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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뜯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1) (134/200)

물어뜯지 않으면 잡아먹히는 (1)2022.03.14.

전상국 대표 및 성문종 의원과 본격적으로 맞붙게 되는 건 6월 임시 국회가 될 것이다. 비단 그들뿐만 아니라, 대한당과 전면으로 격돌하게 되겠지. 그때는 최준석 대통령의 아들이 아니라, 민국당의 일원으로 싸우게 될 것이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당내의 내실부터 다져야 한다. 우선, 내가 몸담고 있는 민국당부터 휘어잡아 둬야 싸울 만한 전력이 생기는 법이니까. “어, 최 의원 왔어?”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눈앞에 있는 남자는 현우종 국회의원. ‘의원님’이 아닌,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나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었으니까. 물론, 나이 차이는 20살도 훌쩍 넘게 나는 만큼, 같이 학교를 다녔다거나 본 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학연’ 및 ‘동문’이라는 단어 하나로 친근감이 짙어지는 법이지.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예. 선배님은 잘 지내셨습니까?” “그럼. 종로는 좀 어때?” “분위기는 좋습니다. 다만, 전상국 측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에 주시하고 있습니다.” “조심해. 그 인간 절대 쉽게 놔줄 인간이 아니야. 예전에는…….” 자연스레 안부 인사를 나누며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단순히 한두 명의 미팅이 아니었다. ‘민국당 총 회의.’ 당대표부터 시작해서 원내대표를 비롯해 민국당에 있는 모든 의원들이 모이는 자리. 이번 22대 국회에서 민국당이 나아갈 길을 정하고. 또 상임위원회를 결정하는 자리. 허나, 명목상의 회의일 뿐이지, 상임위원회와 같은 경우엔 통보에 가깝다고 봐야한다. 진즉에 만난 중진 의원들끼리 어느 정도 협의는 끝마친 상태였으니까. 물론, 그 자리엔 나도 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3선 이상의 중진 의원들이 모이기에 내가 들어가지 못하는 게 정상이지만. 정치 1번지라는 종로 지역구에서 당선되었기에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최준석 대통령의 아들이라 입김이 불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곳은 대한당도 아닌, 민국당이었기에 그 영향력은 적었다고 봐야지. 손수 내 힘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그나저나 최 의원은 어디로 들어가나?” 상임위원회에 대해 묻는 것이다. “저는 법사위로 들어갑니다.” 법제사법위원회. 한유라가 탐내던 바로 그 상임위원회다.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법사위는 단원제인 국회에서 상원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곳인데. 다시 말해 대부분의 법안이 법사위를 거쳐야 한다는 걸 뜻한다. 결국 국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손을 댈 수 있다는 말이지. 어떤 일이 터지든 간에 자연스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또 들어갈 수 있기에 이곳을 택했다. 물론, 그만큼 권한이 큰 곳이기에 초선 의원이 들어가면, 보통 거수기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지만. 종로를 지역구로 가지고 있는 나는 다를 테니까. “오, 법사위?” 현우종 의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 의원이 정무수석실에 있어서 정무위 아니면 법사위라고 생각했는데, 역시였네. 축하해.” “감사합니다.” “혹시 나는 어디로 들어갔는지 알 수 있나?” 현우종이라면 아마……. “국토위일 겁니다.” “오, 그래?”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국토위를 1지망으로 꼽았었는데, 그대로 이행된 것이었으니까. “이번에 지역구 표심 좀 얻을 수 있겠구먼.” “제가 세게 어필했습니다.” “아, 그런가?” 현우종 의원은 반색하며 주먹을 들어 내 주먹에 툭 부딪쳤다. “내 잊지 않음세.” 나는 대답 대신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회의실로 들어갔다. * * * 백태성 의원은 근엄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민국당 상임위원회는 이렇게 배정하는 걸로 마무리하려는데 이견 있습니까?” “없습니다.” “예. 그러면 이대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회의에서 커다란 이변은 없었다. 백태성 의원 스타일 자체가 모험을 하는 타입이 아니라. 최대한 위험을 지양하고 안정적인 걸 지향하자는 주의였으니까. 공격적인 배치도 없었고, 또 주시할 만한 곳도 없었다. 상식선에서의 적당한 분배라고 봐야지. 그렇기에 우리가 결정한 상임위에 대해 대한당이나 만세당에서 태클은 걸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장이 그대로 OK를 내릴 확률이 크지. “그러면 다음은 여당의 상임위에 대한 평가인데, 다들 자료는 확인하셨죠?” 그는 서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 쪽에서 따로 태클 걸 만한 요소는 없다고 보이는데, 이견 있습니까?”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 우리 쪽에서 올린 상임위가 그대로 통과되려면, 대한당이나 만세당의 상임위 조성에 태클을 걸지 않는 게 좋으니까. 게다가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백태성 의원에게 반대 의견을 내는 것도 쉽지 않고. 허나, 나는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 없었기에 슬쩍 손을 들었다. “최지훈 의원, 발언하세요.” “법사위에 한유라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유라는 빠져야 될 것 같은데요.” 내 말이 끝나자, 다른 의원도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도 다른 건 괜찮지만, 이게 마음에 걸리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유라는 좀…….” 역시 나만 불편했던 게 아니다. 술렁이는 분위기에 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치현 의원실에 있던 보좌관입니다. 대한당과 작당하고 이치현 의원님을 구속시켰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개인적인 감정으로 그러는 건 안 좋아 보이는데.” 백태성 의원은 불쾌한 기운을 드러냈다. 보아하니,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던 모양. 허나, 그렇게 둘 생각은 없었다. “개인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이건 민국당에 대한 도전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들어와 봤자 표 하나 늘려주는 거수기가 될 겁니다. 허나, 한유라가 법사위에 들어오게 놔둔다면, 저희 민국당의 자존심이 짓눌리는 일이죠.” 저쪽 구석에 있던 구태양 의원도 내 말에 동조했다. “맞습니다. 적어도 한유라는 막아 줘야 저희 민국당의 자존심이 섭니다.” 이렇게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면 백태성 의원도 쉽게 넘어갈 수는 없을 터. “……자네들이 그렇다면 한 번 문제는 제기해 보도록 하지. 추가 의견은?”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면 없는 걸로 알고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무리하지.” 그 말을 끝으로 회의는 종료되었다. 서류를 챙기고 있는데 문득, 째릿한 시선이 느껴졌다. 백태성 의원이다. 본인 말에 토를 달았다는 게 불편했던 모양. 허나, 언제까지고 그의 의견을 이행하는 장기말로 살 생각은 없었기에 애써 모른 척하며 눈빛을 피했다. 이번에 내가 종로에서 당선된 이후로 조금씩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있다. 처음에야 민국당에서 종로를 탈환했다는 사실에 기뻐했으나. 또 청와대 출신인 만큼, 내 주변으로 사람이 몰리는 걸 보고 서서히 견제를 하기 시작했으니까. 게다가 자신의 가장 큰 이점이었던 의한회도 함께 참여하고 있고. 무엇보다 본인이 참패했던 전상국에게 승리했던 것에 대하여 적지 않은 열등감을 느끼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백태성을 이긴 전상국. 전상국을 이긴 최지훈. 당 대표의 입장에서는 내 존재가 영 껄끄럽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당 외부뿐만이 아니라, 민국당 내에서도 슬슬 당파 싸움을 대비해야 할 것만 같았다. 정치, 영 쉽지 않다니까. “최 의원.” 그때 누군가가 내 옆에 다가와 은밀하게 나를 툭 치며 불렀다. “예?” “나랑 이야기 좀 할까?” * * * 다른 의원들의 시선을 피해 은밀하게 국회 뒤편으로 나왔다. 주차장과는 떨어져 있어서 다행히 제삼자는 없었다. “따로 보는 건 처음이지?” “그런 것 같습니다.” 구태양. 부산토박이로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진하게 쓰는 상남자 스타일의 의원. 이번 총선까지 포함해 부산에서만 무려 4선에 당선되었다. 힘깨나 쓰는 인물이라는 뜻이지. 경상도 의원들의 리더라고 볼 수 있는 의원. 허나, 중진 의원 회의를 포함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몇 번 얼굴을 봤을 뿐, 접점은 없어서 연락처도 모르고 있다. 그나마 하나 달가운 점이 있다면. 조금 전에 백태성 의원에게 반기를 들 때 동조해 줬던 인물이라는 것. “최 의원도 흡연하나?” “예.” 그는 담배를 하나 꺼내 내게 건넸다. 나는 빠르게 라이터를 꺼내 그에게 불을 붙여주었다. “후우.” 그는 짙은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문득 내게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예?” “백태성 의원 말이야.” 뜬금없이 무슨 질문일까. 허나, 구태양이 사람을 떠보는 스타일은 아니다. 게다가 백태성에게 늘 찬성하기 바쁜 민국당의 여타 의원과 달리, 그의 갈 길을 가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던 찰나. “나는 그 인간 별로야.” 구태양 의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무 안정지향형이거든.” 맞는 말이다. 최근 들어 더욱더 느끼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오늘 봐 봐. 본인에게 득이 될 것 같으면 대한당과도 손을 잡으려고 한단 말이야.” 그건 사실이었다. 애초에 백태성 의원은 의한회 소속으로 ‘당의 이득’보다도 ‘개인의 이득’을 우선시하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런데 난 최 의원은 다르다고 생각되거든.” 그는 지그시 내 눈을 바라보았다. “종로에서 전상국 찍어 누르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많이는 아니지만, 몇 번이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네를 보면서 느낀 건데.” 구태양 의원은 씨익 웃음을 지었다. “보통 간덩이가 아니더라고. 할 말은 하는 사람. 또 그럴 만한 능력도 있고.” “…….” “좌우 구분 없이 옳은 건 옳다, 틀린 건 틀리다고 말하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단 말이야.” “하고 싶으신 말씀이 뭡니까?” “민국당에서 대권을 잡기 위해서는 백태성 의원으로는 안 돼.” 그는 내게 한 발자국 더 다가왔다. “우리가 대권을 잡으려면 이대로 있어선 더욱더 안 되고.” 상당히 위험한 발언이다. “백태성 의원에게 반기라도 들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판을 뒤집자는 거지.” 그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백태성 의원 그 인간. 과거에 종로에서 전상국에게 한 번 깨졌던 거 알고 있나?” “기억합니다.” “그 뒤로는 어딘가에 도전할 생각도 안 하고 매번 동작구에서만 출마해. 대선에 출마는커녕, 종로를 수복할 생각도 안 하고 다른 사람만 내보내고 있잖아.” 실제로도 그렇다. 한 마디로 쫄아 있다고 봐야지. “민국당 수장이라는 양반이 그러고 있으면 되냐고. 난 그렇게 되면 평생 민국당은 집권할 수 없다고 보이거든.” 구태양 의원은 사납게 눈을 치켜떴다. “어떻게 보면, 그 인간은 야당 같지가 않아. 뭐라고 해야 할까…….”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현재 단계에서 머물길 바라는 것 같달까?” 그 말엔 동감할 수 있었다. 백태성 의원하면 떠오르는 상징은 다름 아닌 ‘야당의 수장.’ 다시 말해 제1야당의 당대표라는 본인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현재 단계에 머물러야 한다. 공산주의 국가나 극단적 진보주의 정당에서 일부러 서민들을 계속 가난하게 만들어 불만을 품고 있도록 하여 저들을 지지하도록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봐야지. “우리 민국당에서 대권을 차지하기 위해선 최 의원, 자네가 올라가야 하네.” 그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가 청와대까지 보필하겠네.” 그는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권에 한 번 도전해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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