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치는 (1)
(168/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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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용돌이치는 (1)
2022.04.17.
서울시청의 시장실.
똑똑.
“들어와.”
오 실장이 문을 열며 고개를 꾸벅이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그를 확인한 첫째 최지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겼다.
“출발할까?”
“아, 시장님.”
오 실장은 멈칫하며 말했다.
“가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응?”
최지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이제 슬슬 출발해야 하지 않나?”
오늘은 청와대에서 서울의 각 지방자치단체장과 오찬 식사가 있는 날이었으니까.
서울시의 모든 구청장들을 포함해 서울시장인 자신 또한 가야만 하는 자리였다.
“혹시 구청장들만 오라고 바꾸신 건가?”
“그게 아니라, 아예 일정이 취소되었습니다.”
“미뤄진 것도 아니고, 아예 취소라고?”
최지만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의 아버지는 약속 자체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이시다.
어지간해서는 약속 시간에 늦는 것조차 죄악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약속 취소는 놀라울 따름이었으니까.
“무슨 일 때문에?”
“그것까진 청와대에서 이야기해 주지 않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청와대 직원들에게 연락을 해봐도 전부 모른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쉬쉬하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거야?”
“뉘앙스를 보아하니 위에서도 아예 알려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허어.”
그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청와대라는 곳의 특성상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뭔데?”
“시장님의 막냇동생 최지훈이 꼭두새벽부터 서울 외곽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건 특별한 일이 아니잖아.”
“아닙니다. 외근 처리가 아니라, 공가를 냈다고 합니다.”
“뭐?”
오 실장의 보고를 받은 첫째 최지만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우연히 겹칠 만한 상황이라기엔 너무나도 타이밍이 딱 맞았다.
“처음엔 지각으로 표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차후에 공가로 수정을 한 것이고요.”
“그래?”
“예, 시장님. 오늘 아침 일찍 떠난 것으로 확인됩니다.”
“어떻게 확인한 거야?”
“교통정보 관리실에 연락해뒀습니다. 최지훈 소유의 차량이나 그와 관련된 차가 서울을 빠져나가면 알 수 있도록요.”
“그래?”
몇 번이고 조인트를 깐 덕분에 시키지 않아도 이러한 일처리 실력이 늘어난 건 만족스러웠다.
“그건 잘했네.”
“감사합니다.”
최지만은 천천히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녀석이 공가를 낸 적이 있었나?”
“제가 알기론 지금까진 없습니다.”
“흐음…….”
최지만은 천천히 턱을 매만졌다.
사실, 국회의원은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웬만해서는 휴가를 내지 않는다.
어지간한 일들은 ‘국내 정세 및 민심을 살핀다.’는 핑계로 업무 처리인 것마냥 진행하고 처리를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최지훈의 성격상 공과 사는 구분해야한다고 할 수도 있지만, 민국당 서열 정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은 휴가를 낼 만한 시기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목적지가 어딘데?”
“해남IC에서 빠졌습니다.”
“해남?”
“예. 그 이후는 따로 추적되지 않고요.”
오 실장은 조심스레 물었다.
“도로교통공단에 한 번 알아볼까요? 그러면 정확한 위치 추적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 어딘지 알 것 같아.”
해남.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최 씨 집안과 연관이 없는 곳이었다.
다만, 지난 총선 이후로 연이 생겼다.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고 정계에서 쫓겨난 최지곤이 그곳에서 은거하기 시작했으니까.
“셋째랑 접촉했을 거야.”
“아, 그렇군요.”
“무슨 일 있는지 한 번 상세하게 알아 봐.”
“알겠습니다.”
오 실장이 떠난 직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꺼내 바로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신인은 셋째 최지곤.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오니…….
허나,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이지?’
최지만의 미간이 세게 찌푸려졌다.
‘분명 무슨 일이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 * *
“지훈아.”
“왜?”
“괜찮겠지?”
최지곤은 출발한 직후부터 서울로 가는 내내 불안한 심정을 떨치지 못했다.
그의 심정은 이해가 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국가 원수인 아버지를 암살하려 했다는 사실을 밝혀야만 하니까.
단순한 패륜이 아니라, 내란죄로 체포까지 가능한 사안이니 그럴 수밖에.
“괜찮을 거야.”
“그래야 되는데…….”
최지곤은 고심스러운 얼굴을 하기도 잠시.
“흐아암…….”
이 심각한 상황에서 녀석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다.
흘긋 옆을 바라보자, 그는 민망했는지 괜히 내가 걱정된다는 듯 슬쩍 입을 열었다.
“너 술 마셨는데 괜찮아?”
“어차피 한 잔이야.”
“그렇긴 하네.”
음주 측정을 하면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자시고를 따질 만한 처지가 아니었다.
나는 정면을 바라보며 그를 불렀다..
“지곤이 형.”
“응?”
“내가 도와줄 테니까 걱정 마.”
“고맙다.”
그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피어났다.
“진즉에 너한테 도와달라고 할 걸 그랬어.”
최지곤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막내한테 도와달라고 하는 게 괜히 민망했나 봐.”
“그럴 수 있지.”
적당히 대꾸했다.
여기서 최지곤이 뭐라고 하든 간에, 아버지를 죽이려고 했던 계획에 그가 가담했던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를 인간으로 보고 싶지도 않았다.
아니, 동물만도 못하다.
아무렴 본능으로 움직이는 동물들이라도 제 부모를 죽이지는 않으니까.
그와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구역질이 나려 했으나.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그의 비위를 맞춰야만 했다.
그래야 이번 음모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 테니까.
“지훈아.”
나는 대답 대신 말하라는 의미로 흘긋 그를 바라봤다.
“민국당 분위기는 어때?”
“…….”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려했다.
지금 아버지가 암이 확정되어서 수술에 들어가신다는데 민국당 정세를 묻고 있다니.
그것도 그 암을 유발한 녀석이 말이다.
최지곤이 인간이 맞나 싶을 지경.
내 생각을 추측조차 못하는지, 녀석은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원래 민국당 분위기가 우리 집안에 굉장히 적대적이었잖아. 그런데 너는 거기서 잘 녹아들었길래……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가 해서.”
“글쎄. 나는 처음부터 민국당으로 입당을 해서 그나마 좀 나았던 것 같아.”
“그래?”
“처음엔 당연히 나한테도 경계심을 크게 드러냈지.”
김치호 비서관을 포함해 대다수의 인물들이 내게 적대심을 드러냈으니까.
“그래도 진심을 담아서 일하니까 이해해 주더라고.”
“……그랬구나.”
최지곤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그렇게 적응해야겠네.”
이를 악물었다.
나는 아버지 생각 때문에 운전하는 것도 벅차 죽겠는데, 장밋빛 미래나 그리고 있다니.
더 이상 그에 대한 반감을 숨기는 게 힘들 지경.
“흐아아암…….”
또다시 그는 태평하게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연발했다.
“많이 졸린가 보네.”
“술 마셔서 그런 것 같아.”
최지곤은 민망한지 멋쩍게 웃고는.
“나 좀 자도 될까?
“그렇게 해.”
차라리 자는 게 나았다.
세 치 혀로 되도 않는 소리를 씨불이는 걸 계속 들었다가는 화가 나서 사고를 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미안해. 좀 잘게.”
그는 미안하다는 말과 달리, 조수석 의자를 뒤로 확 재끼며 몸을 눕혔다.
그것도 모자라 신발을 벗고 글러브박스 위에 얹기를 잠시.
“아, 이러면 백미러 안 보이겠구나.”
염치는 있는지 슬쩍 다리를 내렸다.
더 말했다가는 자는 것만 늦어질 것 같아 아니꼬운 감정을 꾹 눌러 외면했다.
그렇게 얼마쯤 지났을까.
“드르렁-! 크허얽!”
최지곤은 술냄새를 풍기는 걸 넘어 코까지 골며 곯아 떨어졌다.
“하.”
결국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미친 새끼.”
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이런 자식이 나와 같은 핏줄이라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 지경.
병실에 누워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안타까움만 짙어질 뿐이었다.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고태욱 비서실장.
아버지가 수술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 이제 겨우 두 시간.
아직 수술이 끝나려면 멀었을 텐데.
혹시 아버지의 암을 유발했던 제약회사에 대해 무언가 알아낸 건가?
멈칫-.
곧장 수신 버튼을 누르려다가 손을 뗐다.
현재 휴대폰은 블루투스로 차와 연결되어 있다.
코까지 골며 자고 있다고는 하나, 그가 듣지 못한다는 보장은 없다.
블루투스 연결을 해제하고.
최지곤에게 조금이라도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일부러 왼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최지훈입니다.”
-……도련님.
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울적한 목소리.
느낌이 좋지 않다.
불안한 감정을 꾹 누르고 말했다.
“아버지 수술은 잘되고 있는 겁니까?”
-그게…….
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에 각하께서 수술실로 들어가셨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예.”
-방금 다시 나오셨습니다. 지금 제 눈앞에서 누워 계세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뭔가 잘못된 겁니까?”
-그러니까…….
고태욱은 짙은 한탄을 내뱉었다.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예?”
입술을 꾹 깨물며 되물었다.
“의료진도 최고급 인력으로 준비되었다면서요.”
-예. 그렇긴 합니다만, 현재 과학 기술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진행이 되었다고 합니다.
“…….”
-그래서 개복을 해보긴 했으나, 잠깐 진행을 해보다가 결국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어서 배를 닫았다고 합니다.
“…….”
-자세한 경과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지만, 저도 정신이 혼미해서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결론은요?”
-크흡…….
휴대폰 너머로 고태욱 비서실장이 울컥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한부입니다.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핸들을 잡고 있던 손이 떨려왔다.
아버지께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얼마나요?”
-3개월입니다.
고작 석 달.
내 귀를 의심했다.
-길어야 6개월이라고 합니다.
“……3개월은 확실한 거고요?”
-그것도 100% 장담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지금으로서는 항암치료보다는 여생에 집중하는 게 낫다는 말까지 들어서…….
고태욱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직접 보지 않아도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아닙니다. 실장님 잘못이 아닌 걸요.”
-…….
“서울 가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전화를 끊었다.
시야에는 그저 훤히 트인 고속도로만 보일 뿐이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분노만 차오를 뿐이었다.
“드르렁-!”
조수석의 코골이 소리가 귀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본인이 무슨 일을 벌인지도 모르고 천하태평하게 조수석에서 처자고 있는 저 녀석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안전벨트도 안한 채로 자고 있는 상태.
저 멀리 전봇대가 눈에 들어왔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다치더라도 조수석 방향으로 저걸 들이받고 녀석을 하늘로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X발…….”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