켕기는 게 있으면 (4)
(1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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켕기는 게 있으면 (4)
2022.04.12.
이전까지와는 달리, 오히려 민국당이 두 파로 갈라졌다.
백태성 대표를 중심으로 이익현 의원을 보호하는 계파와.
구태양 의원을 필두로 하여 나와 함께 하는 계파.
사실, 전자에 비해 후자에 속한 인원이 훨씬 더 많다.
이미 과반을 넘었다.
총 87명 중 55명으로 과반을 훨씬 뛰어넘는 수치.
초기에 27명이었던 걸 생각하면, 짧은 시간에 2배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성장을 한 것이지.
우리 측에서 은밀하게 사람을 모으고 있었는데, 이번 일이 도화선이 되어 대세가 바뀐 걸 알아챈 의원들은 전부 우리 쪽으로 넘어왔으니까.
반대파에게 남은 건 백태성 의원과 오래도록 친분이 있거나 이해 관계가 있는 인물들.
혹은 타이밍을 놓친 인물들.
차라리 백태성이 이익현 의원을 포기했다면, 이렇게 상황이 악화되었을 리는 없겠지만.
그가 고집스럽게 이익현 의원을 방어하려고 한 덕분에 오히려 판도가 바뀌어 우리에게 주도권이 넘어온 것이지.
이러한 혼란 속에서 국정감사가 시작되었다.
포문을 연 건 오일준 의원.
“당시 책임자였던 이익현 의원님께서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주셔야 된다고 봅니다.”
그는 시작과 동시에 상대방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실을 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세태에 대하여 국민분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 상황에서 대한당은 우리 편이었다.
실제로 이익현 의원의 잘못이 밝혀지면, 그를 보호하던 백태성이 무너지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민국당의 힘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으니까.
물론, 우리는 그것을 감소하고도 백태성과 그 일원들을 축출해내려는 것이었다.
이번 일로 인한 힘의 감소는 단기적일 뿐,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오히려 리더가 바뀌어야 환골탈태하여 제대로 된 야당이 될 테고.
그래야 진정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백태성 대표와 이익현 의원이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저는 해군사관학교 출신으로 당시 소령이었습니다. 처음 생도 시절부터 단 한 번도 대한민국에 충성하지 않았던 적이 없습니다. 제가 맡은 임무는 국가의 존폐가 걸린 일이라고 생각하여 최선을 다하였고, 그 어떠한 의무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이익현 의원은 억울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이 국회에 입성한 것 또한 그와 같은 이유입니다. 해군에서 소장을 달고 전역한 뒤에도 어떻게 하면 나라에 봉사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다가 백태성 대표님께 제안을 받고 들어온 것이니까요.”
그는 강인한 눈빛으로 오일준 의원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단 한 번도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오일준 의원은 지지 않겠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이번에 군에서 직접 공개한 영상입니다.”
그는 빔 프로젝터로 동영상을 재생했다.
백령도 교전 직후에 우리 군함을 통해 찍혔던 영상.
오일준 의원은 종료되자마자 다시금 그를 몰아붙였다.
“설계에 의하면 이 폭격 하나만으로는 태홍함이 침몰할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영상을 볼 때도 말씀드렸지만, 이 각도에서는 포격이 저거 하나만 있었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포격이 하나였다면 태홍함이 침몰하지 않았으리라는 말씀이시죠?”
기다렸다는 듯 백태성 대표가 대답을 가로챘다.
“저희 쪽 증인으로 요청했던 물리파동 연구소장 김진무 씨께 여쭤보겠습니다. 포격이 두 개 이상 떨어지지 않고, 단 하나만으로도 침몰할 수 있는 겁니까?”
“답변드리겠습니다.”
김진무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이게 당시 기상청에서 발표한 백령도 근처의 파도 수위입니다.”
그는 자료 표 하나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확률이 매우 낮긴 하나, 당시 파도로 인해 생겼던 파동이 일치하다면 마냥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나 또한 저것에 대해 조사해 보았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길에 걸어가다가 번개에 맞을 확률보다 낮다는 것이지.
이익현 의원은 태연하게 물었다.
“저는 검수를 완벽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설계 구조 상 완벽하더라도 저 포격 하나만으로도 침몰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예, 맞습니다.”
조사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 인간은 백태성 대표에게 매수당한 것일 터.
충분히 그럴 만한 인간이다.
애초에 이번 국정감사가 처음 결정되었을 때부터 온갖 다른 이유로 빠져나가려고 하다가 실패하자, 분주하게 인맥들과 접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정도니까.
백태성 대표는 논점을 흐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 교전은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우리끼리 잘잘못을 따질 게 아니라, 여당인 대한당에서 솔직하게 이번 사건에 관하여 북한이 어떻게 발포까지 이어지게 되었는지…….”
“헛소리하지 마세요.”
둘째 형, 최지원 의원이 당당하게 말했다.
“그건 청와대에서 해결할 일입니다. 우리 국회는 이번 일에 집중해야죠.”
그는 슬쩍 내게 눈빛을 주고는 다시금 말을 이었다.
“이익현 의원님. 이번엔 저희 대한당에서 질의하겠습니다. 사실대로 대답해주십시오.”
최지원의 단호한 말투에 이익현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예.”
“군 복무하던 시절…….”
* * *
한창 치열한 공방이 이뤄졌고.
그리고 약속된 오후 4시.
“다음은 민국당 최지훈 씨 질의해 주십시오.”
“우선, 제가 요청했던 증인분께 질문드리겠습니다. 조금 전에 오일준 의원님이 재생했던 백령도 교전 영상 보셨죠?”
“예, 봤습니다.”
“그 폭격 하나만으로 침몰할 수 있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는 톡톡 마이크를 두들기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답변 드리기 전에, 조금 전에 물리파동 연구소장님께서 말씀하신 파도의 파동과 일치할 확률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기다리면서 대충 계산해 보니 0.01%도 되지 않더라고요.”
나이스 어시스트.
“그리고 답변 드리겠습니다. 설계에 의하면, 저 포격 하나만으로는 태홍함은 ‘절대’ 침몰하지 않습니다.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이익현 의원은 길길이 날뛰었다.
“아까 가능성 이야기 못 들었습니까? 설계는 그렇게 하더라도, 과학적으로 파동이 일치하면…….”
마음껏 이야기하게 두었다.
“이익현 의원님 할 말 다하셨죠?”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제 발언 시간까지 나눠드린 겁니다.”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는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이익현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이익현 의원님께서 소령이던 시절, 업체에서 돈을 받은 겁니다. 태홍함을 비롯해 당시에 제작되었던 초계함들을 부실 공사하고, 그걸 눈감아주는 대신, 거액을 받은 거죠.”
“하.”
이익현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시나리오를 써도 유분수지, 마음대로 상상한 걸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면 범죄입니다. 그건 아세요? 아직 초선 의원이셔서 정신을 못 차리셨나본데…….”
한참을 뇌까리던 그의 말을 차분하게 경청했다.
“증거 있습니까?”
“증거는 없죠.”
“그러면 말 그대로 진짜 시나리오 아니야? 무슨 소설을 쓰고 있어! 이렇게 신성한 국정감사장에서…….”
“대신 증인을 모셨습니다.”
“……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리며 포승줄에 김태식이 묶여 나왔다.
일부러 그들 측에서 파악하지 못하도록 뒤늦게 증인을 추가 요청했다.
이번 국정감사 의장은 대한당에서 맡았기에 당연히 오케이.
김태식은 나오자마자 술술 불었다.
“저는 당시 태홍함을 만들었던 방위산업체에 있던 간부입니다. 당시 상무이사였고요.”
“김태식 씨는 태홍함이 부실 건설되었다는 걸 알고 계시는 겁니까?”
“예. 저희 회사 대표님께서 지시하셨습니다.”
“그 부실공사를 위해서 입막음 비용을 지출하신 적도 있고요?”
“네. 수많은 사람이 있는데…….”
그는 스윽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익현 의원을 바라보며 시선을 멈추었다.
“저기 있는 저분께도 직접 드렸습니다.”
“뭐?!”
이익현 의원은 발끈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진심입니다. 직접 만났잖아요. 당시에 여동생이 결혼 준비한다고 힘들다고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나는데.”
“증거 있습니까?! 끼워 맞추면 다예요?”
“끼워 맞추다니요? 사실을 이야기한 걸요.”
이익현 의원은 뻔뻔하게 나왔다.
“애초에 저는 제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태홍함이 북한으로부터 단 한 발의 어뢰만 맞았다는 보장도 없잖습니까? 그러면 애초에 이걸 논의할 가치 조차가 없는 거 아닙니까?”
“이익현 의원님, 정숙하세요. 지금 의원님은 국정감사에 참석한 게 증인 신분이신 겁니다. 국회의원 신분이 아니고요.”
“…….”
백태성 대표는 은연중에 실드를 쳤다.
“맞습니다. 우선, 저희가 사실 여부부터 확인을 하고 나서야 잘잘못을 가려야죠. 이건 순서가 잘못 되었습니다.”
국정감사장은 점점 더 난장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정보는 한정되어 있는데, 입은 많고.
또 오래된 일인 만큼 증거는 적었으니까.
대한당 측에서는 촉박한 눈치였고.
구태양 의원을 믿고 손을 잡은 우리 측 인사들도 조금은 걱정스런 눈치.
허나, 나만은 유일하게 팔짱을 끼고 이 모든 모습을 관망하고 있었다.
탕탕탕-!
“정숙하세요!”
국정감사 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겨우 실내를 조용히 시켰다.
그제야 이익현 의원도 입을 다물고 자리에 착석했다.
허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익현 의원님. 많이 억울하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억울하죠. 내가 한 거라고는 조국에 충성한 죄밖에 없는데 이렇게 몰아붙이면 당연히 화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맞습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손가락질 하면 화나죠.”
내가 맞장구를 쳐 주자, 오히려 백태성 대표가 당황한 듯 보였다.
대체 최지훈 저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싶은 모양.
곧 알게 될 거다.
“진실이라면, 이익현 의원님은 영웅이신 겁니다. 만약 거짓이라면, 매국노라는 점은 동의하시죠?”
“예. 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매국노 새끼가 뻔뻔하게 윤동주 시인의 작품에 나온 구절까지 인용한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
지잉-.
때마침 주머니에서 4시 5분을 알리는 진동 알림이 느껴졌다.
이것만을 기다렸다.
혹시나 몰라, 다시 한 번 시간을 확인하고는 학수고대하며 참았던 말을 터뜨렸다.
“아, 마침 제보가 들어왔네요.”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마이크에 몸을 기울였다.
“제가 영상 하나를 보여드리려고 하거든요.”
나는 빔프로젝터로 USB를 연결했다.
북한에서 제공했던 백령도 교전 영상.
정확히 4시 5분이 되며 엠바고가 풀렸다.
그것을 보여줄 차례다.
“이거부터 한 번 보시죠.”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어디 보고 나서도 입 열 수 있나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