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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정리 (5) (132/200)

뒷정리 (5)2022.03.12.

“사형을 요청합니다.” 김치호에 대한 검사의 구형이었다. 국회에서 일할 때부터 뇌물을 받고 미성년자 성접대를 받는 등 이미 적지 않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것도 모자라. 형량 거래로 인한 가석방 상태에서 해외로 도주했다가 보복을 하기 위해 국내로 밀입국하는 등 죄질이 나쁘고 추가 범행 가능성이 짙다는 명목이었다. 무엇보다 나에 대해 살인을 시도할 때는 현행범으로 잡히기도 했고, 구속된 후에는 형량에 대해 협의를 하겠다는 녹취록까지 공개가 되었던지라, 충분히 사형이 구형될 만했다. 게다가 사회적인 이슈로 대두되어 많은 시민들의 시선까지 집중되어 있는 터라, 검사 쪽에서는 화끈하게 나가야 했다. “판결하겠습니다.” 판사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선고문을 읽어 내려갔다.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반성하는 태도가 부족하고……. 따라서 김치호에게 가석방 및 특별 사면이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탕! 호쾌한 판사봉 소리와 함께 판결이 끝났다. 김치호는 허망한 얼굴로 넋을 잃었다. 보통 유기징역은 형기의 1/3, 무기징역의 경우엔 20년 이상 시간이 흐르면 가석방을 받을 수 있다. 허나, 이번 판결 결과는 한 마디로 말해 김치호는 죽을 때까지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그려지지도 않는 아득한 미래에 화내는 걸 넘어 멍한 느낌이겠지. 김치호의 멍청한 얼굴을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법원을 빠져나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주차장으로 향하자, 마돈나는 기다렸다는 듯 차 문을 열어주며 나를 반겼다. “오래 기다렸지?” “아닙니다.” 그녀는 운전석에 탑승하며 물었다. “접근하는 기자들은 없었습니까?” “응. 마스크까지 써서 그런지 얼굴을 못 알아보더라고.” “다행입니다.” 나는 시트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결과를 별로 궁금해 하지 않는 얼굴인데?” “방금 기사로 봤습니다.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라고 뜨던데요.” “진짜 빠르긴 빠르네. 그 사이에 기사가 올라올 줄이야.” “속도가 중요한 시대잖습니까?” 마돈나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나저나 김치호가 쉽게 받아들일까요?” “아마 항소하겠지.” “2심에서는…….” “항소 자체가 기각될 거야.” 마돈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습니까?” “그래야지.” 나는 가볍게 웃으며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누군가의 압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사회적 이슈가 되는 걸 넘어서 내 신분을 생각하면 2심까지 가지도 않을 것이다. 단순히 국회의원 살인 미수를 넘어서. 2심과 3심까지 끌고 가면 청와대에 계신 아버지가 굉장히 불쾌해하실 테니까. 2심에서는 아마 항소 기각 및 1심 확정을 짓겠지. 김치호. 죽을 때까지 어디 한 번 푹 썩어 봐라. 굿바이다, 개자식아. * * * “전상국 대표 판결도 나왔네요.” 김치호에 대한 선고 이후,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비공개로 전상국에 대한 판결이 이루어졌다. 결론부터 말하면,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무죄.’ 무죄와 무혐의로 인한 기소유예는 다르다. 재판까지 갔지만, 결국 혐의에 대한 입증이 부족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니까. 물론, 추가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항소를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 결과적으로는 빨간 줄도 그이지 않고 사회로 돌아갈 수 있기에 전상국은 이 점을 어필할 것이다. 사건이 사건이었던지라, 낙인 하나가 찍히긴 했지만, 정치하는 데 이러한 상처는 크게 방해가 되진 않으니까. 당연히 정계에서 떠날 일도 만무하다. 이런 결과가 나올 걸 알았기에 최지원과 미리 만나서 승부를 본 것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전상국 대표는 법원에서 돌아오자마자 기자들을 소집했다. -안녕하십니까, 대한당 당 대표 전상국입니다. ‘당 대표’라는 단어에 힘을 주는 것은 물론. 기자회견 장소를 국회 정론관으로 고른 걸 보면, 자신의 힘이 아직까지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 -국민 여러분께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올립니다. 그는 마이크 옆으로 나와 깍듯하게 허리를 접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제 결백이 밝혀졌다고 어필하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닙니다. 거짓말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판결이 나온 직후에 기자회견을 할 리가 없다. -정치판에 깔려 있는 불신을 지우기 위해서 이곳에 섰습니다. 그저 좋게 포장하는 것뿐이지. -저희 대한당은 정치적 이득을 위해 누군가를 해하거나 음모를 꾸미지 않는다고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는 카메라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또한, 저로 인해 마음고생을 하시고 또 힘든 시간을 보내신 민국당 최지훈 의원님의 오해를 풀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의원님의 쾌유를 빌겠습니다. 그는 신사적인 척 부드러운 목소리를 냈다. 본심은 다르겠지만,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발언이었다. 이 상황에서 나에게 자신을 의심했다고 덮어씌우면 오히려 의혹을 품고 있는 민국당 지지자들에게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게 되니,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쾌차하라는 응원을 남기는 것이지. -저희 대한당은 앞으로 새로운……. 삑- 리모컨으로 TV 전원을 꺼 버렸다. 어차피 이어질 이야기는 대한당의 미래와 나아갈 길에 대한 내용일 테기에 더 들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어떻게 대처할까요?” 마돈나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의자에 푹 앉았다. “걱정하던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 앞으로도 국회 발전에 힘쓰자는 뉘앙스로. 대충 알지?” “예, 간단하게 보도 자료만 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마돈나가 집무실을 떠난 뒤, 나는 홀로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여의도. 뻔뻔한 가면을 쓴 작자들이 온갖 음모를 펼치는 도시.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전상국은 이번에 당했다고 해서 절대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 증거로 미래 문자에서 전상국 대표가 분명 나에 대한 무언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 정황이 포착되었으니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잡아먹어야만 한다. 그 인간이 무슨 작당을 하는지 알아내야만 할 터. 나는 2G 폰을 꺼내 신혜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참의 신호음이 울린 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의원님. 전화하는 걸 다른 이에게 들키지 않아야 하기에 은밀한 곳으로 이동하느라 시간이 걸린 모양. “혜지 씨. 요즘 성문종 특별한 움직임 없어?”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조만간 전상국 대표 측에서 접촉할 수도 있어.” 나를 눈엣가시로 보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성문종이니까. 전상국이 제대로 마음을 먹는다면 그와 접촉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한 번 주시해 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의원님. “어, 말해.” -요즘 정무수석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무슨 일인데?” -저한테까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만, 의원님 자리를 대신해 새로 온 정무비서관이 한중 FTA건을 대비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직접 접촉하고 있습니다. 정무비서관이 직접 접촉했다는 건, 정무수석의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 “한 번 알아볼게.” -예. 저도 확인되는 대로 공유드리겠습니다. “그래.” 지이잉-. 그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2G가 아닌, 내 명의의 개인 휴대폰. “또 연락하자고.” -알겠습니다. 서둘러 전화를 마무리하고 새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넷째 형 최지성. “어, 형.” -지훈아. 바빠? 통화해도 돼? “괜찮아. 무슨 일이야?” -다른 건 아니고, 너 송하연 기억하지? 유세운동 때 너 대신 그 범죄자한테 칼을 맞았던……. “알지. 내가 기억 못할 리가 있겠어?” 노란머리의 여배우. 아직까지도 왜 나를 대신해 칼을 맞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이번 주에 시간 되면 한 번 만나겠다고 하는데, 언제가 괜찮아? “오늘 바로 괜찮은데. 내일부터는 임시 국회 준비로 조금 바쁠 것 같거든.” -알았어. 오늘 저녁으로 한 번 약속 잡아볼게. “응. 고마워.” * * * 호록. 물을 한 잔 마시며 시계를 바라봤다. 약속 시간까지는 10여 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연예인이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 평범한 카페나 음식점은 가지 못하지만. 정치인의 특성상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미팅을 하기에 약속 장소를 잡는 덴 무리가 없었다. 송하연. 오는 길에 마돈나에게 슬쩍 물어 간단한 정보만 들었다. 고등학생 때 배우로 데뷔해 시트콤을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인물.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여배우 중 하나이기에 김치호 사건 때 굉장히 큰 이슈가 되었다고 들었다. 나와 연인 관계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생겼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송하연에 대해 이성적인 감정을 가지고 만나는 건 아니었다. 나는 이미 교제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괜히 연예인과 엮여 봤자 정치적으로 좋을 건 없으니까. 감사 인사를 겸해서. 그날 왜 나를 구했는지 들어보고 싶었으니까. 당일에 만나지 않고 따로 약속을 잡은 걸 보면 분명 이유가 있었을 터. 똑똑.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프라이빗 룸의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지난번에 보았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노란머리칼에 누가 봐도 여배우 티가 나는 얼굴. “앉으시죠.” “예.” 그녀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상처는 잘 아물었나요?” “흉터가 조금 남긴 했는데…… 다 낫긴 했어요.” “어유, 배우는 몸이 재산이라고 들었는데.” “그래도 크게 티가 나는 부위는 아니라 괜찮을 것 같아요.” “듣던 중 다행이네요.” 흉터가 크게 남았다면, 괜히 미안했을 텐데 천만다행이었다. 다른 직업도 아니고 연예인이기에 드레스라도 입을 일이 생길 땐 고민이었을 테니까. “그나저나…….” 간단한 안부 인사를 마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날 왜 그랬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위험한 상황에서 도망가기는커녕, 나를 지키기 위해 몸까지 던졌으니까. “그게…….” 송하연은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사실, 대신해서 칼을 맞을 생각까지는 없었어요.” “……예?” “영화에서처럼 앞을 막아서면 그 사람이 멈출 줄 알았거든요.” “아.” 예상치도 못한 설명이었다. 그래서일까. “하하하하하핫!” 호탕하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송하연도 민망한 듯 미소를 지었다. “역시 영화와 현실은 다르더라고요.” “그렇죠. 광인들 앞에서는 논리가 먹히지 않습니다.” “실은 그게 부끄러워서 거창하게 이유를 댈까 고민해봤는데,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그러한 위급한 상황에서 도망가는 게 아니라, 저한테 와 주신 게 감사할 따름이죠.” 다만, 의문이 하나 들었다. “그런데 그 이유라면 당일에 말해 주셔도 됐을 텐데 굳이 오늘 따로 만나신 이유가 있을까요?” “그건…….” 지금까지와 달리, 송하연은 조금 무거운 표정으로 표정을 바꿨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송하연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최지훈 의원님한테 은혜를 받은 적이 있어요.” “저한테요?” “정확히는 제가 아니라, 저희 아버지가 의원님한테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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