다.

벌컥벌컥 두 모금만 마신 뒤, 물컵을 내려놓고는.

치익.

“후우.”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다.

“주치의에게는 비밀로 해주게나.”

“알겠습니다.”

최준석 대통령은 담배 연기를 짙게 내뱉었다.

그는 조용히 한 대를 다 태운 뒤에야 꽁초를 짓이기며 고개를 들었다.

“고 실장.”

“예, 각하.”

“내가 집사람보다 임자를 더 믿는 것 알고 있지?”

“늘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자네는 어떻게 할 겐가?”

“……거기까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만.”

고 실장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각하가 말씀하신 대로 움직이겠습니다.”

“그래?”

최준석 대통령은 잔잔하게 물었다.

“내 숨이 멈춘 뒤에도 자네를 믿어도 되겠나?”

허나,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그의 눈빛은 여느 때보다도 훨씬 더 힘이 들어가 있었다.

평소에 볼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기운.

“예.”

고태욱 비서실장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믿으셔도 됩니다. 저는 평생 각하를 위해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어설픈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아시잖습니까? 저는 수십 년 전에 이미 한 번 죽었던 사람입니다.”

“…….”

“각하께서 절 구해주신 뒤로, 저는 제 생명보다 각하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최준석 대통령은 옅은 웃음기를 머금었다.

“그러면 하나만 부탁하겠네.”

그는 순식간에 웃음기를 거두고 고태욱을 지그시 바라봤다.

“잠깐 이 자리 좀 맡아줄 수 있겠나?”

“……예?”

“모르는 척하지 말게.”

고태욱 비서실장의 눈동자가 커다래졌다.

“자네가 내 뒤를 이어주게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 녀석이 오기 전까지만 고 실장이 차기 대통령 자리를 맡아주게.”

“……그 녀석이라 함은.”

“어떤 아들놈이 제일 먼저 닿을진 나도 모르겠어. 워낙 혼란스러운 시국이잖나.”

최준석 대통령은 단호하게 덧붙였다.

“다만, 막내 놈이 올 때까지는 자네가 버텨주게.”

“…….”

“그 녀석 신념도 확고하고 추진력도 세고 능력도 확실해. 하지만 아직 너무 어려.”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 바닥에서 나이란 걸 무시할 수가 없지 않나?”

“예, 맞습니다.”

“국민들을 차치하고. 정치판에 있는 노인네들은 새파랗게 어린놈이 올라가는 걸 달갑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특히나 최준석 대통령이 권좌에 오를 때부터 함께했던 대한당 사람들은 더욱더 그렇겠지.

정권이 바뀌어도 본인들이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게 불만일 테니까.

“자네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게.”

“걱정 마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최준석 대통령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임자가 그렇게 말해주니 안심이 되는구먼.”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잘 좀 부탁하겠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준석 대통령은 안심한 표정으로 다시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러면 좀 쉬겠네.”

“예. 다음 주에 퇴원하실 수 있도록 준비해 두겠습니다.”

“그래.”

고태욱 비서실장은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천천히 병실을 빠져나왔다.

“……후우우.”

그는 짙은 숨을 내쉬었다.

고태욱 비서실장이 향한 곳은 대통령 집무실.

그는 천천히 책상 위로 다가가 최준석의 명패를 어루만졌다.

복잡하게 떠오르는 생각에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 10분쯤 지났을까.

무언가 결심을 마친 듯, 그는 결연한 얼굴로 성큼성큼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 * *

“……하.”

이럴 줄 알았다.

약속한 대로 최지곤에게 자료는 넘어왔다.

다만, 반쪽짜리 자료였다.

이번 음모에서 최은실이 어떤 역할을 했고, 무슨 짓을 했는지는 상세하게 적혀 있었으나.

최지곤 본인이 가담했다는 내용은 쏙 빼놓았다.

커다란 도화지에 물감만 준비해 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림이 완성되려면 붓도 필요한 법이니까.

지이잉-.

아니나 다를까, 최지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 최지훈입니다.”

-어, 막내야. 자료 확인했어?

“응. 지금 체크하고 있는데…… 이거 자료 빠진 부분이 너무 많은데?”

-아, 그건 좀 이해해주라.

그는 민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비리를 어떻게 내가 까겠냐?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꾹 참고 말했다.

“내가 지켜준다니까. 밝히려면 제대로 까야 돼.”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형, 다시 정계 복귀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

-맞아. 하지만 막내야. 너를 믿긴 하지만, 그래도 내 목숨 줄을 너한테 쥐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그렇지 않아?

“…….”

그의 입장도 이해는 갔다.

실제로 녀석의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토사구팽 할 생각이었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나도 숨구멍은 뚫어 둬야지.

“……일단 알겠어. 또 통화하자.”

-그래. 진행되는 거 있으면 알려줘.

셋째 형과의 전화를 끊고, 바로 마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의원님.

“지현 씨, 어디야?”

-집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지금 바로 의원실…… 아니, 우리 집으로 올 수 있어?”

이미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마돈나는 이유를 따지거나 묻지도 않았다.

그게 내가 그녀와 함께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혼자 가면 되겠습니까?

“아니, 의원실 직원들 전부 나오라고 그래.”

-알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마치고 곧장 주차장으로 향했다.

최지곤이 힘들다면, 우선 최은실부터 조져야 한다.

아버지를 저렇게 만든 인간들은 단 한 명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순서대로 하나씩.

아주 처절하게 박살낼 테다.

16557388342994.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