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식별 (3)
(151/200)
피아식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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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식별 (3)
2022.03.31.
쾅쾅.
오후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최유동은 잠에서 깨어 나가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유동 씨.”
눈앞에 있는 인물은 정장을 입은 김한오.
조금 전에 통화했던 전상국 대한당 대표의 수석 보좌관이었다.
“……아.”
최유동은 탄성을 내며 움찔했다.
“제가 만나기 힘들 것 같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만나 뵙고 이야기하는 게 그리 어려운 건 아니잖아요.”
“이 상황에서 만나 봤자 좋은 이야기가 나오진 않을 거 아닙니까?”
그는 미간을 구기며 까칠한 목소리를 냈다.
“게다가 이 늦은 시간에 집까지 찾아와서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사람 무섭게…….”
“위협하지 않으려고 좋게 이야기하자는 겁니다.”
김한오 보좌관은 어깨를 넓히며 말했다.
“잠깐 이야기만 하시죠. 이걸로 유동 씨에게 피해 가는 건 없을 겁니다.”
“…….”
그가 잠깐 침묵하고 있던 찰나.
“들어오시라 그래.”
뒤에서 최유동의 아내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실랑이를 벌여 봤자 좋을 게 없다고 판단했으니까.
적당히 이야기만 들어 주고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불청객을 집안으로 들였다.
최유동 부부와 김한오 보좌관은 식탁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고 앉았다.
“차 한 잔이라도 드려.”
“응.”
그의 아내가 차를 타 온 뒤에야 김한오 보좌관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전상국 대표님께서 직접 오시고 싶어하셨지만, 워낙 세간의 이목이 많이 쏠려 있는지라…….”
“이해합니다.”
최유동은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았다.
“본론부터 이야기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내일부터 또 정신없어질 거라…….”
단순히 출근하는 게 아니라, 내부는 물론이고 외부의 경찰까지 온갖 부서에 불려 다니며 조사를 받아야 할 테니까.
“예. 그러면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한오 보좌관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눈을 빛냈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당시 면접에서도 그저 평소처럼 평가했다고 하시면 되는 겁니다.”
그는 테이블 위로 몸을 기울였다.
“특별한 일은 없었던 겁니다. 압력을 받았다거나 특정 인물을 가리키는 것도요.”
“있었던 일인데 어떻게 없던 거라고 합니까?”
“어차피 블라인드 채용이라서 누가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하시는 겁니다.”
“전 알고 있었습니다. 파란색 물방울무늬 넥타이. 혹시나 겹칠 수도 있기에 연하늘 행커치프까지 전달해주셨고요.”
“그걸 아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기록으로 남은 건 하나도 없잖아요?”
“그렇지만…….”
“최유동 씨만 기억하는 거 아닙니까?”
김한오 보좌관은 눈을 부릅뜨며 압박했다.
“코레일 사장은 물론이고 다른 면접관도 들은 적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또한 눈을 감는 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잖습니까?”
“기만이요…….”
그는 차분하게 말을 되뇌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사실, 그건 유동 씨도 피차일반 아닙니까?”
“뭐라고요?”
최유동은 발끈했다.
“제가 양심 고백하는 겁니다.”
“어쨌든 양심 고백하기 전까지는 숨기고 있던 거잖아요. 그 부조리에 가담했고.”
“그건……!”
“최유동 씨.”
김한오 보좌관은 슬슬 그를 옥죄어 들어갔다.
“압력을 받았건 간에 어쨌든 부조리를 저지른 건 사실이잖습니까? 경찰에선 그걸 문제 삼을 겁니다.”
“…….”
“그게 싫으셨으면 처음부터 꿋꿋하게 제대로 평가하셨어야죠. 윗선에서 지시한 걸 그대로 따라놓고 시간이 흐르고 나니, 불쾌했다. 당시에 마음이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이 따랐다. 이게 말이 될 것 같습니까?”
내부 고발자에 대해서는 보호가 되는 게 사실이었다.
허나, 최유동 같은 일반인들이 법에 대해 잘 알 리가 없었고, 김한오 보좌관은 이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이게 먹혀들어가 최유동에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위에서 이쁨받기 위해 하라는 대로 다 해놓고. 똑같이 똥물에 발 담가 놓고 혼자 깨끗한 척, 고고한 척 어디 있습니까? 다른 사원들이 볼 때 얼마나 아니꼽겠어요? 코레일 계속 다니실 수 있겠어요?”
“안 그래도 그만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최지훈 의원이 다른 기업이라도 소개해 주려고 했나 보죠?”
최유동은 대답하지 않았다.
허나, 김한오 보좌관은 그게 곧 긍정임을 깨달았다.
“어차피 다른 곳으로 넘어가더라도 처벌은 피하지 못할 겁니다. 양심 고백과 별개로 채용 비리에 가담한 건 사실이니까요.”
“…….”
“최유동 씨.”
“예.”
“옳은 일 하면, 뭐 합니까? 그놈들이 돈을 주나요, 명예를 주나요?”
그는 이를 악물었다.
“내부 고발자의 말로는 뻔히 아시잖습니까? 살짝 알아보니, 주변에서 많이 보신 것 같던데.”
김한오 보좌관은 채찍질을 끝내고 당근을 내밀었다.
“그러지 말고 코레일에 쭉 남아 계시죠.”
“…….”
“여기 남아서 고속 승진하시는 겁니다. 굴러들어온 복 차지 말고 튼튼한 라인 하나 잡으시는 겁니다.”
최유동의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안 그래도 최근 아내의 회사가 힘들어서 본인이 가정의 금전만큼은 책임졌어야 하니까.
“명예만 드리는 건 또 아닙니다.”
김한오 보좌관은 눈썹을 들썩이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안 그래도 요즘 사모님 회사도 힘들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제가 좋은 기업가 한 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네?”
“인수 합병 전문 사업을 하시는 분인데…… 좋은 사업 굳이 접을 필요 있나요?”
김한오 보좌관은 당근에 꿀까지 발라 내밀었다.
“그분이 회사를 인수하실 겁니다. 회사 가치보다 훨씬 더 높게 쳐드리죠. 평생 먹고살 돈 버시는 겁니다. 뭐 하러 새빠지게 고생하십니까?”
꿀꺽.
최유동 부부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단순히 코레일에 남는 게 아니라.
고속 승진에다가 회사 인수까지.
즉 돈과 명예를 한 번에 쥐여 주겠다는 뜻이다.
“최지훈 그놈과 손잡는다고 뭘 얻겠습니까? 정의? 그게 밥 먹여줍니까? 아니거든요. 당장 내 삶이 있어야 사회를 지키는 거죠.”
“…….”
“사모님께서 임신 9주차라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크흠흠.”
부정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좋은 환경 물려줘야죠. 안 그렇습니까?”
최유동의 동공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의 아내는 슬며시 식탁 밑으로 남편의 팔을 붙잡았다.
무언의 뜻이었다.
한창 고민이 깊어지던 찰나.
지이잉-.
최유동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임지현 보좌관.
휴대폰 화면을 본 김한오 보좌관은 테이블 위로 엎어질 듯 심히 몸을 기울였다.
“최유동 씨.”
“네?”
“받지 마세요.”
그는 씨익 웃으며 품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기업 인수와는 별개로 이건 성의 표시하는 겁니다.”
* * *
“안 받습니다.”
마돈나의 목소리에선 옅은 떨림이 느껴졌다.
“몇 통이나 했어?”
“어제 저녁부터 10통이 넘게 걸었는데 전혀 안 받습니다.”
그녀의 전화만 받지 않는 게 아니었다.
내가 거는 것은 물론이고 사무실 전화까지도 받지 않는 상태.
“코레일엔 연락해 봤어?”
“네. 아예 사무실에 출근을 안 했답니다. 아침에 갑자기 연락 와서 연차를 쓴다고 했다네요.”
“이런 제기랄…….”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였다.
“처음엔 부재중인 것 같더니, 이젠 걸자마자 바로 넘어가는 걸 보면…….”
차단하거나 해외로 나가거나.
둘 중 하나다.
“최유동 씨에게 특별한 연락이라거나 수상한 움직임 없었어?”
“제가 어제 오후 9시에도 한 번 통화를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특별한 건 없었는데…….”
“안 되겠어.”
나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전 갈 준비해. 직접 가 보자고.”
“알겠습니다.”
서둘러 외투를 챙기고 채비를 마쳤다.
“지현 씨도 다 챙겼어?”
“예. 바로 가시죠.”
“그래.”
그녀와 함께 의원실을 나서려는데.
벌컥 문이 열리며 반갑지 않은 인물이 들어왔다.
“어이, 최 의원. 오랜만이네.”
전상국 당 대표.
그는 이죽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어딜 그리 바삐 가시나?”
“출장이 있습니다.”
적당히 대꾸하며 무시하려 했다.
그를 지나쳐 밖으로 향하는데.
“대전으로 가나?”
전상국의 말이 내 발목을 붙잡았다.
“가도 소용없을 텐데.”
그는 비웃는 듯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최유동 씨는 이미 출국했거든. 지금쯤 태평양 공해를 지나고 있으려나?”
“……뭐요?”
녀석의 얼굴을 보아하니, 페이크를 치는 건 아니었다.
“최유동 씨 부부는 앞으로 한 달 간 여행 다녀올 거야.”
그는 웃음기를 감출 생각이 없는지 연신 히죽거리며 나를 바라봤다.
“왜 그랬어, 최 의원?”
전상국 당 대표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게 다가왔다.
“적당한 선에서 끝났으면 좋았잖아. 안 그래?”
그는 클클거리며 내 어깨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그러니까 덤비려면 제대로 준비하고 덤볐어야지. 이렇게 어설프게 준비하면 쓰나.”
“…….”
“솔직히 이렇게 당하면 내가 자존심 상해. 이런 초짜한테 종로를 빼앗겼다는 게…… 어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다니까.”
전상국은 빤히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노려봤다.
“그러니까 어디 한 번 열심히 발버둥 쳐 봐. 이대로 당하면 재미없잖아. 그치?”
그는 툭 내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치며 말을 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 뛴다더니, 지금 딱 그 꼴이야. 안 그래?”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는 배를 잡고 크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종로에서 한 번 이기니까 계속 이길 줄 알았나 봐. 나 전상국이야, 이 자식아.”
전상국은 주머니에 손을 꽂고 멈춰 섰다.
“내가 충고 하나 하지.”
그는 웃음을 뚝 그치고 말했다.
“서민들에겐 정의보다 현실이야. 뜬구름 잡는 정의 따위 아무리 말해봤자 와 닿지가 않거든. 100명 중에 한두 명이나 사명감을 가지면 많이 가진 거 아니겠어?”
전상국 당대표는 실소를 터뜨렸다.
“본인 주머니 채우기 위해서는 온갖 불의를 감수하는 게 서민이라고. 그러니까 그들의 표를 받아서 먹고 사는 우리 정치인들이 떵떵거리며 배에 기름칠하고 사는 거야. 우리가 레스토랑에서 풀코스를 시켜먹는 동안, 그들에게 빵 부스러기 하나 주면 그거 서로 먹으려고 안달 나서 싸운다고.”
그는 방긋 웃으며 눈썹을 들썩였다.
“참고해. 가난하면 가난할수록 더 비열해지는 법이거든. 유혹에 넘어가기 쉽고.”
“…….”
“알아둬.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정치 계속 하려면 이러한 서민들의 심리를 알아야 되거든. 이거 모르면 힘들 거야. 서민은 서민으로 남는 이유가 있어.”
녀석은 되도 않는 개소리를 씨불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최 의원.”
주먹을 꽉 쥐고 녀석을 살벌하게 쳐다봤다.
“어이쿠 무서워라.”
그는 과장된 몸짓을 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알았으면 확실할 때만 덤벼. 안 그러면 역으로 네가 지옥 갈 테니까.”
전상국은 조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이번에 일 크게 벌여놓은 건 알아서 한 번 감당해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