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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를 잡으면 (1) (165/200)


  • 꼬리를 잡으면 (1)
    2022.04.14.



    -보낸 이 : 26

    -동영상.

    “업무 연락이니?”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적당히 둘러댔다.

    “아, 네.”

    “받고 와라. 어차피 아버지도 통화 중이니.”

    “알겠습니다.”

    나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 휴대폰으로 곧장 동영상을 재생했다.

    -그게 사실이야?

    제일 먼저 들려온 건 당황한 듯한 물음.

    익숙한 목소리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 진실이라고?

    화면이 밝혀지며 눈에 들어온 건 역시나 나의 첫째 형 최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꽤나 당황한 듯한 모습이었다.

    -허어…….

    그는 헛바람을 들이켜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가 짙은 한숨을 내쉬기를 반복했다.

    이내 이마에는 식은땀까지 맺히기 시작한 상태.

    지켜보고 있는 내가 오히려 조금 당황스러웠다.

    첫째 형 최지만이 워낙 다혈질 성격으로 유명해서 감정의 변화가 빠르고 크다고는 하나, 이렇게 놀라고 당황한 건 처음 보는 모습이었으니까.

    대체 무슨 일이길래.

    -아니, 그래서 지금 아버지께서 췌장암에 걸리셨다는 거야?

    ……뭐?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서 귀를 의심했다.

    허나, 상황상의 맥락.

    그리고 첫째 형 최지만의 태도를 보아하면, 내가 들은 게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셋째 쌍둥이들…… 최지곤이랑 최은실 둘이 짜고 아버지가 췌장암에 걸렸다는 걸 숨겼다는 뜻이야?

    -예, 맞습니다.

    그의 수족과 같은 오 실장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설명했다.

    -각하께서 췌장암에 걸리신 건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잠깐만.

    최지만은 무언가 떠오른 듯 멈칫하며 눈을 부라렸다.

    -그 녀석들 최근 들어 생물학과 관련된 업계에 들락거리는가 싶더니만…… 혹시 그 췌장암도 그 놈년들이 의도한 거야?

    최지만은 의대 출신이었기에 가늠이 가는 바가 있었다.

    -내가 정치에 뛰어들기 전에만 해도 동물의 암 유발에 관해서 연구가 한창이었는데…….

    -그것까진 확실하지 않습니다.

    오 실장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각하께 췌장암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건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일부러 유발이 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건 주치의가 매수되었다는 겁니다.

    -대통령 주치의 김 박사님 말하는 건가?

    -예, 맞습니다.

    -이런 개X끼가…….

    최지만은 팔을 부르르 떨며 이를 빠득 깨물었다.

    -그 새끼는 대체 뭐가 아쉽다고 그런 짓을 벌이는 거야?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치의나 했으면 한국에서 평생 떵떵거리며 먹고 살 수 있는 거잖아?

    -종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종교?

    -예. 가족 전체가 특정 종교를 믿고 있고, 아들이 유학 중인데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이 캐나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캐나다로 이민을 준비하는 걸로 보이고요.

    -허…….

    최지만은 살벌하게 눈을 치켜떴다.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는 죽여 놓고 지는 캐나다 가서 잘 살겠다, 이거 아니야?

    -예, 맞습니다.

    -그 새끼 추적해 둬. 캐나다 갔을 때 가족까지 전부 조져버릴 테니까. 놓치면 오 실장 모가지도 날아갈 줄 알아.

    -……예, 알겠습니다.

    오 실장은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바로는 처리하지 않는 이유를 여쭤 봐도 됩니까?

    -…….

    최지만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성을 냈다.

    -여기서 뭐 해? 빨리 가서 김 박사 행보 예측해서 추적 안 해?!

    -예, 알겠습니다. 시장님!

    오 실장은 최지만의 살벌한 목소리에 놀라 헐레벌떡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것을 끝으로 영상은 종료되었다.

    “이런 미친…….”

    나도 모르게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휴대폰을 쥐고 있던 내 팔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최지곤, 최은실 그 쌍둥이 자식들이 이런 음모를 꾸미고 있었을 줄이야.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서 초췌한 모습으로 통화를 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췌장암이라니…….

    “제기랄.”

    자꾸만 욕지거리가 새어나왔다.

    쌍둥이만 문제가 아니다.

    첫째 최지만 또한 문제다.

    영상에서 본 걸 생각하면, 이 사실에 대해 알면서도 묵인하겠다는 소리다.

    김 박사에게는 보복을 하겠지만, 그것이 전부.

    아버지의 죽음이 앞당기려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유는 뻔하다.

    현재 첫째 형이 서울시장을 맡고 있다.

    그리고 가장 유력한 후계자 후보인 둘째 형은 대한당을 장악했다.

    시간이 흘러, 첫째 형의 서울시장 임기가 끝나면.

    둘째 형은 당연히 최지만을 공천해 줄 리가 없다.

    경쟁자는 제거하는 게 나으니까.

    그렇기에 시간이 흐르면 최지만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

    그걸 방지하기 위함이다.

    차라리 서울시장이라는 큰 힘을 가지고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둘째와 붙어도 싸움이 될 만하니까.

    그래서 아버지의 죽음을 막지 않고 지켜보려는 것이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인륜도 저버리고 패륜까지 저질러버리는 미친놈이다.

    “……X발.”

    아버지께서 나라는 잘 성장시키셨어도.

    자식 농사는 망하셨다.

    ……젠장.

    울컥 감정이 북받쳐 왔다.

    쏟아지려 하는 눈물을 겨우 참아냈다.

    지금 당장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아버지께서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셨던 상견례 날이었으니까.

    허나,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는 법.

    췌장암의 치사율은 가히 다른 암과 비교할 수도 없다.

    최대한 빠르게 대처를 해야만 하니까.

    나는 휴대폰을 들고 곧장 고태욱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수신음이 몇 번 들리지 않아 곧장 응답했다.

    -네, 도련님. 무슨 일이십니까?

    “고 실장님. 오늘 급히 뵐 수 있으실까요?”

    -오늘이요?

    그는 당황한 듯 되물었다.

    -지금 상견례하는 스케줄로 알고 있는데…… 혹시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집안일은 문제없이 진행될 겁니다. 다만, 급히 여쭤보고 싶은 다른 일 때문에요.”

    -혹시 각하와 관련된 겁니까?

    “예. 맞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제외하고 저와 실장님 단 둘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는지, 그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끝나는 시간 맞춰서 제가 도련님 댁 앞으로 가 있겠습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게 제 일이니까요.

    “끝날 때쯤 다시 한 번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저 멀리 아버지 또한 용무를 마치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

    “아들.”

    아무런 사실도 모르고 계시는 아버지는 태연하게 내 등을 쓸어내리셨다.

    “가자.”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이셨다.

    “드디어 우리 막내가 장가를 가는구나.”

    나 또한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아버지 덕분입니다.”

    * * *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너도 얼른 들어가라.”

    아버지는 흐뭇한 얼굴로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시고는 차에 올랐다.

    비서의 차를 타고 청와대로 돌아가는 부모님을 배웅하고 곧장 내 차에 올랐다.

    상견례는 무사히 끝이 났다.

    사실, 이건 예정된 결과였다.

    지한그룹 총수 부부와 우리 부모님 내외.

    애초에 나와 한예린의 관계 자체가 윗사람들이 맺어주신 인연이었기에 서로 만족하실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다만, 오늘밤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나는 운전석에 오르자마자 곧장 고태욱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지훈입니다. 지금 막 일정이 끝났는데 어디 계십니까?”

    -저도 조금 전에 출발했습니다. 한 20분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저희 집에서 뵈어도 되겠습니까?”

    -예. 그게 안전할 것 같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따 보시죠.

    * * *

    “……그게 사실입니까?”

    고태욱 비서실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평소답지 않게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했다.

    “어쩐지 최근 들어 각하 건강이 갈수록 안 좋아지는 게 보여서 김 박사를 자주 보러 갔는데, 갈 때마다 늘 ‘노안’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길래 무언가 이상하다 생각했거든요.”

    “저도 아버지께서 건강검진 결과가 이상이 없다고 하셔서 나이 때문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는데…….”

    “김 박사 이 새끼를 그냥!”

    고태욱 비서실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이내 머리가 식었는지 털썩 소파에 앉았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흥분해서.”

    “아닙니다.”

    그는 벙찐 얼굴로 이마를 쓸어 넘겼다.

    “이거 어떻게 해야 될지 감이 오지 않습니다.”

    청와대의 로봇라고 불리는 천하의 고태욱 비서실장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과부하가 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에 대한 테러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은데.

    그 주체가 대통령의 자식들이었고.

    또 다른 자식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있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김 박사님은…… 아니, 김 박사 그 새끼는 어떻게 됐습니까?”

    “그 자식은 며칠 전에 출국했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스케줄 표를 꺼내며 말했다.

    “캐나다에서도 의학에 관한 일을 한다면, 각하께서 친히 추천서까지 써 준다고 하셨는데…….”

    그는 절망스럽다는 듯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실지…….”

    고태욱 비서실장은 자조적인 목소리를 냈다.

    “제가 문제입니다. 비서실장으로서 조금 더 꼼꼼하게 체크했어야 하는데.”

    “고 실장님.”

    나는 차분하게 그를 향해 말했다.

    “지금은 잘잘못을 따질 시간이 아닙니다. 우선 문제부터 해결해야죠.”

    고태욱은 주먹을 꽉 쥐었다.

    “맞습니다.”

    이까지 빠드득 갈며 말했다.

    “우선, 내일 오전에 다른 스케줄 전부 캔슬하고 다시 한 번 정밀 검사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수술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할지는 알 수 없다.

    만에 하나 이미 진행이 빠르게 되어서 수술이나 치료가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법이니까.

    다른 곳으로 전이가 되었다면 손을 쓸 수도 없을 터.

    게다가 70대 중반에 접어든 아버지의 연세를 생각하면 항암 치료 또한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아버지께서 치료를 하시겠다고 응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도련님.”

    생각의 정리를 마친 듯 고태욱 비서실장은 결연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도련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얼마든지요.”

    “저는 외부에 알리지 않고 각하의 치료에 전념하겠습니다. 외부로 절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선 사뭇 비장함까지 느껴졌다.

    비단 김 박사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다른 형제들에게 정보를 넘겼던 이들까지 전부 숙청하겠다는 뜻.

    “도련님께서는…….”

    “첫째 형과 쌍둥이들에 대해 조사해 보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는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제가 내일 청와대로 들어가는 즉시 관련 자료들 전부 조회해서 도련님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예. 저도 최대한 믿을 수 있는 인물들만 통해서 진행하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그토록 강직해보이던 고태욱 비서실장은 고개를 푹 숙이며 몸을 떨었다.

    “도련님께도 소중한 분이시겠지만…… 각하는 제 전부입니다.”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각하께서 도련님을 정말 아끼셨습니다. 지금도 제일 소중하다고 생각하시고요.”

    나는 그의 주먹 위에 손을 얹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마음 또한 고태욱 비서실장의 심정과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의 아버지니까.

    반드시.

    필연코 사필귀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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