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보이지 않는 것도 (5) (148/200)

보이지 않는 것도 (5)2022.03.28.

“면접관 세 명 다 보통이 아니네.” “예, 맞습니다.” 오후 10시가 넘은 늦은 시간. 의원실에는 나와 마돈나 단 둘만이 남아 서류를 확인했다. “이 두 명은 최근에 승진한 거네?” “예. 원래 지방 한직을 전전하다가 최근에 바뀐 코레일 사장 라인을 타며 요직인 본사 인사팀으로 올라온 것 같습니다.” “지현 씨가 아무리 캐내도 안 불었다는 사람들이지?” “예. 확정적인 증거를 내밀어도 딱 잡아뗐던 사람들입니다.” “어쩐지…….” 실력으로 올라온 인물이라면 모를까, 처음부터 라인을 타고 올라온 이들이라면 당연한 반응이다. 내부 고발을 하는 순간, 자신이 타고 온 라인의 동아줄을 끊어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니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어떻게든 윗사람들을 보호하려하겠지. 그게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 방법이니까. “그러면 여기 있는 최유동 씨는?” “완전 엘리트 출신입니다. 한국대 출신에다가 입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삐끗하지 않고 현재 자리까지 올라왔고요.” “이 사람이 사실을 인정했다고 했지?” “예. 면접 점수와 관련된 정황 증거를 들이밀었을 때 녹음하지 않는단 걸 확인한 후에야 비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마돈나는 아쉬운 듯 덧붙였다. “그렇다고 해도 공식적인 증언을 해준다거나 증거를 제출할 수는 없다고 했고요.” 특정한 대가를 주고서 청탁하는 게 아니라, 위에서 압박을 한 경우에는 알력 행사를 당한 이들이 입을 다물면 사실을 증빙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영 쉽지 않은데…….” 그럼에도 희망이 있는 건 최유동 하나뿐이다. 어떻게든 그를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는 건데……. “이 사람 집안이 조금 부유하다고 했나?” “아내가 크게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금전적인 부분은 문제가 없을 거고…….” “그런데.” 마돈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근 들어 조금 곤란한 처지가 된 것 같습니다.” 귀가 번쩍 트였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거나 악덕한 마음씨를 가져서가 아니라. 그에게 문제가 생겼으면, 그걸 해결해주는 대가로 내가 원하는 걸 얻어낼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서류를 내려놓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일인데?” “얼마 전에 보셨던 뉴스 기억하십니까? 그 빌라 화재에서 사람을 구했다던…….” “그 외국인 노동자?” “예.” “응우옌 씨 맞나? 김민석 의원이 힘을 좀 써서 얼마 전에 귀화했다고 들었는데.” “그건 맞습니다. 그런데…….” 마돈나는 태블릿 PC로 기사를 띄워 내게 보여주었다. “그 응우옌 씨가 일하던 회사가 스타트악기라는 공장이었는데, 그곳에 대대적인 조사가 들어갔다고 합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경찰들이 실적 때문에 덮친 거야?” “예. 응우옌 씨가 근무했던 사실은 명백하니까요.” 마돈나도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행히도 다른 외국인 노동자 중 불법체류자들은 없었다고는 하나, 경찰에서는 응우옌 씨를 고용했던 일을 붙잡고 늘어지는 것 같습니다.” 응우옌이라는 사람 자체는 귀화를 해서 문제가 없다고는 하나, 불법체류자를 고용했던 사실 자체는 문제가 된다. “그래서 그를 고용했던 공장은 지금 벌금으로 인해 문을 닫을 위기라고 했고요.” “잠깐만. 혹시 그 공장이…….” “예. 최유동 씨의 아내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입니다.” 마냥 환영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정치인으로서 조금 씁쓸한 내용이니까. 허나, 이번 일이 내게 기회가 될 수 있는 건 분명한 사실. “지현 씨.” “예, 의원님.” “최유동 씨 번호 있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바로 외투를 챙겼다. “지금 바로 전화 걸어. 만나러 간다고 해. 아내의 일, 내가 도울 수 있을 것 같다고.” “알겠습니다.” “시동 걸어 둘 테니까 통화 끝내고 바로 입구로 와.” “예.” * * * 대전의 한 아파트. 띵동-. 초인종 소리와 동시에 문이 조심히 열렸다. “……임지현 씨?” “안녕하십니까, 유동 씨.” 마돈나는 한 걸음 물러나며 자연스레 나를 소개했다. “말씀드렸던 의원님이십니다.” 순간, 최유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최지훈 국회의원님이신가요?” “예, 맞습니다.” 다행히 나를 알고 있는 모양. “늦은 시간에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일단 들어오시죠.” 그는 황급히 우리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실내는 적막했다. 작게 틀어 놓은 TV소리와 술상에 올려져 있는 작은 소주잔이 초라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아내분은…….” “변호사 사무실에 가있습니다. 경찰 조사 때문에 이야기할 게 길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유감입니다.” “아닙니다. 일단 이쪽으로 앉으시죠.” 오래 끌면 안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내가 돌아오기 전에 승부를 봐야 한다. 나는 소파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최유동 씨, 이번에 터진 사모님 건은 저희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순간, 그의 몸이 움찔했다. “……진심이십니까?” “예. 벌금은 물론이고, 문제되고 있는 사실 모두 깔끔하게 정리해 드리죠.” “그게 가능한 겁니까?” “쉽진 않죠. 다만.” 나는 최유동을 향해 진지하게 대답했다. “마냥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사실, 최유동의 아내가 한 행동이 법적으로 옳은 건 아니다.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응우옌이 불법체류자임을 알고 그를 고용한 건 잘못된 일이니까. 허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응우옌이라는 사원은 불법체류자지만, 사람을 구한 용기를 칭찬받아 한국에 귀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를 고용했던 최유동의 아내는 피해를 보게 된 거니까. 오히려 사람을 구한 영웅 때문에 공장이 폐업하고 그 회사에 다니던 번듯한 사람들도 전부 그만둘 위기에 처한 것이라고 봐야지. “아내분도 불법체류 중인 사실을 인지한 채로 그들을 고용한 게 잘못된 건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다만, 회사 사정이 요 몇 년 새에 굉장히 어려워진 탓에…… 그들의 임금이 조금이라도 더 싸서 어쩔 수 없이 고용한 겁니다. 한국인을 고용하면 도저히 저희가 페이가 나오지 않아요. 제 아내의 회사도 대기업의 하청인지라…… 후려치면 후려치는 대로 따라가야 되거든요.” 그는 나에게 혹시라도 오해하지 말라는 듯 덧붙였다. “그렇다고 최저임금을 위반한 건 아닙니다. 그들도 만족할 만큼 충분히 챙겨줬습니다.” “그런 건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미 오기 전에 확인한 사실이다. 만약 그런 문제가 있었다면, 내가 돕지 못했을 테니까. “최유동 씨.” “네?” “대신, 부탁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 말하지 않아도, 그 또한 코레일 사장으로부터 특채에서 압력을 받았던 사실을 증언해달라는 걸 눈치챘을 터. “없는 사실을 말씀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나는 차분하게 말을 보탰다. “실제로 있었던 사실, 겪었던 일들만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시면 됩니다.” 임지현은 조심히 말을 보탰다. “저희는 증거를 조작하려는 것도 아니고, 코레일 내부 파벌 싸움에 끼려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잘못된 사실을 밝히려는 겁니다.” “…….” 최유동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쉽게 결정할 수 없을 테지. 어쨌든 내부고발이라는 건 단순하게 판단해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한참의 고민 후에야 그는 눈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의원님.” “예.”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내부고발을 한 사람들을 본 적이 없지 않습니다.” 그랬겠지. 파벌 싸움이 적지 않은 코레일 같은 공기업이라면 더욱더. “처음엔 다들 정의를 구현하겠다, 문제없게 처리하겠다, 피해 가게 하지 않겠다. 번지르르하게 말은 잘하죠.” 최유동은 조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지켜진 걸 본 적이 없습니다.” “…….” “사건이 처리되기 직전까지는 잘해 줍니다. 늘 도와주죠. 든든하게 느껴져요. 그런데 막상 일이 끝나고 나서 단물을 다 빼먹으면 관심도 주지 않습니다. 전화도 안 받아요.” 그는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제가 다니는 곳은 공기업입니다. 평생직장이라고 하잖아요. 저 이제 30대 후반이에요. 앞으로 20년은 더 다녀야하는데……. 퇴사하기 전까지 내부고발자라는 딱지를 달고 있어야 합니다.” 그게 내부고발자의 현실이다. “그리고 높은 사람들끼리는 다들 연결되어 있거든요. 나쁜 놈 하나 나가 봤자,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또 와요. 그러면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사람만 족치거든요. 잘리진 않아요. 다만, 버티고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한직으로 쫓겨나는 게 내부고발자의 말로죠.” 그는 주먹을 꽉 쥐며 물었다. “평생 저를 책임질 수 있으시겠습니까? 없으시잖아요. 그러면 전 못 합니다.” “유동 씨.” 나는 부드럽게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어떤 걱정을 하시는지 아십니다. 저 또한 다른 내부고발자들을 봐 왔고요.” 침착하게 그를 안심시켰다. “그걸 도운 사람들은 어떤 인물들이었습니까? 기껏해야 기자나 경찰들 아니었어요?” “그렇긴 합니다만…….” “저는 국회의원입니다.” 순간, 그의 동공에 힘이 들어갔다.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단순히 저 혼자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저를 포함한 민국당이 다함께 움직일 거예요.” 꿀꺽. 그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최유동 씨에게 피해 가지 않도록 처리하겠습니다. 만에 하나 회사 내에서 눈치가 보여서 다니기가 힘들다면, 제가 다른 곳으로 이직까지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공무원이나 공기업 자리에 특채로 꽂아주는 건 아니다. 이전에 생각했듯, 그건 전상국을 처벌한다는 명목으로 똑같은 짓을 벌이는 것이니까. 그 대신 사기업에 없는 자리를 만들어주면 된다. 누구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새롭게 만드는 자리. 방법은 있다. 국회의원의 힘이 아니라, 최지훈 개인의 힘으로. 지한그룹. 얼마 전, 한중 FTA에 관한 결과를 미리 전해 준 덕분에 지한그룹에서 큰 이득을 보게 될 터. 그에 대한 보상으로 자리 하나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면 된다. 최유동이 들어간다고 해서 누군가가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기에 문제될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 그의 경력을 보면,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충분히 들어갈 만한 실력이 되기도 하고. 사실, 보상이라기엔 너무나도 사소한 것이기에 장인어른은 다른 걸 더 챙겨 주려 할 테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건, 최유동이 걱정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이 될 겁니다. 그건 제가 보장해드리죠. 제 배지를 걸고 맹세하겠습니다.” 진실 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손을 잡았다. “제 이름 최지훈 석 자를 두고, 약속드리겠습니다.” “…….” 그는 호흡을 깊게 몇 번이고 들이마셨다가 내뱉기를 반복하더니. “알겠습니다. 일단 저 혼자만의 일은 아니기에…… 와이프가 오면 이야기해 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내일까지 전화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내 명함을 직접 최유동의 손에 쥐여 주었다. “제 직통 번호이니 언제든 편하게 연락주세요.” 최유동을 뒤로하고 나오려는데. 그는 나의 명함을 바라보다가 문득 나를 불렀다. “의원님.” “예?” “혹시 탐진 최 씨십니까?” “맞습니다. 혹시 유동 씨도……?” “네, 저도 탐진 최 씨입니다.” 여기서 혈연을 찾을 줄이야. 나는 입가에 피어나는 미소를 숨기며 말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16557386395509.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