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아식별 (6) (154/200)


  • 피아식별 (6)
    2022.04.03.



    “이건…….”

    김태원 기자가 작성해 둔 기사를 본 전민재의 눈빛엔 당황이 짙게 물들었다.

    “전민재 씨가 전상국 대표님과 직접 나눈 대화의 이야기입니다. 안타깝게도 직접 낙하산인 걸 인정하시는 발언이 있더라고요.”

    “불법 녹음이잖습니까?”

    그는 발끈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건 법정 자료로 쓰일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그렇죠.”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국민들이 판단하기엔 다르죠.”

    “…….”

    “저는 이걸 기반으로 평생 전민재 씨를 따라다닐 겁니다. 인생의 그 어떠한 조그마한 부조리라도 있을 경우, 저는 온힘을 다해 그걸 밝혀낼 겁니다.”

    진심이었다.

    협박성 발언이라기보다는, 그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지.

    “이제 결정하시죠.”

    그를 압박하기 위해 몸을 기울였다.

    “저를 적으로 돌리시고 평생 손가락질 당하실지. 아니면, 제 손을 잡고 그토록 꿈에 그리던 정계 진출을 이루실지.”

    “…….”

    그는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 혀로 입술을 날름 핥기도 하고, 숨을 짧게 들이마셨다가 내뱉거나 눈을 지그시 감기도 했다.

    그러나 내 앞에서 고민할 수 있는 덴 한계가 있었다.

    이 자리를 벗어나는 순간, 그에 대한 기사가 전국에 뿌려진다는 게 단순히 으름장을 놓는 게 아니란 건 전민재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렇게 고민되신다면.”

    나는 차분하게 휴대폰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전상국과 말다툼을 하는 녹음본을 직접 들려주었다.

    “도청까지 하신 겁니까?”

    순간, 그의 눈빛이 사납게 돌변했다.

    “그건 범죄입니다.”

    “도청이라니요?”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제가 직접 도청을 했으면 모를까, 이건 기자분이 직접 녹음하신 겁니다.”

    내가 김태원 기자를 이용한 두 번째 이유.

    단순히 기사를 내는 것뿐만이 아니다.

    일반적인 녹음의 경우, 본인이 포함된 대화가 아니면 녹음 자체가 불법이지만.

    현행법상 언론의 취재를 위해서라면, 충분히 허용을 하고 있으니까.

    “저는 그저 그분께 이 녹음본은 전달받은 것뿐이죠.”

    “…….”

    이번 싸움 자체는 그가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깨달았을 터.

    실제로 김태원 기자가 전상국과 그의 아들이 싸우는 걸 포착했을 때부터 기세는 이쪽으로 기울었다고 봐도 무방하지.

    전민재는 억울하고 분노에 찬 듯 주먹을 꽉 쥐거나 이를 갈기도 잠시.

    이내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게 기회란 걸 깨달은 것이지.

    생각의 정리를 마친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아버지를 욕해야 됩니까?”

    “아닙니다. 사실대로 이야기만 해주시면 됩니다.”

    한참의 고민 끝에 전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녹음을 시작했다.

    손을 잡아놓고 뒤통수를 칠 일도 배제시켜야 하는 법.

    면접관 최유동에게 한 번 당한 덕분에 더 철저해질 수 있었다.

    “민재 씨. 이제부터 나누는 대화는 녹음될 겁니다. 이는 법적 증거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냉정하게 그에게 말했다.

    “동의하면 동의한다고 말씀을 해주십시오.”

    “……이건 왜 하는 겁니까?”

    “서로 목줄을 잡는 겁니다.”

    나는 먼저 약점을 드러냈다.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해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다음 총선에서 공천해드리는 걸 약속하죠.”

    놀란 듯, 그의 동공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이걸 녹음까지 켜고 말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테지.

    당연한 말이지만, 녹음본은 내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에게 공유해 줄 생각도 없다.

    보여주기식 목줄 잡기다.

    이렇게 녹음까지 해두면, 뒤통수를 칠 순 없을 테니까.

    그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대답했다.

    “……동의합니다.”

    “코레일 면접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예정했던 대로 옷을 입고 갔습니다. 사전에 협의가 되어 있었거든요.”

    그는 더 이상 선택지가 없는 걸 깨닫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면접은 대충 봤습니다. 안에 들어가서 시간만 때우고 합격을 했습니다. 특별한 질문이 있다고 해도…….”

    * * *

    “안녕하십니까, 팩트체커의 김태원 기자입니다. 여러분들, 얼마 전 화제가 된 대한당 당대표 전상국의 아들 특채 비리 건을 아시죠? 그 당사자분을 직접 모셨습니다.”

    내가 녹음한 걸 사용할 일은 없었다.

    아무리 전상국 아들이라고 해도, 정치에 정자도 모르는 인물이 모든 증거가 있는 상태에서 내 뒤통수를 치려고 시도하진 못했으니까.

    나는 전민재와의 대화를 녹음한 직후, 곧장 그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곧장 팩트체커로 도착해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는 반항을 포기한 포로마냥…… 아니, 오히려 이번 일을 끝내면 국회의원이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사뭇 들뜬 모습도 없지 않아 보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상국 당대표의 아들, 전민재입니다. 오늘 모든 걸 솔직하게 밝히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의 얼굴은 모자이크가 되어 보도될 것이다.

    정계 진출을 하기 전까지는 오히려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기에 신분을 숨겨야만 했으니까.

    “항간에 제기되고 있는 면접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건 진실입니다. 저는…….”

    단순히 특채 비리뿐만이 아니다.

    전상국이 대한당에 있으면서 크고 작은 비리가 있었다는 걸 유추할 만한 사실까지 밝혔다.

    “명절이 되면, 정말 많은 선물이 들어왔습니다. 온갖 유명한 기업에서 직접 사람이 다녀가기도 하고…….”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실제로 증거가 될 법한 자료들을 주거나, 명시적으로 누구와 어떤 일이 있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그의 신빙성을 높이는 과정이지.

    실제로 이번 특채 비리에 관해서 밝히는 건 그도 동의했지만, 그 외에 아버지의 목숨줄을 위협하는 일에는 동의하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이번에 큰 트러블이 있었다고 해도 아버지였고.

    그렇기에 아버지의 정치 생명을 위협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으니까.

    특채 비리.

    딱 자신이 연관된 그것만을 밝히기로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다음 총선에서 그에게 공천은 실제로 해줄 것이다.

    좋은 지역구를 줄 것이지만.

    그 뒤는 이제 그에게 달려있다.

    아마 특별한 일이 없다면, 4년간 활동을 한 뒤에는 추가 공천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

    이곳은 정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초짜가 살아남을 만한 바닥이 아니니까.

    * * *

    “대표님, 어떻게 할까요?”

    “기자들에게 전화가 끊이지 않고 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해명을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인터뷰 내용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습니다.”

    당황한 보좌관들의 물음이 줄을 이었지만.

    “……다 나가 봐.”

    전상국 당 대표는 이를 꽉 깨물며 손짓했다.

    보좌관들은 하는 수 없이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이내 전상국 대표는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기사는 몇 번이고 읽어 보았다.

    혹시나 꿈인가 싶어 볼을 꼬집어봤지만, 명백한 현실이었고.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그는 일부러 받지 않는지 수신음만 계속 울리다가 음성사서함으로 넘어갈 뿐이었다.

    ‘민재가 그럴 줄이야…….’

    모든 건 아들을 위함이었다.

    아들이 조금 더 편하게 살았으면.

    아들이 조금 더 부유하게 살았으면.

    아들이 조금 더 멋있게 살았으면 했으니까.

    허나, 모든 건 자신의 욕심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본인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그의 진심을 계속 외면하고 있었으니까.

    그의 머릿속엔 그저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잘못 살았구나.’

    전상국은 지긋하게 눈을 감았다.

    특채 비리 때문에 거의 한 달을 싸웠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 정치 생명을 걸고 버텼는데, 그 아들이 그걸 원치 않을 줄이야.

    며칠 전부터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건 깨달았지만, 이젠 모든 게 어그러져버렸다.

    엎어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듯.

    이미 언론을 통해 고백한 이상, 아들의 비리를 숨길 수는 없었다.

    그는 의자를 돌려 사무실에 있는 커다란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반사되는 자신의 모습이 하염없이 소인배처럼만 보였다.

    더없이 작아 보였다.

    전국을 호령하는 위세 높은 대한당 당대표의 모습은 사라지고.

    검버섯이 하나둘씩 피어오른 얼굴은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해 보였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여기까지 버텼는가.’

    가족을 위해서도, 국민을 위해서도, 나라를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자신.

    본인의 권력을 채우기 위해서, 자신의 잇속을 불리기 위해 이곳에서 버텨왔다.

    그 사실이 새삼스레 체감되었다.

    전상국은 다시금 눈을 감았다.

    더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체념한 것이다.

    사실, 버티려면 버틸 수 있다.

    허나,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지금까지 정치를 해 오면 쌓아 온 수많은 인맥과 돈을 투자했다.

    그런데 그게 한순간에 부정당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아들에게 부정당했으니 모든 게 무너진 듯한 느낌이었으니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바라보았다.

    국회.

    그리고 여의도.

    이곳에서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늙은 나이에도 자신이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에 삶의 활력을 얻어왔다.

    허나, 이젠 아니었다.

    살아있음을 느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 여의도가 그의 목을 옥죄는 듯한 느낌.

    최지훈.

    그 이름 석 자가 문득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를 가볍게 본 게 자신의 패착이었다.

    ‘차라리 처음에 싹을 잘라냈어야 하는데…….’

    무서운 놈이라는 걸 너무 뒤늦게 깨달았다.

    청와대 출신의 다른 형제들처럼 너무 가벼이 봤다.

    그들의 두뇌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래서일까.

    사뭇 직감이 들었다.

    ‘아마 각하께서는 최지훈을…….’

    확신은 아니었다.

    당시에도 알지 못했다.

    허나, 지금에서야 떠올려 보면 간혹 만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막내아들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텐션이 달라졌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지난 번, 종로에서 트러블이 있었음에도 최준석 대통령이 나서지 않은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대통령의 아들.

    그것도 6남매 중에서도 가장 신임하는 아들.

    그런 이와 싸우려고 했다니.

    “훗.”

    조소가 흘러나왔다.

    이 정도면 잘 싸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끝내자.’

    지금 이곳에서 버티면, 여전히 대한당의 주역으로 남을 순 있겠으나.

    이제는 쉬고 싶었다.

    또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는 자신이 빠질 타이밍이었다.

    전상국 대표는 수화기를 들었다.

    “김 보좌관.”

    -예, 대표님.

    “정계 은퇴한다고 보도자료 내.”

    -……네?

    수화기 너머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그게 무슨…….

    “오늘 내로 기자회견할 거야. 그것도 같이 준비해둬.”

    -잠깐 들어가서 이야기 나눠도 되겠습니까?

    “한오야.”

    전상국 대표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자회견 준비해.”

    그의 목소리에서 김한오 보좌관은 알 수 있었다.

    전상국의 결심은 확고하고.

    자신이 그 무슨 짓을 해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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