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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정리 (3) (130/200)

뒷정리 (3)2022.03.10.

“중립에 선 의원들이 누군지 알려 줄 수 있어?” 한유라가 이에 대해 묻는 이유는 뻔하다. 그들과 따로 접선해 자신이 법사위에 들어가는데 지장이 없도록 그들을 찬성 표로 바꾸기 위함이겠지. 정치판이라는 게 이렇다. 아무리 다른 당이더라도 같은 국회에서 일하는 이상, 부대낄 수밖에 없으니 뒤에서 더럽게 엮이고 엮이는 것이지. 전상국 의원 같이 당내에서 입지가 큰 인물이 아니라면 다른 당과 접촉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초선인 한유라가 다른 당의 의원들을 포섭할 만한 카드는 많지 않다는 것. 정치적으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쥐어줄 수 없으니, 다른 방법으로 그들과 손을 잡아야 하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돈이다. 허나, 한유라의 배경이 튼튼하다고 한들 시작부터 돈을 뿌릴 수는 없는 노릇. 정치인들 대다수가 집안이 빵빵한 만큼, 굳이 따지자면 그녀가 빼어나게 부유한 정도는 아니니까. 그러면 남아 있는 방법은 뻔하다는 뜻이지. 그것이 한유라의 정치 방법이라고는 하나, 그녀에 대한 실망이 커져가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알아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만에 하나 제가 알려 드린다고 해서 설득하긴 쉽지 않을 겁니다.” “그거야 시도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 아니겠어?” 그녀는 음흉하게 눈썹을 들썩거렸다. “대한당에서 나를 법사위 후보로 올리는 건 너도 예상하지 못했잖아.” 틀린 말은 아니다만, 확실하게 갈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지. 그런데 그 순간. 지잉지잉-. 갑자기 휴대폰에 진동이 울렸다. 미래 문자 특유의 그 알림. “최 의원.” 한유라는 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너 전상국 의원이랑 꽤 사이가 안 좋지 않아?” 나는 대답 대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가 최지원과 화해를 했다고 한들, 내가 종로구 선거에서 그와 부딪쳤던 일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내가 내부에서 소식 나올 때마다 너에게 전해줄게.” 어느새 한유라의 얼굴에는 교활한 여우의 탈이 쓰여 있었다. “혹시 소식을 듣지 못하리라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애초에 내가 법사위로 갈 수 있었던 게 전상국 의원님 추천 때문이거든.” 그녀가 배지를 달자, 본격적으로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게 피부에 와닿을 정도. 다만, 여기서 흐름을 한 번 끊어줄 필요가 있었다. “전상국은 의원님이 아니죠.” “아, 맞네.” 그녀는 허리를 펴며 한 걸음 물러났다. “전상국 대표님이라고 불러야 되는구나. 입에 붙어서 말이야.” 그는 종로구에서 낙선하며 의원직을 상실하고 그저 당대표 직함만이 남아있었으니까. 한유라는 슬쩍 눈웃음을 지으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여하튼 대한당 내부 이야기는 내가 최대한 전달해 줄게. 법사위에 들어갈 수만 있으면 어지간한 정보는 전부 빼올 수 있을 거야.” “일단 알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척 대답했다. “저도 힘 써 보겠지만, 100% 확실하게 알려 드릴 수 있다고는 보장 못 합니다.” “그럼, 당연하지. 힘 닿는 데까지만 도와줘.” “알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한유라는 눈꼬리를 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치현 의원실에서 같이 동고동락하며 올라온 사이잖아. 우리가 같이 힘내야지. 그래야 이치현 의원님이 기뻐하시지 않겠어?” “맞습니다.” “그래. 파이팅해 보자고.”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는 시늉을 하며 의원실을 떠나갔다. 기가 찼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유라가 직접 이치현 의원 이름을 입에 담을 줄이야. 요망한 걸 넘어 가증스러울 정도. 처음 볼 땐 그저 일 잘하고 칼 같은 보좌관이었는데. 변한 건지, 아니면 원래 저랬는데 숨겼던 건지……. 지금까지 그녀의 행보를 보면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역시 정치하는 인간들 중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인물을 찾는 건 쉽지 않다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사실 한유라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나쁠 건 없다. 대한당 내부 정보를 많이 알면 알수록 내게는 더 좋은 법이니까. 허나, 영 내키지 않았다. 저런 인간이면 언제든 내 뒤통수를 칠 것을 대비해야 할 테니까. 그렇기에 이에 대한 확실한 결정은 아직 유보해 둬야 한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보낸 이 : 26. -동영상. 파일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이것을 본 뒤에 그녀와 손을 잡을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나는 내 책상 앞으로 돌아가 동영상을 재생했다. -꺄하하하하핫! 시작부터 하이톤의 웃음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귀에 꽂혔다. 화면이 밝혀지며 몇 명의 남녀가 눈에 들어왔다. 우선 배경은 골프장. 대충 행색을 보아하니, 한 명은 캐디. 다른 두 명은. -의원님, 나이스샷! 나풀거리는 골프 스커트를 입은 채 알랑방귀를 뀌는 한유라와. -하하하, 괜찮았지? 대한당의 중진의원 중 하나인 최칠현 의원이었다. 우리 최 씨 일가의 먼 친척이라는 인물. 그렇다고 명절에 얼굴을 볼 정도로 가깝지는 않았다. 나랑 8촌이나 9촌 정도 되려나? 거의 남남이지만, 같은 성 씨라 조금 더 시선이 가는 정도. 의한회에서 몇 번 본적이 있는 게 다였다. 대충 옷차림을 보면 시기는 늦여름에서 가을 사이로 보였다. 지금보다 미래. 즉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지. 골프가 마무리되는 타이밍인지 그들은 카트를 타고 골프장에서 내려왔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에이, 늙은이랑 놀아준다고 한 의원이 고생했지. -무슨 말씀이세요. 둘은 하하호호 떠들며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같은 차를 타고 리조트로 자리를 옮기더니, 이내 같은 방에 들어갔다. 이어지는 장면은 뻔했다. 두 남녀가 나체가 되어 몸을 섞는 모습. 눈살이 찌푸려졌다. 최칠현 의원은 이미 일흔이 넘어서 장성한 자식이 둘이나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외면하지 않고 화면에 집중했다. 둘이 어떤 관계인지는 제대로 파악해야만 했으니까. 그들은 2분 30초 만에 거사를 끝난 뒤,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어유, 의원님 땀 흘리신 거 봐 봐. -나이가 드니까 몸이 벅차네. -물 드실래요? -좋지. 한유라는 씰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한 병 그녀에게 건넸다. -역시 한 의원이 최고라니까. -감사합니다. 최칠현 의원은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켠 뒤, 문득 입을 열었다. -한 의원, 고민 있지? -……네? 한유라는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보면 뻔해. 자네는 표정에 다 드러난다니까. 최칠현 의원은 다 안다는 듯 피식 웃음을 지었다. -저번에 고민이라고 했던 국립 어린이집 그거 때문이지? 한유라는 들켰다는 듯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을 했다. -네, 아무래도 쉽지 않네요. 초선이라 더 그런 것 같아요. -그 건은 내가 처리해 줄게. 걱정하지 마. -어머, 정말요? 한유라는 최칠현 의원에게 찰싹 달라붙으며 방긋 웃었다. -감사해요, 의원님. -이 정도야 당연하지. -참, 그나저나 이번에 전상국 대표님이 무언가 준비하시는 것 같던데……. -아, 종로에서 그거? -네. 아무래도 겨울쯤에는 무언가 하나 터뜨리실 것 같던데요? -그렇겠지. 아무리 상대방이 각하 아들이라고는 해도, 전상국 대표님도 자존심 엄청나게 상하셨을 거거든.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그러니까 그게……. 그 말이 끝나기 전에 동영상은 종료되었다. 일단 상황을 보아하니, 둘은 한두 번 만난 게 아닌 모양. 내연이라기보다는 서로 좋아해서 바람을 피우는 게 아니라, 상간관계라고 봐야할 터. 대충 느낌을 보아하니, 한유라가 다른 의원들과도 꽤 긴밀하게 접촉하며 지내는 내막이 어떤지 보이는 듯했다. 아마 전상국 의원을 포함한 대한당 중진 의원들과 이런 식으로 내통한 것일 테지.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직접 보게 되니 충격적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마음에 걸리는 건 이들의 마지막 대화. 전상국 의원이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 미래 문자는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허나, 힌트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파악하지 못할 이유는 없으니까. 게다가 한유라가 단순히 법사위에 들어가는 게 목표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는 상황. 아직 급할 건 없다. 자세한 건 천천히 조사해 봐야 할 터. 우선 의한회에 가서 최칠현 의원을 직접 만나 봐야 할 것 같다. * * * 용산구 한남동. 의한회에는 임시 국회를 코앞에 둔 시점이기에 평소보다 훨씬 더 사람이 많았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얻고 또 교류를 해야 자신이 발의하거나 엮인 정책을 통과시키는 데 도움이 되니까. 슬쩍 주변을 돌다가 저 멀리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의원님!” 나는 반갑게 인사하며 최칠현 의원에게 다가갔다. “어, 우리 조카님 오셨나?” “잘 지내셨죠?” “그럼, 당연하지.” 그는 샴페인 잔을 내게 건넸다. “국회 입성 축하해. 정신이 없어서 인사가 늦었네.” “하하, 감사합니다.” “민국당은 요즘 어때? 분위기 좋지?” 나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예전보단 괜찮은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럴 거야. 이번 선거에서 대한당이 의석수가 꽤 줄었으니 야당은 살판났겠지.” “이러한 상황에서 자리를 지키신 의원님이 대단하신 거 아니겠습니까?” 사실, 그의 지역구는 전라도였기에 이번 총선에서도 큰 역경이나 고난도 없었다. 큰 문제만 없으면 전라도에서는 대한당이, 경상도에서는 민국당이 당선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니까. “에헤이, 우리 조카님 사회생활이 장난 아니네.” 그는 클클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샴페인을 한 잔 마시며 슬쩍 주변을 둘러봤다. “그나저나 새로운 얼굴들이 많네요?” 기존에 의한회에서 보던 인물들 외에 무소속으로 당선된 의원들이 꽤나 많이 보였다. “이번 국회 특징이 어쩔 수가 없잖아.” 단순히 야당 혹은 여당만으로 과반수를 차지해 판가름을 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의한회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선 무소속 의원들을 최대한 많이 영입해야 했으니까. “현명한 선택인 것 같네요.” “그렇지. 역시 우리 민종근 법무부장관님의 혜안이 장난이 아니라니까. 대충 이번 총선 구도 보고 선거 결과 나오기 전부터 접촉하셨더라고.” 민종근 장관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천선화가 대단한 인물이다. 실질적으로 의한회가 움직이는 건 천선화가 모든 판단을 내리는 것이었으니까. 한동안 조용하나 싶더니만, 무소속 의원들 영입에 열중했던 모양. 그나저나 선거 결과 전부터 움직일 줄이야. 역시 늙은 여시라니까. 의한회의 힘은 곧 그녀의 힘. 아마 한동안은 천선화 부부가 위세를 떨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의원님.” “응?” “혹시 한 의원이랑 가까우십니까?” “누구를 말하는 거야?” “한유라요. 이번에 화성시 을에서 당선된 대한당 의원.”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놀랐는지 그는 잠깐 멈칫했다. “……글쎄?” 잘 모른다는 듯 답했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했다. 미래 문자에서 본 동영상은 지금보다 미래이긴 하나, 그때만 만난 게 아닐 터. 자연스레 관계까지 가진 걸 보면, 지금 시점에서도 꽤나 친분이 두터운 건 사실일 테니까. 그는 주워들었다는 듯 설명했다. “대충 들어보니까 초선치고는 나쁘지 않다던데. 똑똑하고 높은 의원들한테 잘하고.” “그렇습니까?” 이렇게 나오면 나에 대한 경계심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더 세게 나가야 한다. 그가 머릿속을 정리하기 전에 파고들어야 속내를 알 수 있을 터. 나는 지그시 최칠현 의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의원님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하게.”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리고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한유라랑 잤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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