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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것도 (4) (147/200)

보이지 않는 것도 (4)2022.03.27.

6월 임시 국회가 종료되었다. 결과적으로 누구의 승리라거나, 특정 당이 패배했다고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애초에 대한당과 민국당 중 과반수를 가져간 정당이 없었기에 압도적으로 찍어누르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현 씨가 수고 많았지.” 나는 슬쩍 집무실 밖을 바라보며 물었다. “다른 보좌진들은?” “먼저 회식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전상국 당 대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마돈나를 따로 남겼다. 그녀도 그걸 아는지, 문을 꼭 닫고서는 바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전상국의 아들 전민재가 코레일에 입사한 전형은 어학 전문가들의 특채로 확인되었습니다.” “어학이면, 특출나게 잘하는 언어가 있나?” “기록을 보면 영어를 잘한다고 되어 있습니다만, 토플이나 토익 같이 따로 확인된 공인 영어 성적은 없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해외 유학 경력이 있던 걸로 아는데.” “예, 맞습니다. 중학교 때 1년 정도 필리핀에 다녀온 적은 있습니다만, 이후 고등학교에서의 영어 성적은 좋지는 않았던 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돈나는 보고서 몇 장을 내게 건넸다. “당시 공시된 점수입니다.” “전체적으로 점수를 공개했었나?” “아닙니다. 합격자의 커트라인이나 전체적인 점수는 발표하지 않았고, 개개인에게 각자 취득한 점수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 이건…….” “당시 전민재와 똑같은 전형으로 입사를 지원했던 이들에게 각각 받았습니다.” 그때의 경쟁률은 13대 1. 전상국의 아들 전민재를 제외하고 나머지 12명을 모두 찾아가 당시 받았던 점수 자료를 받아온 것이다. “발로 뛰기 귀찮았을 텐데.”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 걸요.” 마돈나는 코를 찡긋했다. “전민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점수를 확인한 결과, 조금 수상한 정황이 발견되었습니다. 우선 당시 채점 기준이 굉장히 애매했는데…….” 전민재가 입사했던 때의 특채는 1차 서류와 2차 면접 두 개로 나누어진다. 서류 평가는 상대 평가로 13명 중 1등을 50점, 꼴등을 40점으로 나누고. 면접은 절대 평가로 각각 0점부터 50점까지 원하는 점수를 줄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서류에서의 변별력이 떨어진다는 뜻이지. “전민재가 대학을 어디 나왔지?” “동북대학 나왔습니다.” “3년제 전문대지?” “맞습니다.” 아무리 블라인드 채용이다, 학벌이 중요하지 않다, 이런 소리를 한다고는 하나, 학벌이 좋으면 대체적으로 다른 스펙 또한 좋은 게 사실이다. 게다가 전민재와 경쟁한 이들의 이력서 또한 내 손에 들어와 있는데, 토익 만점부터 시작해서 영어권 대학 졸업 등 순수하게 영어만 따져도 전민재를 압살할 만한 인물들이 많다. “탈락자들 중에서 최고 득점자가 몇 점이야?” “제일 뒷장에 있는 친구인데, 87점이 있습니다. 서류에서 만점을 받은 친구고요.” “그러면 전민재가 최소한 88점은 받았다는 소리잖아.” “예, 맞습니다.” 평가 기준에 따르면 전민재는 서류에서 꼴등. 즉 40점을 받은 게 확실하다. 다시 말해서 2차에서는 50점 만점에 48점. “면접에서 거의 만점을 받았다는 소리잖아?” “맞습니다.” “말이 안 되는데?” 면접에서 완전히 압도했다면, 가능하다.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러나 전민재의 스펙을 보면 그게 불가능했다. 실제로 4년 전에 보았던 토익 점수는 760점이 끝이었으니까. 물론, 스펙에 대한 내 고정관념일수도 있으나, 전민재가 전상국의 아들임을 생각하면 내가 틀렸을 가능성이 매우 떨어진다고 봐야지. “면접관들은 전부 재직 중인가?” “총 3명인데, 한 명은 코레일 내의 다른 부서로 옮겼고, 두 명은 인사팀에 남아 있습니다.” “한 번 접촉해 봐. 주변인들 조사해서 무슨 일 있었는지도 알아보고.” “알겠습니다.” 나는 외투를 들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도 나가자고.” “예, 의원님.” 마돈나와 함께 집무실을 나섰다. 의원실로 나오자, TV가 홀로 열심히 허공을 향해 떠들고 있었다. “나갈 때 전원 끄고 가라니까 이것들이…….” 마돈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리모컨을 찾았다. “내가 끌게. 지현 씨는 가방 챙겨.” “감사합니다.” 리모컨을 집어 드는데, 문득 TV속 뉴스의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대전의 한 빌라 앞입니다. 오늘 오전 10시, 담배꽁초로 인해 커다란 화재가 일어나 오후 7시가 되어서야 전소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빌라에 있던 두 명이 가스에 중독되어 정신을 잃어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한 남자가 뛰어들어 두 모녀를 구했습니다. 화마에서 사람을 구해낸 영웅은 베트남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응우옌 씨로……. “출발하실까요?” 어느새 가방을 챙겨 온 마돈나를 확인하고 TV를 종료했다. “방금 뉴스 보셨죠?” “응. 대단하신 분이네.” “인터넷에서도 꽤 화제가 되고 있어요.” “그래?” “예.” 그녀는 의원실을 나서며 내게 설명해주었다. “타국에서 남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렇지. 보통 일이 아니잖아.” “그런데 저분이 불법체류자더라고요.” “그래?” “네. 그래서 원칙상 추방을 해야 되는데…….” “저런 영웅을 추방하는 건 아니지.” “국민들도 비슷한 의견입니다.” “정치인들이 환심이라도 사려고 추방하지 않는다거나 귀화하는 걸 도와주겠다고 할 것 같은데?” “안 그래도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나섰습니다.” “대전 유성구면…… 김민석 의원이었나?” “예, 맞습니다.” “그 양반 또 국민들 앞에서 쇼하는 거 좋아하잖아.” “안 그래도 카메라 앞에서 눈물까지 흘리면서 감동했다고 부둥켜안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어휴, 평소에나 좀 잘하지.” 마돈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여하튼 그래서 응우옌 씨도 귀화를 원한다는 걸 확인해서, 괜찮으면 베트남에 있는 가족들도 데려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잘됐네. 포퓰리즘이라면 도움이 될 때가 있다니까.” “그렇죠.” 지이잉-. 마돈나는 휴대폰을 확인하더니. “김한나 비서네요.” 싱긋 웃고는 전화를 받았다. “어, 지금 가고 있어. 다 왔어. 그럼. 오랜만의 회식인데 의원님도 가시지. 따로 주문은…….” * * * “회장님!” 최일그룹 구택일 회장의 사무실. 중국으로 출장 갔던 상무이사가 돌아오자마자 회장실을 찾았다. “어, 김 이사. 어떻게 됐어?” “오케이 받아냈습니다.” “그래?” 구택일 회장은 반색했다. “확실하게 도장 찍은 거지?” “예. 계약금 입금까지 됐습니다.” 상무이사의 보고에 구택일 회장은 주먹은 불끈 쥐었다. “드디어 지한전자 이 자식들을 따라잡을 기회가 왔네.” 중국에서 희토류를 채취해 판매하는 데 독점적인 점유율을 가진 대표 기업 모더텐. 그들로부터 최일그룹은 희토류를 독점적으로 수입한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목표는 단 하나. 세계적인 선두를 이끄는 지한전자를 끌어내리기 위함이었다. 희토류가 없으면 반도체 산업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생길 수밖에 없었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비공식 계약이었다. 지한전자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그래야만 한중 FTA 직후, 희토류를 독점하면, 지한전자는 새로운 활로를 찾는 사이, 자신들이 치고 올라갈 수 있을 테니까. 다만, 일이 너무 순순히 풀리자 구택일 회장도 마냥 안심하지는 않았다. “지한그룹은 어때? 요즘 조용하던데.” “지한그룹은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 “네. 아무래도 중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희토류를 관리하니까 수출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구택일 회장은 흡족스레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핫. 멍청한 자식들.” 그들은 전혀 예상도 못 하고 있었다. 지한그룹이 수면 밑에서 아프리카 및 남미 측과 접촉해 희토류 수입에 새로운 활로를 뚫고 있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한그룹에서도 작정한 듯 몇 번이고 연막을 치며 은밀하게 접선을 진행 중이었으니까. 지한그룹 회장의 특별한 지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중국에서 희토류 수입을 포기했다는 걸 알게 되면, 최일그룹이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을 할 테니까. 지한전자 입장에서는 반도체 산업에서 자신들을 추격하는 최일그룹이 중국에 집중하고 기력을 쏟는 걸 보고 싶었으니까. FTA가 엎어지면, 그들은 돈과 시간을 모두 날린 셈이 되면서. 또 희토류의 활로가 막히기 때문. 지한그룹 회장의 큰 그림이었다. 1위 그룹과 2위 그룹의 차이지. 물론, 지한그룹도 아직까지 한중 FTA가 완전히 엎어지는 건 모르고 있으나, 회장이 최지훈으로부터 직접 들은 게 있기에 어느 정도 대비는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실을 알 리 없는 구택일 회장과 최일그룹은 그저 이번 성과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 자식들은 모를 거다. 우리가 정부 끄나풀을 이용해서 모더텐이랑 접촉했다는 걸.” “맞습니다. 이번엔 중국 정부도 묵인해준 거라고 봐도 되니까요.” “그래.” 구택일 회장은 흐뭇한 듯 의자에 몸을 묻었다. “김 상무.” “예, 회장님.” “고생 많았어.” * * * “의원님.” 마돈나다. “어, 왜?” “전상국 아들 전민채의 특채에 관여했던 면접관 세 명을 모두 만나 봤습니다.” “어떻게 됐어?” “뉘앙스를 들어보니, 아무래도 코레일 사장으로부터 압박을 받은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셋 다?” “두 명은 정황상 확실하지만 사실을 부정하고 있고, 나머지 한 명은 끈질기게 들러붙은 결과 비공식적으로 인정하였습니다만…….” 마돈나는 심각한 얼굴로 턱을 쓸어 만졌다. “공식적으로 진술해 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위로부터 받은 압박 때문에?” “예.” 알 것 같다. 당연한 이야기지. 아무리 정치와 관련된 일이고, 부조리한 일이긴 하나. 이번 일에 대해 사실대로 인정하고 공개하게 되면, 결국 내부 고발자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조직 내에서 찍힐 수밖에 없으니까. 내부고발자의 말로는 안 봐도 뻔하기 때문. 국회의원의 힘을 써서 그를 다른 공기업으로 옮겨줄 수는 있으나, 그걸 실현할 수는 없었다. 그건 전상국을 죽이자고, 그의 잘못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 “따로 뭐 약점으로 잡을 만한 건 없고? 먼지가 묻었다거나.” “예. 아내도 사업하는 사람이라, 금전적으로 부족한 부분도 없다고 하고요.” “그러면 꽤 골치 아픈데…….” 누가 봐도 정황이 확실하다고 한들, 면접관이 세 명 모두 진술에서 압박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하면 무용지물이다. 면접에 대한 영상기록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시에 시험을 기똥차게 봤다고 하면 할 말이 없으니까. 이거 생각보다 일이 어려워질 수도 있겠는데.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머리를 식혔다. “지현 씨, 면접관 세 명의 자료 한 번 구해 봐. 개인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까지 한 번 살펴보자고.”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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