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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시 (7) (127/200)

효시 (7)2022.03.07.

-안녕하십니까, 서울중앙경찰서 수사국장 최태석입니다. 경찰정복을 차려입은 그는 근엄한 목소리로 기자들을 향해 브리핑을 시작했다. -최지훈 후보 테러 사건에 대한 중간 결과 보고입니다. 기자들은 숨죽인 채 그의 말을 받아 적었다. -녹음본에 대하여 용의자 김치호는 자신의 목소리가 맞으며, 대화한 내용 또한 인정하였습니다. 전상국 의원이 보낸 인물이 자신에게 위조 여권으로 국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으며 살인에 대한 지시는 물론, 테러 이후에도 안전을 보장해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용의자는 이 모든 사실을 시인하였고……. 당연한 결과였다. 이 녹취록이 공개되면 당연히 전상국 의원은 낙선할 것이고. 김치호 비서관이 시치미를 뗀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는 없으니까. 모든 게 밝혀진 이상, 자백하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 “고생하셨습니다, 후보님.” 마돈나는 꾸벅 인사를 했다. “고생은 내가 아니라, 지현 씨가 했지. 수고했어.” 모든 건 계획대로 흘러갔다. 구치소에서 나온 날, 선거 유세 현장 중 한 곳을 지나다가 문득 미래 문자에서 보았던 동영상이 떠올랐다. 김치호 비서관이 내게 칼을 휘둘렀던 그 장면. 미래 문자로 본 일은 내가 뒤틀지 않는 이상, 그대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걸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통해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모르고 당할 바에야 내가 직접 사건을 설계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김치호 비서관의 행적은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기에, 곧바로 우리 측 사람을 통해 그에게 직접 접근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돈나를 보내진 않았다. 그녀에 대해서는 김치호도 국회에서 만난 적이 있기에 알고 있으니까. 그러면 내가 100% 믿을 수 있지만, 김치호는 그 정체를 모르는 인물을 찾아야만 했다. 신혜지는 아직 청와대에 있기에 패스. 그렇다면 유일한 사람은 단 하나. 오성복 검사. 내가 그와 접촉하고 있는 건, 현재 정재계에서도 거의 알지 못하는 상태. 당연히 김치호가 알 리 없었다. 그렇기에 태국으로 그를 직접 보냈다. 현지에서 김치호에게 접근하고 위조 여권 등을 만들어 준 인물은 바로 오성복 검사였다. 녹음본에 등장하는 인물도 오성복 검사. 그가 직접 김치호와 대화한 내용을 녹음한 것이다. 사실, 목소리라는 게 지문처럼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이 없기에 위험할 수도 있다지만, 전 국민의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하고 있는 지문과 달리, 목소리는 특정인과 대조 및 비교는 가능하지만 단일 대상에 대한 추적은 불가능하다. 김치호는 오성복 검사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있으니, 당연히 그를 특정할 수도 없고. 결국 오성복 검사의 정체가 드러날 일은 없는 것이지. 그렇게 김치호 비서관을 자극해 나에 대한 테러를 일으켰다. 현장에서 송하연이 몸을 던져 나를 대신해 칼을 맞은 것과 내가 큰 상처를 입을 것까지는 예측하지 못했지만. 그 외에 모든 건 계획했던 그림대로 흘러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렇게 되면 국민들이 보기에 이번 사건은 전상국 의원이 꾸민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보이도록 설계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그쪽에서는 반박할 수도 없다. 원래 어떤 행위를 했다고 증명하는 건 쉽지만. 하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건 어렵지 않으니까. 심지어 사건의 당사자인 김치호 비서관도 전상국 의원이 배후라고 굳게 믿고 있는 이 상황에선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지. “어떻게 한 번 몸 비틀어보라고 해.” 나는 거칠게 입꼬리를 휘었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깊은 늪에 빠져들 테니까.” * * * “이런 제기랄!” 블라인드 밖을 흘긋 보던 전상국 의원은 주먹으로 벽을 쿵 내려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선거 캠프 밖에는 온갖 기자들이 몰려와 진을 치고 있었다. 어떻게든 취재를 따내겠다는 듯, 밤을 새울 각오로 텐트까지 치고 있는 인물들도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X발, 이게 말이 돼?” 쾅! 전상국 의원은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어떻게 할 거야?!” 그의 분노에도 보좌진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라도 솔직하게 말해. 김치호한테 접근한 인간 있어?” 보좌진들은 서로 눈치만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당연한 결과다. 이 중엔 없으니까. “행동한 사람은 없고 사주를 받은 사람이 있으면 이건 어떻게 된 일인데!” 그때 김한오 보좌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최지훈이 일을 꾸민 것 같습니다.” “…….” “처음부터 저희를 모함하려고…….” “말이 돼?” 전상국 의원은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 새끼 죽을 뻔했어. 자기 목숨까지 걸고 도박을 한다고?”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전상국 의원도 화를 내고는 있었지만, 그것 외에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간 최지훈의 행보를 보면 마냥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정치 입문 전에는 목숨을 걸고 아버지를 대신해 총까지 맞은 대담한 녀석이었으니까. “사실이라고 쳐.” 전상국 의원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러면 이게 다 최지훈의 모함이다, 이렇게 발표하라고?” “…….” “어떤 새끼가 믿겠어?” 국민들이 믿을 리 없었다. 지금까지 정치에서 자작극이 벌어진 적이 없던 건 아니다. 허나, 이번 일은 달랐다. 단순히 정치만이 섞인 게 아니라. 대한민국 톱급 연예인이라는 송하연까지 엮여 있었다. 그녀 팬들의 분노까지 김치호에게 쏠려 있는 상태. 어중간하게 해명을 했다가는 여론이 박살나는 건 순식간일 터. “의원님.” 그때 휴대폰으로 무언가 보고를 받은 보좌진 하나가 말했다. “김치호 비서관과 대화한 남자의 목소리를 분석했는데, 저희 측 캠프에는 일치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당연히 없지, 있겠어?!” 전상국 의원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순식간에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의 머릿속에도 슬슬 현실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번 건은 최지훈이 단독으로 벌인 일이다. 청와대에서 개입할 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처음 총선에 도전하는 놈인데……’ 차마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런 정치 초짜에게 당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허나, 그게 사실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젠장…….” 전상국 의원은 이마를 감싸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30년이 넘는 정치 인생에서 이토록 커다란 함정에 빠진 건 처음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처음 네거티브를 한 게 문제였나?’ 머릿속이 정리되기도 전에. 똑똑. 보좌진 하나가 다급하게 캠프로 들어왔다. “의원님.” “또 뭐야?” “지금 민국당에서 성명을 냈습니다.” “……뭐?” 민국당 당 대표 백태성 의원이 직접 나섰다. 쐐기를 박으려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선거 과정에서는 그 어떤 위법 행위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법적 처벌을 줘야만 합니다. 잘못이 있는 후보는 유권자 여러분께서 직접 응징해주셔야 합니다. 만약 당선이 되면, 불체포특권에……. “이 개X끼들이 쌍으로 난리블루스를 추고 있어!” 전상국 의원의 분노에 김한오 보좌관은 다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저희도 입장문 발표하죠. 저희 측은 결백하잖습니까?” “최대한 유권자들 심기 거스르지 않게 잘 써.” “알겠습니다.” * * * “안녕하십니까, 최지훈입니다.” 나는 또다시 기자들 앞에 섰다.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상국 의원에게 사과를 받으시고 싶으신 겁니까?” “정말 배후가 전상국 의원이라고 추정하십니까?” “전상국 의원은 전부 사실무근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나는 씁쓸한 표정으로 지긋하게 눈을 감았다. “대한민국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있습니다. 충분히 의심 가는 상황이나, 저는 끝까지 경찰의 수사 결과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려고 합니다. 전상국 의원님께서 그럴 리는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 그게 진실이라면…….” 나는 팍 얼굴을 찡그리며 우측 가슴팍을 잡았다. “으윽…….” 고통에 겨운 듯 몸을 쭈그리자, 순식간에 보좌진들이 몰려왔다. 강선우 보좌관은 나를 부축하며 기자들을 향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기자회견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들은 다급하게 기자회견을 종료하고 나를 차에 실었다. 향하는 곳은 병원. 그러나 강선우 보좌관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괜찮으시죠, 후보님?” 기자들에게 멀어질 즈음. “어.”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정치는 쇼다. 이 정도 연기는 필요하지. * * * 효과는 대단했다. 명확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전상국 의원은 끝까지 본인이 한 짓이 아니라며 강하게 부정했고. 나는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상대를 존중하고,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꾹 참고 기다리는 관대한 모습을 보였다. 결과는 뻔했다. 유권자들은 나의 손을 잡아 주었다. 결국 지지율은 뒤집혔고. 최종적으로 57%의 지지율을 획득하며 나는 22대 총선에서 승리했다. “축하드립니다, 의원님.” 내 호칭은 이제 ‘후보’에서 ‘의원’으로 바뀌었다. “고생했어.” 나는 마돈나와 강선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강선우 보좌관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숙였다. “저한테도 이제 말씀 편하게 하시죠. 그게 의원님의 위엄에 좋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도록 하지.” TV엔 대한당 진영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선거 결과 발표에 전상국 의원은 얼굴을 굳히고 자리를 떠났다. 그러니까 상대를 보고 깝쳤어야지. 나는 마돈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현 씨.” “예.” “‘효시’라는 단어를 아나?” “처음 들어본 것 같습니다.” “몇 가지 뜻이 있어. 그 중 하나는 ‘효시(嚆矢)’. ‘일의 시초’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지금 이 상황은 먼저 협정을 깬 전상국 의원으로 인해 비롯된 상황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효시(梟示)’. 목을 베어 아주 높은 곳에 매달아서 군중에게 보여 주는 거야.” “효수와 같은 뜻이군요.” “그래, 맞아.” 7선 의원이자, 대한당의 당 대표인 전상국이 초선에 도전하는 나에게 깨졌다. 그것만으로도 수치인데 나를 죽이려했다는 오명까지 덮어썼으니 더욱 치욕스럽겠지. 그 자체가 정치인으로서는 효시를 당한 것이다. “아주 멋진 단어네요.” “그렇지?” 나는 가볍게 눈을 찡긋했다. “의원님.” 그때 강선우 보좌관이 나를 안내했다. “올라가시죠.” “그래.”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단상으로 올라갔다. “안녕하십니까!” 그리고는 더할 나위 없이 힘차게 외쳤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국회의원! 최지훈 인사드립니다!”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으면서 전율이 일었다. 내 힘으로 일궈낸 결과물이다. 아버지의 도움도, 누군가의 낙하산도 아닌. 내 스스로 얻어낸 자리. 일개 국회의원도 아니고. 정치 수도! 대한민국의 정치 심장과도 같은 종로구에서! 대한당의 당 대표 전상국을 꺾고 승리했다. 이젠 아버지께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당신의 뒤를 잇겠다고. “정의가 숨 쉬는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당선되었다고 변하지 않겠습니다. 늘 같은 태도로. 항상 낮은 자세에서. 서민분들께 머리 숙이고 귀 기울이겠습니다.” “저 최지훈, 종로구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여러분들이 저를 뽑았다는 게 부끄럽지 않도록. 그 사실을 어디 가서도 당당하게 말하실 수 있도록 깨끗한 정치를 펼치겠습니다.” “다시금 저를 믿고 뽑아 주셔서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해내겠습니다.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최지훈이었습니다.” 깔쌈하게 당선 소감문을 읽은 뒤, 무대 뒤로 내려왔다. 유권자들의 환호와 기자들의 소리가 사라지고 고요가 내 몸을 감쌌다. “의원님.” 어느 새 다가온 마돈나가 내게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그녀는 대답 대신 옅은 미소를 지으며 상자를 열었다. 그곳엔 눈부신 황금빛을 뽐내는 배지가 담겨 있었다. 내 입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이게 벌써 도착했나?” “국회 지인에게 따로 부탁해서 특별히 며칠 빨리 공수해 왔습니다.” 역시 마돈나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녀는 직접 배지를 꺼내 내 가슴팍에 달아 주었다. 금배지. 대한민국에서 단 300명만이 찰 수 있는 금배지. 고작 6g에 불과하지만 묵직하기 그지없었다. 내 옷깃에 달린 금배지는 찬란하게 빛났다. 권좌. 그곳까지는 몇 걸음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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