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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건 (3) (158/200)


전쟁이라는 건 (3)
2022.04.07.



-보낸 이: ???

-동영상.

보낸 이가 ‘???’로 나와 있다.

지금까지 보낸 이는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모두 숫자였다.

문자에서 나온 사건이 벌어지는 당시의 내 나이.

늘 형식은 바뀌더라도 그 룰만큼은 어긋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물음표라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우선 내용을 확인해 봐야 알 수 있을 터.

곧바로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치지지직-.

평소와 달리 노이즈가 낀 상태로 영상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진행하려고 하는데, 어떻겠어요?

음질이 좋지 않았다.

뿐만 아니다.

화질 또한 굉장히 나쁜 상태.

아니, 화질의 문제가 아닌가?

색이 밝아지다가 만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아니고 영상은 흑백으로 재생이 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윗선에서 꼼꼼하게 처리를 한다고 해서…….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인물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영상의 배경은 1, 2년 전이 아니었다.

흑백이라서가 아니라,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패션부터 시작해서 주변 환경이 전부 굉장히 오래 전인 것처럼 꾸며져 있었으니까.

화면 속에는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구시대의 군복을 입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정장을 입고 있었으나, 잠자리 안경에 2대8로 넘긴 포마드 가르마를 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그래도 최종적인 점검은 제가 하거든요.

군복을 입은 남자의 얼굴이 비춰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의심했다.

아는 얼굴이다.

이익현.

해군 투스타 소장 출신에 현재 국회 국방위원회의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는 인물이자.

백태성과 굉장히 친밀하게 지내는 의원.

그는 흑백임에도 누리끼리해 보이는 두툼한 봉투를 품에 넣으며 흡족스레 미소를 지었다.

-제가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소령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럼요. 잘 처리되면 잊지나 말아주세요.

-하하하, 당연하죠.

남성과 이익현은 만족스러운 거래를 마친 듯 굳건히 악수를 마치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 영상을 끝으로 동영상이 종료되었다.

“허어…….”

나도 모르게 짧은 탄식이 새어나왔다.

동시에 머릿속엔 얼마 전 긴급 회의에서 오일준 의원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방산 비리.’

정확히 몇 년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익현이 소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일 터.

상황 상으로 보아, 이익현 의원이 당시 태홍함을 비롯한 많은 군함의 안전 진단에 대한 군의 책임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만약 오일준 의원이 했던 말처럼 부실 건설 등의 가능성이 있다면, 문제가 되는 상황인 것이지.

업체에서는 다른 업체들을 포함해서 이익현 의원을 돈으로 매수한 것이니까.

미래 문자만 보고 생각하면, 이익현 의원에게 유죄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박아 놓고 가도 될 터.

허나,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미래 문자의 형식이 달라진 만큼, 변수가 생긴 것이었으니까.

머릿속엔 온갖 추론이 떠올랐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닌 건가?

아니면, 내가 태어나기 전이라서 물음표로 표시가 되는 건가?

그것도 아니라면, 평범한 미래 문자인데 오류가 난 것일 수도 있고.

일부러 연도라는 정보를 주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으나, 이번 문자 하나만으로는 어떤 것이 맞다고 확신을 할 수는 없었다.

처음 보낸 이의 숫자가 내 나이를 뜻하는 걸 알 때처럼, 최소한 몇 번의 문자는 더 받아 봐야 확신을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기에 지금 상황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뿐.

내가 직접 이번 사건에 대해 자세히 파봐야 한다는 것이다.

허나, 지금 시점에서 같은 민국당 의원인 내가 발 벗고 나서는 건 그림이 좋지 않다.

행여 들키기라도 한다면, 백태성 의원에게 견제를 받을 수도 있을 테고.

지금은 보좌진들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해야 할 건 따로 있다.

나는 휴대폰을 들어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예, 실장님.”

통화 상대는 다름 아닌, 고태욱 비서실장.

이번 방산 비리는 당적을 떠나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일원으로서 사실 여부를 밝혀야만 한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뵐 수 있을까요?”

* * *

“……허어.”

청와대에 들어가 고태욱 비서실장에게 직접 말해 주었다.

오일준 의원의 추측 및 이익현 의원이 이번 일과 관련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일련의 이야기를 들은 고태욱 비서실장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익현 의원이 방산 비리를 저질렀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부실하게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고.

당시 군에서의 안전 진단 책임자가 이익현 의원이었다는 것 정도만을 말해 주었다.

“도련님.”

“예.”

“안 그래도 방금 전에 분석가들에게 비슷한 의견을 듣고 오던 참이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네. 북한의 포격으로 인해 침몰했다고 기사는 나갔으나, 아무래도 온전히 북한의 탓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아마 오일준 의원과 같은 의견일 터.

“아버지는 알고 계십니까?”

“아니요. 각하께는 아직 태홍함의 내부 문제에 대해서는 보고 드리지 않았습니다. 도련님과 이야기한 뒤에 시간을 잡아 뒀거든요.”

“아아, 그렇군요.”

“아버지가 알게 되시면 분명 분노하실 텐데…….”

“예. 그래서 놀라지 않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다가 그에게 물었다.

“실장님.”

“네.”

“혹시나 해서 여쭤보는 건데…….”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이번 태홍함 침몰과 관련해서 추가 영상이 남아 있는 게 있습니까?”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덧붙였다.

“민국당 의원으로서 묻는 게 아니라, 최준석 대통령의 아들로서 묻는 겁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눈을 천천히 끔뻑였다.

그리고는 아주 담백하게 대답했다.

“예, 없습니다.”

진심이라는 듯 덧붙였다.

“원하시는 대답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없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의 표정을 보면, 거짓은 아니었다.

실제로 있더라도, 보여 드릴 수 없다고 하지, 내게 거짓말을 할 인물은 아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도련님이 생각하시기엔 어떤 것 같습니까?”

“제가 보기엔 아무래도 함체에 결함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실제로 태홍함을 지휘했던 오일준 의원이 그렇게 강력하게 말한 걸 보면, 그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되거든요.”

“그렇군요.”

“게다가 제가 확인을 해 보니, 윗선까지 전부 속일 필요도 없더라고요. 군 체계의 특성상, 실제 담당하는 몇 명만 업체에서 매수하면, 충분히 속일 수 있는 거라서요.”

“맞습니다. 실제로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게 방산 비리기도 하고요.”

군이라는 특성상 워낙 촘촘하게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복무하는 중에는 물론, 전역을 한 뒤에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더욱더 그렇겠지.

“그러면 제가 각하께 보고를 드리고 한 번 더 조사를 해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더 알게 되는 정보 생기면 바로 공유드리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고태욱 비서실장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서려던 찰나.

쿠구구구궁-.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실내에 있던 가구들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실장님!”

입구를 지키던 경호원 세 명이 단숨에 실내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우선 이쪽으로 이동하시죠.”

고태욱 비서실장뿐만이 아니라.

“의원님도 함께 이동해 주셔야 합니다.”

나까지 경호원들이 반 강제로 이끌었다.

“무슨 일이죠?”

“가면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원래 들어왔던 문이 아니라, 뒤쪽에 나있는 새로운 문으로 향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간 곳은 지하 3층.

어렸을 적에 한두 번 가 보긴 했으나, 문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 보지 못했던 장소.

방공호를 방불케 하는 두꺼운 문을 세 개나 거친 뒤에 도착한 곳은 ‘긴급 대책 본부.’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에 물었다.

“혹시 북에서 포격이라도 온 겁니까?”

“아닙니다.”

경호원은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요?”

“예. 진원은 인천 앞바다 쪽으로 추정되는데, 규모가 5점대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5점대 규모라면, 상당히 큰 축에 이른다.

실제로 2017년엔 포항에서 일어난 규모 5.4의 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기도 했으니까.

도착한 곳엔 청와대 참모들이 먼저 도착해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아버지를 보기 위해 왔다가 강제로 이쪽으로 끌려온 모양.

보안 규정상, 위험 상황이 펼쳐졌을 땐, 청와대에 있는 주요 인물들은 전부 이곳 ‘긴급 대책 본부’로 데려와야만 하니까.

아직까지 아버지는 내려오시지 않은 상태.

참모들은 다들 나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왠지 모를 느낌에 나는 고태욱 비서실장을 향해 물었다.

“혹시 다음 일정이 뭐였습니까?”

“도련님이니까 말씀드리겠습니다.”

외부엔 비밀로 해 달라는 뜻이다.

“북한과의 면담입니다.”

“……진심이십니까?”

“예.”

그는 목소리를 낮춰 덧붙였다.

“김정무 국방위원장입니다.”

“허업…….”

예상치도 못한 인물의 등장에 나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역시 청와대에서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로 수많은 일을 진행하고 있는 모양.

아마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함이었겠지.

그때 천천히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본부로 들어오셨다.

나를 본 아버지는 놀란 듯 미간에 힘을 주셨다.

“……여기 있었느냐.”

“예, 각하. 고태욱 비서실장님과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래?”

아버지는 내부 상황을 슥 둘러보고는.

“잘 지켜보거라. 네게 뼈와 살이 될 테니.”

짧은 말을 남기고는 상석으로 향하셨다.

오늘따라 아버지의 어깨가 더 넓어 보였다.

비서실 직원들과 참모진은 분주하게 브리핑을 이어 갔다.

지진이 일어난 시급한 상황임에도 워낙 건이 건이다 보니, 북한과의 면담은 그대로 진행하는 모양.

아마 지진에 대해서는 기상청과 재난 대책 본부에서 대피령을 내리든 대책을 세울 테니까.

오래지 않아, 빔 프로젝터가 켜졌다.

긴급 대책 본부인만큼, 지하 3층 방공호에도 외부와의 소통을 위한 연결은 전부 되어 있는 게 당연한 일일 터.

나는 한 쪽 벽에 서서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각하.”

노트북을 두드리던 직원 하나가 아버지를 향해 보고했다.

“준비되었습니다.”

“크흠.”

아버지는 목을 가다듬고는.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연결해.”

그리고 마침내.

빔 프로젝터 위로 북한의 국방위원장 김정무의 얼굴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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