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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식별 (5) (153/200)


피아식별 (5)
2022.04.02.



“흐아아암…….”

김태원 기자는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했다.

벌써 열흘하고도 이틀째.

전상국의 아들 전민재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밤낮으로 잠복을 하고 있는 상태.

‘되긴 되려나.’

그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다가 내려놓았다.

최지훈을 믿고 있긴 하나, 솔직히 이번 일에는 확신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전상국이다.

전상국이 정치를 1, 2년 해먹은 것도 아니고, 외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소란을 피울 가능성은 적다고 보였으니까.

그럼에도 지금까지 최지훈이 걸어온 행보가 있기에 믿고 있는 중이었다.

허나, 며칠이 더 지나면 그도 포기할 생각이었다.

최지훈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전민재의 특채 관련한 사건 자체가 국민들의 관심 목록에서 사라져버릴 테니, 포착을 해도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

‘이제는 슬슬 나와 줬으면 좋겠는데…….’

그런데 그때.

부우웅- 끽!

한쪽 구석에서 스키드 마크가 찍힐 만한 높은 소리가 들려왔다.

김태원 기자는 눈을 번쩍 뜨며 고개를 돌렸다.

주차장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을 만한 일이 없기에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판단했으니까.

벌컥, 쾅!

차선을 물고 주차한 차에서 사람이 하차하며 문을 세차게 닫았다.

꿀꺽.

김태원 기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익숙한 인물들이었다.

전상국과 그의 아들 전민재.

그는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를 들었다.

혹시라도 소리를 놓칠까 봐 싶어 창문까지 열어 마이크를 내미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아들, 잠깐만.”

전상국은 전민재를 붙잡았다.

“화내지만 말고 이야기를 좀 하자.”

“됐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자세하게 설명해 줄게. 올라가서 대화하자.”

“됐다니까!”

전민재는 아버지의 손을 뿌리쳤다.

“아니, 내가 언제까지 이런 낙하산으로 살아야 하는데!”

김태원 기자의 눈엔 열기가 차올랐다.

‘특종이다!’

그는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 * *

“어떻습니까?”

“아주 좋습니다.”

나는 동영상을 종료하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어요.”

내 칭찬에 김태원 기자는 흡족스레 미소를 지었다.

자료는 완벽했다.

단순히 미래 문자로 본 장면뿐만 아니라, 그 전후 상황까지 전부 녹음되고, 카메라에 생생하게 찍힌 덕분에 쓸 만한 가치가 충분했으니까.

“그나저나 의원님은 도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둘의 대화가 그렇게 이뤄지리라는 걸.”

당연히 궁금해 할 수밖에 없다.

의심받지 않기 위해 적당히 둘러댔다.

“저희 의원실 직원 중에 하나가 전상국과 가까운 곳에 살거든요. 이웃들을 통해 들었는데, 종종 주차장이나 집 앞 및 엘리베이터에서 싸우는 게 보였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렇습니까?”

“네. 집 앞이나 엘리베이터는 대화가 길지도 않고, 또 발견될 위험성이 있으니 그나마 주차장이 가장 나을 거라고 판단한 거고요.”

“하긴, 그런 쪽에서는 제가 들킬 수밖에 없는데, 그러면 또 대화가 끊길 테니까요.”

그는 감탄사를 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의원님이십니다.”

“아닙니다. 기자님이 있으신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죠.”

다른 기자들이었다면, 2주간 버티기는커녕, 사흘도 버티지 못하고 접었을 테니까.

매일 같이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고, 주차장에서 하루 종일 잠복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 익히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태원 기자는 부끄럽다는 듯 목을 쓸었다.

“자료는 오늘 내로 복사해서 전송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보여드린 게 원본이라서요.”

“예, 감사합니다. 천천히 주셔도 돼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예정대로 할 겁니다.”

나는 차분하게 설명했다.

“기자님은 보도 준비를 해주세요. 그리고 언론으로 뿌릴 모든 준비가 된 시점에 제가 전민재를 만날 겁니다.”

“누굴 보내실 겁니까? 아니면, 직접 만나실 계획이십니까?”

“제가 직접 갈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상국의 아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진심을 보여 줘야 할 터.

어차피 전상국과는 전쟁 중이기에 실패해서 그가 알게 되더라도 불이익은 없기도 하고.

“어떤 걸로 회유하실 생각이십니까?”

기자는 고심된다는 듯 턱을 쓸어 만졌다.

“저도 이것저것 생각해 봤는데, 도저히 떠오르는 게 없더라고요.”

“간절히 원하는 걸 쥐여 줘야죠.”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전상국이 주지 못하는 그걸 줄 생각입니다.”

* * *

대전의 한 아파트.

삐빅-.

주차를 마치고 차문을 잠그는 전민재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민재 씨.”

나를 발견한 그는 짙은 경계심을 드러냈다.

“누구시죠?”

“종로구 국회의원 최지훈이라고 합니다.”

“……!”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까지 무슨 일로 찾아온 겁니까? 또 아버지 일이에요?”

그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아버지와 싸웠으면, 아버지와 해결을 봐야지. 대체 왜 나까지 걸고넘어지는 겁니까?”

전민재는 욱했는지, 주먹까지 불끈 쥐었다.

“지금 당신 때문에 내가 회사에서 제대로 일도 못 하고 있는 건 알고 있습니까?”

“그래서 찾아왔습니다. 민재 씨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대화는 무슨 대화?”

그는 짜증을 내며 나를 지나쳐 갔다.

“얼른 돌아가세요. 외부인 신고해서 쫓아내기 전에.”

나는 멈춰선 채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민재 씨가 원하는 걸 드릴 수 있습니다.”

전민재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더니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외면하지 않고 멈춰 섰다는 건, 분명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일 터.

“정치를 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뭐요?”

순간, 그의 목소리에서 삑사리가 났다.

그만큼 당황했다는 뜻이지.

“여기서 말씀드리긴 주제가 좀 민감하니, 자리를 옮기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

전민재는 잠깐 망설이더니.

슥 고갯짓을 하며 아파트 건물 안으로 향했다.

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 * *

침묵 끝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장소는 아파트의 옥상.

다른 이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CCTV 또한 설치되지 않았다.

“어디 들어나 봅시다.”

그는 따지려는 듯 허리에 손을 얹고 있었다.

“내게 바라는 게 뭡니까?”

“이번 특채에 관련해서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내가 미쳤어요?”

전민재는 코웃음을 쳤다.

“내 발목 내가 잡는 일을 내가 할 것 같습니까?”

“예.”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이대로 살 생각은 없으시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솔직하게 말해서 이번엔 제가 당했습니다. 민재 씨의 특채에 대해 알고 있는 면접관들의 마음을 잡지 못했어요. 제 패배로 끝날 겁니다.”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본인이 승리한 줄 알겠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닙니다.”

나는 차분하게.

그러나 위협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어차피 코레일에 더 이상 다니시긴 힘드시잖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 특채에 비리가 없었다고 밝혀지겠지만.

회사 직원들이 바보도 아니고, 그가 낙하산이란 걸 모를 리가 없다.

영어 특채이니, 당장 실무만 해봐도 나올 테니까.

그러면 결국 코레일은 퇴사할 수밖에 없을 터.

“다른 데로 이직하실 텐데, 어지간한 곳은 가지 않으실 테고. 또 대기업 아니면 공기업이겠죠? 공공기관일 수도 있고요.”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저는 끝까지 따라갈 겁니다. 전민재 씨가 어떤 직장을 가든 파헤칠 거고, 비리가 있다면, 또다시 밝힐 겁니다.”

까놓고 말해서, 그의 능력으로 정식적으로 채용되는 건 쉽지 않다.

할 수 있었다면, 전상국 대표가 손쓰기 전에 진즉 취업을 했겠지.

꿀꺽.

아니나 다를까, 전민재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평생 따라다닐 겁니다. 저는 정치인으로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또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제 직업이고요.”

슬슬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실제로 전민재는 정치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다.

본인의 발언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었고.

대학의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한 것부터 알 수 있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정치권에서 활동한 아버지를 갖고 있기에, 얼마나 권력이 화려한 것인지는 나 못지않게 잘 알고 있을 터.

본인의 마음 깊이 내재되어 있는 그 열망을 톡톡 건드려주면 된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뭘 돕는다는 말입니까?”

“정치하시죠.”

“……뭐라고요?”

“제 손을 잡으시면, 민국당으로 모시도록 하죠.”

“무슨 말도 안 되는…….”

본인의 발언과 달리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고민된다는 뜻이겠지.

“어차피 기업은 다니기 힘들 거고. 그렇다고 전상국 대표님이 입당시켜 주진 않을 거고. 정치를 하고 싶으면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잖습니까?”

나는 그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단순히 입당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는 내 가슴팍을 내밀어 박혀있는 금배지를 그에게 각인시켰다.

“다음 총선에서 공천해드리죠.”

“……!”

순간, 그의 동공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국회의원이 되시는 겁니다. 아무 지역구나 드리는 게 아닙니다. 정말 좋은 지역구로, 저희 민국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는 알짜배기 지역구로 드리죠.”

전민재는 깊이 고심하나 싶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제가 어떻게 아버지를 배신하겠습니까? 그럴 순 없죠.”

“전상국 대표님은 이거 한 번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무려 여당의 당대표님이십니다. 물론, 타격은 있겠죠. 아들이니까. 허나, 천하의 전상국 대표님이 이런 일 하나로 무너지시겠습니까?”

실제로 그렇다.

쓰라린 상처가 되긴 하겠지만, 버틸 수는 있을 터.

전민재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따졌다.

“나한테 불이익이 오면 어떡합니까? 낙하산이라고 국민들이 분명 부정적으로 볼 텐데…….”

반항하는 말이었지만, 오히려 이건 긍정의 신호였다.

이에 대해 따지기 시작한다는 건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아니죠.”

나는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정의를 세우는 걸로 제가 포장을 할 겁니다.”

그게 기술이다.

“낙하산으로 들어갔지만, 차마 양심에 찔려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기에 솔직하게 고백하려 한다. 현대 사회는 잘못되었다. 이것을 바로잡기 위해 내가 나섰다. 이런 식으로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는데…….”

“없더라도 말하면 그것이 현실이 됩니다.”

그게 바로 정치니까.

내 전문 분야기도 하고.

그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고민을 좀 해봐도 되겠습니까? 며칠만 시간을 주십시오.”

“아니요. 안 됩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해 주셔야합니다.”

한 번 당해 놓고 또 당하면 병신이지.

“하나 말씀드리자면.”

휴대폰을 꺼내 김태원 기자가 보낸 기사의 미리보기본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지금 거절하시면, 이 기사가 인터넷에 바로 뿌려질 겁니다. 참고하시죠.”

전민재의 동공이 세차게 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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