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론플레이 (5) (143/200)
  • 언론플레이 (5)2022.03.23.

    “전상국 대표님 해명해 주십시오!” “현장에 같이 있으셨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이번 논란에서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신 건가요?” “악의적으로 녹음해서 유출한 걸 알고 계셨습니까?” “이 녹음의 주체가 누구인지요?” 기자들은 전상국 당대표를 향해 질문을 쏟아냈다. “최지훈 의원님이 모함을 받은 걸 알고 있으셨던 겁니까?” 그 질문에 국회로 들어가려던 전상국 당 대표는 문득 멈춰 섰다. “누가 녹음을 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현장에 계셨지 않습니까?” “당시 저는 꽤 많이 취해 있었습니다. 대화록 전문을 보면 아시겠지만, 애초에 저는 몇 마디 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솔직히 말해서.” 그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6월 임시 국회로 이렇게 바쁜 시국에 취할 만큼 마셨다는 게 죄송스럽지만, 저는 만취를 해서 대화 내용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신지도 잘 모르신다는 건가요?” “예. 그래서 이번 논란이 터졌을 때도 저는 최지훈 의원이 실제로 그런 발언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해명을 해 줄 수도 없었고요.” “그러면 채형호 의원의 발언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녹취록을 보니 굉장히 친한 것처럼 보이던데요.” “제가 국회에서 20년을 넘게 있었습니다. 정치인들과는 어지간하면 다들 가깝게 지냅니다. 특별한 관계는 아니고, 녹음본에서 보신 것처럼 우연히 식사 자리에서 만난 거고요.” 전상국 당 대표는 슬쩍 발을 뺐다. “저 또한 녹취록을 들어본 결과, 채형호 의원의 발언은 굉장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범죄를 저지른 건 당연히 범죄자의 잘못이죠. 아무리 사적인 자리라도 경솔했습니다. 반드시 유가족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국회의 일원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그는 꾸벅 인사를 하며 국회의사당으로 들어갔다. * * * “이런 X같은 새끼.” 만세당 성문종 의원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무슨 저런 쓰레기 자식이 다 있어?” 그는 전상국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봤지만, 연결되지 않는 번호라고 뜰 뿐이었다. “어쩐지 처음부터 불길하더라니…….” 성문종은 화를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내가 이래서 대한당 이 양아치 새끼들이랑 협업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그가 분노를 표하는 것도 잠시. “의원님.” 옆에 있던 채형호 의원은 곤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어떻게 해야 됩니까?” “…….” “대한당 쪽에서 이렇게 계획을 짜 준 것 아닙니까? 저 주현이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관련한 발언 자체도 전상국 당대표가 직접 짜준 것이다. “저도 말하면서도 굉장히 죄책감이 들었을 지경인데, 이게 시민들이 들었으니 정말…….” 최지훈을 취하게 한 뒤, 일부러 자극적인 이야기를 해서 문제되는 발언이 있으면 그걸 터뜨리기 위함. 허나, 최지훈은 넘어오지 않았고. 심지어 그가 만에 하나의 상황을 대비해서 녹음까지 해둔 탓에 역으로 채형호 의원만 버려진 것이었다. “채 의원님, 전상국 대표 그 자식 문제되는 발언은 없었습니까?” “예. 몇 번이고 뒤져봤는데, 없습니다.” 채형호 의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성문종은 이를 빠득 갈았다. “이런 미꾸라지 같은 새끼…….” 뒤통수가 얼얼했다. 전상국 당 대표는 처음부터 만세당을 배신할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일부러 술자리에서 문제될 만한 발언을 하지 않은 것이지. “혹시 최지훈 그 인간과 손잡았던 게 아닐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성문종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그랬다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하아.” 채형호 의원은 답답한 듯 머리를 쓸어넘겼다. “저 지금 밖에 나가면 돌팔매 맞습니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출근길에 돌이 날아들었다. “심지어 저희 지역구 사무실도 창문에 계란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불안한 듯 동공을 떨며 물었다. “무릎 꿇고 대국민 사과할까요?” “그걸로는 진정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문종은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채 의원님.” “……예?” “일단 탈당합시다.” 채형호는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의원님.” 그는 성문종의 팔을 붙잡았다. “저 여기서 탈당하면 끝입니다.” “일단 당이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채형호 의원은 바로 무릎을 꿇었다. “저 이렇게 버리지 마십시오. 어떻게 여기까지…….” “채 의원님.” 성문종은 그를 붙잡아 일으켰다. “안 버립니다. 일단 탈당해서 진정시키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그때 다시 돌아오는 게 낫습니다. 일단 당에서도 잘못을 견책하고 징계하는 모습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 “지금 안 나가면 저희 모두 X되는 겁니다.” “제가 나가고 나면 다음이 없잖습니까?” “없긴 왜 없습니까?” 성문종은 진심 어린 목소리로 그의 손을 잡았다. “나중에 반드시 복당시켜 드리겠습니다.” “…….” 채형호 의원은 불안한 듯 고개를 떨궜다. 이미 대한당 전상국 당대표에게 뒤통수를 한 번 맞은 마당이었기에 못 믿는 눈치였다. “걱정 마십시오. 저는 대한당, 민국당 저 양아치 녀석들과 다릅니다. 채 의원님 지금 그 배지 제가 달게 해 드린 거 기억하시죠?” “알고 있긴 합니다만…….” “지역구 공천부터 당선까지 전부 제가 끌어드렸잖습니까? 시간이 흘러서 잠잠해지면 다음에 도와드릴 것이라고 약속드립니다.” 그는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저 2년 안에 우리 만세당 당대표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러면 반드시 모시고 올게요.” 선택지가 없었다. 여기서 버틴다고 해서 만세당이 채형호 의원을 보듬어주진 않을 테니까. 차라리 당에서 제명되는 것보다는 스스로 나가는 게 더 낫기도 하고. “일단 알겠습니다. 다음에 반드시…….” “예. 필시 복당시켜 드리죠. 약속드리겠습니다.” 채형호 의원은 울며 겨자 먹기로 성문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죄송합니다. 당시 제가 만취를 하는 바람에 평소 생각과 다른 말이 충동적으로 나온 것 같습니다. 저는 만세당을 탈당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국가와 지역을 위해 헌신하며……. “결국 채형호 의원이 총대 매고 책임지네요.” “그렇지, 뭐.” 나는 팔짱을 끼며 TV화면을 바라봤다. “전상국 저 미꾸라지 새끼, 결국 또 혼자 살아남으려고 하네.” “그러게요.” 마돈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매번 저렇게 빠져나가는 거겠죠.” “저렇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잖아.” “그나저나 이번 일엔 전상국 외에 다른 인물도 굉장히 많이 끼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같은 대한당도 아니고 야당의 채형호 의원이 단독으로 전상국과 접선했을 리는 없으니까.” “그럼 아마…….” “성문종 그놈일 거야.” 증거는 없지만, 심증은 확실하다. 만세당에서 내게 원한을 가졌고 또 다른 의원을 움직일 수 있을 만한 인물은 성문종이 유일하니까. 그가 전상국과 손을 잡고 채형호 의원을 미끼로 쓴 것이겠지. “파렴치한 놈들이야. 직접 나서기는 두려우니 다른 사람 이용해서 이딴 식으로 공격이나 하고.” 마돈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그래도 일단 결론적으로는 다행입니다. 의원님에 대한 국민들의 오해도 풀렸고, 주현이와 피해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어서 여론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돌아섰으니까요.” “맞아. 주현이 법 통과에는 문제없을 거야.” 되려 내게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오히려 범죄자들을 더 강하게 처벌해야 된다는 내 마인드가 녹음본에 고스란히 드러났기에 국민들이 보기엔 내가 주장하는 법안을 반대하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일 테니까. 마돈나는 잠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그런데 의원님.” “응?” “이번 사건의 발단을 생각하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의원님의 형님이 판을 꾸민 것 아닐까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이잉-.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은 둘째 형 최지원. 절대 양반은 되지 못한다. “쉿.” 나는 검지로 입을 가리며 전화를 받았다. “네, 최지훈입니다.” -어, 동생아. 통화할 수 있어? “잠깐은 괜찮아. 왜?” -이번 일 때문에 고생 많았지? 사건이 터진 직후엔 연락이 없더니, 마무리되고 나서야 연락이 온다. “아니야. 뭐 잘 마무리됐으니까.” -그래. 다행이다. 그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혹시나 오해할까 봐 전화했어. “오해?” -이번 술자리 말이야. 무슨 소리를 하나 들어나 보았다. -난 정말 순수하게 전상국 당대표랑 너랑 화해시키고 싶어서 자리 마련한 거거든. 차라리 내가 자리를 지켰다면 괜찮았을 텐데. “아니야, 그럴 수 있지.” -미안하게 됐다. 변명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도 당한 거야. 전상국 대표 이 인간이 나 몰래 꾸민 거라……. 진짜 미안하다. “형이 안 했다면 됐지.” -그래.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다. 내가 조만간 밥 한 끼 살게. “어, 알았어. 나 회의 때문에 다시 들어가 봐야 되거든.” -또 보자. “응.” 전화를 끊자, 마돈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설마 아무 일도 안 했다는 최지원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나는 피식 조소를 지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인간도 엮여 있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봐.” 다만, 증거가 없다. 전상국이야 확실하다지만. 최지원은 이용당했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물론, 그 확률이 현저히 적긴 하지만. “일단 최지원은 내버려 두자고. 한 번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당분간 나를 건드리려 하지 않을 테니까.” 우선은 전상국. 그 자식에 대한 복수가 먼저다. “차명건 의원한테 받은 자료들은?” “확인된 자료에 추가 증거들 수집하고 있습니다.” “주현이 법 통과되고 나서 터뜨릴 수 있게 완성해 둬. 이번엔 아예 빼도 박도 못하게 조져버리자고.” “알겠습니다.” * * * “안녕하십니까, 최지훈입니다.” 주현이 법을 완성하고 나는 국회 발언대에 섰다. “거두절미하고 제가 최종적으로 상정한 주현이 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경범죄에 대해서는 촉법소년 법안이 그대로 적용이 되나, 성폭행 및 살인 등과 같은 중범죄에선 촉법소년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내 발언들은 모두 생중계되고 있었다. “단순히 새로운 범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미 판결이 끝나고 형이 집행되어 수감되어 있는 범죄자들을 제외하고 현재 재판 중인 이들에게도 모두 포함이 됩니다.” 얼마 전, 대법원에서 주현이 사건에 대해 파기 환송을 시켰다. 다시 재판을 한단 뜻이다. “즉, 이 법안이 통과되면, 그 범죄자 김창길은 성인의 법으로 처벌받게 됩니다.” 최소한 징역 20년. 최대 무기 징역까지 가능할 수도 있다. “촉법소년이라는 보호법을 악용한 범죄자들이 사회를 더럽히는 꼴을 더 이상 볼 수 없도록 만들어주십시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발언대를 내려왔다. 그리고 투표 결과. 재적 293 찬성 293 반대 0 기권 0 여야 할 것 없이 국회의원 전원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그래. 이렇게 될 수밖에 없지. 이래야만 김창길을 처벌할 수 있을 테고. 그것이 곧 국민의 뜻이니까.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해 대법원에서 파기 환송이 나오게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이뤄낸 결과가 무려 만장일치다. 국회의원이 된 직후, 처음 낸 법안으로 만장일치. 벌써부터 들린다. 국회에서 내 위엄이 올라가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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