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플레이 (2)2022.03.20.
[22대 국회의 첫 안건은 역시나 주현이 법!] [시체 토막유기범 김창식…… 촉법소년으로 결판나나?] [주현이 법 향방은 최지훈에게 달렸다?] [6월 임시 국회의 핵심 논안의 해결은 민국당의 최지훈이 담당…….] “기사에서 보시면 아실 수 있겠지만, 대한당에서 주현이 법과 관련해 막내 도련님을 아예 타깃으로 잡아 두는 바람에 꽤나 곤경에 처하신 것 같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조심스레 보고했다. “국민들이 전부 주목하고 있기도 하고, 워낙 예민한 주현이 법의 특성상, 어떻게든 통과는 되겠지만, 분명 찬반 여론이 나뉠 겁니다. 대한당이 여론을 조성한 탓에 법안의 대표 격이 되어 버린 막내 도련님이 돌을 맞을 테고요.” “흐음…….” 최준석 대통령은 심기가 불편한 듯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이대로 두면, 높은 확률로 타격을 입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그는 오랜 고민 끝에 어렵사리 결론을 내렸다. “내버려 둬.” 고태욱 비서실장은 짐짓 놀란 표정을 감췄다. “여기부터는 대한당과 민국당의 싸움이야.” “……아.” 마음 같아서는 최준석 대통령도 막내 최지훈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막아주고 싶었다. 허나, 이번 6월 임시 국회는 제22대 국회의 첫 싸움판이다. 대한당에서도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기에 이번 민국당에서 가장 시선을 끌고 있는 최지훈을 타깃으로 잡은 것일 터. 아무리 자신이 대통령이라고 한들, 여기부터는 국회의 영역이었기에 침범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내가 싸고 돌면 더 반발심만 일으킬 거야.” 말 그대로 과보호다. 섣부른 결정은 되레 최지훈에 대한 반발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터. “맞습니다. 매번 각하께서 도와주면 대한당에서도 오히려 다른 생각을 품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번엔 조용히 지켜보자고.” 최준석 대통령은 의자에 지긋하게 몸을 기댔다.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녀석은 아니니까. 분명 녀석도 해법을 찾고 있을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막내아들은 늘 그래 왔으니까.’라는 두터운 믿음이 담겨 있었다. 최준석의 시선은 책상 위에 올려 있던 막내의 사진으로 향했다. “왠지 막내 놈이라면 그럴 것 같아.” 그의 눈에는 짙은 신뢰가 드러났다. “알겠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클립보드를 넘기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지시하셨던 대로 둘째 도련님에 대해서 조금 알아봤습니다.” “지원이 그 녀석은 뭐 하고 다니는 거야? 요즘 대한당이 시끄럽더만.” “아무래도 원내대표로 올라가는 과정이 꽤 복잡했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내부 문제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최근 들어서는 전상국 당대표랑 계속 붙어 다니는 걸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전 의원이랑은 왜?” 최준석 대통령은 미간을 찌푸렸다. “요즘 임시 국회 기간이라 전상국 만날 시간도 없을 것 아니야?” 전상국은 당 대표지만, 국회의원은 아니기에 임시 국회에 참석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아무래도 수면 밑에서의 활동을 전상국 당 대표가 대신하는 것 같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뭐 하는지 한 번 알아볼까요?” “내버려 둬. 최지원이랑 붙어먹고 있다며. 둘째 놈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알겠습니다.” “그보다 고 실장은 내가 죽은 이후에 북한에서 돌발행동하지 않도록 잘 대비하는 데 집중해.”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아직 정정하시잖습니까?” “정정은 무슨.” 최준석 대통령은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얼굴에 검버섯 천지구먼. 요즘 국민들 앞에 설 때마다 무슨 분을 그렇게 찍어 바르는지…… 연예인 된 기분이라니까.” 고태욱 비서실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속은 답답함의 극치였다. 갈수록 대통령의 건강이 악화되는 건 눈으로 보이는데, 아무리 검진을 해도 나오는 게 없었으니까. 물론, 7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다가 대통령이 된 뒤로는 워낙 일에 파묻혀 매일 같이 밤샘도 마다하고 살아 온 탓에 건강이 좋지 못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렇다고 대통령의 죽음이 다가오는 걸 받아들이는 건 별개의 문제였으니까. “여하튼 고 실장이 슬슬 준비해 줘. 북한 그놈들은 분명 내가 죽으면 축포로 포격 도발을 할 녀석들이니까.” “국정원과 국방부에 단단히 일러두고 또 팔로잉하겠습니다.” “그래.” * * * 국회의원실. “그러면 이 부분은 전문가에게 따로 이야기해서 보완한 후에…….” 마돈나와 단둘이 회의를 하던 도중.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은 둘째 형, 최지원. 내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 걸 캐치한 마돈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나가 있을까요?” “아니야, 괜찮아.” 그녀에게 잠깐 앉아 있으라는 손짓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여보세요?” -어, 동생아. 통화 괜찮아? “응. 무슨 일이야?” -오늘 저녁에 혹시 바쁘니? 아니면, 내일도 괜찮고. “오늘은 법안 좀 봐야 될 것 같고, 내일은 따로 일정 없는데, 왜?” -같이 밥이나 먹을까 해서. 술 한잔하면 더 좋고. 주현이 법으로 국회가 한창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에 갑자기 술자리라니. 저의가 의심되었다. “특별한 일이라도 있어?” -실은…….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상국 당대표 때문에 말이야. “그 인간이 왜?” -너랑 화해를 하고 싶다네. “……갑자기?” -갑자기는 아니야. 얼마 전부터 계속 자리 한 번 마련해 줄 수 있냐고 부탁했는데, 내가 안 된다고 거절했거든. 그런데 내가 부탁할 일이 하나 생겨서 말이야. 그에 대한 대가로 나와의 술자리를 만들어주기로 이야기한 모양. “일단, 생각해 볼게. 요즘 주현이 법 때문에 워낙 바빠서 될지 모르겠다.” -알겠어. 오늘 저녁까지 답변해 줄 수 있어? “응. 되든, 안 되든 연락해 줄게.” -그래, 고맙다. 쉬어라. “고생해.” 전화를 끊자, 마돈나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최지원 의원입니까?” “응. 같이 술 한 잔 마시자고 하는데…… 전상국 대표가 나랑 화해하고 싶다네.” “나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럴까 생각 중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녀는 걱정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지원이 끼어 있으면…….” 마돈나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갔다. “게다가 상황이 상황인 만큼, 지금은 굳이 만나실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주현이 법으로 한창 대한당과 민국당이 날을 세우고 있는 이 타이밍에 서로 만나서 좋은 이야기가 나오진 않을 테니까.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직접 만나 봐야 대한당 놈들이 차후에 어떤 계획을 세울지 또 주현이 법을 어떻게 풀어갈지 알 수 있을 테니까.” 이번 법안은 어떻게 되든 간에 발목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붙잡을 수 있는 건. 최소한 대한당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면, 법안 상정에 도움이 될 터. “전상국과 화해할 필요성은 있으십니까?” “있기야 하지, 원래 아버지 사람이고 앞으로도 국회에서 계속 마주쳐야 하는데 지금처럼 날을 세워서 좋을 건 없으니까.” 아무리 여당과 야당이라지만, 사사건건 부딪치면, 아버지의 입장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을 터. “옳으신 말씀이긴 하나, 저쪽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니 걱정이 됩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그래야지.” 마돈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대화를 전부 녹음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니면 제가 실시간으로 도청을 해도 되고요.” 괜찮은 제안이다. 아무리 내가 정신 줄을 붙잡으려고 한들,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며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놓치는 게 있을 수도 있을 테니까. “녹음하는 게 낫겠네.” “내일 오전까지 넥타이핀형 녹음기 하나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래, 부탁 좀 할게.” * * * 서울의 한 고급 주점. “안녕하십니까.” 프라이빗 룸에 꾸벅 인사를 하며 들어가자, 두 명이 남자가 나를 반겨주었다. “어, 동생 왔어?” “오랜만이야, 최 의원. 어서 앉게.” “예.” 내 술잔은 최지원이 직접 채워주었다. “자자, 한잔하자고.” 오자마자 그는 내 손에 잔을 쥐여 주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건배를 하며 한 잔을 비웠다. 쓴 알코올 향이 코를 통해 새어나왔다. 보통 술도 아니고 꽤나 도수가 있는 술이다. 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전상국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안하네, 최 의원.” 조금 놀랐다. 최지원을 통해 꾸준히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했기에 그가 조금 숙이고 들어오는 분위기일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오자마자 사과를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으니까. 혹시 청와대의 압박이 있었던 건가 싶었지만, 아버지의 성격 상 그럴 리는 없을 터. 아버지와의 관계가 있으니, 그저 제 발 저려서 이러는 것이겠지. “그땐 서로 오해도 있었고…….” “아닙니다. 저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공격했잖습니까? 피차일반이죠.” 물론, 정확히 따지면 김치호 사건은 내가 작정하고 그를 엿 먹인 것이긴 하나. 그전에 그가 먼저 평화협정을 깼으니까. “어쨌든 옛 일은 다 잊고 다시 예전처럼 편하게 지내고 싶네만…….”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그런가?” 전상국 대표는 눈썹을 들썩이며 내 잔을 채워주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말을 덧붙였다. “이젠 서로 당적이 달라졌기에 예전과 그대로는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기야 하지. 다만, 마음만 갖자는 거지.” “알겠습니다.” 최지원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렇게 훈훈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각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과연 아버지가 좋아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띠리리리-. 그때, 최지원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발신인을 확인하더니 흠칫 놀라고는. “쉿.”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전화를 받았다. “예, 아버지.” ……아버지? “네. 네. 아닙니다. 갈 수 있습니다. 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짧은 대화를 끝으로 그는 전화를 끊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각하께서 부르셔서…….” “아니네. 가 봐야지, 당연히 가야지.” 전상국 대표는 얼른 가라는 손짓을 했다. “미안하다, 동생아. 내가 불러 놓고…….” “아니, 그럴 수 있지.” “보좌관 통해서 카드 맡기고 갈 테니 두 분 다 계산하지 마십시오.” 그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술자리를 떠났다. 조금 의심쩍긴 했다. 아버지께서 호출하면 가는 게 맞긴 하지만, 이 시간에 당신께서 직접 호출하는 일은 드무니까. 특히나 요즘은 그럴 만한 일도 없고. “자자, 최 의원.” 전상국 대표는 잔을 내밀었다. “어차피 우리 둘을 위한 자리였지 않나?” “예.” 그렇게 얼마쯤 마셨을까. 슬슬 취기가 올라올 무렵. “잠깐 물 좀 빼고 오겠네.” 잠시 후, 화장실에 다녀온다던 그는 다시 돌아오더니, 자리에 앉는 대신 문을 열어놓고 멈춰 서서 나를 불렀다. “최 의원.” “예?” “내가 화장실에서 아는 의원 하나를 만났는데, 그쪽은 자리가 파했다고 하네. 괜찮으면 같이 마실까 하거든. 이 친구도 자네랑 이야기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하고.” “누구길래 그러십니까?” “만세당 의원인데…… 괜찮겠나?” 이내 전상국 의원의 눈꼬리가 의뭉스레 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