켕기는 게 있으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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켕기는 게 있으면 (2)
2022.04.10.
스타.
정치인들에게 TV로 얼굴을 알리고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라디오나 인터뷰 같은 매체로는 범접할 수 없는 공적인 기회.
허나, 국민들의 관심이 쏠려있는 상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뉴스보다도 더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
‘청문회’ 그리고 ‘국정감사’다.
그곳에서 사이다 발언을 하거나 활약을 하면 국민들에게 일약 스타로 떠오를 수 있다.
그게 아니고서야, 어지간한 인물들은 정치인으로만 머물 뿐, 국민들에게 각광을 받는 인물이 될 수가 없다.
현재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국민들은 대부분이 ‘대통령의 막내아들’ 정도로만 알고 있다.
기껏해야 청와대 출신의 민국당 의원이라거나 내 지역구인 종로구민들만이 자세히 알고 있는 정도지.
허나, 국정감사에서 활약을 하게 된다면, 지역구만이 아니라, 전국구에 내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을 터.
국회의원으로서 진짜 힘을 보여줄 수 있는 타이밍이라는 뜻이다.
정확히는.
청와대 막내아들이 아닌, 국회의원 최지훈이라는 이름을 알릴 타이밍.
구태양 의원의 이러한 제안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단순히 이번 일 자체를 내가 기획했다고는 하나, 이해관계가 엮여있는 사람이 정말 많은데도 굳이 나를 꼽은 이유는 하나.
시민들에게 나를 민국당 사람이라고 각인시키기 위함이다.
아무리 내가 오래도록 민국당에서 일해 왔다고 한들, 여전히 다른 이들의 인식 속에서는 대한당으로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다고 보일 테니까.
내가 대한당으로 가는 순간, 구태양의 힘이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 나를 민국당에 잡아두기 위함도 없지 않을 터.
실제로 나는 아직까지 대한당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상태.
나의 미래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구태양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국정 감사는 내가 직접 뛰어드는 게 옳을 터.
“예, 국정감사 제가 한 번 나서보겠습니다.”
-고맙네.
“자세한 사안은 직접 뵙고 논의드리는 게 낫겠죠?”
-그러자고.
“서울 올라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고생하게. 나도 위에서 자네 서포트할 인물들 좀 뽑아두겠네.
“감사합니다.”
나는 전화를 끊으며 임수홍에게 다가갔다.
“어르신, 이번 태홍함과 관련해서…….”
* * *
국정 감사라는 걸 간단히 말하면 국회가 행정부의 업무에 대해 벌이는 감사 활동을 뜻한다.
이는 단순히 청와대뿐만이 아니라, 사법부와 입법부를 제외하고 행정부의 영향을 받는 모든 기관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일이다.
이 국정 감사를 진행하면서 청문회도 열 수 있는 것이고.
허나, 국회라는 입법부 자체가 움직이는 만큼, 단순히 우리 민국당이 원한다고 해서 국정 감사를 진행할 수는 없다.
대한당이나 만세당에서도 동의를 해줘야하는데, 그쪽에서 이를 쉽게 받아들여줄 리가 없다.
어쨌든 국정감사가 진행이 되면, 대한당은 타격을 받는 것이고.
민국당의 어깨가 올라가게 되는 일이니까.
그렇기에 국정감사를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써야 한다.
첫 번째.
일을 공론화 시켜서 국민들이 국정감사를 열도록 여론을 형성시키거나.
두 번째.
대한당의 주역 의원들을 포섭해 우리에게 동의해주도록 만드는 일.
첫 번째 방법은 이미 진행 중이다.
그가 오일준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까지 열며 국민들에게 이번 사건의 의문을 강조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내가 할 일은 두 번째.
대한당 의원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찾아간 곳은 다름 아닌, 둘째 형 최지원의 의원실.
“어, 왔어?”
최지원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반겼다.
굉장히 가식적인 미소였지만, 오늘만큼은 저 미소도 나쁘지는 않았다.
어쨌든 가식이라는 건 내게 호의를 보이기 위함이니까.
“잘 지냈어?”
“당연하지. 너는 요즘 바쁜 것 같던데.”
“태홍함 사건 준비하느라고 바쁘다.”
“민국당에서는 국정 감사 준비한다며?”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왔어.”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단 앉아라.”
“응.”
최지원은 소파에 앉은 나에게 식혜 한 잔을 떠주었다.
“웬 식혜야?”
“날이 더워져서 그런지 요즘 의원님들한테 식혜 드리면 참 좋아하시더라고.”
“하하, 나도 준비해야겠네.”
한 모금을 홀짝이며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말인데…….”
질질 끌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최지원 스타일은 빙빙 돌리며 다른 주제로 대화를 한다고 해서 라포를 형성하거나 하는 일은 불가능하니까.
“이번 국정감사, 대한당이 동의해주면 안 될까?”
“……흐음.”
그는 천천히 턱을 매만졌다.
“글쎄. 우리가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최지원은 냉정하게 눈동자를 식혔다.
“결함이 발견되면, 어쨌든 행정부에 타격이 오는 거고, 그건 자연스레 우리 여당도 책임을 나눠야 하니까.”
“그게 아니야.”
그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뭐 다른 게 있어?”
“지금 민국당 내부에서 시끄러운 건 알지?”
“구태양 의원을 중심으로 백태성 대표에게 반기를 든 것 같더만.”
최지원은 흥미로운 듯 혀로 입술을 핥았다.
“자세히 아는 사안이 있는 거야?”
“정확히 말해줄 순 없지만, 이번 일이 처리되면, 백태성 의원을 쫓아낼 수 있어.”
“……그래?”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 자리는 누가 채우는데?”
최지원은 스윽 내게 몸을 기울였다.
“네가 당 대표가 되는 건가?”
“아니, 난 그럴 짬이 안 되지. 아마 구태양 의원이 올라갈 거야.”
“그러면 주인만 바뀌는 거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게다가 구태양 의원이면 백태성 대표보다 우리 쪽에게 더 적대적이잖아.”
“내가 있잖아, 형.”
나는 달콤하게 속삭였다.
“어지간한 일은 함께 진행해줄 수 있어.”
“당 대표 자리는 구태양이 먹는다며?”
순간, 최지원의 눈이 흥미롭게 번뜩였다.
“너 구태양이랑 손잡았구나?”
“응.”
굳이 숨길 필요 없었다.
곧 드러날 테니까.
“난 민국당 내 최고위원이 될 거야.”
“그러면 나쁘지 않지.”
“그리고.”
나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형이 한 번 나 도와주기로 했잖아.”
지난번에 도와준 대가로 받아낸 티켓.
최지원도 생각났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맞네. 그게 있구나.”
그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케이. 그러면 내가 동의해줄게. 단.”
최지원은 조건을 내걸었다.
“여기서 내가 바로 오케이를 하면, 우리 대한당 내에서도 눈치가 보여.”
“무슨 말인지 알아.”
명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증거 굵직한 거 딱 두 개만 찾아와. 아니면 증인도 괜찮고.”
하나는 이미 있다.
임수홍을 완전히 손에 넣었으니까.
결국 하나만 더 찾으면 된다는 뜻.
“그러면 바로 해주는 거지?”
“당연하지.”
첫째 최지만과 달리 둘째 형은 이런 부분에서 거짓말하는 인물은 아니다.
“알았어.”
나는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또 연락할게.”
“그래.”
* * *
“김태식?”
“예, 맞습니다.”
마돈나가 건넨 프로필을 살폈다.
태홍함을 만들었던 방위산업체의 간부 중 하나.
최지원이 요구했던 두 번째 증인이 될 사람이다.
현재는 횡령으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인물.
“서울 남부교도소에 있네?”
“예. 구로구에 있습니다. 가까워요.”
“언제 볼 수 있나?”
“오늘 오후에 면회도 신청해 놨습니다.”
“그러면 바로 가보자고.”
한 시간을 달려 도착한 교도소.
지난번에 이치현 의원을 면회하러 갔던 구치소 이후로는 처음 오는 교정 시설이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문득 그의 얼굴이 떠오르긴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어 털어버렸다.
지금 당장은 태홍함 사건에 집중해야 하니까.
잠시 후, 마돈나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장소에선 새치가 숭숭 나있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국회의원 배지 하나 덕분에 일반적인 면회장이 아닌, 폐쇄된 장소.
“김태식 씨 맞으십니까?”
“누구십니까?”
그는 위아래로 나를 흘기며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하긴, 몇 년간 철창 신세였으니 내 얼굴을 알 리가 없지.
나는 대답 대신 옷깃에 붙어 있는 금배지를 슬쩍 보여주었다.
“……!”
순간, 껄렁하던 김태식의 자세가 바뀌었다.
“의원님이십니까?”
“맞습니다.”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여긴 어떻게…….”
“이번에 태홍함 사건 터진 건 아십니까?”
“뉴스에 나와서 대충 보긴 했습니다.”
“요즘 감방 좋네요. TV도 다 틀어주고.”
일부러 그를 도발했다.
“안에 편하시죠?”
“적응은 됐지만, 편하진 않죠.”
“지금 출소까지 한 6개월 남으셨나요?”
“맞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경계심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타이밍이다.
“6개월 뒤에 사회로 나오시는 게 더 좋겠죠?”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법적으로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그건 맞죠. 하지만 다시 들어올 수 있는 게 또 감방 아니겠습니까?”
꿀꺽.
김태식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나는 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더 사실래요, 아니면 나오실래요?”
“그게 무슨…….”
“태홍함.”
단호하게 말했다.
“논란되었으니 더 잘 아시겠네. 이거 부실공사된 거잖아요.”
“…….”
그는 애써 시선을 피했다.
“눈 안 본다고 과거가 바뀌는 건 아니에요. 다시에 방산업체에서 부실 공사하고 뇌물 먹이는 거 승인한 게 김태식씨 아닙니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그는 뚝 시치미를 뗐다.
“다 알고 왔습니다. 이미 다른 증인도 있어요.”
그 말에 김태식의 몸이 움찔했다.
“딱 이렇게 가시죠.”
나는 테이블 위로 몸을 기댔다.
“이번 사건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때 나는 위에서 시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지만, 어쩄든 나도 그 일에 가담한 탓에 이런 참사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양심 고백을 하려 한다. 어떻습니까, 시나리오 좋지 않아요?”
그는 의심스런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게 공개가 되면 저는 다시 들어와야 되는 거 아닙니까?”
“에이, 아니죠.”
나는 능청스레 말했다.
“그럴 거였으면 제가 안 왔죠.”
그는 구원의 빛을 찾은 듯 눈이 반짝였다.
“그러면…….”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면 집행유예 정도로 넘겨드리죠.”
중요한 건, 이번 일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사실, 집행유예 또한 유죄 판정이기도 하지만.
이런 잔챙이 한두 명 정도는 살려줘야 한다.
그래야 굵직한 놈을 잡을 수 있는 법이니까.
김태식은 아직 믿지 못하겠다는 듯 조심스레 운을 뗐다.
“혹시 어느 지역구 국회의원이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종로구 최지훈 의원입니다.”
“그러면 제가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싫으면 마십시오. 증언해 줄 사람은 많으니까.”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약에 다른 분이 사실을 밝히면, 김태식 씨는 다시 옥살이를 하셔야 될 텐데…… 유감이네요. 나갈 때쯤에 다시 실형이라니.”
안타까운 듯이 코를 찡긋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닙니다!”
그는 다급하게 다가와 나를 붙잡았다.
“하겠습니다.”
역시나 예상대로.
김태식은 떠는 목소리로 물었다.
“양심고백하면, 집행유예는 확실한 거죠?”
“제가 약속드리죠.”
“알겠습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법정 가서 사실을 밝히겠습니다. 대신…… 집행유예는 꼭 부탁드립니다.”
나는 가볍게 입꼬리를 휘었다.
“물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