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뜯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5)2022.03.18.
-보낸 이: 구태양 의원. -5분 뒤에 나간다. 복도를 서성이던 나는 슬쩍 발걸음을 옮겨 백태성 의원실로 향했다. 똑똑. “의원님. 최지훈입니다.” “어, 최 의원.” 백태성 의원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반겼다. “지나가던 길에 잠깐 인사 차 들렀습니다.” “어, 앉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바쁘신데 제가 방해한 게 아니겠죠?” “그런 게 어디 있겠나?” 그는 껄껄 웃으며 소파로 향했다. “차는 뭐로 들겠나? 커피? 홍차? 녹차?” “비서가 타 주는 커피 말고 자판기 커피 한 잔 어떠십니까?” “그것도 매력 있지. 담배도 한 대 피울 겸 가자고.” “예.” 나는 먼저 발걸음을 옮겨 그를 이끌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반대 방향으로 가려하자, 그는 발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이쪽으로 가는 게 낫지 않나? 자판기는 이쪽이 더 가까운데.” “오선영 의원실 짐 옮긴다고 오늘 엘리베이터 완전 전세 냈습니다. 저쪽으로 가시죠.” “아, 그래?” 백태성 의원은 별 의심 없이 순조롭게 나를 따라왔다. 그리고 복도를 지나던 도중. 벌컥. 권주혁 의원실의 문이 열리며 네 명의 남자가 빠져나왔다. 사무실의 주인인 권주혁을 제외하고는 전부 젊은 피 국회의원들. 그들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꾸벅 인사를 했다. “어, 아침부터 바쁘네.” 백태성 의원은 대수롭지 않게 손을 흔들며 지나쳤다. 나는 슬쩍 구태양 의원을 비롯한 다른 이들과 눈인사만 하며 백태성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자판기 커피 한 잔을 들고 흡연 공간으로 내려와 담뱃불을 붙였다. “뭐 특별한 일은 없고?” “예, 안부 차 들렀습니다.” “그래, 고마워.” 백태성 의원은 별 생각 없이 담배 연기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나저나 의원님. 조금 전에 보셨습니까?” “어떤 거?” “권주혁 의원 말입니다.” 나는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구태양 의원 및 다른 의원도 함께 있더군요.” “권 의원이야 워낙 발이 넓으니까.” “그렇기야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권주혁 의원실에 다른 인물들의 출입이 잦은 것 같이 느껴져서요.” “……그래?” 백태성 의원은 천천히 기억을 되짚더니.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슬쩍 더 몰아쳤다. “제 보좌관들도 그쪽으로 지나갈 일이 많은데, 최근에 꽤 많은 의원들이 드나든다고 합니다.” 백태성은 진지한 눈빛으로 담배까지 내리며 물었다. “어떤 의원들이?” “주로 초선 및 재선 의원들이라고 합니다.” “음, 그래?” 민국당의 중진 의원들 중 대다수는 백태성의 측근들이다. 그들은 일부러 이번 계획에 넣지 않았다. 백태성의 귀에 새어나가는 걸 지양해야 했으니까. 특히 나이 들고 경력이 생길수록 백태성처럼 쥐고 있는 걸 지키는 방향으로 변하기 때문. 반대로 조금 더 역동적인 행동을 원하는 건 깨어있는 젊은 정치인들이다. 구태양 의원의 무리에 있는 인물들 중 대부분이 초선, 재선 의원들인 게 바로 그 이유지. “제 괜한 의심인 것 같은데…….” 나는 말하려다가 문득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왜, 말해 보게.” “괜히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것 같아서요.” “최 의원.” 백태성 의원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의심하는 건 좋은 습관이야. 정치에서는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하네. 그래야 함정에 빠지지 않아.” “……그렇습니까?” “그러니 편안하게 말해 보게.” “이건 순전히 제 생각입니다.” “그래. 이해하고 듣겠네.” 나는 한참을 더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권주혁 의원이 당대표 자리를 노리는 게 아닐까 싶어서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하하하하하하!” 백태성 의원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권주혁 의원이? 그럴 리 없어.” 그는 손까지 내저으며 부정했다. “아, 역시 그렇죠?” 나는 민망하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그래. 나랑 권 의원이 함께한 게 10년이 넘어. 그 원내대표 자리도 내가 끌어올려준 건데 감히 내 뒤통수를 치려고 하겠나?” “하긴, 맞습니다. 권주혁 의원이 그럴 리 없죠.” 그의 말에 수긍하는 척했다. 괜히 여기서 내 의견을 피력하는 게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제가 괜한 의심을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럴 수 있지.” “그건 그렇고.” 백태성은 온화하지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말해 줄 수 있나?” 나이스. 걸려들었다. 내가 할 일은 백태성의 감정을 돋우거나 채찍질을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의심의 씨앗을 심어 놓는 것뿐. “최근 들어 만나는 인물들이 대부분 초선 및 재선의 젊은 의원들이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당대표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잖습니까? 중진 의원들은 당연히 변화를 싫어하겠지만, 요즘 젊은 의원들은 한 자리 챙겨준다고 하면…….” “뒤통수 칠 만한 녀석들이 적지 않지.” “예. 게다가…….” 나는 슬쩍 주변을 살피는 척하며 목소리를 낮췄다. “상임위원회 배정 결과에 불만을 갖고 있는 이들도 꽤 있어서요.” “상임위에?” “예. 아무래도 정무위나 예결위와 같은 핵심 알짜배기 자리들을 의원님의 측근 사람들이 전부 가져갔다는 말이 돌고 있어서요.”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심각하게 변했다. “혹시 최 의원 자네는…….” “저는 법사위잖습니까? 당연히 만족하죠.” “한유라 건 때문에 마음에 걸려서 그렇네.” “아닙니다. 제 의견은 말씀드렸고, 선택은 당 대표이신 의원님이 하시는 거죠.” “한유라는 내가 책임지고 대한당에 태클 걸도록 하겠네.” “감사합니다. 저는 늘 의원님 편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지이잉-. 타이밍 좋게 내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의원님.” “그래. 또 보자고.” 백태성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슬쩍 돌아본 광경에 그는 심각한 얼굴로 담배를 물고 있었다. 그래, 이제부터 홀로 의심을 키워가겠지. 남은 건 기다림뿐이다. 적당한 때가 올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리다가 터뜨리면 된다. * * * “임규민 의원이 자주 드나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 김한음 보좌관의 보고에 백태성 의원은 심기가 불편한 듯 짙은 숨을 내뱉었다. “임규민 의원이면 아무래도…….” “자네가 생각해도 그렇지?” “확신은 아니어도 의심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임규민 의원. 그의 특징적인 점은 두 가지. 민국당 내에서 대표적으로 백태성 의원의 행보에 반대하는 인물이자. 현 원내대표 권주혁과 꽤나 친분이 두터운 사이. 정치판이란 게 학창시절처럼 유치하게 ’내가 싫어하는 이들과 너도 친하게 지내지 마!’와 같은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괜히 그릇이 좁아 보인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기에 철천지원수가 아닌 이상, 그러려니 하고 모른 척하는 것이지. 당연히 권주혁 의원이 임규민 의원과 가까이 지내는 걸 백태성 의원이 손가락질 할 수는 없는 법. 다만, 문제는 안 그래도 권주혁 의원에 대한 의심이 싹트고 있는 백태성 의원의 입장에서 보기에 이 상황은 영 불편하기 짝이 없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찾아가서 엎어버려?” “그랬다가 만약에 아니면…….” 그건 오히려 개망신이다. 높은 자리에 올라 있음에도 불안해서 부하들을 족쳐버린 당대표. 듣기만 해도 쪽팔린다. 권위가 무너지는 일이니까. 백태성 의원은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김 보좌관.” “예, 대표님.”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김한음 보좌관은 잠깐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처음 정보를 준 게 최지훈이라고 하셨잖습니까?” “그렇지.” “제가 그쪽 의원실과 접촉해 보겠습니다. 수상한 낌새가 생기면 알려달라는 식으로요.” “할 수 있겠나?” 백태성은 진중한 눈빛으로 말했다. “다른 의원들에게 새어나가면 절대 안 돼.” “예. 그쪽에 임지현 보좌관이라고 믿을 만한 친구가 있습니다. 최지훈이 국회에 입성하기 전부터 제가 알고 지내던 사이입니다.” “그래?” “네. 오래 전에 국회에서 잠깐 일했었거든요.” “알았어. 자네한테 맡기지.” “예, 대표님.” * * * 6월 정기 국회가 열리기 열흘 전. 나는 구태양 의원실을 박차고 나와 다급하게 백태성 의원실로 향했다. “의원님!” 백태성 의원은 놀란 눈으로 날 맞이했다. “어, 최 의원. 무슨 일인가?” “저번에 말씀드렸던 게 아무래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뭐?” “조금 전에 구태양 의원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권주혁 의원이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 본인을 찍어달라고 했다고.” 그는 이를 빠득 갈았다. “그 말, 사실인가?” “예. 확실합니다.” 한 템포 쉬기 무섭게. “최 의원 말이 사실입니다.” 구태양 의원도 이쪽으로 합류했다.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의원들을 모아 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런 개X끼가…….” 백태성 의원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가 향한 곳은 권주혁 의원실. 그는 거침없이 문을 재끼고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엔 임규민 의원을 비롯한 초선 의원들이 줄지어 앉아있었다. 우리가 준비해 놓은 상황이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권주혁 의원은 이들이 자신을 지지한다고 생각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을 뿐. 허나, 그림을 보니, 백태성 의원은 더 확인할 여지도 없다고 생각한 듯 권주혁 의원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았다. “권 의원. 자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나?” “……예?” “자네가 당대표가 되겠다고 설득하고 있었던 거 아니야?!”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다 듣고 왔어!” 상황이 잘못 되었음을 깨달은 그는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대표님, 제 말씀부터 들으시죠.” “듣긴 뭘 들어?” “제가 한 게 아닙니다.” 그는 배반감 가득한 눈으로 나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최, 최지훈. 저 녀석이 꼬드긴 겁니다. 대표님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올라가라고!”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오리발을 내밀자, 권주혁은 분개하며 소리쳤다. “최지훈, 네가 먼저 제안했잖아! 구태양 의원도 마찬가지고. 나를 당대표로 올리겠다고 한건 너희가…….” “권주혁!” 백태성 의원은 호통을 치며 멱살 쥐고 있던 손을 의자로 힘껏 밀어 던졌다. “내 자네를 믿고 여기까지 왔건만…… 정말 실망이네.” “아니, 대표님 오해십니다.” “오해는 무슨 오해!” 그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당 대표는커녕, 차기 원내대표 자리도 꿈도 꾸지 말게.” 백태성 의원은 차갑게 돌아섰다. “내 옛정을 생각해 당에서 제명은 시키지 않음세. 허나 딱 거기까지야.” 그 말을 끝으로 그는 홀로 의원실을 빠져나갔다. 권주혁 의원은 멍하니 문을 바라보았고. 나는 씨익 웃으며 다른 의원들을 향해 손짓했다. “일 끝났으니 다들 가시죠.”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르르 몰려나갔다. “최지훈 너 이 자식…….” 나는 그를 향해 눈을 찡긋하고는 복도로 나섰다. * * * “하아…….” 백태성 의원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권주혁 그 자식이 내 뒤통수를 칠 줄이야.” “제가 말씀드렸잖습니까? 위험하다고.” “자네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고맙네.” “아닙니다. 의원님께 받은 게 있는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나는 슬쩍 운을 뗐다. “그나저나 원내대표 선거도 코앞인데…… 어떻게 하실지 결정하셨습니까?” “글쎄. 이제부터 고민해봐야 될 것 같은데.” 혼란스러울 것이다. 의심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자신의 오른팔을 쳐내는 상황이 될 줄은 예감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래서 이 타이밍을 치고 들어가야 한다. 자신을 배신하려던 인물을 밀고하여 당대표의 자리를 지키도록 도와준 사람. 나에 대한 신뢰도가 극치에 달해있을 터. “의원님…… 아니, 대표님.” 일부러 호칭을 바꿨다. 그가 당 대표라는 걸 더 각인시키기 위함. “어려우시면 원내대표 자리에 제가 한 명 추천해도 되겠습니까?” “쓸 만한 인물이 있나?” “구태양 의원 어떻습니까?” 내가 권력을 쥐는 게 베스트긴 하나, 이 상황에서 직접 나설 수는 없다. 이런 상황일수록 나는 한 발 물러나고, 내가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요지에 심어 두는 게 백태성 의원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당을 장악하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되니까. “구태양?” “예. 사실, 이번에 권주혁 의원이 음모를 꾸미는 걸 발각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게 구태양 의원이거든요. 4선이라는 경력도 있고, 또 당에 충성하는 인물이고요.” “그 친구는 너무 위험하지 않나? 측근들 중 가까운 사람이 없는데.” “제가 있잖습니까?” 나는 능청스레 말을 이었다. “옆에서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여차하면 말씀드리죠. 분명 괜찮을 겁니다.” “그런가?” 백태성 의원은 온더락 잔을 흔들어 위스키를 홀짝이며 고민하는 듯싶더니. “그래, 자네 추천이라면 믿을 수 있지.” 그는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구태양 의원으로 한 번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