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켕기는 게 있으면 (3) (162/200)


  • 켕기는 게 있으면 (3)
    2022.04.11.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이쪽은 특별하게 문제는 없어.”

    구태양 의원은 눈썹을 들썩이며 미소를 지었다.

    “최 의원 쪽은 어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증인은 이미 확보했고, 대한당 측에서도 국정감사엔 크게 태클 걸지 않을 겁니다.”

    내 답변에 그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한당에서도 순순히 받아들여 주던가?”

    “최지원 의원이 제게 빚이 있거든요.”

    “아, 그래?”

    그가 말했던 두 번째 증인까지 찾아냈으니, 아마 국정감사가 열리는 덴 반대하지 않을 터.

    “역시 최 의원이랑 일하니 든든하구먼.”

    “감사합니다.”

    “증인들은 어떻게 잘 관리하고 있나?”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난번에 한 번 빼앗겼던 경험이 있기에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지방에 있는 임수홍은 마돈나와 비서관 하나.

    교도소에 있는 김태식은 강선우 보좌관을 붙여서 다른 이들이 접촉하지 않도록 잘 막고 있으니까.

    또 당할 리는 없다.

    “그러면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네.”

    “예.”

    문득 머릿속에 잊고 있던 사실이 하나 떠올랐다.

    “참, 원내대표님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말하게.”

    “오일준 의원님과는 어떻게 접촉하신 겁니까?”

    “하하, 내가 말 안 했나?”

    “예. 오 의원님은 워낙 강직하신 분이셔서 궁금했습니다.”

    “특별한 건 없었네. 원래 정치인들 중에서 자리에 욕심 없는 사람이 없지 않나?”

    그는 가볍게 입꼬리를 비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 * *

    “안녕하십니까, 오 의원님.”

    “아, 원내대표님.”

    구태양 의원을 발견한 오일준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뻗었다.

    구태양은 가볍게 악수를 하며 입을 열었다.

    “단 둘이 뵙는 건 처음 같습니다.”

    “그러게요. 진즉에 뵈었어야 하는데.”

    그는 오일준 의원을 향해 손짓했다.

    “일단 앉으시죠.”

    “예.”

    그들이 앉은 테이블에는 한정식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다.

    “편하게 드십시오.”

    구태양 의원은 권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살짝 배를 채운 직후, 구태양은 자연스레 운을 뗐다.

    “그나저나 이번 일 말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태홍함 사건이라는 건 양 측 다 알 수 있었다.

    “사실, 제가 만기 전역이라고는 해도 저는 육군 출신이라 잘 모르겠습니다만, 해군 장교 출신이시니 진짜 터놓고 물어보겠습니다.”

    “예.”

    “정치적 의도를 전부 빼고, 순수하게 한 사람의 장교로 보셨을 때 이번 일을 어떻게 보십니까?”

    “흐으음…….”

    쉽지 않은 질문인 듯, 그는 천천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오늘 이 자리에서 나온 대화는 전부 오프 더 레코드입니다.”

    “그렇다면…….”

    오일준 의원은 티슈를 뽑아 슥 입을 닦고는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가 태홍함을 직접 지휘했던 건 아시죠?”

    “예, 들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 이번 백령도 교전 자체는 사실일 겁니다. 북한의 선제공격 또한 사실일 테고요. 그러니 조작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답은 결국 하나뿐이라고 보거든요.”

    “그 말씀은…….”

    “예. 선체에 문제가 있던 겁니다.”

    구태양 의원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경청했다.

    “배의 설계엔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 제가 지휘할 때부터 유독 태홍함을 비롯해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군함들에 크고 작은 문제가 많았거든요. 그만큼 수리도 잦았고요.”

    “결함이 있었다는 거죠?”

    “예. 당시에는 자잘한 문제들이어서 큰 결함은 아니었습니다만, 다른 함체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건 문제가 될 만하죠.”

    구태양 의원은 조심스레 제안했다.

    “국정감사에서 아는 사실을 말씀해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

    오일준 의원은 침묵했다.

    그는 한참동안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제가 알기로는 이익현 의원이 당시 군 책임자였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예, 맞습니다.”

    “그리고 이익현 의원은 현재 백태성 대표님과 굉장히 가깝고요.”

    오일준 의원은 걱정스런 기색을 드러냈다.

    “제가 사실대로 밝히는 건 저희 민국당을 공격하는 행위가 되는 겁니다. 저는 당연히 백태성 대표님한테 찍힐 테고…….”

    그가 가장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는 구태양 의원이 잘 알고 있다.

    “다음 공천이 문제가 되는 거죠?”

    “예, 맞습니다.”

    오일준 의원은 허심탄회하게 대답했다.

    “분명 문제가 되긴 하나, 저는 또 당에 충성하기에…… 그래야만 이 배지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만약 공천이 약속된다면 어떻겠습니까?”

    “……예?”

    그는 자신이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태성 대표님이 이익현 의원님을 아끼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아!”

    오일준 의원은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설마 그겁니까?”

    끄덕.

    구태양 의원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답했다.

    “한 번 당 대표라고 해서 다음 총선 때까지 그 자리에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현 대한당의 힘의 구도를 전복시키자는 뜻이십니까?”

    “지금의 민국당은 너무 낡았습니다. 썩었고요. 다들 새 정치를 펴기 위해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현재 쥐고 있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야당으로 남아 있는 느낌이죠.”

    “……그건 맞습니다.”

    오일준 의원도 동의하는 바였다.

    백태성 대표의 방식은 민국당이 평생 야당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구도였으니까.

    허나, 한두 명만의 힘으로 그것을 엎을 순 없었기에 전부 순응하고 있었던 것이고.

    하지만 이렇게 구태양 의원이 답답한 부분을 긁어주니, 슬슬 참고 있던 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니다.

    구태양 의원은 더욱 달콤한 말을 건넸다.

    “우리는 정의를 바로 세워야 될 의무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국민분들께서 저희에게 이 금배지를 채워준 거 아니겠습니까?”

    명분을 세워 줌과 동시에.

    “만약 잘 성공한다면, 국방위원회 상임위원장 자리까지 드리겠습니다.”

    눈이 번뜩일 만한 보상까지 제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일준 의원의 목이 꿀렁였다.

    아무리 강직한 인물이라도, 정치인이 된 이상 권력에 혹하지 않을 사람은 없으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당 대표가 바뀌면 가능하죠.”

    “혹시 원내대표님이 직접 올라가시는 겁니까?”

    구태양 의원은 대답 대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허어…….”

    오일준 의원은 천천히 턱을 매만졌다.

    동시에 안심이 되었는지 깊은 숨도 함께 새어나왔다.

    이 지각변동에서 자신이 제외되지 않았다는 모종의 안도감.

    “누가 함께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꽤 많은 의원들이 함께할 겁니다.”

    “……역시 그렇군요.”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구태양 의원은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최지훈 의원이 함께할 겁니다.”

    “역시 그분이 같이 움직이시는 군요.”

    “예상하셨습니까?”

    “최근 들어 최 의원님과 꽤 밀접하게 움직이시는 것 같아 어느 정도 눈치는 챘습니다.”

    함께 담배를 피우러가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군요.”

    “그러면 자세한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은데…….”

    * * *

    “그렇게 됐군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구태양 의원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네가 있다니까 오히려 안심하더구먼.”

    “그렇습니까?”

    “요즘 자네가 민국당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어서 그런가 봐.”

    “중심이라뇨, 가당치도 않습니다.”

    “젊은 피 의원들 중에서는 제일 으뜸 아닌가?”

    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여하튼 오일준 의원은 알고 있으니 편하게 이야기하게.”

    “알겠습니다.”

    * * *

    “내가 잘못들은 건가?”

    백태성 대표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김한음 보좌관을 노려봤다.

    “대한당이 동의를 했다고?”

    “……예.”

    김한음 보좌관은 움츠려든 채 대답했다.

    “아무래도 대한당 측과 손을 잡은 것 같습니다.”

    “대한당이 이걸 왜?”

    백태성 의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따졌다.

    “우리 측도 타격이 있다지만, 여당이 입는 피해가 훨씬 클 텐데?”

    “예.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번 일을 이익현 의원과 연관 지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제기랄…….”

    백태성 대표는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증거는? 지금 첫 날 국회로 보고된 영상 말고는 없지 않아?”

    “예. 제가 국정원에 있는 대학 동기에게도 물어봤지만, 추가 증거는 없었습니다.”

    김한음 보좌관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보아하니, 오일준 의원 측에서 증인을 확보한 것 같습니다.”

    “증인?”

    “예. 이익현 의원이 군 책임자였던 당시에 있었던 관계자들에게 증언을 받은 걸로 확인됩니다.”

    백태성 대표는 슬쩍 고개를 들며 음흉하게 눈을 들었다.

    “매수할 순 없나?”

    “함민영 의원이 접촉해보려 했으나, 가장 중요한 설계자 임수홍 씨는 현재 소재지에서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어디 간 건데?”

    “구태양 의원 측에서 아예 새로운 숙소를 잡아 준 게 아닐까 싶습니다.”

    “허어…….”

    구태양이 직접 숙소를 잡아 줬다면, 추적이 불가능하다.

    “교도소에 한 명이 더 있긴 한데…….”

    “그 인간은 포기해. 이미 가족들까지 전부 포섭됐다며.”

    “예. 아무래도 구태양 의원이 홀로 움직이는 건 아닌 것 같고 몇몇 의원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그 인간을 원내대표로 올리는 게 아니었는데…….”

    문득 머릿속에 그를 추천했던 인물이 하나 떠올랐다.

    “혹시 최지훈 그 녀석이 움직이는 건가?”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이런…….”

    미간을 꾸욱 눌렀다.

    백태성 대표는 이를 꽉 깨물었다가 고개를 들었다.

    “일단 증인은 그렇다 치고, 추가 증거는?”

    “없는 걸로 확인됩니다.”

    “……그래?”

    순간, 백태성 대표의 표정이 펴졌다.

    “증인들도 직접 본 게 아니잖아.”

    “예. 백령도 교전 당시 현장에 있었던 군인들도 직접 접촉해 봤으나, 워낙 정신이 없는 상태라 태홍함이 어떻게 폭격을 받았는지는 보지 못한 걸로 확인됩니다.”

    “그러면 확실한 카드가 없는데?”

    원래 이런 상황에서는 물적 증거가 있지 않는 한, 아무리 설계자의 증언이라고 해도 증언에 불과하니까.

    “이거 언론전으로 가면 할 만할 수도 있겠는걸.”

    태홍함이 북한에게 다른 포격을 받고 침몰했을 가능성이 없다고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니까.

    짧은 고민 끝에 결론을 내린 백태성 대표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휴대폰을 꺼냈다.

    “이익현 의원한테 전화해. 오늘 밤에 따로 보자고.”

    “알겠습니다.”

    김한음 보좌관이 떠난 직후, 백태성 대표는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 네. 소장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죠? 하나 의뢰할 게 있어서요. 예. 가능성에 대해서인데…… 예, 예. 맞습니다. 태홍함. 설계와 다르게 자연이 섞이면 반드시라는 건 없으니까. 네. 네. 제가 지금 바로 찾아뵈어도 될까요? 가능성만 이야기해 주시면 됩니다.”

    이내 백태성 대표의 입꼬리가 샐쭉 비틀어졌다.

    “감사합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16557387752147.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