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뒷정리 (1) (128/200)
  • 뒷정리 (1)2022.03.08.

    광화문을 중심으로 북서쪽에 있는 통인시장. 한창 호떡을 굽던 아주머니는 반갑게 다가와 내 팔을 찰싹 때리며 인사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대통령 막내아들 아니야?” “어머님, 안녕하셨죠?” “그럼. 내가 이번 선거에 자기 찍었잖아. 알지?” “오,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하하핫!” “진짜 다르네. 보통 당선되면 입 싹 닫고 안 오던데.” “그럼요. 약속 드렸잖아요. 4년 간 절대 변하지 않기로.” 모두는 아니더라도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그렇다. 유세 운동할 때는 상전 모시듯 머리 숙이고 빌며, 표만 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하다가 선거가 끝나기만 하면 바로 입 싹 닫고 모른 척한다. 그나마 정신이 박혀 있는 인물들 중 몇몇은 플래카드로 감사하다는 문구를 걸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 직접 오는 이는 없었다. 국회 본 회의가 들어가기 전까지 선거에서 크게 후원했던 큰손들에게 찾아가 감사 인사를 올리거나 자기 배를 불려 줄 만한 인물들을 찾아 헤매는 파렴치한들이 대부분이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낙선할 경우엔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는다. 간혹 낙선되어도 표를 준 게 감사하다고 플래카드를 걸기라도 하면, 뉴스에 나오고 화제가 될 정도니 더 말할 것도 없지.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다른 정치인과 똑같은 인물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내 입으로 말한 건 지키고 싶었다. “제가 공약으로 말씀드린 것도 전부 지키겠습니다.” “내가 진짜 53년 평생 동안 정치인들에게 계속 속고 살았는데, 이번엔 진짜 믿어볼게.” “그럼요. 많이 파세요, 어머님.” “어여 가.” 다른 시장 상인들에게도 친근하게 인사를 하며 약속했다. 앞으로도 소홀하지 않기로. 계속해서 신경 쓰고 또 귀 기울이며 찾아오기로. 단순히 보여주기식으로 통인시장 한 곳만 돌 게 아니라, 내가 들러서 인사했던 시장들을 모두 방문할 생각이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이걸로 칭찬받고 믿을 만하다는 소리를 듣는 현실이 웃긴 것이지. 국회의원으로서 가장 확고한 신념은 하나.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자는 것뿐이었다. 내 배를 불릴 생각은 없었다. 내겐 한예린이 있었으니까. 대한민국 재계 서열 1위 그룹의 외동딸. 양 측 부모의 주선으로 만난 관계다. 당연히 결혼을 염두에 두고 있고, 아마 오래지 않아 식을 올릴 테지. 프로포즈를 하진 않았지만, 서로 당연히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관계였으니까. 지한그룹에서도 내게 소홀할 리는 없었다. 평생 떵떵거리며 사는 건 당연하고, 정치자금으로도 부족함이 없는 돈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쪽에 목줄을 잡힐 생각은 없었다. 일개 국회의원으로 생을 마무리할 거라면 모를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것이기에 후일 그들을 돌봐줄 입장이 될 예정이었으니까. 물론, 정치 자금으로 쓰는 돈은 대부분 검은돈이다. 지한그룹의 비자금이라는 뜻이지. 그렇기에 경제적 영향으로 간혹 자금줄이 막힐 수도 있으나. 그럴 땐 또 내가 준비해 둔 비자금이 있다. 만에 하나 지한그룹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없다는 것이지. 평생 돈 걱정은 집어치워도 된다. 다시 말해서. 나는 앞으로 권좌에 오르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는 것. 털어서 나올 먼지는 없다.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재계 인물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제대로 된 ‘정치’를 펼칠 수 있다는 뜻이지. 저 멀리만 보이던 권좌가 서서히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 * * ‘최지훈 의원실.’ 마돈나는 사르르 눈웃음을 지으며 명판을 가리켰다. “어떻습니까?” “때깔 죽이네.” 나의 의원실이다. 단순한 사무실이 아니라, 국회의사당의 의원실. “의자는 강선우 보좌관이 직접 구매했습니다.” “그래?” 강선우 보좌관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였다. “잘 쓸게, 강 보좌관.” “그래주시면 영광입니다.” 그에게 반말은 어색하지 않았다. 당선과 동시에 말을 놓기로 했고. 또 내 가슴팍에 달린 금배지가 나의 위엄을 치켜세워줬으니까. 나는 의원실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의자에 몸을 앉혔다. “편하십니까?” “일어나기 싫을 정도네.” “다행입니다.” 나는 의자에서 몸을 떼어내며 문을 향해 턱짓했다. 더 말하지 않아도 강선우 보좌관이 솔선수범 문을 꽉 닫고 왔다. 오늘은 잠깐 들러서 분위기만 보고 갈 생각이었으나, 기왕 온 김에 앞으로 함께 일할 보좌진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저번에 말한 대로 선거 캠프에서 함께 했던 3명을 기용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선거 캠프에서 함께 동분서주했던 세 남자를 각각 6급 비서관, 7급 비서, 8급 비서로 기용할 생각이었다. 그 중 두 명은 강선우 보좌관이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후배였기에 믿을 만했고. 다른 한 명은 의한회에서 추천을 받았기에 거리낄 게 없었으니까. “그러면 세 명은 그대로 데려오는 걸로 하고, 남은 건 두 자리인데…….” 나는 조심스럽게 먼저 의견을 냈다. “9급 자리는 김한나 씨를 데려오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강선우 보좌관의 눈이 번뜩였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데려올 수만 있다면 좋지 않겠어?” 김한나. 이치현 의원실에서 함께 일했던 9급 비서로 업무적 센스도 뛰어나고 입도 무거워 보좌진으로는 제격이었다. “현재 김한나 씨가 어디 의원실에 있지?” “오중민 의원실입니다.” “이번에 오중민 낙선했잖아.” “예. 그래서 데려오는 데 지장은 없을 것 같습니다.” “강 보좌관이 책임지고 데려와.” “알겠습니다. 오늘 바로 연락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남은 6급 비서관 한 자리도 공석인데, 추천할 만한 사람 있나?” 마돈나와 강선우 보좌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이번 선거가 워낙 혼돈의 도가니였던지라, 낙선한 캠프에서도 섣불리 데려올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면 그 자리는 공석으로 두고 천천히 채우자고. 6급 한 명 정도는 없어도 부족하지 않으니까.” “예, 의원님.” “그래. 그러면 오늘은 이쯤에서 퇴근하자고.” “아, 의원님.”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참에 마돈나가 나를 붙잡았다. “전상국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전상국 의원. 아니, 前 의원이라고 해야지. 종로구에서 낙선하며 의원직을 상실했으니까. 그렇다고 뒷방 늙은이로 전락한 건 아니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처럼, 대한당에서 수 년 간 당 대표직을 달고 있던 인물이 선거 한 번 떨어졌다고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은 건 사실이었다. “아마 조만간 둘째 형이 접촉할 거야.” 당연한 말이지만, 최지원은 당선되었다. 그것도 압도적인 차이를 벌리면서. 그는 다른 이유로 초선임에도 초선답지 않은 파워를 뽐낼 것이다. 빠른 속도로 당을 지배하기 위해 움직이겠지. 허나, 전상국이 여전히 버티고 있는 한, 그것은 쉽지 않았다. “둘이 협상이 되겠습니까? 당 대표직을 두고 싸웠었는데.” “될 만하지.” 최지원이 지금 당장 전상국 의원과 부딪치는 건 손해다. 그와 마찰을 빚으면, 당연히 당의 실권을 차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테니까. “아마 휴전을 제안할 거야. 그럴 만한 상황이 되었거든.” 기존에 대한당에서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차명건 의원은 이번 총선에서도 승리했으나, 당선과 동시에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아마 당선직이 박탈되는 형을 받을 게 확실해보였다. 그런데 당의 ‘원내대표’ 자리는 국회의원직을 보유해야만 앉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차명건은 원내대표를 역임할 수 없다는 뜻이지. “아마 최지원이 원내대표로 올라가고, 전상국 의원이 당 대표로 남게 할 거야.” 당 대표는 국회의원이 아니라도 맡을 수 있으니까. “전상국을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군요.” “그렇지. 회유하는 거야.” 그래야 더 효과적으로 대한당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주무를 수 있을 테니까. 자연스레 수뇌부에 섞여들 수 있을 테고. “전상국 측에서 받아들일까요?” “이 바닥에서 영원한 아군이 없듯, 영원한 적도 없잖아?” 총선에서 낙선한 전상국에게 당 대표직은 최소한의 체면치레를 넘어 여전히 영향력이 있고 건재하다는 건 증명할 수 있는 자리. 위기에 몰린 지금 상황에서는 더 나을 수 없는 최고의 제안이었다. 받아들이지 않는 게 이상하지. “서로 윈윈하는 거야.” “총선이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서로 잡아먹으려고 으르렁대더니…….” “이게 정치판이야.” “무섭네요.” “살벌한 곳이지.” 서로 목에 칼을 겨누다가도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얼마든지 웃으며 손잡고 화해할 수 있는 곳. 그게 대한민국 정치판이다. 강선우 보좌관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최지원 의원 입장에서는 이 기회에 전상국을 아예 쫓아내고 당의 실권을 차지하는 게 낫지 않습니까?” “짧게 보면 좋긴 한데, 총선 한 번으로 수뇌부가 통째로 바뀌면 대한당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여서 국민들의 신뢰도가 떨어지거든.” 시민들에게 대한당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전상국을 데리고 있는 게 낫다. 둘째 형 최지원은 대권에 도전하기 전까지 계속 대한당에 남아 있을 예정이었기에 당의지지 기반이 흔들리게 둬서는 안 되었으니까. “그렇군요.” 마돈나는 코를 찡그렸다. “결국 차명건 의원만 낙동강 오리알이 됐네요.” “어쩔 수 없지.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직이 박탈되면, 보궐 선거에도 출마할 수 없으니까. 최소 2, 3년은 피선거권 박탈일 거야.” “최종적으로 당 대표는 전상국으로 유지, 원내대표는 최지원으로 교체. 이런 그림이 되겠네요.” “그럴 거야. 아마 5월은 대한당 내부에서도 정신없지 않을까 싶어. 게다가 의석수도 꽤 줄었고.” 대한당이 이번 선거에서 차지한 의석수는 143석. 지난 총선에서 160석을 차지했던 것에 비하면 적잖게 줄어들었다. 과반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많은 의석을 차지한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무소속 의원이 15명에 달하니, 그들 중 절반만 잘 꼬셔도 얼마든지 과반을 만들어 의안을 가결시키는 건 가능하니까. 민국당은 87석. 만세당은 55석. 물론, 야당도 나쁠 것은 없었다. 두 당을 합쳐도 대한당에 한 의석 모자라지만, 무소속 의원들을 포섭하면 이쪽 또한 과반을 만들 수 있으니까. 결국 22대 국회는 무소속 의원들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달려있는 것이지. “아마 이번 국회야말로 정말 혼돈 중에서도 진정한 혼돈이 될 거야.” 각자의 당을 챙기기 위한 살벌한 정치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눈치 싸움을 어떻게 하느냐가 이번 22대 국회의 성패를 가를 터. “정신 똑바로 차리고 준비하자고.” “알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국회의사당을 나섰다.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고태욱 비서실장. 두 보좌관에게 먼저 가라는 손짓을 하고 멈춰 서서 전화를 받았다. “네, 최지훈입니다.” -도련님. 고태욱입니다. 오늘 저녁에 일정 있으십니까? “아니요. 딱히 없습니다. 이제 퇴근하려는데 무슨 일 있으십니까?” -각하께서 함께 식사를 하셨으면 하십니다. 예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보나마나 이번 총선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기 위함이겠지. “지금 바로 청와대로 들어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녁 함께 하신다고 보고 드리겠습니다. * * * 청와대 본채. “배는 괜찮고?” 손수 상을 차려주신 어머니는 걱정스레 내 손을 잡고 물으셨다. “네. 멀쩡해요. 다 나으면 흉터도 남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게 가능하니?” “요즘 기술 정말 좋아졌어요.” “다행이다.” 그녀는 걱정스럽다는 듯 내 얼굴을 쓸어 만지셨다. “앞으로는 조심하거라.” “그럴게요. 그나저나 아버지는 좀 어떠셔요?” “글쎄다. 아무런 내색을 안 하시니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컥.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들어오셨다. 꿀꺽. 나는 침을 삼키며 현관으로 향했다. 근엄한 표정으로 들어오시던 아버지는 나를 발견하고 천천히 신발을 벗으셨다. 그를 향해 꾸벅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아버지.” “그래.” 그는 내게 다가오시더니 엄숙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바라보셨다. “종로에서 당선이라……. 그것도 초선에 무려 전상국 의원을 이기고.” 그리고는 평소에 본 적 없는 미소를 만개하시며. “기어코 네가 일을 저질렀구나.” 더 할 나위 없이 나를 꽉 안아 주셨다. “자랑스럽다, 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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