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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치는 (2) (169/200)


소용돌이치는 (2)
2022.04.18.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꺾었다.

차마 죽일 수는 없었다.

“……제기랄.”

내가 다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허나, 최지곤이 죽으면 죄를 저지른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다.

진실을 밝혀야만 한다.

그래서 관련자들을 모두 처벌하고.

최지곤 이 녀석 또한 차가운 감방에서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끼이익-.

차를 멈추자, 조수석에 있던 최지곤이 몸을 뒤척이며 눈을 떴다.

“……으음.”

그는 주변을 살피더니 차가 멈춘 걸 확인하고는.

“벌써 도착했어?”

“아니, 졸음 쉼터야.”

“쉬려고?”

그는 조수석 시트를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내가 교대해 줄까?”

“술을 그렇게 마셔 놓고 운전은 무슨. 더 자.”

“그럴까?”

최지곤은 어설프게 웃고는 다시금 시트를 뒤로 넘겨 잠에 들었다.

그의 한심한 모습에 차에서 내렸다.

머리를 쓸어넘기고는 담배를 하나 물었다.

서울까지는 아직 한참 가야 한다.

흥분하면 안 된다.

진정해야 한다.

서울에 간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최지곤에게 자료를 완벽하게 받아내야만 이번 일이 끝나는 법이니까.

갈 길이 구만리다.

감정을 식혀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냉정하게 움직여야 답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 * *

“아버지가 휴가를 내셨다고?”

둘째 최지원은 들고 있던 펜을 멈추며 고개를 들었다.

“예. 맞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김 보좌관의 말에 최지원은 놀란 기운이 얼굴에 잔뜩 드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휴가를 낸 적은 굉장히 드물었으니까.

‘명절에도 청와대에 출근하시는 분이 휴가라니…….’

필시 무언가 일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외에 특별한 점은?”

“우선, 오늘 있던 일정은 전부 취소하셨습니다. 점심에 예정되어 있던 서울의 지방자치단체장들과의 오찬 식사도 취소되었고요.”

“그거 첫째 형도 들어가지 않나?”

“예, 맞습니다.”

“일단 나가 있어 봐.”

“네, 의원님.”

김 보좌관이 꾸벅 인사를 하고 떠난 뒤.

그는 제일 먼저 첫째 형 최지만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동생아. 무슨 일이야?

“형. 뭐 좀 물어보려고.

양 측 모두 간사하기 그지없었다.

서로를 싫어하다 못해 증오하는 사이지만, 겉으로는 친근한 척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최소한 형제간의 우애가 있음을 보여야만 했으니까.

-말해. 무슨 일인데?

“오늘 오찬 일정은 취소되었다고 하던데, 왜 그러는 거야?”

-글쎄. 나도 따로 전달받은 게 없어서 모르겠는데.

“혹시 알아본 거 있어?”

-아니.

최지만은 단번에 대답했다.

잠깐 고민하는 새도 없이 준비라도 한 듯 곧바로.

최지원은 직감이 왔다.

그가 모르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너는 뭐 아는 거 있어?

“난 아버지가 휴가냈다는 걸 방금 들었어. 그래서 뭔가 아는 게 있나 물어보려고 전화했지.”

-전혀 몰라. 혹시 알게되는 거 있으면 알려줄게.

“그래. 나도 소식 들어오면 정보 공유할게.”

-어, 들어가라.

전화를 끊자, 최지원의 의구심이 더욱 깊어졌다.

‘수상한데…….’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생각해 보자.’

우선, 최지만이 무언가 알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가 전화를 받았다는 건 혹시라도 최지원에게 정보를 캐낼 수 있지 않을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터.

그 말인즉슨, 최지만도 이번 상황에 대해 아직 완벽하게 파악한 건 아니라는 뜻일 터.

‘아무래도 단순하게 넘어갈 만한 사건은 아닌 것 같은데…….’

단순한 정치 문제가 아니라, 정계와 관련된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아버지가 휴가를 내셨다면, 평범한 이유가 아닐 테고.

그는 인터폰을 들었다.

“김 보좌관.”

-예, 의원님.

“우리 형제들 중에 소식 들어온 거 있나?”

-특별한 건 없습니다. 최지훈 의원님이 공가를 내셨다는 것 외에는…….

“……걔가 공가를 냈다고?”

첫째 최지만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어디 갔는지는 모르고?”

-한 번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래. 은실이는?”

-최은실 여사님에 대해서도 알아보겠습니다.

“정보 나오는 대로 연락해.”

-알겠습니다.

최지원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문득 대한당 주역 의원들 몇몇이 동시에 주차장으로 향해 각자의 차를 타고 국회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에게 연락도 없이?’

그는 곧바로 그 의원들 중 하나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네, 당대표님.

태연한 목소리.

“김 의원 어디 가나?”

-아, 그…….

김 의원은 적당히 둘러댔다.

-지역구에 일이 하나 생겨서요.

“그래?”

-예.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특별한 건 아니고 점심이나 같이 먹을라고 했지.”

-제가 오늘은 외부로 나가야 할 것 같아서요. 내일 같이 하시죠.

“그래, 그러면.”

다른 의원들에게 전화해도 마찬가지였다.

최지원은 직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최지만에게서 호출이 온 것이라는 걸.

‘분명히 첫째 형이 무언가를 알고 있는데…….’

최지원은 외투를 입으며 의원실을 나섰다.

“수행비서한테 차 준비해 놓으라고 해.”

“목적지는 어디라고 이야기할까요?”

“청와대로 들어갈 거야.”

“알겠습니다.”

* * *

“여기서 내려주면 돼.”

최지곤이 하차한 곳은 노원구의 작은 아파트 앞.

“처음 보는 곳인데.”

“넌 모를 거야.”

그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듯 어색하게 대답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사무실이거든.”

“차명으로?”

“응.”

이곳에서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는 작당 모의를 했다는 것이지.

최지곤에게 격한 감정이 피어올랐지만, 꾹 눌러 티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는 태연하게 물었다.

“자료 정리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어?”

“최대한 빠르게 정리해 볼게.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빠르면 오늘, 늦으면 내일까지.”

“언제든 완성되면 연락 줘. 바로 받으러 올 테니까.”

“그래.”

“새벽이어도 괜찮아.”

“알았다니까.”

최지곤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걱정하지 마라. 은실이가 준비했던 상황들은 전부 알고 있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다는 게 충격적일 따름.

“그건 그렇고…….”

그는 슬쩍 내게 몸을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이번 일만 잘 마무리되면…… 진짜 확실한 거지?”

“걱정하지 마.”

나는 단호하게 장담했다.

“민국당에서 형이 원하는 걸 얻어갈 수 있을 거야. 내가 약속할게.”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첨언했다.

“알잖아. 내가 이번에 민국당에서 어떤 위치까지 올라왔는지.”

“알지. 그래서 너 믿고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까 자료만 잘 넘겨.”

“당연하지.”

그는 흡족스럽다는 듯 눈썹을 들썩였다.

“네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깔끔하게 정리해줄게.”

“그래, 고마워.”

“얼른 가 봐. 너도 바쁠 거 아니야?”

“알았어. 들어가.”

“먼저 간다.”

최지곤은 내게 손을 휘휘 흔들며 건물 엘리베이터를 향해 올라갔다.

아버지의 생명이 위독한 지경인데 웃을 수 있다는 게 소름이 돋을 지경.

저 녀석이 진짜 아버지의 자식은 맞을까 싶을 정도.

내가 유별난 걸까, 하는 의문이 들려고 했으니까.

“후우우.”

나는 곧바로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았다.

행선지는 청와대.

담배가 당겼지만, 우선 청와대에 들어가는 것이 급선무라 차를 출발시키고 나서 담배를 물었다.

그렇게 다시금 머리를 식히고 나서야 내 의원실로 전화를 걸었다.

-네, 최지훈 의원실입니다.

“나야.”

-예, 의원님.

“강선우 보좌관 어디 있어?”

-연결해드리겠습니다.

곧바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원님, 강선우입니다.

“강 보좌관, 내가 주소 하나 불러줄 테니까 이곳으로 와서 사람 하나 감시 좀 해.”

-잠시만요. 펜 좀 꺼내겠습니다. 그런데 누구입니까?

“최지곤. 내 셋째 형이야.”

-아, 다시 상경했습니까?

“방금 왔어.”

-그렇군요. 주소 말씀해주십시오.

“서울시 노원구…….”

* * *

“오셨습니까?”

고태욱 비서실장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북한의 도발로 인해 사흘 밤낮을 지새웠을 때도 이런 낯빛은 아니었는데…….

“아버지는 좀 어떠십니까?”

“아직 주무시고 계십니다. 마취 약이 깰 때는 됐는데 요즘 피로가 깊으셔서 그런지 오랜만에 숙면하시는 것 같습니다.”

“좀 봐도 되겠습니까?”

“예.”

청와대 안에 마련된 병실로 향하며 복도를 지나가는데, 수술을 위해 온갖 기기까지 들여온 흔적이 건너편에서 보였다.

입술을 꾹 깨물며 고태욱 비서실장을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삐이-.

삐이-.

환자의 맥박을 체크하는 모니터에서 나오는 간헐적인 소리가 병실 안을 채우고 있었다.

아버지는 병상에 누운 채 눈을 감고 계셨다.

당황스러운 건, 그분의 얼굴에 호흡기가 채워져 있다는 점.

움찔하며 고태욱에게 물었다.

“잘못된 건 아니시죠?”

“예. 전혀 문제없습니다. 산소호흡기는 마취 직후였던지라 채워 놓은 거고, 깨어나시면 떼어낼 겁니다.”

“그렇군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고태욱은 병실 밖으로 나갔다.

내게 아버지와 단 둘이 있을 시간을 주려는 것이다.

“……아버지.”

그의 얼굴을 보자, 감정이 울걱 솟아올랐다.

피골이 상접해 있는 느낌.

최근에 뵐 때마다 점점 마르시고, 안색이 안 좋아지시는 것 같아서 걱정을 했었는데 암이라니.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머릿속엔 최은실과 최지곤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이런 개X끼들.

형제는커녕, 같은 인간이라는 게 증오스러울 수준.

최지만도 마찬가지다.

일련의 사실을 알아챘으면서도 자신의 권력을 위해 모른 척한 것이었으니까.

어떻게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가 있었는지…….

야윈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있자니, 자괴감이 나를 덮쳐왔다.

조금 더 예민하게 굴었어야 하는데.

주치의가 괜찮다고 모든 게 안전할 거라는 장담은 없었는데.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후회감이 턱끝까지 밀려오기 시작할 무렵.

꿈틀.

아버지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정신이 드세요?”

나는 두 팔을 뻗어 그분의 손을 잡았다.

끄덕.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셨다.

가슴 속에 남아있던 감정이 다시금 마구 소용돌이쳤다.

끓어오르는 울분을 찍어누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그는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미리 알아채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살포시 손을 들어 내 얼굴을 감싸셨다.

따스한 온기가 뺨을 타고 전해져왔다.

평생 느껴보지 못한,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아버지는 나직이 나를 부르셨다.

“아들아.”

아버지는 힘겹게 호흡을 내뱉으셨다.

“내 너를 너무 늦게 알아봐서 미안하다.”

울컥 감정이 용솟음쳤다.

더 이상 제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그 한 마디에 겨우겨우 붙잡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고 말았다.

투둑.

예고도 없이 눈에선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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