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라는 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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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라는 건 (2)
2022.04.06.
“그게 무슨 소리야?”
상석에 앉아 있던 백태성 의원이 까칠한 목소리로 태클을 걸었다.
“아, 대표님.”
오일준 의원은 진지한 얼굴로 다시금 말을 이었다.
“태홍함은 누구보다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설계도 또한 머릿속에 훤히 꿰고 있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평범한 사안이 아니었기에 백태성 대표는 딱딱한 얼굴로 물었다.
“단순히 설계 구조만으로 설명할 순 없어. 지금 파도가 굉장히 세게 치고 있는 거 안 보여?”
“맞습니다. 영향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오일준 의원은 회의실 내부의 다른 의원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다들 영상을 보시고 계시니 알 수 있으시겠지만, 기존의 파도 외에도 바다에 떨어진 포탄으로 인해 파고가 굉장히 높게 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눈에 힘을 주며 단언했다.
“이 정도 파도로는 배가 전복하는 데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관련 분야에 알고 있지 않은 의원들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해일이나 쓰나미급의 파도라면 모를까, 이 정도로 영향을 받으면 군함이라고 보기가 어렵죠.”
“…….”
“저 정도의 함체가 이러한 수준의 파도와 선체의 저 부분에 어뢰를 맞은 걸로 침몰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는 다른 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을 보탰다.
“선체에서 가장 중요한 엔진부나, 화약 밀집부 혹은 무게 중심과 연관된 부분이라면 모를까, 저긴 빈 공간입니다. 부력을 위해 남겨 둔 공간이죠. 물론, 어뢰를 맞고 시간이 흐르면 침몰을 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3분 만에 완전히 수장되는 건 불가능합니다.”
“오 의원.”
백태성 대표는 눈을 부라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이 영상이 조작되었다는 건가?”
“아닙니다.”
오일준 의원은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제가 전역한 이후, 저 빈 공간이 개조가 되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습니다만…….”
결코 높지 않다.
이미 작전에 쓰이고 있는 군함들은 섣불리 내부를 바꾸지 않으니까.
“대한당 놈들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긴 하나,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로 조작을 할 만한 이들은 아니니까요.”
“그러면 대체 뭔데?”
백태성 대표는 답답하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결론을 말해, 결론을.”
“그러니까…….”
재촉당하고 있음에도 오일준 의원은 섣불리 입을 열지 않았다.
몇 번의 고심 끝에 그가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사건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없진 않으나, 현저히 적으니 그건 제외하고. 제가 지금 추론할 수 있는 건.”
그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선체 제작이 부실하게 되었을 수가 있다는 겁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미필 의원 하나가 김이 샌다는 듯 픽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럼 별 거 아니잖습니까?”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오일준 의원은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국가를 지키는 군함이야, 군함! 전쟁에 쓰일지도 모르는 배가 부실하게 제작되었는데 그게 별 거 아니라고?”
“……죄송합니다.”
눈치가 없었던 걸 깨달은 의원은 고개를 꾸벅이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후우.”
오일준 의원은 속으로 화를 삼키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있겠지만, 지금 떠오르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살벌한 눈빛으로 말했다.
“이건 단순한 방산 비리를 넘어 국가를 전복시킬 위기에 착봉시킨 겁니다. 군인들의 목숨이 달린 것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생존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니까요.”
그의 말엔 아무도 토를 달지 않았다.
실제로 방산 비리는 전쟁은 물론이고 국가의 존속에도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이번 사건에 대해 확실하게 조사해 보고 문제가 있었다면, 책임자들 전부 모가지 날려야 합니다.”
오일준 의원이 강경하게 나오자, 백태성 대표도 더 이상 제지하지 않았다.
“일단 알겠네. 더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지?”
“이 파일과 다른 각도에서 촬영된 영상이 있으면 좋습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각도로 미사일을 맞았다거나 새로운 변수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 섣불리 결단을 내리진 말자고. 이번 일은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야 돼.”
“알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일준 의원은 할 말이 남았다는 듯 목소리를 냈다.
“지금 영상에서 확인된 공격 외에 또 다른 타격이 없었다면…….”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첨언했다.
“장담합니다. 분명 선체에 문제가 있었던 거라고.”
* * *
“최 의원은 어떻게 생각하나?”
구태양 의원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글쎄요…….”
나는 담뱃불을 붙이며 대답했다.
“우선, 제가 아는 전문 분야는 아니니 최대한 의견을 아끼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구태양과 나처럼 직접적인 지식이 없는 인물들은 회의가 끝나자마자 빠져나왔지만.
회의가 끝난 뒤에도 오일준 의원을 포함해 국방부와 관련이 있는 몇몇 의원들은 남아서 연신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지…….”
구태양 의원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담배 연기를 한 모금 깊게 내뱉으며 다시금 물었다.
“최 의원 생각에는 각하께서 일부러 이런 일을 만드셨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그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목소리에 가시가 돋쳤다.
“그 말씀은 이번 상황 자체가 조작이 아니냐에 대한 물음이십니까?”
“아니,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야.”
구태양 의원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말해 놓고도 오해할 여지가 있어서 아차했어. 그런 뜻이 아니라, 이번 백령도 해전 말일세. 각하께서 교전을 유도했을 가능성이 있을까에 대한 물음일세.”
“그 해전을 말이십니까?”
“그렇지.”
“흐음…….”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허나, 최근 들어 대한당의 정세가 좋지 않은 걸 보면,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언제나 국가가 위기에 봉착할 때면 시민들은 정부를 믿고 힘을 실어주니까.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이 크진 않습니다.”
지난 정기 국회에서 대한당이 큰 활약을 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또 정세를 뒤집어야한다고 말할 만큼은 아니었으니까.
“교전 자체엔 청와대의 개입이 없지 않았을까 합니다.”
실제로 북쪽에서 선제공격이 이루어지면, 긴급한 상황에서는 청와대까지 보고하지 않고 군에서 판단해 대응 사격을 하니까.
아마 모든 일이 진행되는 중 혹은 마무리된 뒤에 보고를 받았겠지.
“그나저나 구 의원님.”
“응?”
“오늘 회의에서 조금 이상한 점 못 느끼셨습니까?”
“어떤 거?”
“백태성 대표님이 예민하게 반응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최 의원도 느꼈어?”
그도 동의한다는 듯 눈을 번뜩였다.
“난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 건가 싶었는데, 조금 분위기가 다른 것 같기도 하더라고.”
“유독 오일준 의원에게 까칠하게 반응하는 것 같아.”
“혹시 그런 거 아닐까요?”
나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다.
“백태성 대표가 이익현 의원과 굉장히 가깝잖습니까?”
해군 투스타 출신의 국회 국방위원회 상임위원장 이익현.
“그쪽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럴 수도 있어. 최근 들어 둘이 부쩍 더 가까웠잖아.”
구태양 의원은 눈을 번뜩였다.
“이거 잘하면 백태성 의원을 몰아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제가 이번 사안에 대해서 직접 조사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는 의원들과 한 번 접촉해보도록 할게.”
“예.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입수하지 못했습니다.”
마돈나는 송구스런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영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교전에 참여한 군함은 총 세 척.
침몰한 배를 제외하고 살아남은 배 중 첫날에 영상을 보낸 한 대를 제외한 다른 한 대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고 알려진 상황.
사건 발생 직후부터 사흘째 마돈나와 강선우 보좌관을 포함해 우리 의원실 직원들이 발로 뛰었음에도 새 영상을 구할 수가 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
보좌진들에게 맡기는 것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의 힘으로 영상을 입수하려 했으나, 아직까지 그 영상에 접근도 하지 못하는 걸 보면, 실존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해군의 말대로 카메라가 없다는 뜻이지.
그러면 현재 국가에서 공개한 정보 내에서 사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뜻.
“이렇게 되면 일이 꽤 꼬여 버리는데.”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만으로는 정확히 배의 침몰 원인을 규명할 수 없다.
어뢰 한 방에 의한 건지.
다른 요인이 있던 것인지.
“국방부 측에선 따로 연락 없었어?”
“예. 제가 정보원을 직접 만나 봤으나, 공개한 자료 외에는 실질적으로 자신들도 들고 있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국정원 측에서도 똑같던데…….”
나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다른 방법은 없어?”
“침몰한 군함에는 블랙박스가 설치되어 있는 걸로 확인이 되긴 했습니다.”
“배를 인양하는 건 어렵겠지?”
“예. 그건 최소 몇 년은 걸릴 겁니다.”
전사자들의 시체를 수습하지 못했다면 서둘렀겠지만, 어제부로 실종자들까지 모두 육지로 건져왔기에 배의 인양을 서두를 만한 이유가 없었으니까.
“블랙박스만 따로 수거하는 건?”
“기술적으로는 그게 가장 현실성이 있고, 또 며칠 정도면 가능할 수는 있겠지만…….”
“접근할 수가 없겠구나.”
“예. NLL과 굉장히 접근한 지역이기에 해군이나 잠수부를 보내면 북쪽에서 또다시 민감하게 반응할 수가 있거든요.”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지난번엔 단순한 교전이었지만.
다음엔 진짜 전쟁이 터질 수도 있는 법.
백령도 교전으로 양측의 긴장이 최고조에 이른 만큼, 여차하면 팽팽한 고무줄이 끊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니까.
전쟁이라는 건 단순하게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단순히 국격만이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벌어지는 모든 피해를 감수해야만 시작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
“제가 조금 더 알아볼까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여기까지 했는데 영상을 입수하지 못했다면, 정말 구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아마 없다고 봐야겠지.
“그 대신.”
지금부터는 오일준 의원이 말했던 ‘방산 비리’ 가능성에 대해 조사해봐야 한다.
“태홍함 제작과 관련된 방위산업체에 대해 알아봐. 직접적으로 설계한 사람부터 당시 연관되었던 기업들의 수뇌부까지 전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자료를 구하기 위해 낭비할 시간은 없다.
“강선우 보좌관 포함해서 다른 인원들도 영상 찾기에서 손 떼고 그쪽으로 돌려.”
“알겠습니다.”
마돈나는 고개를 꾸벅이며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그녀가 나가며 문을 닫히던 순간.
지잉지잉-.
휴대폰에 미래 문자 특유의 진동이 울렸다.
나는 서둘러 주머니에서 그것을 꺼내 확인했다.
-보낸 이: ???
-동영상.
잠깐만.
이게 뭐야?
보낸 이가 왜 이렇게 나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