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식별 (1)2022.03.29.
“의원님. 정말 괜찮을까요?” 마돈나는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일주일. 최유동을 만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입을 다물기로 결정해버린 게 아닐까요?” “아직 몰라. 기다려보자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슬슬 불씨가 꺼지고 있다. 정치인에게 힘을 가늠하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국민들의 관심. 즉, 여론이다.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어야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데, 화재 속에서 모녀를 구한 응우옌에 대한 관심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완전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버리면, 최유동이 내 손을 잡는다고 해도 그의 아내가 엮인 회사를 도울 수는 없을 터. 더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 생각을 하기 무섭게.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 최유동. “지현 씨.” 마돈나에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자, 그녀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이내 활짝 웃어보였다. “흠흠.”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네, 최지훈입니다.” -안녕하세요, 의원님. 휴대폰 너머로는 살짝 떨리는 감정이 느껴져 왔다. -저 최유동이라고 합니다. 이전에 전민채 씨 코레일 면접 관련해서 이야기했던…….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이네요.” -예. 일찍 전화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고민이 깊어져서요. 그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제가 너무 늦은 게 아닐지요? “아닙니다. 더 늦었으면 위험할 뻔했지만, 오늘이라면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최유동은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아내와 정말 오래도록 이야기하며 함께 고민했습니다. 아내는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다 포기해버리려고 했으나, 오래도록 설득했고 그 결과, 의원님께 한 번 도움을 받아보려고 합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몇 년 간 어렵게 준비해 온 사업이신데, 이런 일로 급작스레 엎어버리기엔 너무 아쉽잖아요.” -맞습니다. 염치없지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사모님 회사 건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제가 뭘 하면 될까요? “저번에 말씀드렸던 게 전부입니다. 전상국의 아들, 전민재 씨의 면접 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숨김없이 사실대로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전부일까요? “예. 우선, 그 전에 정확히 전후 상황이 어땠는지 파악하기 위해 저희 보좌관 하나를 보낼 겁니다.” 마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외투를 챙겼다. “아시는 사실을 그대로 말씀해주시면 돼요. 그걸 기반으로 저희가 준비해서 터뜨릴 겁니다. 그 후 조사에서도 똑같이 진술해주시면 되고요.” -알겠습니다. 혹시 그 보좌관님은 오늘 오시나요? “예. 시간이 조금 촉박해서요. 지금 출발하면, 2, 3시간 정도 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네. 좋습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예. 전화를 끊자, 그새 출장 준비를 마친 마돈나가 내게 다가왔다. “다녀오겠습니다, 의원님.” “응. 최유동 씨가 말하는 거 전부 녹음 떠와. 동의 받는 거 잊지 말고.” “알겠습니다.” “고생해.” “예.”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의원실을 나섰다. 마돈나가 최유동을 만나는 동안, 나는 그의 아내 회사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직접 나서고 싶다. 이유는 하나. 국민들이 주목하고 있는 건이고. 이에 대해 활약을 하면, 내게 도움이 되면 되었지, 해가 되진 않으니까. 허나, 흘러가는 정황상 내가 나설 수는 없었다. 여기서 내가 그녀를 도와주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후일 전상국의 아들에 대한 채용 비리 건을 까발릴 때, 자칫하면 내가 최유동의 가족을 도와준 것에 대한 보상으로 그에게 거짓 증언을 강요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터. 혹시 모를 문제는 미연에 방지하는 게 나을 테지. 그렇기에 이번 일을 해결함에 있어서 나는 수면 밑에서 움직일 예정. 최유동의 연락을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는 이미 정리해두었다. 내가 드러나지 않고 이번 건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 이래서 사람이 높이 올라갈 걸 알면, 미리 뒤를 캐 둬야 된다니까. 휴대폰을 꺼내 한 곳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민국당 최지훈입니다.” 나는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행정안전부 장관님 부탁드립니다.” * * * 드르륵. 프라이빗 룸의 문이 열리며 커다란 풍채를 가진 사내 하나가 들어왔다. “최 의원.” 나를 보더니 그는 반가운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안녕하십니까, 장관님.”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예.” “매번 TV로만 보다가 이렇게 보니 또 느낌이 다르네. 실물이 훨씬 잘생겼어.” “감사합니다.” 가볍게 웃으며 그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일단 앉으시죠.” “그래.” 나는 그에게 술잔부터 채워주며 말했다.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한정식으로 준비했는데……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나이쯤 되면, 한정식은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지. 오, 막걸리 색깔이 특이하네?” “예. 이게 지방에서 수제로 만든 건데, 상당히 맛이 좋습니다.” “좋지. 아주 좋아.” 장관은 쭈욱 들이키고는 거칠게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맛있네.”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최 의원.” 그는 술잔을 내려놓고는 무릎 위에 손을 얹더니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무슨 일로 날 보자고 했나?” “한중현 장관님.” 나는 진지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긴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한중현. 눈앞에 있는 인물은 경찰관과 소방관을 관리하는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그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서울시장을 맡고 있었다. 즉, 첫째 최지만의 전임자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를 다시 말하면. 나는 아버지께서 최지만과 최지원이 서울시장 선거에 나갈 걸 알고 있었다. 그로 인해 한중현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리라는 걸 예상했고. 그가 서울시장에 재임하던 시절, 일으켰던 비리를 미리 캐뒀다. 물론, 그 사실을 대놓고 밝힐 필요는 없었다. 한중현은 아버지의 사람이었기에 굳이 그를 적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 “저희 의원실로 제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제보?” “예.” 나는 들고 있던 서류를 테이블 위로 그에게 건넸다. 한중현 장관은 놀란 눈으로 봉인을 뜯어 살피기 시작했다. 오래 전, 마돈나와 내가 함께 조사했던 내용. 그의 아들 한민성이 다니던 고등학교의 교감을 맡은 인물이 바로 한중현의 아내 백미진이었는데, 그녀가 NEIS 사이트에 접속해서 몰래 생활기록부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는 증거들. 일반적으로 다른 증거들이라면, 어떻게든 은폐하고 고칠 테지만, 이건 예외였다. 고교 시절 생활기록부를 통해 이미 대학 진학까지 마친 상태기에 드러나는 순간 빼도 박도 못하고 고등학교 졸업 취소는 물론, 대학까지 입학 취소를 당하게 될 테니까. 내용을 살피던 한중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최, 최 의원.” 그는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제보자의 정체는…….”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신상도 파악해뒀습니다.” “……그래?” “예. 제가 입은 막을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고맙네!” 한중현 장관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사건이 공개되는 순간 본인의 모가지가 날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교장으로 재직 중인 아내가 잘리는 것도 모자라, 아들의 창창한 미래까지 부서지는 것이니까. 한 마디로 가정이 풍비박산 나는 것이지. 이걸 덮어주는 데는 내게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한민성의 합격으로 인해 누군가 하나는 불합격을 받아야만 하는데. 그 떨어진 학생은 재수를 해서 더 높은 대학교에 갔으니까. 이제 와서 사실이 밝혀진다고 한들, 받을 수 있는 조치는 기껏해야 재입학인데, 더 좋은 대학에 다니는 인물이 굳이 이쪽으로 넘어올 리는 없었으니까. “다만, 민성이로 인해 떨어진 학생에게는 금전적인 보상이라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당연하지. 그건 내가 은밀하게 지원하겠네.” 한중현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덧붙였다. “20살이라는 청춘을 날린 세월을 돈으로 보상받을 순 없겠지만…… 장학금이든, 생활비 지원금이든 당사자가 1년을 날린 게 안타깝지 않도록 내가 지원하겠네.” “예. 그 학생은 모르도록 해주십시오.” “알겠네.” 그는 흡족스레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네는 더 필요한 거 없나?” “에이, 제가 뭐 필요한 게 있겠습니까?” 나는 잔망스레 손을 저었다. “저야 뭐, 장관님과 좋은 인연 만들었다는 것만 해도 충분하죠.” “그런가?” “예, 그렇습니다.” 그의 앞으로 신선로를 스윽 밀어주었다. 식사를 이어가는 척하다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장관님.” “말하게.” “요즘 기사를 보다 보니 신경 쓰이는 게 조금 있어서요.” “그래?” 그는 과장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게 뭔가?” “얼마 전에 있던 대전 화재 사건 아십니까?” “어, 알지. 외국인 노동자가 두 모녀를 구한 그 건 말하는 거지?” “예, 맞습니다.” “대단하신 분이야.” “맞습니다. 귀화하신 것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는 슬쩍 말을 늘였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습니다만, 제가 문득 알아보다 보니, 뒷사정이 더 있더라고요.” “내가 모르고 있는 게 있었나?” 한중현 장관은 젓가락까지 놓으며 입을 열었다. “그 응우옌 씨를 고용했던 회사에…….”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회사에서 불법체류자 고용에 대한 징벌적 조사를 했고, 그에 대한 벌금과 추가적인 세무조사도 앞두고 있다는 사실까지. “허허, 듣고 보니 그건 좀 그렇네.” “맞습니다. 만에 하나, 최유동의 아내 회사에서 응우옌 씨를 고용하지 않았다면, 그가 구한 두 모녀는 화마로 인해 숨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렇겠지. 구조대 말로는 응우옌 씨가 조금만 늦었더라도 연기에 질식했을 거라고 했으니까.” “물론,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건 잘못이긴 하나,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간에, 결과적으로 그녀가 불법체류자인 걸 묵인해서 국민의 소중한 두 생명을 살렸는데 그 대가로 벌금을 내고 사업을 접게 생긴 건 뭔가 부당하다고 생각이 되어서요.” “맞는 말이야.” “제가 살짝 알아보니, 경찰들이 실적 때문에 일부러 엮은 것 같긴 하던데…… 장관님께서 또 경찰들을 관리하시잖습니까?” “그래. 그건 실적을 위해서 일부러 움직인 것 같구먼.” 한중현 장관은 잠시 고민하더니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네가 생각하기엔 그 응우옌 씨 회사가 조사받은 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예. 전부 원점으로 돌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는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중현 장관의 부조리를 묵인한 대가라고 볼 수는 없다. 실제 내가 묻어준 건에 비해서 이번 건은 굉장히 미미한 사건이니까. 그러나 내가 원한다는 걸 안 이상, 그도 가만히 있을 순 없을 터. “걱정하지 말게. 그건 내가 잘 정리해볼 테니까.”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럼. 어쨌든 생명을 구한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는데, 과정이 나쁘다고 그걸 탓하면 쓰나.” “맞습니다, 장관님.” “그래. 그건 걱정 말게나.” “감사합니다.” “고맙긴, 내가 더 고맙지.” 그는 웃으며 잔을 들었다. “건배나 한 번 할까?” “좋지요.” 허공에서 두 개의 막걸리 잔이 명쾌하게 탱-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