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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플레이 (3) (141/200)

언론플레이 (3)2022.03.21.

“만세당 의원이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내가 아는 만세당 의원은 극소수였으니까. 애초에 만세당엔 의한회에 소속된 의원들도 꽤 적었고, 나와 부딪칠 일도 없다고 봐도 무방할 터. 그나마 말을 많이 섞어 본 사람이 있다면, 성문종 정도? 허나, 그 인간과 내가 사적인 자리에서 엮일 일은 없기에 그 인간일 리는 만무했다. “자네랑 따로 만난 적은 없을 거야. 기회가 되면 대화를 나눠 보고 싶다고 한 것이니까.” 전상국 대표에게 물었다. “어떤 의원입니까?” “채형호 의원이라고 강원도 지역구에 있는 친구인데…… 알고 있나?” “아, 들어본 것 같긴 합니다.” 진짜 말 그대로 들어본 적만 있는 정도. 나이가 마흔여덟에 올해가 초선이었나? 특별한 활약상은 없어서 딱히 관련된 기억은 없었다. “굳이 이 자리에 들일 필요가 있습니까?” “아, 그러면 가라고 할까?” “그게 나을 것 같은데요.” “그래?” 전상국 대표는 곤란하다는 듯 턱을 매만졌다. “그러면 아까 보냈어야 되는데…… 내가 자네한테 잘 이야기해 본다고 다른 의원들 다 나갈 때 혼자 남아 있으라고 했거든.” “그렇습니까?” “괜히 또 미안하게 됐네. 뭐, 어쩔 수 없지.” 씁쓸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붙잡았다. “그러면 그냥 오라고 하십시오.” “그래도 되겠나?” “예. 대표님 입장도 있으니까요.” “고맙네.” 전상국 대표는 활짝 웃으며 내 손을 잡았다. “내가 다음에 술 한 잔 거하게 쏘겠네.” “괜찮습니다.” 그는 문을 열고 밖을 향해 손짓했다. “채 의원, 들어오게.” 잠시 후, 풍채가 좋은 남성 하나가 룸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아, 네. 안녕하세요.” “채형호입니다.” 그는 넉살 좋게 손을 내밀었다. “최지훈입니다.” “매번 먼발치에서만 보다가 가까이서 보니까 좋네요.” “앉으시죠.” “예.” 채형호 의원. 배가 불뚝 나오고 살짝 까진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전형적인 평범한 얼굴. 저러한 친근함과 푸근함을 어필해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걸로 기억한다. 그는 앉자마자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부르더니. “여기서 제일 좋고 비싼 술로 주십시오.” 주문을 하며 내게 말했다. “좋은 자리니, 제가 쏘겠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에헤이, 저희 국회의원끼리는 김영란법도 적용되지 않잖습니까?” 오래지 않아, 케이스에 담겨 있는 술이 한 병 들어왔다. “한 잔 받으시죠.” 채형호 의원은 술을 한 잔 꺾으며 자연스레 입을 열었다. “갑작스레 와서 놀라셨죠?” “아닙니다.” “부담스러워하지 마십시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최 의원님의 행보에 감탄하는 순수한 팬심입니다.” “제가 뭘 대단한 걸 했다고.” 세상 사는 이야기. 한창 핫한 정치 내용 등 평범한 주제로 대화를 하며 술자리는 무르익어갔다. 그렇게 술을 몇 병쯤 비웠을까. 술기운이 점점 세게 돌기 시작할 즈음. “요즘 최 의원님께서 고생이 많으십니다.” 채형호 의원이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주현이 법 때문에 관심이 많이 쏠려 있는데…… 워낙 민감한 건이잖습니까?” 전상국 의원은 민망하다는 듯 술잔을 꺾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맡았으니, 감당해야 하는 일이죠.” “그러고 보니, 여기에 대한당, 민국당, 만세당 모두 모였네.” 전상국 의원은 손가락을 퉁기며 나와 채형호 의원을 둘러보았다. “기왕 말 나온 김에 터놓고 이야기하자고.” 내 입장에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현재 다른 당에서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궁금했으니까. “저희 만세당은 특별할 것 없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묻어가려고요.” “하긴, 그게 낫겠지.” “그런데…….” 채형호 의원은 들고 있던 술잔을 탁 내려놓으며 말을 꺼냈다. “솔직히 이번 사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취한 듯, 아닌 듯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김창길 그 범죄자 새끼, 당연히 나쁜 놈입니다.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정도고요. 그런데 까놓고 말해서 그게 온전히 그 녀석 탓이라고 볼 수는 없잖습니까?” 갑자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려는 것인가 싶어 조용히 들었다. “피해자 그 주현이, 걔도 문제입니다. 중학생인 여자애가 발랑 까져서 선배들이 술 마시자고 부른다고 모텔에 가다니…… 그때 거절했으면 이 사달이 벌어지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전상국 의원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사고가 터진 뒤에도 문제입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신고를 해야지, 계속 휘둘리다가 그 꼴을 당하다니, 어휴……. 답답합니다, 답답해.” 채형호 의원은 지그시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최 의원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글쎄요.” 나는 술을 한 잔 마시며 솔직한 속내를 이야기했다. “어린 애들이 술을 마시는 게 옳은 행동은 아니지만, 그 사건이 벌어질 줄 알고 모텔에 간 건 아니잖습니까?” “그렇기야 하지만, 모텔이라는 장소의 특성이 있잖습니까? 주현이 걔도 잘못한 겁니다.” “위험한 발언이십니다.” 그를 또렷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모든 범죄는 피의자가 잘못한 것이지, 피해자가 잘못한 건 아닙니다. 주현이도 절대 잘못한 게 아니고요.” “…….” “얼마 전에 클럽에서 모 여성에게 물뽕을 먹이고 성폭행했던 사건이 있었던 거 아십니까?” “알고 있습니다.” “성폭행 사건이 가장 많이 터지는 곳이 클럽인데, 그렇다고 클럽에 출입했던 그 여성이 잘못한 건 아니잖습니까?” “클럽에 출입했다는 게 그럴 위험성을 안고 갔다고는 볼 수 있겠죠.” “그렇게 위험한 장소였다면, 정부에서 통제를 했겠죠. 그래야 마땅한 거 아닙니까?” “클럽에 가는 게 문란한 건 사실 아닙니까?” 녀석은 아까부터 계속해서 되도 않는 말을 씨불였다. “같은 이치라는 겁니다. 모텔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있는데, 주현이 그 친구가 애초에 선배들이 있는 모텔에 간 건 그런 일을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깔고 간 거 아니겠습니까?” “채형호 의원님.” 나는 정색하며 그를 바라봤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십니까?”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면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하시죠?” “그게 아니라…….” “피해자가 잘 대비한다고 해서 범죄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전 세계가 평화로웠을 겁니다. 국회의원이나 되시는 분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실 수 있으십니까?” “저는 사적인 술자리니까 편하게…….” “됐습니다.” 나는 외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오늘 술값은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얻어먹고 싶지 않네요.” 직접 계산까지 하고 밖으로 나섰다. * * * “에라이!” 둘째 최지원은 들고 있던 헤드폰을 집어던졌다. “어떻게 쓸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어?” 모든 상황은 연출된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의 호출은 거짓이었다. 자신이 자리를 비우고 자리가 무르익으면 채형호 의원을 투입해 최지훈의 부정한 발언을 이끌어내는 것. 채형호 의원은 성문종이 직접 섭외했다. 최지훈과 낯이 익지 않은 인물이어야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술에 취한 데다가 채형호 의원이 거친 말을 내뱉으면, 최지훈이 한 마디 정도의 실언은 할 줄 알았다. 그걸 캐치하기 위해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영상을 찍고 있는 건 물론, 최지원은 떨어진 방에서 실시간으로 도청까지 했고. 그러나 결론적으로 최지훈은 실수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한들, 그의 가치관이 변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전상국 대표 또한 답답하다는 듯 머리를 쓸었다. “이렇게 되면 다음 기회조차 없지 않나?” “없죠. 지훈이 그놈이 채형호 의원을 만나려고 하겠습니까?” “흐음…….” 그때, 조용히 듣고 있던 보좌관 하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차라리 편집을 해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무슨 편집?” “대화 몇 마디를 앞뒤로 잘라서 붙이는 겁니다.” “……어떻게?” “보십시오.” 그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움직여 몇 장면을 잘라 붙였다. “이렇게 하면, 최지훈 의원이 ‘어린 애들이 술을 마시는 게 옳은 행동은 아니지만, 그렇게 위험한 장소에 갔다는 건, 그 사건이 벌어질 줄 알고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주현이 걔가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들리잖습니까?” 주현이 법에 대한 이야기는 짧았으나, 그전부터 몇 시간이고 대화를 했기에 대화를 따낼 소스는 충분했다. “시간만 있으면 더 위험한 발언도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습니다.” “영상이 조금 부자연스러운데? 음식도 갑자기 사라졌다 등장하길 반복하고.” “아니죠.” 최지원 의원은 손가락을 퉁겼다. “영상이 아니라, 녹음본으로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아!” “맞네. 말투에서 살짝 끊기는 부분은 말하다가 잠깐 쉬는 것처럼 보일 테고.” 전상국 대표는 클클 웃음을 터뜨렸다. “목소리야 분석하면 최지훈이라는 게 나올 테지만, 이 녹음본은 어차피 법정에서 쓰이지도 않을 거고…….” “맞습니다. 어차피 국민들만 들으면 되는 법이니까요.” 그는 눈썹을 들썩였다. “최지훈이 내일 법안 1차 정리해서 발표한다고 했지?” “예, 맞습니다.” “딱 3시간 전에 터뜨리자고. 기자들 미끼 물고 다 같이 달려들면, 최지훈도 대응 못 할 거야.” 그들은 음흉하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 * * “1차 정리안, 최종 정리 됐어?” “예. 이대로 발표하시면 됩니다.” “일단 이 정도면 양 측 시민들도 모두 만족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일단 이렇게 발표하고 추후에 수정하는 방향으로…….” 똑똑. “의원님!” 김한나 비서가 다급하게 집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필시 평범한 상황이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무슨 일인데?” “이걸 좀 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그녀는 기사가 떠 있는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속보! 최지훈 의원 막말 논란…… ‘주현이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피의자가 부를 때 간 건 범죄를 유발한 행동이다’?] “이런 미친놈들.” 아니나 다를까, 엊그제 있었던 나와의 대화를 녹음하여 기사로 냈다. 단순히 녹음본을 유출한 게 아니라, 짜깁기를 했다. 내가 주현이에게 막말을 한 것처럼 편집을 했으니, 댓글은 아주 박살이 나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의원님.” 마돈나는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어제 대화하신 녹음본 전부 파일화 및 문서화까지 해 두었습니다. 녹취록 전문 공개되어도 저희 쪽에 타격되는 사항은 없는데, 바로 발표해버릴까요?” 만에 하나 있을 상황을 대비해 평소보다 더 말조심을 했다. 주현이 법에 관련된 건 평소 생각이었으니 당연하고, 그전에 있던 논제에서도 문제되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아니, 발표하지 마.” 마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법안 1차 정리 발표도 연기시켜.” 그녀는 당황한 듯 헛숨을 들이켰다. “논란이 커질 텐데요. 저희가 정말 저 말을 한 것처럼 보일 겁니다. 안 그래도 지금 실시간 검색어에 도배되고 있고요.” “지금 당장은 우리가 당황한 척하자고. 그쪽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자는 거야.”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판 한 번 키워보자고.” “……예?” “이런 식으로 없는 일을 만들어서 엿 먹이려고 했으면, 제대로 복수해 줘야지.” 전상국 대표 그 자식이 꾸민 일이다. 둘째 최지원이 엮여 있는지, 아닌지는 아직 확신할 수는 없으나. 전상국이 연관된 것만은 확실하다. “총선 때부터 영 눈꼴 시렸는데, 이번 기회에 전상국 그 새끼가 기어오르지 못하게 제대로 눌러줘야겠어.” “…….” “받은 걸 갚아주는 정도는 안 되고, 되로 받았으면 말로 갚아 줘야하지 않겠어?” 나는 태블릿 PC를 내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당장 차명건 의원 연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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