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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시 (6) (126/200)

효시 (6)2022.03.06.

푹! 김치호가 찌른 칼날이 나의 가슴팍에 꽂혔다. 예상했기에 몸을 최대한 비틀어 치명상은 피했다. 그럼에도 뜨겁고 아리고 쓰라렸다. “이런 씨…….” 턱끝까지 욕이 차올랐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시민들을 생각해 차마 내뱉진 않았다. 전역 직후, 아버지 대신 총알을 맞았던 경력까지 있기에 고통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으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울걱 피가 솟구치는 느낌. 그나마 다행히 가슴팍 중에서도 우측 끝과 어깻죽지 사이에 칼이 꽂힌 게 천만다행이었다. “죽어!” 김치호 비서관은 광기에 물든 눈으로 다시금 칼을 내지르려 했지만. 퍼억-! 뒤늦게 접근한 경호원이 그를 밀쳐내 제압해서 더 이상의 공격은 불가능했다. “구급차! 아니, 후보님 차에 태워!” 강선우 보좌관은 나를 번쩍 안아들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그를 붙잡았다. “저쪽 시민부터 챙겨…….” 강선우 보좌관은 이를 질끈 물고 마돈나를 불렀다. “지현 씨!” “시민분은 저한테 맡기시고 바로 이동하십시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바로 차에 나를 태웠다. “후보님, 조금만 참으십시오!” 이내 내 시야는 희뿌옇게 흐려지며 어둡게 닫혔다. * * * 꿈뻑. 눈을 뜨자,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느껴지는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후보님, 정신이 드세요?” 먼저 들려온 건 마돈나의 목소리. 고개를 살짝 돌리려 했으나. “윽…….” 우측 가슴팍에서 진한 통증이 느껴져 왔다. “움직이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께서 최대한 안정 취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 나는 차분하게 대답하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다. “좀 일으켜 줄래?” “예.” 마돈나는 침대 베드를 일으키고 나를 부축해 반쯤 앉게 도와주었다. 병실에는 그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돈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위험할 뻔했습니다. 저희가 의도한 거였지만, 여차했다가는 정말 큰일 날 뻔했어요.” “경호원이 붙는 게 생각보다 늦었어.” 일부러 더 극적인 상황을 위해 경호원을 단 한 명만 대동했는데, 그 탓에 더 위험할 뻔했다. “네. 아무래도 노란머리 여성분이 뛰어드는 바람에 그쪽을 막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다른 피해는 없었고?” “김치호가 유세 차에 뛰어오르던 과정에서 경호원에게 칼을 휘둘렀으나, 큰 상처는 아니어서 바로 치료했습니다.” “그건 다행이네. 송하연 씨는?” 마돈나는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그 노란머리 여성분이 송하연 씨였나요?” “응.” “제가 아는 그 연예인이요?” “맞아.” “……어쩐지 얼굴이 익숙하더라니.”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송하연 씨는 복부에 길게 자창을 입어서 수술했는데, 다행히 잘 끝났다고 합니다. 조금 전에 정신이 든 것 같다고 해서 강선우 보좌관이 가있고요. 수술은 잘 끝났다는 것 같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네.” “네. 그런데 후보님.” 마돈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송하연이랑 무슨 인연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니, 없어.” “……그렇습니까?” “진짜 없어.” 나 같아도 못 믿을 만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톱급 연예인이 일반인도 아니고, 정치인을 대신해 몸을 던진다는 건 평범한 일이 아니니까. “오늘 본 게 두 번째야.” “첫 번째 보신 건요?” “넷째 형 회사 소속이거든. 그때 지나가다가 잠깐 인사한 게 다야.” “그러면 대체 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눈을 찡그렸다. “나도 전혀 모르겠어.” 김치호 비서관이야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라지만, 송하연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녀가 현장에 있던 것도 의아한데, 나를 대신해서 칼까지 맞을 줄이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전혀 모르겠네.” “제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아니, 지현 씨는 예정대로 진행해. 송하연에 대해서는 강선우 보좌관한테 맡기자고.” “알겠습니다.” 그녀가 떠난 뒤, 곧장 의료진이 들어와 몇 가지 검사를 시행했다. 다행히 몸에 문제는 없었고, 내 상처 부위도 수술이 잘 끝나서 안정을 취하면 금세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1, 2주는 더 입원하며 쉬는 게 좋다고 했으나, 선거까지 이제 겨우 보름밖에 남지 않았기에 남은 기간을 병원에서 보낼 수는 없었다. 한참동안 설득한 끝에 이틀 정도만 쉬다가 문제가 없으면 퇴원을 할 수 있게 조치를 해준다고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상처가 벌어질 수 있다니 어쩔 수 없지. 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병실 문이 열렸다.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넷째 형 최지성. 아마도 회사 소속 연예인에게 사건이 생긴 걸 듣고 바로 뛰어온 모양. 오고 나서야 내가 엮인 걸 알았을 터. 얼굴만 봐도 벙 쪄 있는 게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내 안부부터 물었다. “몸은 괜찮아?” “응. 멀쩡해.” “어휴, 이 자식 진짜…….”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너는 어릴 적에는 조용하고 얌전하게 잘 지내더니, 나이 들어서 몇 번이나 사람을 놀래키냐?” “늦바람이 난 거 아닐까?” “입은 살아가지고.” 최지성이 딱밤을 때리려는 시늉을 하자, 나는 왼팔을 들어 막았다. “나 환자야, 환자.” “어휴.”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내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난동은 무슨 일이고, 송하연 또 어떻게 된 거고.” “그러니까…….” 최지성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국회에서의 일로 나에게 앙심을 품은 김치호 비서관이 나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는 일련의 일을. 당연히 그 과정에서 내가 한 일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 새끼 완전 미친놈이네.” “정치하다가 밀려나면 정신병 걸리는 인간들이 꽤 있거든.” “그러면 하연이는? 너 하연이랑 무슨 연이라도 있어?” “나야말로 묻고 싶은 거야.”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대체 날 왜 구한 거야?” “모르겠어.” 최지성은 고개를 저었다. “깨어났길래 내가 물어봤는데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 “……하아.”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따 내가 찾아가 볼게. 직접 가서 대화해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감사 인사라도 해야지.” “나중에 퇴원하고 직접 찾아간대. 오지 말라고 전해 주라더라.” “……왜?” “본인이 그런다는데…… 워낙 아프고 피곤해 보여서 나도 꼬치꼬치 캐물을 수가 없더라.” “일단 알았어.” 여전히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더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진 않는다. 툭. 그때 병실 문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슬쩍 보아하니, 창문으로 보좌진들의 실루엣이 아른아른거렸다. “안 그래도 바쁠 텐데 내가 시간 뺏었네.” “괜찮아. 더 쉬었다가 가.” “나도 지금 소속사 입장문 내야 돼서 가봐야 해.” 그는 말을 남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락할게.” “그래.” 그가 떠난 뒤, 곧이어 강선우 보좌관이 들어왔다. 아마 상황을 브리핑하기 위해서겠지. “의원님. 편찮으신데 죄송합니다. 몇 가지 보고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괜찮습니다.” “김치호 비서관은 현행범으로 그 자리에서 구속이 되었습니다. 언론에서는 기사가 떠돌고 있고, SNS에서는 그 자리에 있던 시민들이 현장을 찍은 동영상이 나돌고 있습니다. 민국당에 대한 테러라는 추측과 청와대에 대한 추측이라는 설이 반반입니다.” “김치호 정체는 밝혀졌고요?” “아니요. 워낙 몰골이 바뀌어 있어서 따로 추정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워낙 역동적이라 제대로 얼굴이 나오지도 않았고요. 현재까지는 경찰에서만 정체를 파악하고 언론에는 숨기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계속 비밀로 접어 두라고 해요. 경찰 측에서도 지금 김치호 정체가 알려져서 좋을 건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지잉지잉-. 그때 휴대폰에 알림이 도착했다. -속보) 청와대 막내아들 최지훈 선거 유세 중 테러…… 현재 수술 후 의식 회복 중. 경쟁자의 지시인가? 마돈나가 활동을 시작했다. 이번 일의 배후에 전상국이 있는 게 아닌가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게 나의 첫 번째 지시사항이었으니까. 물론, 강선우 보좌관은 여전히 이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기자들이 자극적으로 기사를 쓰고 있네요.” “우리 측에선 나쁠 거 없죠.” 나는 시치미를 뗐다. “기사에는 계속 제 의식이 없다고 보도하세요. 혼수상태가 길어져야 더 효과가 좋으니까.” “예. 그러면 청와대에는…….” “그쪽엔 사실대로 이야기하시고요. 대신 비서실장을 직접 통하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브리핑이 마무리될 무렵.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발신인은 한예린. 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여자친구란 걸 알아챘는지, 강선우 보좌관은 꾸벅 인사를 하며 자리를 비켜 주었다. “여보세요?” -어떻게 된 거야? 나 지금 기사 봤거든. 혼수상태라던데……. “방금 깼어. 이제 괜찮아. 수술도 잘 끝났고. -어느 병원인데? “올 필요 없어. 멀쩡해.” -테러범 그 새끼를 내가 그냥 확……. “예쁜 말 쓰라고 했지.” -아니, 오빠가 다쳤는데 어떻게 그래? 일단 출발할게. “지금은 안 돼. 오려면 느지막이 와. 그땐 병원 사람들도 한산하니까. 지금은 주변에 기자들 쫙 깔렸어.” -알겠어. 그러면 이따가 새벽에 갈게. VIP 병동으로 가면 되지? * * * 김치호 비서관은 묵비권을 행사했다. 나는 이틀하고 하루를 더 추가해 총 사흘간 입원한 끝에 병원에서 퇴원했다. 선거 유세 운동에는 당연히 깁스를 차고 활동했다. 건강 때문에도 어쩔 수 없었지만. 이게 또 깁스가 있으면 유권자들이 보는 시선이 달라지니까. 당선 전까지는 다 나아도 계속 차고 있을 생각이었다. 내가 다친 몸을 이끌고 유세운동을 다니며 시민들에게 어필하는 사이. 마돈나는 언론을 계속 흔들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이 사건의 배후가 전상국 의원이라는 보도를 내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차오르는 지지율에 위협을 느낀 전상국 의원이 최지훈을 제거하기 위해 킬러를 고용한 것이라는 의혹. 그리고 그 의혹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확신처럼 번져갔다. 전상국 의원은 이전에 수면 밑에서 검찰 및 최일그룹과 접촉한 사실이 있는 데다가. 대한당에선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패배 후, 민국당의 당선자 정춘식이 사망했던 전적이 있기에 의심의 눈초리를 피할 수가 없었다. 허나 그들도 쉽게 당할 생각은 없는지 강력하게 부인했다. 전상국 의원은 30년에 가까운 정치 기간 동안 네거티브는 했어도 결코 다른 이의 생명을 해하려 한 적은 없다고. 정치 인생을 걸고 맹세할 수 있다면서 정정당당하게 선거를 치르겠다며 어필했다. 그쪽에서는 오히려 나의 자작극이라는 의혹까지 제기할 기세였다. 허나, 그 강경한 태도 때문일까. 나에게는 동정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난 구속으로 인해 벌어졌던 격차를 빠르게 좁히기 시작했고. 선거를 일주일 남긴 시점. 54대 46까지 쫓아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경찰 관계자를 통해 언론에 한 가지 사실이 흘러나왔다. -단독! 최지훈 후보자 테러 사건의 범인은 김치호 前 비서관! 김치호라는 게 알려지자, 국회는 들썩거렸다. 그를 알고 있는 인물이 적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바로 이틀 뒤. 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제 결정타를 안길 시간이다. “저는 비통한 심정을 안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순식간에 카메라 플래시가 촤르르륵 터져 나왔다. “자유민주주의가 수호되는 이 대한민국에서. 헌법으로 통치되는 법치국가에서! 말도 안 되는 살인 테러가 벌어졌다는 것에…… 그것도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남의 목숨을 위협하는 행위가 벌어졌다는 사실에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기자들은 빠르게 타이핑을 하며 내게 물었다. “지금 그 말씀은 이번 테러 사건의 배후가 전상국 의원이라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냈다. “어제 저녁, 저희 선거캠프에게는 익명의 제보자를 통해 이 녹음 파일이 도착했습니다.” 더 말할 것 없이 곧바로 노트북의 스페이스바 버튼을 눌렀다. “직접 들려드리겠습니다.” 동시에 스피커를 통해 태국에서 김치호 비서관과 한 남자가 나누었던 대화의 녹음본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김치호 비서관님 맞으시죠? -전상국 의원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지금 한국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아시죠?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복수할 기회를 드리죠. -최지훈을 죽이시면 됩니다. …….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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