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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건 (4) (159/200)


전쟁이라는 건 (4)
2022.04.08.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네다.

북한의 김정무 국방위원장은 특유의 사투리를 쓰며 인사했다.

닮은 사람이 아닌, 북한의 수령. 바로 그 사람이었다.

TV를 통해 몇 번 보긴 했지만,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아무리 내가 청와대에서 오랜 시간을 자라 왔지만, 북한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걸 본 건 처음이다.

수면 밑에서 많은 것이 이뤄진다는 건 알고 있지만.

국회의원이 되었는데도 내가 모르는 새에 수많은 일들이 진행된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이번 교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어서 직통 회담을 요청했습니다.

아버지의 표정을 보니 꽤나 굳어 있었다.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북 측에서 먼저 통신을 시도한 모양.

“백령도 교전은 명백한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발생한 전투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북한의 책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조선에서 우리 어선을 향해 경고 사격을 하지 않았습니까?

김정무 위원장의 목소리 자체는 굉장히 굵직하게 낮은 음이었다.

“해당 어선이 NLL 이남으로 넘어왔습니다. 우리 군은 경고 방송을 몇 번이나 했고, 지난 정상회담에서 정해진 횟수를 채우고도 NLL 이북으로 넘어가지 않아 경고 사격을 한 것이고요.”

아버지는 강경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GPS 기록으로도 남아 있습니다. 경고 사격을 하던 당시 어선 위치는 물론 우리 군함이 있던 지역도 확실하게 NLL 이남 지역이고요.”

참모들은 준비했던 자료를 화면에 띄웠다.

“이번 교전으로 인해 우리 군함 한 척이 침몰했습니다. 타고 있던 우리 군인 33명 중 27명이 사망을 했고 6명 또한 부상을 입었고요.”

아버지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북측에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남조선에서 피해를 입은 만큼, 우리 북조선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군함 2척이 침몰했고 군인 다수가 사망했죠. 이에 대해 보상해야 되지 않습니까?

“북한에서 선제공격을 해서 우린 대응 사격을 한 건데 왜 우리가 보상을 합니까?”

-우리도 피해 입은 게 있는데 보상할 수는 없죠. 그리고…….

김정무 국방위원장은 억울한 건지, 아니면 뻔뻔한 건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북조선은 선제공격한 게 아니라, 위협 사격을 하려 한 겁니다. 우리 어선을 지키기 위해서요.

그는 핵심이라는 듯 말을 보탰다.

-어선이 NLL 이남에 있을 때 경고 사격이 이루어진 건 맞지만, NLL 이북으로 넘어간 뒤에도 사격이 이뤄졌거든요.

사실, 내가 판단하기엔 아마 그것을 노렸던 것 같다.

경고 사격을 할 때 포탄이 떨어지는 위치가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NLL 이북으로 판단하고 바로 대응 사격을 하며 일부러 교전을 유도한 거겠지.

북한에서 교전을 유도하는 덴 수많은 이유가 있다.

내부가 혼란스러워 인민들을 규합하려 한다든가.

관련자들을 처벌하거나.

결과를 알 수 없는 국민들에게 승전보를 알려서 자신이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함 등등.

분명 김정무 국방위원장도 모종의 이유가 있을 터.

다만, 확실한 건.

북한이나 한국 모두 전쟁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것.

“최소한 진심 어린 사과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우리 북조선도 당시 영상을 갖고 있어요. 잘잘못을 따지자면, 양 쪽 다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잠깐만.

영상을 갖고 있다고?

자신들만 찍지는 않았을 것이다.

뉘앙스를 보면, 전방에 대해서 전부 찍혀 있을 터.

밤이라고는 해도, 만월인 데다가 포탄으로 인해 빛이 몇 번이고 터졌을 테기에 침몰한 태홍함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을 가능성도 있다.

만에 하나 저걸 입수할 수만 있다면…….

치지지직-.

그런데 갑자기 영상에 노이즈가 끼더니, 이내 ‘연결되지 않음’ 표시가 떠올랐다.

“어떻게 된 거야?”

아버지의 물음에 실무진 중 하나가 안경을 올려 쓰며 설명했다.

“북한 측에서 연결이 끊겼습니다.”

“일부러 끊은 건가?”

“아닙니다. 정확히는 판문점의 북한 중개 측과의 연결이 끊긴 것이라서…… 아마 현재 지진이 일어나서 그 충격으로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시 연결은 되는 건가?”

“이 정도 규모라면, 10분 내로 회복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10분.

다시 말해 지금부터 10분간 북한이 듣지 않는 채로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우선, 북 측에서의 태도를 보아하니…….”

아버지는 참모진과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게 길지는 않았다.

이미 참모진과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파악하고 대책을 세운 채로 이 면담에 들어왔을 테니까.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아버지.”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이들을 눈치를 보고 자리를 비우려는 모습을 보고는.

“아니야. 우리가 가지.”

아버지는 나를 이끌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최대한 빠르게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직 고태욱 비서실장이 보고하지 않은 ‘태홍함’의 결함 가능성 및 그걸 확인할 수 있는 영상을 북한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전부.

“사실이야?”

“예. 북한 측에서 들고 있는 영상을 반드시 가져와야 합니다. 태홍함을 인양하기엔 인력과 품이 너무 많이 듭니다. 시간도 한참이나 더 걸릴 테고요.”

“그러니까 그 영상만 있으면 확인할 수 있다는 거지?”

“태홍함이 찍혀 있다면, 충분히 규명 가능합니다.”

“흐음…….”

아버지는 턱을 매만지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방산 비리라면, 국가의 존폐를 위협하는 일이야.”

“맞습니다. 그래서 더욱 규명해야 하고요.”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고태욱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각하. 북측과 다시 연결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알겠어. 넌 물러나 있어.”

“예, 아버지.”

아버지는 다시금 비장한 얼굴로 참모진들 사이로 향했다.

-연결이 원활치 못했습니다.

“이해합니다. 남한도 마찬가지였거든요.”

평양과 서울이 워낙 가까우니 타격은 비슷할 테지.

아니, 건물의 구조를 보면 저쪽이 더 심할 터.

우선 서둘러 회담을 마무리해야 했다.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면, 우리 북조선도 침몰시키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안타깝네요.

말 그대로 유감 표명.

책임을 질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공개적으로 유가족들에게 사과해 주시죠.”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 북조선에서 희생당한 군인들에게 사과하실 순 없잖습니까?

피차일반이다.

북한 측이 잘못한 건 명백하지만, 국가원수기에 서로 양보는 불가능하니까.

허나, 아버지는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사과하기 전까지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은 끊길 겁니다. 위험 지역으로 외국인 관광도 최대한 지양시킬 거고요.”

-그러면 평양공단 출입을 금지시킬 겁니다.

갈 데까지 가 보자는 뜻이다.

“그러면 우리도 어쩔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강수를 던졌다.

“대북 전단과 대북 방송을 시행할 겁니다.”

순간, 김정무 위원장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북한에서 가장 꺼려하는 두 가지가 바로 저것이니까.

“5년 전과는 규모가 다를 겁니다. 딥페이크 아시죠?”

아버지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요즘 기술이 발달해서 사람 얼굴에 목소리까지 끼워서 조작이 가능합니다. 만약에 김정무 위원장님 얼굴로 민주주의를 부르짖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정무의 얼굴이라면 이미 공개된 소스는 넘쳐난다.

딥페이크를 이용해 아주 자연스러운 조작이 가능하니까.

싸구려 CG도 아니고, 청와대에서 최고급 인력을 고용하면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알아채기 힘들 터.

딥페이크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북한인들이라면 더 속을 수밖에 없지.

당연하지만, 아예 거짓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면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허나, 그럴 듯하게 상황을 꾸민다면?

술판을 거하게 벌이며 인민들을 욕하는 영상을 뿌려대면 아무리 충성심 깊은 북한 인민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도 의심의 씨앗이 싹틀 수밖에 없을 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순간, 김정무는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전쟁이라도 하시겠다는 뜻입니까?

“아니요. 평화적인 결론을 원하는 겁니다. 북측에서 먼저 선제공격을 한 것에 대한 사과를 원하는 거죠.”

-…….

그는 잠깐 고민하나 싶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하시죠.”

아버지는 차분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결론은 나지 않을 거 아닙니까?”

그건 양 측 모두 알고 있었다.

북한에서 긴급하게 영상 면담을 요청한 것은 무언가 바라는 게 있다는 건데.

그게 무엇인지 말하기도 전에 서로 날부터 세우고 있었으니까.

“며칠간 지진 문제부터 해결하고 다음 달에 직접 만나 정상 회담을 하시죠.”

-최 대통령과 내가요?

“예. 제가 판문점까지 가겠습니다.”

-흐음…….

“이에 응하시지 않으면, 저는 대북 전단과 대북 방송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정무 위원장은 한참을 고민하나 싶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그렇게 하시죠. 대신 날짜는 다음 달이 아니라, 우리 측에서 다시 잡겠습니다.

“그러시죠.”

정상 회담으로 끌어온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사실, 이번 일에 잘잘못을 따지는 건, 불가능한 것이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 한 쪽이 사과를 한다면 그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면 그 전에.”

아버지는 눈을 빛내며 몸을 기울였다.

“영상을 공유하시죠.”

-무슨 영상 말입니까?

“이번 교전에 대한 영상 말입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대화를 경청했다.

“북한 측에서 교전에 대해 유감을 표한 의미로 말하도록 하죠.”

-우리만 보낼 순 그러면 남조선 측의 영상도 보내주시죠.

“그러도록 하죠.”

양 측에서는 어차피 서로 다르게 언론 보도가 나갈 것이다.

당연히 우리 측이 사실이긴 하나.

폐쇄적인 북한의 특성상 그쪽은 나름대로 당위성을 갖고 승전보를 울려야만 할 테니까.

중요한 건 차후에 있을 정상회담이다.

이렇게 참모진이 있거나.

영상으로서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단 둘이서 은밀하게 승부를 봐야, 이번 일에 대한 제대로 된 해결이 가능할 테니까.

여기서 적당하게 마무리되는 건, 오히려 태홍함의 전사자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최소한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를 직접 만나야만 한다는 건 여기 있는 모두가 알고 있다.

“영상에 대한 교환은 저희 비서실장을 통해 이야기하도록 하시죠.”

-알겠습니다. 해당 건은 내일 중으로 다시 연락하겠습니다.

그렇게 영상 회담은 종료되었다.

“수고했어.”

아버지는 짧은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위에 올라가 봐도 되나?”

지진이 끝났냐는 물음이다.

“예. 여진이 살짝 남아 있긴 하나, 본진은 끝나서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아버지는 참모들을 향해.

“정리하고 올라오도록.”

짧은 말을 남기고는 걸음을 옮겼다.

그분은 내 옆을 지나며 어깨를 짧게 툭툭 두 번 두드렸다.

내가 원하던 영상은 받아냈으니, 남은 건 네가 한 번 할 수 있는 대로 해보라는 뜻.

이젠 나의 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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