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플레이 (1)2022.03.19.
산뜻하게 6월 임시국회가 시작되었다. 민국당의 원내대표는 구태양 의원이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 덕분에 소수이지만 우리 쪽으로 조금 더 의원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함께 뜻을 모은 이들은 나를 포함해 총 27명. 백태성 의원을 따르는 60명에 비해서는 적은 인원이지만, 지금까지 100% 확실하게 데려올 수 있는 인원들만 데려온 것치고는 오히려 많을 지경이었다. 나중에 정식으로 백태성에게 대항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수를 채울 수 있겠지. 엄청나게 많을 필요도 없다. 당권을 쥐기 위해서는 정원 87명의 과반수인 44명만 채우면 되는데. 지금까지 27명이기에 딱 16명만 데려오면 되는 법이니까. “의원님 준비 됐습니다.” “그래, 가자고.” 마돈나의 신호를 받고 의원실을 나섰다. 잠시 후 도착한, 본회의실. 300개의 의석에 서서히 사람들이 들어차고 있었다. “잘 다녀오십시오.” “그래.” 꾸벅 인사하며 돌아가는 마돈나를 뒤로하고 본회의실로 들어갔다. 제2당인 민국당은 국회의장석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의석이 배치된다. 내 이름 최지훈 석 자가 쓰여 있는 자리를 찾아 도착하자, 입가엔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최 의원.” 어깨에 가벼운 손길이 느껴졌다. “아, 대표님.” “편하게 의원님이라고 불러. 늘 하던 것처럼.” 백태성 의원은 껄껄 웃음을 지었다. “당대표보다는 같은 의원이 친근하지 않나?” “아닙니다. 공적인 자리이니 이제는 대표님으로 모셔야죠.” “그래? 편한대로 해.” 그는 내 좌석에 손을 얹고 발언대를 바라보았다. “자리 좋네.” 생색내는 것이다. 이 자리는 백태성 대표가 직접 배치해 준 것이니까. 각 정당에서 직접 자리 배치를 하나, 일반적으로 초선 의원을 앞자리에 앉히고 다선 의원을 뒷좌석에 배치한다. 허나, 대체로 그런 것일 뿐, 절대적이지는 않기에 중요한 건 당 대표의 의지. 한 마디로 당 내에서의 입지를 보여주기도 한다는 뜻이지. 덕분에 나는 재선 및 3선 의원들과 비슷한 위치에 앉을 수 있었다. “예. 멀지도 않아서 잘 보이고, 또 그리 가깝지도 않아서 부담되지 않네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척하더니 슬쩍 내 귓가로 몸을 기울이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법안이 뭔지 알지?” “주현이 법 아니겠습니까?” “그래. 아마 이번 주 내로 대한당에서 먼저 이야기를 꺼낼 거야. 우리 법사위 사람들이 먼저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하라고.” “알겠습니다.” 해당 법안은 발의되고 논의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법사위에서 어떻게 통과시키느냐가 문제이기에 대한당에서는 법사위에 소속된 의원들을 먼저 물어뜯을 텐데, 민국당에서 법사위에 소속된 초선 의원은 나뿐이니까. 게다가 우리 측의 맹렬한 반대로 법사위에 들어오지 못한 한유라도 내가 그녀를 반대했다는 건 깨달았을 테기에 어떻게든 공격하려 들 터. 이제부터는 정말 야생이다. “그래. 한 번 잘해 보자고. 주현이법에 민국당의 목숨이 달려 있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백태성 대표는 다른 의원들에게 옮겨 가 인사를 하면서도 연신 관련 법안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몇 번이고 중요성을 더 강조해도 아쉽지 않을 테니까. 실제로 6월 임시 국회에서 가장 핵심이 될 안건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300명의 국회의원들 중 누구든 간에 ‘주현이 법’이라고 입을 모을 것이다. 주현이 법. 얼마 전, 온갖 언론에서 다루고 관련 다큐까지도 방영되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수년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N번방 사건보다 훨씬 더 악질이라고 불렸다. 은평구에 사는 이주현이라는 14살짜리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하나 있었다. 그녀가 이 사건의 피해자였고. 가해자는 같은 동네에 사는 15세 소년 김창길로, 중학교 2학년이나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13세. 처음엔 술을 마시자며 모텔로 부른 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주현이를 동네 친구들과 함께 윤간했다. 이주현은 아침이 되어서야 자신이 당한 걸 알았지만, 워낙 경황이 없고 수치심에 휩싸여 차마 신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부모님한테 말을 꺼내려 했으나, 술에 취해서 기억도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그녀를 다그칠 뿐이었기에 모텔로 갔다는 말은 차마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4명의 가해자들은 윤간 당시에 촬영한 동영상을 돌려보며 조롱했지만, 한 명의 어머니에게 들키는 바람에 모두들 발각되는 게 두려워 삭제했다고 한다. 그 엄마라는 사람은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다는 게 참 분하고 애석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주현에게서 손을 뗀 다른 친구들과 달리, 김창길은 그 동영상을 삭제하는 대신 오히려 그녀에게 전송했다. 그는 학교와 커뮤니티에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며 이주현에게 성매매를 시키기 시작한다. 랜덤채팅을 통해 김창길 본인이 직접 매칭해서 이주현을 보낸 것이다. 물론, 돈은 모두 김창길이 중간에서 가로채고 이주현을 노예처럼 부려먹은 것이지. 단순히 악질을 넘어서 악마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말이 중학생이지, 사실상 어지간한 성인범죄보다 더 경악스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시민들은 차라리 그랬다면, 다행이라는 말까지 할 정도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주현은 사망했다. 그것도 낯선 모텔에서. 성매수남은 김창길에게 추가금을 지급하고 과격한 플레이를 하기로 했는데. 그 과정에서 목을 조르다 그만,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인공호흡을 하려는 시도는 없었다. 그 자리에서 성매수남은 도주했고. 뒤늦게 그 사실을 확인한 김창길은 신고하기는커녕, 오히려 이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 단순 은폐도 아니고, 시체를 토막 내 유기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모텔 사장의 신고로 사건이 밝혀지고 성매수남과 함께 구속이 되었는데. 오히려 결말은 가히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었다. 김창길이 1심에서 받은 형량은 2년. 고작 소년원에서의 2년이었다. 김창길의 범죄는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었으나, 만 10세 이상이면서 만 14세 미만에 들어가는 ‘촉법소년’이었기에 그 어떠한 범죄를 저질러도 최대 2년 이상 형을 받을 수가 없었기 때문. 이러한 결과로 인해 충격을 받은 이주현의 어머니가 자살을 했고. 그나마 홀로 남은 아버지가 1인 시위로 사건을 공론화시키며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검찰에서는 사실상 항소를 하더라도, 2년 이상의 형은 받아낼 수가 없었기에 포기하려 했으나. 오히려 김창길이 본인은 직접 살인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2년은 너무 가혹하다며 항소를 제기했다. 그래서 현재 김창길의 사건은 2심이 진행 중이다. 여론은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김창길에게 중형을 내려야 한다고 하나.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아무리 법이라는 게 국회에서 정한다지만,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면, 법은 제정 이후에 적용이 된다. 다시 말해 법이 바뀌더라도 김창길에게 2년 이상의 형을 내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된다. 대한당에서는 이 사건을 단순히 형사 사건이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로 대두시키고 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은평구라는 지역구 자체가 민국당 의원 유성민의 지역구였고. 더 큰 문제는 1심에서 기소를 맡은 공판검사가 바로 그의 아내라는 사실. 검사로서 그녀는 판사로부터 내릴 수 있는 최대 형량을 받아낸 것이나, 대한당에서는 속전속결로 치우려했다는 되도 않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었으니까. 혐의가 너무나도 확실해서 빠르게 진행한 걸로 꼬투리를 잡는, 말도 안 되는 풍경이지만, 워낙 사건에 분노한 국민들은 어떻게든 화를 표출해낼 대상을 찾아야만 했으니까. “자자, 다들 앉아주세요.” 국회의장은 의사봉을 내리치며 실내를 정숙시켰다. “22대 국회의 6월 임시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국민의례를 포함한 몇 가지 절차가 이뤄진 뒤, 곧바로 대한당의 한 의원이 발언대에 올랐다. “안녕하십니까, 임무택 의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의안으로는. “다들 논란되고 있는 지금 사건 아시죠?” 주현이 법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12년 전, 촉법소년에 대한 통과는 민국당에서 강행했습니다. 당시 의견으로는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은 제대로 된 의사결정 능력이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역시나 타깃은 우리 민국당. “지금 보시기에 어떻습니까? 그 덕분에 이 모양 이 꼴이 났습니다!” 임무택 의원은 언성을 높였다. “요즘 어떻습니까? 어린 친구들이 자기들은 촉법소년이라 어지간하면 훈방이라며 가게를 털기도 하고, 차까지 훔쳐서 운전하기도 합니다. 이게 민국당이 원하던 사회입니까?” 그는 시선을 굴리다가 나에게서 멈추며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최지훈 의원님의 의견이 듣고 싶네요.” 국회의장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당시 최지훈 의원은 국회 활동을 하던 시기가 아니었습니다.” 코웃음이 났다. 당시 나는 13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나이였으니까. 그러나 임무택 의원은 이미 준비해 왔다는 듯 고민도 않고 대답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임무택 의원은 목소리에 독기를 품고 말했다. “최지훈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입니다. 모든 법안에 대해 다루는 위원회죠. 게다가 12년 전, 민국당에서 되도 않는 촉법소년에 대한 법안을 강행한 건, 최지훈 의원과 같은 초선 의원들이 법사위에 들어가 국회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법안을 제정하고 통과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지훈 의원에게 답변을 듣고 싶네요.” 아무래도 나를 타깃으로 잡은 모양. 아마 한유라를 쫓아냈던 탓이 크겠지. 나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현대사회는 빠른 발전을 거듭하였고, 특히 인터넷망의 보급화로 인해 아이들의 지식 수준은 12년 전에 비해 지금은 월등하게 높아졌기에 당시의 기준과 지금의 기준은 달라질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 * * “최지훈 그 녀석 순발력 하나는 발군이네.” “아무래도 미리 준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초장은 괜찮았지만, 이제부터는 힘들 거야.” 대한당 당 대표 전상국. 만세당의 돌풍을 일으킨 성문종. 각 당의 핵심이라고 불릴 만한 두 명의 의원이 한데 모여 작당 모의를 하고 있었다. “주현이 법으로 확실하게 최지훈 물 먹일 수 있는 겁니까?” “당연하지.” 전상국 의원은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주현이 법은 모로 가든, 책임자는 욕을 먹게 되어 있어.” 그래서 이 법안으로 최지훈을 공격하기로 한 것이다. 특별법이 제정되어 통과되는 건 당연한 일이나. 어떤 방향으로 가든 간에 국민들 중엔 김창길의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하는 이들을 가라앉힐 수 없을 테니까. “그러면 다행입니다만…… 둘째 최지원 의원도 함께하는 겁니까?” “당연하지. 이 자리엔 참석하지 않았지만, 뜻은 모으고 있네.” “저는 그 친구가 걱정됩니다. 그래도 최지훈과 형제라…….” “에헤이, 걱정하지 말라니까.” 전상국 의원은 손을 내저었다. “거긴 피만 나누었을 뿐이지, 서로 잡아먹으려고 안달 난 집구석이야.” 성문종은 잠시 생각하다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그 집안은 그럴 수밖에 없겠네요.” “여하튼 이번 일로 최지훈 다리 한쪽은 분질러놓을 테니까 성 의원 자네는 후속타만 준비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