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잡으면 (3)
(167/200)
꼬리를 잡으면 (3)
(167/200)
꼬리를 잡으면 (3)
2022.04.16.
“정계로 복귀하고 싶지 않아?”
순간, 최지곤의 눈빛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는 정계에서 스스로 걸어 내려온 게 아니라, ‘쫓겨난 것’이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있던 인물이 외부 요인에 의해 그 싹 자체가 잘려버렸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 권좌를 향한 욕망으로 인해서 아버지를 죽이려고까지 했던 걸 생각하면, 누구보다도 권력욕이 크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지.
또한, 지금까지 말한 걸 생각하면, 첫째 형과 둘째 형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까지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 감정 역시도 권력을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롯되었음이 확실한 걸 보면, 그는 정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제외하고, 단순히 현 모습만 보더라도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렸을 리가 없다.
일반 사회로 돌아가 직장인이 되어 사는 게 아니라.
이곳 지방으로 내려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폐인이 되어 매일 같이 술에 절어 살고 있는 걸 보면 두말할 것도 없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지 마.”
물론, 최지곤이 자신의 권력욕을 드러낼 리는 없었다.
어차피 손에 쥐지도 못하는 거, 괜히 욕망만 품고 있어 봤자 본인만 더 비참해질 뿐이었으니까.
“형.”
나는 그 억눌러둔 감정을 자극해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최지곤에게서 숨겨진 사실을 끌어낼 만한 방법이 없으니까.
“내가 도와줄게.”
“…….”
“돌아올 수 있어.”
빠득.
그는 이를 악물더니.
쾅!
소파 팔걸이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정계로 가서 뭘 할 수 있는데! 이미 아버지가 나한테 사형 선고를 내렸어!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 거 아니야?”
최지곤은 격히 흥분했다.
허나, 내 감정은 최대한 가라앉혔다.
그의 페이스를 따라가면, 절대 설득할 수 없다.
암만 최지곤이 다혈질이어도 이번 일은 단순히 감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 테니까.
“우선 진정하고 앉아.”
“네가 앉으라고 해서 내가 앉아야 돼?”
“이야기를 하자는 말이야. 형도 평생 이곳에서 썩을 생각 없잖아.”
“이 새끼가 진짜!”
최지곤은 화를 냈다.
정곡을 찔린 것이다.
나는 반응하지 않고 그를 빤히 쳐다봤다.
“너 내가 우스워 보이지? 요즘 민국당에서 좀 나가니까 아주 네 세상 같아 보이잖아. 그깟 총선에서도 이기지 못해서 쫓겨난 내가 가소롭잖아?”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이잉-!
그때, 내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고태욱 비서실장.
나는 화면을 그에게 보여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어쩔 건데?”
또다시 따지고 들었지만, 일순 그의 눈빛이 바뀐 건 포착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기다려 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베란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저 멀리 철썩이는 파도를 바라보며 전화를 받았다.
“네, 최지훈입니다.”
-도련님…….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왈칵 감정이 터질 것 같았지만, 뒤에서 최지곤이 날 바라보고 있는 걸 알고 있기에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검사 결과 나왔습니까?”
-예.
그는 암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악성 종양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악성 종양.
즉, 암이다.
주먹을 꽉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주먹을 파고들 것만 같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감정 표현은 그것이 전부였다.
-일반적인 암세포와 조금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신은 아니지만, 인위적인 영향이 가미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곧바로 수술에 들어갈 예정입니다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아서 수술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얼마나 걸릴까요?”
-주치의 말로는 열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최소 18시간은 본다고 합니다. 길면, 24시간이 넘어갈 수도 있고요.
얼마나 긴 수술이 될지 모른다는 뜻이다.
“의료진은 준비됐습니까?”
-예. 전부 청와대 수술실로 들어와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끝나는 대로 연락 주십시오. 그리고…….”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말했다.
“어머니는 알고 계십니까?”
-영부인께는 도련님과 통화 후에 알릴 생각입니다.
“알겠습니다.”
-예. 30분 안에 수술 들어간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경과 진행되는 대로 연락해 주십시오.”
-네, 도련님. 또 전화 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끊자,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려 한다.
“……X발.”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욕이 터져 나왔다.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칙. 칙칙.
손이 떨리는 건지, 가스가 떨어진 건지 불이 붙지도 않는다.
“이런 제기랄!”
라이터를 바닥으로 내던졌다.
절벽으로 떨어진 라이터가 산산 조각나며 바다로 퍼져나갔다.
드르륵.
전화를 끊은 걸 확인했는지, 어느새 최지곤이 베란다 문을 열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는 말없이 담뱃불을 붙여 주었다.
“……후우.”
짙은 연기를 몇 모금이나 내뱉었을까.
최지곤은 자신 또한 담배를 물며 물었다.
“뭐 어떻게 된 건데?”
“…….”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었다.
“말해 봐.”
최지곤은 답답한 듯 추궁했다.
“비밀로 할게. 아니, 애초에 나한테 물어보는 사람도 없어.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나는 말없이 담배를 세 개비나 연신 피운 다음에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말이야.”
“아버지가 뭐?”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지금 상황을 곧이곧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최지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확실하진 않으니까.
허나, 그에게 충격을 줄 만한 필요성은 있었다.
“곧 돌아가신대.”
“……뭐?”
툭.
그가 물고 있던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실이야?”
최지곤은 놀란 듯 움찔거리며 물었다.
역겨웠다.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인간이 아버지가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소리에 슬퍼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도 역겨웠다.
구토감이 밀려왔다.
속을 다스리고 일어나 그가 떨어뜨린 담배를 짓밟았다.
허나, 내 감정은 차마 진정되질 않았다.
“이걸 원한 거야?”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이 상황을 원한 거냐고!”
“…….”
그제야 최지곤도 현실감이 밀려왔는지.
평소라면 멱살을 풀고 지랄할 만한 인간이 고개를 떨구며 나직이 읊조렸다.
“……미안하다.”
“이게 미안하다는 사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게 단순히 한 사람이 죽는 게 전부가 아니야. 우리 대한민국의 근간이 흔들리는 일이라고.”
“…….”
“형의 그 더러운 권력욕 때문에 대통령이 죽는 거야!”
최지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나이를 먹고, 정계에서 정신이 오염이 되었다고 한들.
자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는다는 건 사이코패스가 아닌 이상 죄책감이 몰려올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이런 X발. X발! X발!! 으아아아!”
그의 멱살을 내동댕이치며 소리쳤다.
감정이 마구 소용돌이쳤다.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니.
그분과의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연세가 있으셔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이딴 이유로 죽음과 가까워지실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으니까.
최지곤은 담배만 뻑뻑 피워대며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그도 쉽사리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모양.
죽이고 싶었다.
주먹이 부르르 떨리다 못해 치가 떨릴 지경.
아버지가 받으실 고통을 너도 받으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게 왜 감당하지 못할 일을 해가지고…….”
허나, 지금 상황에서 그를 버릴 수는 없었다.
최지곤을 외면하는 순간, 이 사건 자체가 미궁에 빠지게 된다.
그와 손을 잡아야만 이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가 있다.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면.
최지곤이 아니라면.
가담자들 그 누구 하나 사실을 밝힐 수 없을 테니까.
당연한 일이다.
무려 국가 원수 암살이라는 엄청난 음모다.
국가적 차원에서 복수는 물론이고.
성난 군중에게 짓밟힐 만한 일이니까.
사실을 밝히기 위해선 최지곤이 필요하다.
그가 실제로 중간에 손을 뗐는지, 끝까지 가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관련자들을 전부 처벌하기 위해서는 최지곤의 손을 잡아야만 한다.
“형.”
“……응?”
그는 놀란 듯 고개를 들썩였다.
“사실 밝히자.”
“…….”
그는 다시금 고개를 떨궜다.
이 판국이 된 마당에 도저히 자신이 없었겠지.
“그거 밝히면 나도 죽는다.”
“내가 도와줄게.”
“네가 어떻게 도와줄 건데?”
“알고 있잖아. 내가 지금 민국당에서 어떤 위치인지.”
“…….”
“정치에서 손을 뗐다고 해도 형은 누구보다 정계 흐름에 빠삭하잖아.”
욕심이 많기에.
그래서 이곳 촌구석에 박혀 있으면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 것일 테니까.
“내가 형 지켜줄게. 그러니까.”
그의 팔을 붙잡았다.
“사실 밝히자.”
순간, 최지곤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들여다보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어떻게 보장할 건데?”
안주머니에서 은제 담배합을 꺼냈다.
“이거 알지?”
“……청와대에 있던 거 아니야?”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거야.”
“……!”
그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첫째 형이고, 둘째 형이고 이런 거 받은 적 있어? 본 적 없잖아.”
최지곤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알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자신의 물건은 물론이고.
청와대의 물건을 자식에게 주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고태욱 비서실장님이 왜 내게 연락했겠어?”
사실을 90%는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10%에 거짓을 섞어야 한다.
그럴 때야말로 진정 거짓말이 힘을 발휘하는 법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최지곤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돌변했다.
“네가 원하는 게 뭔데?”
그는 냉정하게 물었다.
“권좌에 오르려는 거 아니야?”
“대통령?”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딴 자리는 바라지도 않아.”
“그러면?”
“아버지의 복수.”
“…….”
최지곤은 침을 꿀꺽 삼켰다.
“형은 중간에 손 뗐다며.”
“그, 그렇긴 하지.”
“이 일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의 자료를 넘겨줘. 그러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형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줄게.”
최지곤의 눈에 야욕이 물들었다.
“나머지 형들은?”
“첫째 형은 이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어.”
최지곤은 이미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토 달지 않았다.
“둘째 형은 어쩔 건데?”
“쉽지 않겠지. 하지만 고태욱 비서실장님과 나 그리고 셋째 형까지 합심하면 못 이길 수가 없어.”
“…….”
그는 한참을 고뇌하나 싶더니.
“확실한 거지?”
“그래.”
진심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최지곤은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렇다는 거지.”
“할 거야?”
그는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부탁한다, 동생.”
“당연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자료는 다 위에 있지?”
“응.”
“그러면 일단 서울로 올라가자.”
“그래.”
나는 신발장으로 향했다.
“시동 걸어 둘 테니까 옷 제대로 챙겨 입고 나와.”
“알겠어.”
홀로 운전석으로 향했다.
복수심. 배신감. 증오심. 그리고 처절함까지.
온갖 날카로운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비어 있는 조수석을 바라봤다.
곧 최지곤이 차지할 좌석.
나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처음으로 남의 뒤통수를 칠 생각이다.
대통령?
웃기고 있네.
반드시 최지곤의 허황된 꿈을 박살낼 것이다.
눈앞에서 아주 처절하게.
그는 정계에 복귀하지 못한다.
모든 증거를 내게 넘기고 나면.
차가운 감옥에서 평생을 썩게 만들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반드시 해낼 것이다.
벌컥-.
문이 열리며 최지곤이 탑승했다.
“가자.”
나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연기하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