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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식별 (7)
2022.04.04.


우당탕탕-!

집무실 밖에서 커다란 소음이 들려왔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당장 최지훈 나오라 그래!”

“의원님께서는 지금 자리에 안 계십니다.”

막고 있는 건 강선우 보좌관.

내가 없다고 이야기까지 하는 걸 보면, 상대방이 굉장히 격앙된 상태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허나, 경비가 있는 입구를 통과해서 온 걸 보면, 문제 있는 인물은 아닐 터.

“안에 있잖아! 다 알아! 내가 주차장에서 차도 확인하고 왔어!”

익숙한 목소리.

이건 아마도…….

나는 집무실 문을 열고 나섰다.

“무슨 일이야?”

“의원님. 안에 계십시오.”

마돈나가 나를 말렸지만.

남자는 제지하려던 강선우 보좌관을 뚫고 내게 다가왔다.

“나랑 이야기 좀 합시다.”

나를 찾아온 인물은 다름 아닌, 전상국의 아들 전민재.

“그러시죠.”

강선우 보좌관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듯.

“의원님.”

나를 부르며 고개를 저었지만.

“괜찮아.”

나는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한나씨 커피 두 잔만 부탁해.”

“예, 알겠습니다.”

나는 전민재를 안으로 들였다.

“앉으시죠.”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는 상당히 흥분한 듯 얼굴이 씨벌개져 있었다.

“차근차근 말씀하시죠.”

“저희 아버지 말입니다!”

전민재는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제가 심경 고백 인터뷰하는 것 정도로는 무너지지 않을 분이라고 의원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잖습니까?”

“그건 사실입니다.”

“지금 아버지께서 은퇴하셨어요. 그 기사 못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말이 튀어나옵니까?”

“전민재 씨.”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전상국 대표님께선 버티실 여력이 있으셨습니다. 그건 제가 아니라, 국회의사당에 있는 인물 아무나를 잡아도 똑같이 대답할 겁니다.”

“……뭐라고요?”

“선택은 전상국 대표님께서 직접 하신 겁니다.”

순간, 그의 동공이 휘둥그레졌다.

“버티시지 않고 내려오길 결정하신 건 전상국 대표님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뻔뻔한……!”

전민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신이 우리 아버지 끌어내린 거야. 알아?!”

그는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정계에서 30년을 넘게 있으신 분이라고!”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김한나 비서가 들어왔다.

격앙된 분위기에 그녀는 짐짓 놀란 감정을 숨기고는 커피 두 잔을 내려놓고 꾸벅 인사를 한 뒤 빠져나갔다.

나는 여유롭게 커피잔을 들어올렸다.

“커피부터 드시죠.”

“…….”

그는 입술을 꾹 깨물며 소리쳤다.

“지금 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그를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아까부터 말이 좀 거치시네요.”

“뭐가 어쩌고 어째?”

전민재는 인상을 팍 구기며 따지고 들었다.

“당신이 꼬드긴 일 때문에 아버지가 은퇴했다고. 어떻게 책임질 건데? 내가 지금 당장 기자회견해서 당신 때문에 한 거라고 다 말할 수도 있어!”

“제가 묻죠.”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그에게 물었다.

“지금 이렇게 해놓고 뒷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

“일단 앉으시죠.”

위압적인 목소리에 흠칫 놀랐는지 그는 살포시 엉덩이를 붙였다.

“전민재 씨.”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기자회견을 하든, 대한당에 호소를 하건, 전 상관이 없습니다.”

순간, 전민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전상국 대표님은 이미 은퇴 선언을 하시고 당대표직을 사퇴하셨죠. 이번 일에 책임을 지고 말이죠.”

“그건 당신이 나를 선동해서…….”

“과연 그들이 믿을까요?”

그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과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특채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그건 본인도 이미 인정하셨고요.”

“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저와 대화했던 녹음본은 잊으셨나요?”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까지 은퇴하신 마당에 두 분 다 정계에서 발을 떼실 생각이라면…… 뭐, 말리진 않겠습니다.”

전민재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다만, 그렇게 되면 약속드렸던 공천도 지킬 순 없습니다.”

나를 적대시하는 인물에게 감투를 줄 수는 없는 법이니까.

“잘 생각하십시오. 정계에 들어서기로 결심하신 이상, 한 걸음 한 걸음이 민재 씨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법이거든요.”

그는 부들부들 떨었지만,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여기서 뭐라고 떠들어봤자, 어린 아이의 하소연밖에 되지 않는 법이니까.

“더 하실 말씀 없으시다면…….”

나는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심히 가십시오.”

손수 문을 열어 주었다.

전민재를 이를 악물고 의원실을 빠져나갔다.

집무실에 돌아와 TV를 틀자, 전상국이 정계 은퇴 기자회견을 하는 게 재방송되고 있었다.

-저는 대한당의 당대표직을 내려놓고 모든 정치 활동을 그만두려 합니다. 지금까지 대한당을 비롯해…….

“크흡…….”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숨길 수가 없었다.

“크하하하하핫!”

나는 배를 잡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부자가 아주 재미있는 꼴을 보이고 있다.

전민재는 내 손을 놓지 못할 것이다.

이미 전상국이 은퇴한 마당에, 그가 의지할 곳은 나뿐이니까.

내 손을 놓는다면, 아버지도 잃고, 그의 선택지도 잃는 법이기 때문.

전상국 대표는 분명 내게 커다란 반감을 품고 있을 것이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겠지.

허나, 딱 거기까지다.

전상국은 내게 보복할 수 없다.

아들 전민재가 포로로 잡혀 있으니까.

자신의 부를 채우기 위해 가족을 버렸던 모 재벌 총수와는 다르다.

전상국은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모든 것을 올인했었고.

심지어 이젠 정계를 은퇴했으니까.

아들이 민국당의 공천을 받기로 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을 터.

나를 건드리면 아들의 정계 입문이 날아간다는 걸 알고 있기에 더욱더 건드릴 수가 없겠지.

대한당 수장이었던 아버지로 인한 특채 비리. 그리고 그로 인해 그가 모든 정치 생활을 그만둔 현 시국에서는 대한당으로 입당하는 건 불가하니까.

유일한 동아줄이 나라는 뜻이지.

문득 머릿속에 그가 내게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확실할 때만 덤비라고 했지.

크게 벌여놓은 건 알아서 감당해 보라고.

면전에서 그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지만, 그건 그만두었다.

이미 전상국이 멸망한 마당에 굳이 그를 자극해서 얻을 건 없으니까.

게다가 그토록 지키려던 아들한테 뒤통수를 맞은 것만으로도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라, 분명 뼈아픈 타격일 테고.

혹자가 말했었지.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라고.

악연은 딱 여기까지.

잘 가라, 전상국.

* * *

“어유, 최 의원. 오랜만이야.”

“오, 원내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에이,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

간만에 찾은 의한회.

구태양 의원은 손을 휘휘 저으며 내게 다가왔다.

“그나저나 최 의원 표정이 좋네?”

그는 알 것 같다는 듯 내 팔을 툭 쳤다.

“숙적이 정리되어서 그런가?”

“에이, 숙적이라니요.”

나는 여유롭게 샴페인을 한 모금 마셨다.

“숙적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아깝다 이건가?”

“하하하, 아닙니다.”

전상국 대표를 정계에서 몰아낸 게 나라는 건 민국당 의원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덕분에 민국당에서 내 위엄이 훨씬 더 올라갔다.

“종로를 차지한 것도 모자라, 여당의 당대표까지…….”

구태양 의원은 눈을 반짝였다.

“누가 최 의원을 보고 초선이라고 하겠어?”

“과찬이십니다.”

그때 한 의원들 무리가 지나가며 내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아, 오랜만입니다.”

지나가며 인사하는 대한당 의원 무리들.

예전엔 내가 먼저 다가갔으나, 이제는 오히려 반대가 됐다.

내 위엄이 높아졌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지.

민국당이나 만세당도 아니고 대한당 의원들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주변에 사람이 없어지자, 구태양 의원은 슬쩍 내게 더 가까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그나저나 최 의원.”

은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인 모양.

“외부 정리가 끝났으니, 이젠 슬슬 내실을 다질 시간이야.”

내실을 다진다.

다시 말해 민국당 내부의 서열 정리를 다시 해야 된다는 뜻이다.

정확히는 백태성 의원을 몰아내고, 우리가 민국당의 수뇌부를 차지하는 것.

바라던 바였다.

그것을 위해 구태양 의원을 원내대표까지 끌어올린 것이었으니까.

“지금이 가장 적기야.”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제로 민국당에선 대한당 당대표를 쫓아낸 승리에 취해 있을 타이밍이고.

지난 정기 국회에서부터 구태양 의원이 꽤나 활약한 덕분에 그에 대한 백태성 의원의 신임은 꽤나 높아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팔다리를 자르는 것보다 백태성을 먼저 날리는 게 어떨까하는데…… 최 의원은 어떻게 생각해?”

“저도 그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당 외부의 사람이라면, 차근차근 그를 옥죄어 들어가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정확하겠지만.

당 내부의 일이라면 다르다.

그의 팔다리를 자르다가 자칫 백태성이 알아채기라도 하면, 오히려 이쪽이 수세에 몰릴 수 있으니까.

아무리 구태양 의원과 나의 힘이 커졌다고 한들, 여전히 민국당의 수장은 백태성이었으니까.

“일단 건수부터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괜찮은 것 없습니까?”

“건수라…….”

구태양 의원은 턱을 매만지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손가락을 퉁겼다.

“최근 들어 백태성 의원이 관심을 가지는 건이 하나 있긴 하네만.”

“어떤 겁니까?”

“국방부 쪽이야.”

“국방부라면…… 김익현 의원과 관련된 겁니까?”

“맞다네.”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슬쩍 더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요즘 들어 그쪽과 부쩍 교류가 많더라고.”

국방위원장 이익현.

북한의 국방위원장이 아니라, 국회 상임위원회인 국방위원회의 수장 이익현.

해군 투스타 출신으로 이제 막 2선이 된 의원.

보통 3선 의원이 위원장을 맡는 여타 상임위원회와 달리, 국방위원회만큼은 장교 출신이 많기에 실제 그들의 계급을 기반으로 위원회의 서열이 결정된다.

그중에서도 이익현 의원은 독보적이었기에 자연스레 위원장을 맡게 된 것이지.

“굳이 이익현과 교류가 있을 필요가 있습니까?”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육군이라면 모를까, 동작구에서는 딱히 해군과 관련된 게 없을 텐데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사실인데, 이번에 해사의 제2 캠퍼스를 서울권에 세우려고 하거든.”

“……아!”

안 그래도 인구 감소로 부실 대학이 점점 사라지는 마당에, 수도권에 대학을 유치하는 건 지역 활성화에 굉장히 큰 힘이 되니까.

게다가 자연스레 인구 증가로 이어지는데 이는 곧 지역구 의원의 힘이 되는 법이니까.

“아마 해상에서의 교육 외에 전략적이라든지 육사와의 교류를 추진하기 위해 만드는 것 같아.”

“백태성 의원이 이익현에게 붙을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지. 동작구가 최종 3개 후보 중에 하나니까.”

이익현의 입장에서도 당 대표가 자신의 손을 잡아 주면, 필시 향후 정치에 도움이 될 것이기에 긴밀하게 교류를 할 수밖에 없을 터.

“그걸 중심으로 태클을 걸어야 될 것 같네요.”

“그래. 다만, 문제는…….”

그는 조심스레 말을 줄였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챘기에 내가 대신 말했다.

“북한 때문이죠?”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들어 불안한 정세가 점점 커지고 있다.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짐에 따라 점점 더 날뛰는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아무래도…….”

한창 이야기를 이어가려던 그때.

“최 의원, 구 의원.”

익숙한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나는 서둘러 말을 자르며 고개를 돌렸다.

“아, 대표님.”

백태성 의원이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진지하게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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