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켕기는 게 있으면 (1) (160/200)


  • 켕기는 게 있으면 (1)
    2022.04.09.


    “영상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상치도 못했는지 구태양 의원은 깜짝 놀란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최 의원, 백령도 해전 그 영상을 말하는 건가?”

    “예, 맞습니다.”

    그는 믿기지 않는 듯 헛바람을 들이켰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구한 건가?”

    “아버지께서 구해 주셨습니다.”

    “각하께서?”

    “예.”

    구태양 의원은 미간에 힘을 주며 물었다.

    “역시 있던 건가? 원래 영상이…….”

    “아닙니다.”

    나는 단호하게 부정했다.

    “다른 군함에는 따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건 확실해 보이고요.”

    “그러면…….”

    그는 잠깐 머릿속으로 무언가 떠올리나 싶더니.

    “설마…….”

    이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우리 군에서 받은 게 아닌 건가?”

    “맞습니다. 저희 측에 영상이 있다면, 교전 상대에게도 영상이 있겠죠.”

    “진심으로 북한에게서 받았다는 뜻인가?”

    “맞습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교전 상태일 때 상대 측에서 찍었던 영상이 있더군요.”

    꿀꺽.

    구태양 의원은 당황한 듯 주변을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그걸 내게 말해도 되는 건가?”

    “괜찮습니다.”

    난 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입꼬리를 휘었다.

    “조만간 언론을 통해 공식적으로 발표할 겁니다.”

    “아, 그런가?”

    “예.”

    “혹시 영상은 확인해 봤나?”

    “아니요. 자세한 시기는 통일부 및 청와대에서 조율을 할 것 같습니다만, 아마 이번 달 내로 받을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그렇다면 얼마 안 남은 거 아닌가?”

    “맞습니다.”

    구태양 의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그러면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는데.”

    “예. 저는 오늘부터 바로 추가 자료 확보에 나서겠습니다.”

    “어떻게 하려고?”

    “태홍함을 설계했던 인물부터 당시 군 간부들 및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서 증언을 얻어 보려 합니다.”

    “내가 그러면 오일준 의원을 만나 볼게. 그리고………….”

    “이익현 의원을 자극해 주십시오.”

    “그래. 그러면 백태성 대표가 두둔하려 들 거야.”

    “예. 그쪽에선 영상이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실제로 이익현 의원이 비리를 저질렀다고 해도, 빠른 시일 내에 태홍함을 인양할 수는 없을 터.

    그러면 증거가 없기에 아무리 우리가 외쳐 봐도 말 그대로 ‘의혹’만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실제 영상을 제시하면, 이익현 의원과 그를 두둔하던 의원과 백태성 의원까지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접촉하는 즉시 실시간으로 공유해 주지.”

    “저 또한 증거 및 증인 확보되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 * *

    “먼저 백령도 해전에서 전사한 군인들에 대하여 존경 및 찬사를 보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신 해군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구태양 의원은 오일준 의원과 이야기를 끝냈는지, 공동 기자회견에 들어갔다.

    “우리 장병 중 무려 27명이 전사했고 6명이 부상을 입은 교전입니다. 아니, 이건 유사 전쟁과도 같습니다. 대한민국은 휴전 중인 분쟁 국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이번 백령도 해전과 관련된 의혹이 있다면, 반드시 밝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옆에 있던 오일준 의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있는 오 의원님께서 오늘 SNS를 통해 발표하셨지만, 현재 공개된 영상에 의하면 태홍함은 설계상 침몰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구태양 의원은 어깨를 펴며 말했다.

    “저는 민국당의 원내대표로서 태홍함과 관련된 모든 이들에 대한 추가 조사가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교전 자체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는 강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따라서 저는 당시 군 관계자와 태홍함을 제작했던 조선소를 포함한 관련 기업에 대한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 걸음 물러나며 자리를 내주었다.

    “이하, 자세한 내용은 오일준 의원님께서 설명해 주시겠습니다.”

    오일준 의원은 바통을 이어받아 마이크 앞에 섰다.

    “저는 해군 ROTC 중령 출신으로…….”

    뒷자리를 지키는 구태양 의원의 얼굴은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말했던 게 핵심이었으니까.

    태홍함이 처음 설계되고 군으로 투입될 때 전반적으로 선체를 점검했던 안전 진단 책임자는 당시 소령이었던 이익현 의원.

    구태양 의원이 던져 놨으니, 언론과 시민들이 자동으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찾아내 줄 터.

    개중에서도 기업인들보다 더 찾기 쉬운 건 바로 군 간부.

    오래지 않아, 현재 국방위원회 상임위원장인 이익현 의원이 이번 일의 핵심 인물이라는 게 밝혀질 터.

    한 마디로 말해서.

    구태양 의원은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대놓고 이익현 의원을 저격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백태성 대표와 대립각을 세운 것이지.

    그래서 민국당 의원들은 꽤나 상황이 다급해졌다.

    애초에 구태양 의원에게 붙은 사람들이라면, 어느 정도 준비는 하고 있었겠지만.

    그 외 의원들은 구태양 의원 혹은 백태성 대표 중 한 쪽으로 줄을 서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니까.

    따라서 대한당에서는 일부러 손을 떼고 흡족스레 지켜보기만 했다.

    야당이 분열되면, 여당의 힘이 강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

    게다가 이처럼 보통 북한과의 교전이 발생하면, 국민들의 타깃이 되는 건 정부와 여당.

    그런데 민국당에서 발 벗고 나서서 서로를 저격하고 있으니, 오히려 그들은 피해를 낮추는 셈이니까.

    그래서 오히려 그들은 자세한 발표를 계속해서 미루며 오히려 이쪽으로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상태.

    우리 측에선 나쁠 게 없었다.

    국민들의 관심이 커지면 커질수록 일이 터졌을 때 백태성 대표와 이익현 의원에게 타격이 커질 테니까.

    * * *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대로 돌아가시면 후회하실 텐데요.”

    “……그래도 죄송합니다.”

    남자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문을 닫아 버렸다.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마돈나는 씁쓸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어렵네요.”

    “그러게 말이야.”

    방금 만난 인물은 십수 년 전, 태홍함이 처음 군에 도입되던 당시 방위 산업체에서 근무하던 인물.

    관련자들을 벌써 여섯 명째 만나고 있으나, 전부 답변을 거부했다.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그저 죄송하다는 등 핑계도 다양했다.

    군 관련 이야기이기에. 그것도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쉽지 않을 거라 생각은 했으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우리에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괜찮아. 아직 만날 인물은 많이 남았으니까.”

    “예. 힘내시죠.”

    마돈나는 웃으며 계단을 내려가 차로 향했다.

    나는 운전비서가 열어 주는 뒷좌석에 오르며 물었다.

    “다음은 누구야?”

    마돈나는 태블릿 PC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분이 가장 중요한 분입니다. 임수홍 씨인데………….”

    “아, 설계자분 맞나?”

    “예, 맞습니다.”

    태홍함의 설계자.

    물론, 단독 설계는 아니지만 당시 설계를 했던 팀의 책임자로서 팀장을 맡았던 인물.

    “수홍 씨만 오케이하면 다 되는 거 아닌가?”

    “예, 맞습니다. 사실상 이분만 설득할 수 있다면, 다른 분들은 굳이 만날 필요도 없습니다.”

    “잘해보자고.”

    나는 창문을 내려 시원한 바람을 쐬며 물었다.

    “다음 장소는 어디지?”

    “태안입니다.”

    “충남 태안?”

    “예.”

    “이번 지진에서 타격이 제일 센 곳 아닌가?”

    “맞습니다.”

    “부디 피해가 없었으면 좋겠는데.”

    만약에 지진으로 인해 생활에 타격을 받았다면, 이런 일에 오히려 관심을 끄고 싶어 할 테니까.

    “일단 가 보자고.”

    * * *

    “여기 맞아?”

    “예. 주소 상으로는 여기로 나옵니다.”

    “그래?”

    마돈나와 함께 도착한 곳은 시골의 한 마을.

    길이 좁아서 차가 들어가지도 못해 마을 회관 근처에 주차해 두고 마돈나와 둘이서 걸어 올라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쿵. 쿵. 쿵.

    쾅!

    타앙!

    굉음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흰머리로 뒤덮인 남성 하나가 벽에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어르신?”

    응답이 없었다.

    망치질 소리에 듣지 못한 것 같아 마돈나가 더 가까이 다가가 그를 불렀다.

    “어르신!”

    그제야 망치질이 멈췄다.

    “……누구십니까?”

    그는 경계심 짙은 눈으로 마돈나와 나를 흘겨봤다.

    “임수홍 선생님 맞으시죠? 저희는 국회에서 나왔습니다.”

    마돈나는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다.

    “저는 임지현 보좌관이고, 여기는 최지훈 의원님이십니다.”

    “안녕하십니까.”

    “아…….”

    남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그가 망치질 하던 곳을 바라봤다.

    문틀과 문이 맞지 않아 수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지진 피해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죠?”

    “듣기 좋은 소리하러 온 거면 가슈. 어차피 허울 좋은 말 따위는 도움도 안 될 테니.”

    남자는 다시 망치를 들었다.

    “지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러 온 게 아닙니다.”

    “그러면?”

    “태홍함 설계 책임자로 알고 있습니다.”

    순간, 그의 손이 멈췄다.

    문을 바라보던 임수홍은 다시금 내 쪽을 돌아봤다.

    “백령도 교전 때문입니까?”

    “예.”

    “…….”

    “보여 드릴 게 있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마돈나는 태블릿 PC로 동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국회의원들에게만 제공된 영상으로 아직까지 언론에 퍼지지 않은 영상.

    그는 눈에 힘을 주며 날 바라봤다.

    “이게 당시 상황입니까?”

    “예, 태홍함이 침몰하던 실제 영상입니다.”

    동영상을 보는 그를 향해 말했다.

    “태홍함 지휘자였던 장교 중 한분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그 부분을 맞는 것만으로는 침몰하지 않는다고.”

    영상에 눈을 고정한 그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순간, 손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혹시 그 말을 증언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

    “군 관련 업계에 종사했던 사람으로 태홍함 침몰에 유감을 느끼고는 있으니까요. 다만.”

    임수홍은 단호하게 말했다.

    “저는 그저 사실만을 말할 겁니다. 다른 요구를 하셔도…….”

    “그럴 일은 없습니다.”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저희는 사실을 규명하고 싶어서 찾아온 거거든요.”

    “그거라면 가능합니다.”

    마돈나는 기다렸다는 듯 증언과 관련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르신. 그러면 시간은 언제쯤 가능하실지요?”

    “은퇴하고 몇 년째 여기서 밭에 소일거리만 하고 있어서 시간은 많지.”

    “그러면…….”

    그녀가 설명하는 사이.

    지이이잉-.

    구태양 의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마돈나에게 눈빛을 주고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네, 최지훈입니다.”

    -어, 최 의원. 잘되어 가고 있어?

    “예. 방금 막 설계 팀장님 뵈었는데 증언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됐네.

    그는 기다렸다는 듯 흡족스런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 아예 판을 키워 보는 건 어떤가?

    “예?”

    -아예 국정 감사 추진해 보자고.

    구태양 의원은 회심의 한 마디를 보탰다.

    -자네, 제대로 스타 한 번 되어 봐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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