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언론플레이 (4) (142/200)
  • 언론플레이 (4)2022.03.22.

    [최지훈 의원 그렇게 안 봤는데…….] [솔직히 이건 좀 에바인 듯.] [아니지? 아니라고 해라.] [음성 전문가들이 분석했는데 최지훈 목소리 맞다고 함;;] [아니, 이건 좀 아니잖아.] [저런 인간이 어떻게 국회의원을 하냐…… 말세다, 말세.] [이딴 생각머리 박힌 놈이 무슨 주현이 법 개정을 함?] [사죄해라.] [사죄 정도가 아니라, 배지 내려놓고 사퇴를 해야 됨.] [민국당 이 새끼들 정신 나간 듯.] 인터넷에서는 아주 난리가 나있었다. 나를 실드 치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기사만 보면, 최지훈이라는 사람 자체는 인간 말종 쓰레기와 같았으니까. 실체를 몰랐다면, 내 주변 사람들도 등을 돌렸을 것이다. 내가 봐도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으니까. 물론, 이러한 사정을 알 리 없는 민국당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해명 못 하면 우리도 방법이 없어.” “정말 자네가 직접 말한 건가?” 나는 그들의 걱정을 한 마디로 일축했다. “사흘 내로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어떻게 할 것이냐, 무슨 방도가 있냐, 진짜 말한 게 맞기는 하냐는 둥 질문 세례가 쏟아졌지만, 정확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저 믿고 기다려달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 계획이 유출된다면, 오히려 대한당 측에서 다른 계략을 짤 수도 있을 테니까. 깜빡깜빡.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점멸했다. 고장이 났나. 옆으로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최 의원님.” 옆에서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자를 푹 눌러쓴 사내는 누가 보기라도 할까 봐 걱정이 되는지 연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인사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주변에 미행하는 이나 지켜보는 이는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차명건 의원님.” 차명건. 나와 은밀하게 접선한 인물은 대한당의 前 원내대표 차명건이었다. 이 상황에서 내가 그를 만난 이유는 단 하나. 이번 선거에서 부정이 밝혀지며 선거 무효형을 받기 전까지 명실상부한 대한당의 2인자였으니까. 즉 대한당에서 벌어진 온갖 부패와 더러운 일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는 씁쓸하게 목소리를 삼켰다. “이젠 의원도 아닌걸요.” “제 기억엔 의원으로 계셨던 모습이 선명합니다.” 나는 듣기 좋은 이야기를 했으나. “좋은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는 다시금 주변을 살피며 본론을 요구했다. “부르신 이유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이 광경을 들키는 게 걱정이 되는 모양. 그도 그럴 것이 차명건은 부정선거로 한 번 파면이 되었던 인물이고. 나는 지금 가장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었기에 괜히 엮여서 좋을 건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부른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와 함께하시죠.” 차명건은 흠칫하며 되물었다. “……제가 생각한 그 뜻입니까?” “맞습니다. 정확히는 민국당이 아니라, 저 최지훈과 함께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그의 물음에 나는 태연하게 답변했다. “대한당에서 의원님을 버렸으니까요.” 순간, 차명건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와 동시에 이를 빠득 깨무는 모션이 보였다. 역린을 건드린 것이지. 그는 주먹을 꽉 쥐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건 맞지만, 그렇다고 당을 배신할 정도는 아닙니다. 어쨌든 제가 잘못을 저질렀기에 발생한 일이고, 저는 여전히 당에 충성하고 있거든요.” “그 충성은 무엇을 위한 충성입니까?” 차명건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결국 권력을 잡기 위함 아닙니까?” 그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터. 단순히 가치관이나 조국의 미래 따위라는 변명은 초선 의원들도 쓸 법하지 않은 변명이니까. “그게 맞으니 더욱 손을 잡을 수 없는 겁니다.” 차명건 의원도 돌려 말하지 않았다. “피선거권 박탈 4년입니다. 세월 그렇게 길지 않아요. 4년 채우고 다음 보궐선거에라도 나가야죠.” “그 보궐선거에서 공천 받으실 수 있다고 확신하실 수 있으십니까?” “내가 당에서 있던 게 20년이 다 되는데…….” “알죠.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노력했던 거. 그런데 선거 무효형 받고 나서 대한당에서 조금이라도 챙겨줬습니까?” 그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대한당에서 4선 하셨죠? 무효된 이번 총선을 제외하고도 3선. 그 외에 당원으로 충성했던 게 10년 조금 못 되고요.” “…….” “그만큼 오래 계셨는데 자리 없어지는 건 한순간이었습니다. 판결나기 한참 전부터 원내대표 빈자리 누가 차지할지 한참 논의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상국 당 대표가 나서서 말이죠.” “그건 당의 미래를 위해…….” “최지원이 당신 판결 내린 판사를 따로 만난 적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까?” 순간, 차명건의 동공이 흔들렸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말 그대롭니다. 선고 하루 전, 최지원이 판사를 찾아갔죠. 피선거권 박탈 기간을 최대한 오래 잡아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 “……증거 있습니까?” “못 믿으실 것 같아서 준비했습니다.” 나는 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우리 보좌진 중 한 명이 직접 찍어온 사진이다. 실제로 선고 하루 전에 둘이 만났었다. 물론, 대화 내용이 내가 말한 것과 같지는 않았으나, 사진까지 들이민 마당에 차명건이 믿지 않을 수가 없을 터. “4년, 생각보다 깁니다, 의원님.” 차명건 의원이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진을 빼앗아 다시 품에 넣었다. “보궐선거는 정확히 5년 뒤죠. 그 기간 지나도 의원님께 기회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팽하지만 않으면 오히려 다행이죠.” “……그렇다고 최 의원님을 도울 순 없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면, 이 자리에 나오지 않으셨겠죠.”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품고 있기에 이곳에 온 것일 터. 아니나 다를까, 그는 내 시선을 피했다. “당의 보복이 두려우신 거 아닙니까?” “…….”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힘이 없을 때나 두려워하는 겁니다. 아무 때나 쫄고 그럴 필요 없죠.” 나는 슬쩍 그에게 몸을 기울이며 달콤한 말을 건넸다. “다시 배지 달면 오히려 당당하게 마주볼 수 있으실 겁니다.” “……지금 사람 놀리는 겁니까?” 차명건은 발끈하며 눈을 부릅떴다. “어차피 배지 못 다는 사람한테…….” “제가 지금 장난하는 것처럼 보이십니까?” 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공천받는 건 힘드실 겁니다. 까놓고 말해서 보궐선거의 경우, 원하는 지역구에 나갈 순 없으니 당선을 확정할 수도 없고요. 단.” 씨익 입꼬리를 휘었다. “대한당에서는 말이죠.” 순간 그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민국당에서 비례대표 자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한 자릿수 번호로 드리죠. 무조건 당선됩니다.” 하지만 차명건은 쉽게 넘어오지 않았다. “당신에겐 그럴 권한도 없잖아요.” 그는 고개를 돌렸다. “막말로 지금 주현이 법 관련해서 실언한 걸로 당에서도 쫓겨나게 생긴 것 같은데.” 그 말을 할 줄 알았다. 나는 준비했던 녹음본을 재생시켰다. -모든 범죄는 피의자가 잘못한 것이지, 피해자가 잘못한 건 아닙니다. 주현이도 절대 잘못한 게 아니고……. 전상국 의원 및 채형호 의원과 나눴던 대화 내용. 그는 놀란 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입을 쩍 벌렸고. “이대로 내가 쫓겨날 것 같아?”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종로라는 지역구는 야바위해서 따먹는 게 아니야.” 오랜 준비와 실력 그리고 운까지 모든 게 겸비되어야 차지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정치 1번지 종로다. “…….”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험상궂은 얼굴을 풀고 방긋 미소를 지었다. “자세한 건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허나, 의원님께서 제게 자료를 주신다면, 비례대표 자리를 약속드리죠.” “어떤 자료를 말하는 겁니까?” “대한당의 비리 자료.”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전상국이 당 대표로 있으면서 내부에서 해먹은 부정부패.” 그는 이내 고민하다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제 피선거권 박탈 기간이 4년인데, 다음 총선에서도 비례대표는 힘들잖습니까? 그러면 결국 8년 뒤인데…….” “특별사면이 괜히 있겠습니까?” “일개 국회의원이 그걸 어떻게 받아내는데요? 특별사면은 아무나 합니까?” “특별사면을 누가하는데요?” “일국의 대통령이…… 아.” 그는 낮게 탄식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굳이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특별사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유일한 대통령의 권한. 4년이면, 적어도 한두 번. 많게는 두세 번까지도 특별사면을 한다. 시간과 기회는 충분하다는 뜻이지. “제 손 잡으면, 그 정돈 해 드릴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 복직도 아니고 특별사면. 그 정도는 굳이 아버지를 통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정무수석을 포함해 여민관에서 꽤 쌓아 둔 인맥으로도 어렵지 않을 터. 특별사면의 주체는 대통령이나, 그 명단을 올리는 건 청와대 직원들이니까. 정 안 되면, 정무수석은 약점도 하나 쥐고 있으니 불가능할 게 없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는 천천히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 손을 잡고 정계로 화려하게 돌아오시겠습니까? 아니면, 지금처럼 비루하게 그림자 속에서 다른 인간들 눈치나 보며 숨어 사시겠습니까?” 차명건은 한참동안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오래지 않아. “제가 안 할 이유가 없죠.” 굳세게 내 손을 맞잡았다. “이틀 내로 자료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 * * “차명건 前 의원으로부터 자료 들어왔습니다.” 마돈나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체크했는데 전부 사실 맞습니다.” 나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았어.” “기자에게 넘길까요?” “아니, 우선 맛보기부터 해야지.” 휴대폰을 꺼내 팩트체커 김태원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의원님! 수신음이 채 몇 번 들리지도 않아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든 말씀만 해 주십시오. 준비됐습니다. 녹음 자료는 미리 넘겨두었다. 원할 때 지체 없이 터뜨릴 수 있도록. 그리고 그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다. “기사 올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마우스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녹취록 및 녹음본 전부 업로드 됐습니다. 1시간 안에 여론 뒤집힐 겁니다. 정확히 전상국 의원이 채형호 의원을 소개하고 합석을 시작할 때부터 술자리를 나설 때까지 한 마디도 빼지 않고 전부 공개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예,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창가에 섰다. 전상국 이 새끼, 슬슬 똥줄 좀 타겠지? 이번엔 단순히 녹취록 하나로 끝나지 않아. 이런 비극적인 사건을 정치에 이용하려 한 죗값을 치러야지. 반격 시작이다, 이 개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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