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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식별 (4) (152/200)


피아식별 (4)
2022.04.01.


지이잉-.

전화가 걸려오자마자 바로 수신 버튼을 눌렀다.

“어떻게 됐어?”

-집에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마돈나의 대답에 이를 질끈 물었다.

“안에 사람 없어?”

-안 그래도 마침 맞은편 집에서 사람이 나오길래 물어봤는데, 오늘 아침에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부부가 집을 나서는 걸 봤다고 합니다.

“……제기랄.”

직접 찾아왔기에 예상은 했지만, 혹시 몰라서 마돈나를 대전으로 보내 보았으나, 역시나였다.

-회사는 어떻게 됐습니까?

“오늘은 연차로 처리됐고, 내일부터는 휴직계로 넘어간다네.”

-……이거 아무래도 저희가 한 발 늦은 것 같습니다.

당했다.

전상국 이 자식에게 한 방 먹었다.

“먼저 같은 최 씨라며 혈육 어쩌고 이야기하더니…….”

이런 식으로 엿을 먹일 줄이야.

“일단 지현 씨 서울로 올라와.”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어도 분이 풀리지 않아 벽을 쾅 내리쳤다.

정치인도 아니고 평범한 시민한테 이런 식으로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거사를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에.

뒤통수가 얼얼했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나는 곧장 한중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최 의원.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잠깐 통화 괜찮으십니까?”

-안 그래도 내가 전화하려 했는데 마침 잘됐네. 말했던 사업체 관련해서 오늘쯤에 마무리 들어간다고 했잖아?

“예.”

-지금 확인해보니까 사업자 명의가 바뀌어 있더라고. 다른 사람이 인수해서 있던 벌금도 내버렸어.

한중현 장관이 힘을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지.

아마도 소규모 회사였던지라, 전상국 의원 측에서 보낸 사람에게 적지 않은 돈을 받고 회사를 넘겨버린 모양.

즉, 내가 그에게 부탁했던 의미 자체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따로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물어보려고 했거든.

“괜찮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그래?

그는 심려스런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다.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긴 건가?

“아닙니다.”

-그러면 혹시 내 아들 건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약속은 변함없습니다.”

-아, 그런가?

한중현 장관은 안도감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맙네. 다음에 내가 도울 일 있으면 말하게나.

“알겠습니다. 제가 또 연락 드리죠.”

-들어가게나.

다행히 한중현 장관의 카드는 소모되지 않았다.

만에 하나, 그가 도와준 뒤에 최유동이 뒤통수를 쳤다면, 전상국을 놓치는 것도 모자라, 어렵게 구했던 한중현의 비리 카드도 잃어버리는 셈이었으니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지이잉-.

다시금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은 오성복 검사.

“네, 최지훈입니다.”

-조카. 지금 강선우 보좌관한테 들었는데 증인이 도망간 게 맞아?

“예. 해외로 떴습니다.”

-이런 망할…….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더 확인했어야 되는데.”

오성복 검사가 걱정을 했던 상황이 그대로 벌어져 버렸으니까.

-아니야.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기보단 우선 벌어진 상황부터 수습해야지.

그는 냉정하게 감정을 가라앉혔다.

-우선 녹음본은 어떻게 됐어?

최유동이 우리와 함께한다고 약속한 직후, 마돈나가 직접 대전까지 내려가서 받아낸 증언들.

의원실에서 직원들과 함께 자료 정리를 하고 오성복 검사와 수사 방향을 잡기 위해 녹음한 자료.

“그거라면 남아 있습니다.”

-일단 그게 있으니 최소한의 명목 갖추기는 될 거야. 그 외에는?

“추가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압수 수색 결과는 어떻습니까?”

-이쪽도 마찬가지야. 코레일 측에서 미리 예상하고 자료를 전부 지워 놨어.

오성복 검사는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개X끼들. 지금 남은 거라고는 면접 결과로 공시했던 자료들뿐이라니까?

“그거에 대해서 세부 평가 내역은 있습니까?”

-있기야 있지. 그런데 문서로 보는 시험이 아니라, 전부 면접이었던지라, 남아있는 게 없어서 증명할 수 없으니까 문제지.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푹 새어나왔다.

“그걸로 당숙이 움직였다는 것 정도는…….”

-딱 그 정도지.

“죄송합니다.”

-아니야. 괜찮다니까.

그는 가볍게 웃으며 나를 위로했다.

-여하튼 이쪽은 내가 알아서 수습해 볼 테니까 걱정 말고. 조카는 결과를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할지 준비해 둬. 최대한 파장이 적어야만 하니까.

“알겠습니다. 또 연락드릴게요.”

-그래.

전화를 끊자, 피로감이 몰려왔다.

혈육이라고 해서 믿는 게 아니었는데.

평범한 시민이라고 해서 이런 식으로 뒤통수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걸 잊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려나.

우선, 전상국 측에서 움직이는 걸 보면…….

한창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그때.

지잉지잉-.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짧게 두 번.

꿀꺽.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쥐어졌다.

미래 문자가 올 때 특유의 진동.

다급하게 집무실의 문을 닫고 휴대폰을 꺼냈다.

-보낸 이: 26

-동영상.

역시!

손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오래 끌 것 없이 서둘러 동영상을 재생했다.

-……한 게 아니라고!

낯선 목소리.

어둠이 걷히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배경은 한 주차장.

-아니, 내가 언제까지 이런 낙하산으로 살아야 하는데!

처음 보는 얼굴이다.

허나, 어디서 본 듯 꽤나 익숙한 느낌.

-언제까지 내가 아니라 아빠 아들로 살아야 되는 거야? 나도 내 삶이 있다고.

-아들. 이번 일만 처리가 되면 진짜 다 정리되는 거야. 이제 조금만 더 참고…….

맞은편에 있던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직감이 왔다.

전상국 당대표.

그리고 그에게 항변하고 있는 남성은 그의 아들 전민재였다.

-아빠가 정치인이라는 거 회사 사람들 다 알았다고. 내가 종로구청에서도 들켜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아들. 우리 집에 들어가서 이야기할까?

전상국은 전민재를 끌고 엘리베이터로 향하려 했다.

그러나 전민재는 그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내가 낙하산인 것도 법적으로 증명만 안 됐지, 다들 눈치 챘다고. 이젠 이 생활도 지긋지긋해!

-민재야, 일단 진정하고…….

-나 대전까지 이사 갔어. 아빠가 문제될 수 있다고 해서 내가 살고 있던 모든 걸 포기하고 지방으로 갔다고. 그런데 이제 또 자리 잡으려고 하니까 다른 곳으로 옮겨가라고?

-마지막이야. 정말 마지막.

전민재는 답답함에 한숨을 푹 내쉬며 간절하게 되물었다.

-나 그냥 아빠처럼 정치하면 안 돼?

-그건 안 된다니까.

전상국은 단호하게 잘라내며 덧붙였다.

-차라리 사업을 해. 아빠가 인맥으로 다 엮어준다니까? 사업체 하나 차리면 최일그룹 같은 대기업 연결시켜 준다고. 그걸로 돈은 충분히 벌 거야.

-내가 돈 때문에 이래? 나도 꿈이 있다고. 어렸을 때부터 아빠 보고 정치가 하고 싶었다고. 그런데 그게 안 돼서 회사라도 다니겠다는데, 이제는 다 그만두고 지방에서 요양이나 하라는 게 말이 되냐고!

-이 자식이…….

전상국은 참지 못하겠는지 얼굴을 붉혔다.

-넌 회사 다니는 게 얼마나 편한지도 모르고!

전상국의 분노를 끝으로 동영상은 종료되었다.

“……허어.”

나도 모르게 팔에 닭살이 돋았다.

저 집안에 이런 사정이 있었을 줄이야.

반팔도 모자라 반바지까지 입고 있는 걸 보면, 한여름에 벌어진 일이다.

즉, 미래에 벌어질 예정이라는 뜻.

게다가 집으로 올라가자는 걸 보면, 분명 살고 있는 근처라는 건데…….

전상국은 종로에서 총선 출마를 위해 몇 년간 이곳으로 주소지를 등록해 뒀었으니까.

잘 찾아보면 어딘지 알 수 있을 터.

이거 잘하면 활로가 생길 수 있을지도.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팩트체커 김태원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지훈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만났으면 합니다. 예. 제가 가겠습니다.”

* * *

“집안에 그런 사정이 있었다고요?”

이야기를 들은 김태원 기자 또한, 눈이 휘둥그레졌다.

물론, 미래 문자에 대해 설명할 수 없기에 앞으로 벌어질 거라고 이야기한 건 아니고.

전상국과 그의 아들 사이에 이러한 갈등이 있었다는 걸 설명했다.

“어떻게 알게 되신 겁니까?”

“저희 의원실 직원 중에 전민재의 오랜 동창의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

적당히 둘러댔다.

이것이 팩트라면, 출처는 중요치 않으니까.

“아아, 그렇군요.”

그는 턱을 매만지며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전상국의 아들이 그렇게 부정적인 태도라면, 차라리 저희 측에서 전민재에게 접촉해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김태원 기자는 눈을 빛내며 덧붙였다.

“저희 회사 첩보에 의하면, 단순히 부자(父子) 외에도 모자(母子)에게도 불화가 있다고 하거든요.”

“그건 안 됩니다.”

딱 잘라 거절했다.

“만에 하나 그쪽에서 저희의 손을 잡는다면, 완벽하게 깨부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하긴, 리스크가 너무 크군요.”

“예. 먼저 증거를 따내야 합니다.”

나는 그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간혹 전민재가 아버지 앞에서는 무방비 상태로 ‘낙하산’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까?”

김태원 기자는 눈썹을 들썩이며 물었다.

“그러면 제가 한 번 붙어서 조사해 볼까요?”

“예. 그렇게 해서 증거를 따내고 난 뒤에 접선해 보면 괜찮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러면…….”

“맞습니다. 보도 자료를 준비해 놓고 터뜨리기 직전에 접촉을 하는 겁니다.”

팩트체커에서는 김태원이 창립 멤버인 만큼, 데스크에서 막힐 염려는 없을 터.

만약 전민재가 우리에게 협조한다면, 보도를 뒤로 미루면 되고.

그가 손을 잡지 않는다면 바로 보도해버리면 되니까.

다른 거라면 몰라도, 본인 입으로 ‘낙하산’이라고 말하면 그건 확실하다고 볼 수 있을 터.

법적 증거로 쓰일 수 없을지는 몰라도, 국민들의 여론을 돌리기엔 충분할 테지.

“문제는 시간입니다.”

나는 냉정하게 머리를 식혔다.

“오성복 검사가 사건을 최대한 뒤로 미룰 테지만, 이미 국민들에게도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탓에 이런 사건은 마무리할 수 있는 시효가 정해져 있어서요.”

김태원 기자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사건이 정리되기 전에 그 증거를 손에 넣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지는 나 또한 알 수 없다.

미래 문자로 본 동영상의 장면이 정확히 언제 벌어질지는 알 수 없으니까.

“일단 저는 내일부터 바로 전민재에게 붙어 보겠습니다. 다른 기자들까지 동원해서 24시간 감시하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아직 희망은 남아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9회 말 투 아웃에도 역전 만루 홈런은 터지는 법이니까.

전상국.

네가 확실할 때 터뜨리라고 했지?

그 조언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조금만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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