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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시 (3) (123/200)

효시 (3)2022.03.03.

내가 구속되기 하루 전날 저녁. 둘째 형 최지원에게 전화가 왔다. “네, 최지훈입니다.” -어, 지훈아. 통화 괜찮아? “집 가는 길이라 여유 있어. 무슨 일이야?” -혼자 있어, 아니면 옆에 누구 함께야? “수행비서님만 계셔.” -그래. 스피커 줄이고 잘 들어. “알았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최근 들어 연락을 자주하는 최지만이라면 모를까, 최지원이기에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인간이니까. -오늘 검찰에서 연락이 왔어. “……검찰?” -응. 너도 내가 검찰이랑 꽤 관계가 깊은 건 알지? “당연하지.” 한국대 법대 출신인 것도 모자라,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판사로 10년 넘게 일한 사람이다. 첫째 최지만이 경찰과 가까운 유착관계라면. 둘째 최지원은 검찰과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관계였으니까. -오늘 서울중앙지검에서 연락이 왔어. 도입부부터 심상치 않다. -전상국 의원이 검찰 측과 접촉한 모양이야. “그 인간이 왜?” -아무래도 네가 구속될 것 같아. “……뭐?”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들썩였다. “형,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전화를 멈추고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김 비서님. 잠깐 갓길에 세워 주실래요?” “알겠습니다.” 구석에 차를 세우고 수행비서에게 담배라도 한 대 피울 시간을 주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수행비서를 뽑았지만, 아직 100%는 아니었기에. 게다가 사안이 사안인지라, 일단 내보내고 홀로 통화하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았으니까. “어, 말해.” -아무래도 전상국 의원이 너에 대해 무언가 키를 쥐고 있는 것 같아. “뭔지는 모르고?” -응. 돈의 흐름과 관련된 건데 정확한 건 나도 못 들었어. “어떻게 알게 된 건데?” -제1 차장검사가 전상국 의원 라인이거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잖아. 청와대 눈치도 봐야 하고. 단독으로 진행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검사장에게 보고했더라. 그렇다면 확실한 정보다. 현 서울중앙지검의 검사장은 최지원과 같은 한국대 동문이기도 하고, 그 외에도 중간에 걸친 사람이 많아서 굉장히 가까운 사이니까. “구속은 확정된 거야?” -아무래도 전상국 의원이 뒤에 있다 보니까, 검사장도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야. 제1 차장검사가 밀어붙이니까 일단 허용은 해 주는 느낌이고. “일단 알았어.” -조심해. 전상국 그 인간 만만치 않을 거야. “고마워.” 전화를 끊으려는 찰나. -지훈아. 그가 나를 붙잡았다. -이번 선거, 네가 이겨야 된다.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파이팅이다. “들어가. 선거 끝나고 밥 한 끼 살게.” -그래. 전화를 끊고 창문을 내렸다. “오 비서님, 출발할까요?” “아, 네.” 수행 비서는 곧바로 운전석에 탑승해 핸들을 잡았다. “후우.” 나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우선, 둘째 형 최지원. 그가 내게 정보를 알려주는 이유는 단순했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이기 때문. 현재 최지원은 대한당 당 대표 자리를 두고 전상국 의원과 대립 중인 사이기에 이번 선거에서 내가 지게 되면 그가 더 힘들어질 테니까. 최지원이 늘 의뭉스럽고 속내를 알 수 없긴 하나, 이번엔 나를 기만할 이유가 전혀 없다. 까놓고 말해서 본인을 위해서라도 내가 승리하는 걸 도울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봐야지. 그렇다면 검찰 관련 정보는 사실일 확률이 높을 터. 문제는 어떤 이유로 구속이 되느냐는 것이다. 최지원은 돈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선거 중에 돈과 관련된 문제라면, 대표적인 건 불법 선거 자금 수수 혹은 돈을 뿌리는 것 정도. 전자의 경우는 탈이 날 만한 근거가 없다. 나와 교제를 하고 있는 한예린이 있는 지한그룹에서 밀어주는 걸 외부에서 포착할 수가 없으니까. 후자 또한 마찬가지. 애초에 내가 일반 유권자에게 돈을 뿌린 적이 없다. 표를 구걸할 이유도 없고. 그런 식으로 내 족쇄를 채울 이유도 없으니까. 그렇다면 돈 문제라는 건 비자금일 확률이 높을 터. 내가 직접 들고 있는 돈은 확실하고 안전한 차명으로 돌리고 있으니 문제될 여지가 없다. 그 외에 내 자산이라고는 단 하나. HIT Investment에 투자한 자금이다. 결국 전상국 의원 측에서 갖고 있는 자료는 그것이라는 뜻이지. 다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내가 받은 돈은 국정원에서 나를 통하지 않고 그쪽에서 HIT Investment에 넣은 이후로 한 번도 건드린 적이 없다. 다시 말해 실제로 내 돈이긴 하나, 나와 엮고 싶어도 엮을 수가 없다는 뜻이지. 그런데 선거 상황에서 구속을 할 정도라면,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거 패배 이후 손해배송 청구 등 온갖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저들에게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내가 HIT Investment와 접촉했다는 정황 증거만 갖고 있겠지. 다시 말해 문제가 될 수 있는 건 전부 전상국 의원이 처리해 준다는 보장이 깔리는 것이다. 든든하게 뒷배가 있으면 난동을 쳐도 되니까. 일단 구속을 시켜 놓고 그 뒤에 생각하겠다는 심보일 터. 그러면 전상국 의원의 의도는 한 가지. 언론 플레이를 하겠다는 뜻이다. 이후 과정이 어떻게 되든 간에, 구속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타격이 된다. 유권자들에게는 당연히 내가 범죄를 저지른 것 같은 이미지를 줄 수 있으니까. 이는 지지율에 직접적인 타격이 갈 수밖에 없는 사실. 분명, 전상국은 이를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일단, 어떻게든 당선되고 나서 생각하겠다는 뜻이지. 나보고 네거티브를 하지 말자고 손까지 잡더니만……. 아주 속이 시꺼먼 인물이다. 정치인치고 앞뒤가 다른 사람이 없다는 말이 살벌하게 체감된다. 양아치 새끼. 대처할 방법을 천천히 생각해내야 한다. 오래 전, 미래 문자를 통해 내가 구속이 되는 걸 본 적이 있다. 아마 이번 일이 바로 그것이겠지. 상황이 돌아가는 걸 보아하면, 구속되는 건 막을 수 없을 터. 그렇다고 당황할 필요는 없다. 침착하게 대응하면 된다. 문제가 없었기에 내가 먼 미래에서도 정치 인생을……. 잠깐만. 그때 본 동영상에서 분명 이 문제를 타파하는 데 김태원 기자가 내게 큰 도움을 줬다고 이야기했었지?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신음이 한 세 번쯤 울렸을까. -후보님! 휴대폰 너머로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그래도 방금 전화드리려고 했는데. “그렇습니까?” -예.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작은 건은 아니죠?” -어…… 혹시 알고 계시는 겁니까? “직접 뵙고 이야기하시죠. 지금 어디십니까?” -마침 종로에 있습니다.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주소 찍어 주시죠.” -예.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 “오 비서님, 종로로 가 주세요.” * * * 수행 비서에겐 다시금 담배 한 갑을 사서 피우라는 뜻으로 5만 원권 한 장을 쥐여 주며 자리를 비우게 했다. 김태원 기자는 꾸벅 인사를 하며 옆 좌석에 탑승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출마선언문 때 잠깐 뵈었잖습니까?” “아, 참. 그렇네요.” 그는 클클대고 웃음을 지었다. “댁이 이 근처시라고 들었는데…….” “예. 저쪽 아파트 삽니다.” “언제 이사 오셨어요?” “꽤 됐습니다. 종로에서 출마하기 위해 옮겼죠.” “역시 그러셨군요.” 종로구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려면 당연했으니까. 물론, 나를 따라 마돈나도 같이 이주해 왔다. 이번엔 아파트로 이사했다. 그녀는 내 사비로 나의 아파트 바로 아래층으로 거주지를 구해주었다. 신변잡기는 여기까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떤 자료를 들고 계십니까?” “아, 네.” 김태원 기자는 곧바로 태블릿 PC를 열어 사진을 보여 주었다. “이건…….” “전상국 의원과 최일그룹 비서실장이 접촉한 기록입니다.” “……허허.” 국회의사당 출입부 명단이었다. 국회 직원이 아닌 이상, 누구든 간에 출입을 하려면 반드시 적어야만 하는 명부. 아무래도 최일그룹 비서실장이 직접 전상국 의원을 찾아갔던 모양. “이게 며칠 자입니까?” “이틀 전에 만난 걸로 확인됩니다.” 그는 아직 보여줄 게 남아있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는 옆으로 사진을 넘겼다. 이번엔 사무실 내에서의 사진. 전상국 의원이 상석에 앉아있고, 그 옆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 사람은…….” “서울중앙지검 제1 차장검사 이형운입니다.” 최지원이 말한 그대로다. “이건 오늘 찍은 자료입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지어졌다. “이 사진은 어떻게 찍으신 겁니까?” “어제 새벽에 저 자료를 입수하고 바로 오퓨리얼 호텔로 갔습니다.” “오퓨리얼 호텔이요?” “예. 거기 고층 객실을 잡으면 정확히 북향 창으로 서울중앙지검을 마주볼 수 있거든요.” 김태원 기자는 씨익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거리가 대략 300m가 조금 넘는데, 특수 렌즈…… 흔히 말하는 대포 카메라로 확대가 가능하거든요. 오늘 검사실 배치표 손에 넣어서 어제부터 눈이 빠져라 기다리다가 찍었습니다.” 내 입꼬리가 절로 휘어졌다. 이거라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정보를 그에게 공유했다. “아마 제가 내일 구속될 겁니다.” “구속이요?” 그는 놀랐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예. 이형운 차장검사가 이끄는 라인에서 움직일 거예요. 본인이 직접 움직일 수도 있고요.” “설마 그러면 이게…….” “맞습니다. 최일그룹에서 전상국 의원에게 정보를 넘기고, 그게 다시 검찰로 간 거죠.” 김태원 기자는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러면 후보님께서 위험하신 것 아닙니까?” “괜찮습니다. 저쪽에서 어차피 언플하려고 구속시키는 거거든요.” “……아.” “구속 기간은 오래 못 갈 겁니다. 길어야 사흘? 언론에서 흔들면 이틀 정도.” 그는 결연한 눈빛으로 말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 것 같습니다.” 나는 김태원 기자를 향해 팔을 뻗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는 굳건히 내 손을 쥐며 끄덕였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확실하게 흔들어 보겠습니다.” * * * 구속 후 24시간. 언론에서 나의 구속에 대한 보도를 쉴 새 없이 뿌렸다. 워낙 화제가 된 총선 매치업이었기도 하고. 전상국 의원의 입김도 있었으니 기자들이 기사를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덕분에 여론은 뜨겁게 달구어졌다. 사실, 처음부터 흠을 잡히지 않는 게 내 이미지에 도움이 되겠지만, 전상국을 완전히 보내기 위해서는 내 지지율이 깎이는 걸 충분히 감수해야 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뼈를 취하기 위해 살을 내주는 것이지. 그래도 타격을 최소화할 필요는 있었기에 일부러 컨디션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고 평소보다 유동인구가 적은 곳에서 유세 운동을 하다가 구속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돈나와 강선우 보좌관은 전혀 모르고 있던 사실. 그들에게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래야 내가 잡혀갈 때 더 리얼하게 반응할 테니까. 내가 구속된 직후, 김태원 기자를 통해 충분히 전달을 해 둬서 아마 다음 자료를 준비하고 있을 터. 그렇게 언론이 물어뜯고 여론이 점점 심각해질 즈음. “최지훈 씨, 변호사 접견입니다.” “예.” 오후 4시. 예정된 시간에 변호인이 찾아왔다. 그는 내게 무언가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게 휴대폰을 건넬 뿐. 곧바로 마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보님! 그녀는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즉 말해 주시지. 저 엄청 놀랐다고요. “하하, 미안해.” -몸은 괜찮으시고요? “어. 멀쩡해.” -다행이네요. 통화 되면 바로 기사 올리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입꼬리가 거칠게 휘어졌다. “바로 진행해.”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자마자. 지이잉-. 휴대폰에 기사 알림이 울려 왔다. -[단독!] 최지훈 구속의 뒷배경은 선거 경쟁자의 음모? 구속 직전, 전상국 의원의 은밀한 만남! 이제부턴 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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