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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식별 (2) (150/200)

피아식별 (2)2022.03.30.

“오랜만입니다, 당숙.” “어, 조카 잘 지냈어?” “그럼요.” 간만에 오성복 검사와 함께 자리를 마련했다. 만난 장소는 나의 집이 아닌, 마돈나의 집. 국회의원이 된 만큼, 괜히 검사와 만나며 집에 드나드는 것이 다른 이들의 눈에 띄어서 좋을 건 없으니까. 이럴 때를 대비해 마돈나의 집을 같은 아파트의 아래층에 구해 둔 것이다. 그는 마돈나와 만나 당당하게 엘리베이터를 통해 들어가고. 나는 CCTV가 없는 계단을 이용해 그녀의 집에 들어오고. 이 정도만 해도 기본적인 보안은 충분하지. “이야기는 임지현 보좌관 통해서 대충 들었어. 코레일 관련 특채 비리라고?” “예, 맞습니다. 지현 씨.” 마돈나는 기다렸다는 듯 정리한 파일을 테이블 위로 쫙 펼쳐 보였다. “최유동 씨에게 직접 들은 내용입니다. 간단히 설명해드릴게요.” 그녀는 첫 번째 보고서를 가리키며 말을 시작했다. “우선, 면접 하루 전날에 코레일 사장에게 직접 호출이 왔다고 합니다. 따로 휴대폰 기록이 남지 않게 사내 인터폰을 통해서 왔고요.” 휴대폰 대신 인터폰의 기록은 남는다. 허나, 인터폰은 시간이 흐르면 밀려서 기록이 사라지는 만큼, 오히려 비서를 보내는 것보다 그 편이 더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 “비서들이 식사하는 시간에 사장실에 들어갔던지라, 따로 목격했던 인물은 없다고 합니다.” 역시나. “그곳에서 청탁이 이뤄진 건가?” “예, 맞습니다. 사장실에서 약 15분간 머물렀다고 합니다. 특별한 대화 내용은 없었고, 면접 당일에 파란색 물방울무늬 넥타이를 입고 온 친구를 채용할 수 있도록요.” 이러니 블라인드 채용이 무용지물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지. 이력서에 이름이 나오지 않으면 뭐하나. 이런 식으로 미리 다 짜고 치면 끝인 걸. “다른 면접관들도 그런 식으로 다 호출받은 거지?” 오성복 검사의 물음에 마돈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부분까지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뒤늦게 체크한 결과, 역시 사내 인터폰 기록은 한 달이면 밀려서 삭제되는지라, 따로 체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거 압수수색해서 기록 뒤져보면 나오지 않겠어?” “코레일을 압수수색하긴 힘들 겁니다. 아무리 의원님께서 밀어주신다고 해도, 코레일 측에서 미리 알게 되면 분명 대응을 할 테고요.” 급할 땐 사내 인프라망도 조작하는 판국에 인터폰 통신 기록 정도 삭제하는 건 일도 아닐 테지. “그러면 코레일 사장과 면접관이 만나서 청탁을 받았다는 직접 증거는 없고…… 당연히 녹음도 안 했겠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면접관의 증언뿐인데…….” 오성복 검사는 턱을 매만졌다. “쉽지 않은데?” 나는 채용 점수 결과표를 가리키며 말했다. “면접에서 1등과 2등의 점수 차이가 너무 큽니다. 이걸로도 시민들은 충분히 설득할 수 있을 겁니다. 기본 스펙에서 격차가 벌어지거든요.” “국민을 설득하긴 어렵지 않지. 다만, 법적으로 갔을 때의 문제를 따지자는 거야.” 그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전상국 대표도 분명 거세게 반항할 거야. 다른 면접관 두 명도 그런 일 없다고 잡아뗄 거고, 당연히 코레일 사장도 그럴 테고.” “…….” “소송전으로 가면, 굉장히 장기전이 될 거야. 최유동 씨는 그동안 계속 재직을 해야 하잖아.” 소송에서 면접관으로 있으려면 그래야만 한다. “공기업의 특성상 사장까지 적으로 돌린 채로 내부에서 찍혀버리면 꽤 힘들거든. 그걸 버틸 수 있을까 싶은데.” “다른 일도 같이 엮여 있어서 괜찮을 겁니다.” “하나 믿고 가기엔 너무 빡세. 중간에 변절하기라도 하면 우리만 X되는 거야.” 오성복 검사는 냉정하게 상황을 살폈다. “실제 면접을 봤던 당시에 영상을 찍은 것도 아니고…… 다른 두 면접관들은 전상국 아들 전민재가 실제로 잘했다고 할 거 아니야?” “법원에서 그 실력을 증명하라고 할 겁니다. 당연히 전민재는 그걸 못 할 테고요.” “어차피 공론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잖아?” “그렇죠.” “그러면 변호사가 분명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주목을 받아서 긴장한 거다.’라고 포장할 거야. 근데 이게 또 법원에서 먹히는 사유거든.” 생각보다 일이 쉽지 않다. “그래도 증거는 충분합니다. 서류 평가 부분 및 면접 평가에서 점수 차이가 너무나도 극심하게 나요.” “그건 당연히 될 수 있지. 문제 삼을 수 있어. 그런데 그걸로 전상국을 끌어내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별개거든.” 이마를 꾹 누르는 내 얼굴을 본 오성복 검사는 너무 낙담하지 말라는 듯 내 어깨를 두드렸다. “물론, 이건 정말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거야. 꼭 이렇게 되리라는 법은 없어.” “그래도 어느 정도 위험성은 있는 거니까요.” 채용 비리가 확실하다고는 하나. 전상국 대표를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확실한 증인이 필요하니까. “어느 정도 갈무리해서 내가 준비는 해 볼게.” “예, 감사해요.” “그전에 조카.” 그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하나만 묻자. 그 면접관은 확실하게 증언하기로 약속한 거지?” “예. 이번에 그 집안에 있는 문제를 제가 해결해 주기로 해서 뺄 수가 없을 겁니다. 저를 배신하면 집안에서 잡고 있던 사업이 무너져버리거든요.” “그러면 다행이고.” 오성복 검사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걱정돼서 그래. 만에 하나 수사가 길어지고 최유동 면접관이 압박을 심하게 받으면,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거든. 내가 검사 짬밥 오래 먹으면서 그런 증인들을 많이 봤어. 너무 부담되어서 도망가 버리고, 증언을 포기하고. 여차하면 오히려 네가 역공을 당할 수 있으니까.” 상황 상 물증이 나올 수는 없다고는 하나. 확실한 증거 없이, 증인 하나만 안고서 시작하려면 어쩔 수 없는 위험부담이다. 오성복 검사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게다가 만약에 전민재가 사표를 쓰고 그만둬버리면, 그것도 문제야.” 문제된 원인을 끌어내리면 해결되었다고 판단하는 국민들의 특성상, 당사자가 자리에서 내려와 버리면 자연스레 관심이 꺼지게 된다. 그러면 결국 제대로 처벌도 받지 않고 조용히 종결되는 게 정치판이니까. “그래도 그건 방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법이 있어?” “이쪽에서 아예 선빵을 쳐버리려고요.” “어떻게 하려고?” “전상국을 진흙탕으로 끌어들일 겁니다.”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깨끗한 물에서만 놀던 녀석은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 * * -어, 조카. 나야. 며칠 지나지 않아 오성복 검사에게 연락이 왔다. -코레일 특채 비리 관련해서 오늘부터 정식으로 수사 들어갈 거야. 우선, 코레일 압수수색 영장부터 청구했다. 바로 네가 힘 좀 보태줘. “알겠습니다.” 예정했던 당일. 오성복에게 사인을 받은 직후, 나는 기자들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최지훈입니다.”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대한당의 전상국 당 대표님의 아들 전 모 씨가 코레일 채용 과정에서 상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촤르르르륵. 카메라 셔터음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희 의원실에서는 해당 건에 대한 자료를 검찰로 넘겼고, 서울중앙지검의 오성복 검사가 맡아 수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타다다다닥. 기자들의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해당 인물은 코레일에 들어가기 전, 종로구청에서 근무했는데 이때도 특채 비리. 즉 낙하산 의혹이 있었다는 내용을 접했습니다. 제가 종로구에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전상국 대표님께서 지역구를 벗어나자마자 전 모 씨는 사표를 냈고요.”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말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 감히 요청드립니다.” 서울시청에서 도망갔던 전민재가 또다시 사표를 내고 도피하는 걸 막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녀석들의 목덜미를 잡아야 한다. “전 모 씨께서 정말 낙하산 및 특채 비리에 관해 그 모든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면, 사표를 내거나 휴직계를 내시지 않으시기를 간곡히 요청합니다.” 이를 다시 말하면. 사표나 휴직계를 내거나 다른 지청으로 옮겨가면 잘못을 인정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찔리는 게 없다면, 당당히 수사에 응해주십시오.” 카메라를 또렷이 보며 말했다. “우선 저희 쪽에서 입수한 자료들에 대해 공개할 수 있는 내용들만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는…….” * * * “천하에 이런 나쁜 놈이 다 있어?” 전상국 당 대표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 새끼는 무슨 상도덕도 없어? 지역구 뺏은 것도 모자라, 이제 내 아들놈까지 건드리겠다?” 그는 이를 꽉 깨물며 고개를 돌렸다. “김 보좌관.” “예, 대표님.” “이 자식이 어떤 자료 들고 있는지 알아와.” “알겠습니다.” “서울중앙지검장한테 연락해서 왜 이런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아 봐.” “안 그래도 방금 전에 대표님 회의 중에 전화가 왔는데, 담당 검사가 윗선에 보고도 없이 제멋대로 수사를 진행시켰다고 합니다.” “어떤 자식인데?” “오성복 검사라고, 서울중앙지검에서 미친 불독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이젠 개X끼들까지 아주 쌍으로 말썽이네.” 전상국 대표는 이를 빠득 갈며 휘휘 손짓했다. “일단 나가 봐. 그 검사 놈이 어딜 쑤시고 있는지도 알아오고.” “알겠습니다.” 김한오 보좌관이 나가기 무섭게 전상국 당 대표는 휴대폰을 꺼내들어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채 두 번도 울리기 전에 응답했다. -예, 대표님! 긴장한 목소리. 수신인은 코레일 사장. “기사 봤지?” -네. 방금 확인했습니다. “문제없는 거 맞아? 잘 처리했다며.” -예. 증거는 없는데……. “증거도 없는데 이렇게 쑤시고 다녀?!” 전상국 대표는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무언가 하나 냄새라도 맡은 게 있다는 거 아냐?” -실은…… 아무래도 면접관 하나가 조금 이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저희 쪽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며칠 전에 최지훈 의원실의 보좌관과 접촉한 것 같습니다. “……이런 X발.” 전상국 대표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눈을 부릅떴다. “평범한 직원 아니야?” -맞습니다. 집안도 보잘 것 없고요. “근데 네가 왜 통제를 못 해?” -……죄송합니다.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더니. 문득 떠오른 생각에 손가락을 퉁겼다. “잠깐만. 최지훈 그놈이 줄 수 있는 게 기껏해야 내부 고발 후 잘리지 않고 안녕을 보장해주는 것 정도 아니야?” -그럴 겁니다. 이직이라는 카드가 있긴 하지만, 사실 저희 코레일 같은 공기업은 대기업보다 낫다는 소리를 들어서……. “단순히 안녕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승진에 돈까지 걸려 있다면?” -……예? “나이 먹고 정의나 찾으려는 사명감에 휩싸인 멍청이는 아닐 거 아니야?” 다시 말해 매수한다는 뜻이었다. “확실하게 말해. 그 면접관 말고 다른 면접관 두 명한테서 새어나간 거 없어?” -네. 없습니다. 그건 확실합니다. “증거도 없고?” -남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전상국 당 대표의 눈이 비열하게 휘어졌다. “최지훈 이 새끼 역으로 한 번 조져 보자고.” 그는 거칠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나한테 그 면접관 번호 넘겨줘 봐. 내가 직접 연락해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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