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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시 (2) (122/200)
  • 효시 (2)2022.03.02.

    “간만입니다, 의원님.” “잘 지냈나?” “예, 그럼요. 의원님 덕분입니다.” “내가 한 게 뭘 있다고.” 전상국 의원은 껄껄 웃으며 손짓했다. “앉지.” “예.” 서울중앙지검. 검사장 바로 다음 가는 제1 차장검사실. 손님으로 왔음에도 전상국 의원은 주인 행세를 하며 자연스레 상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그는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으니까. 대한당의 당 대표이자, 7선 의원. 게다가 흙수저 집안의 개룡남이었던 이형운을 차장검사 자리까지 올린 장본인이었으니까. 전상국 의원은 서류 뭉치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이게 말씀하신 그겁니까?” “맞아.” 이형운 차장검사는 눈을 빛내며 바로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전상국 의원은 턱을 쓸어 만지며 말했다. “전화로 말했다시피 아쉽게도 확증은 없어.” 사실이었다. 전상국 의원이 최일그룹에서 넘겨받은 파일에는 HIT 인베스트먼트에서 운용하는 수상한 자금의 흐름이나 자금원으로 추정되는 자료는 있었으나, 그것이 최지훈의 소유라고 주장할 만한 확실한 근거는 없었다. “그러네요. 정황상 유력해 보이긴 하나, 연결 지을 고리가 없네요.” 이형운 차장검사는 자료를 넘기며 미간을 찌푸렸다. “애초에 자금을 넣어 놓고 따로 운용한 흔적이 없어서 추적이 되지 않아요.” “그렇지. 그게 조금 아쉬워.” 그는 자료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최일그룹에서는 어떻게 파악한 거랍니까?” 전상국 의원은 숨길 것 없이 솔직하게 말했다. “그쪽에서도 최지훈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나 봐.” “최지훈은 청와대 막내아들 아닙니까? 자칫 잘못 건드리면 그룹이 날아갈 텐데.” “아무리 사업가라도 엄청난 손실을 보면, 사람 마음이라는 게 냉정하질 않거든.” “하긴, 최근 들어 최일그룹의 행보를 보면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여하튼 그래서 최지훈의 뒤를 좀 밟았나 봐.” “지금까지요?” “아니, 한 1년 정도 밟은 것 같아.” “그쪽도 지독하네요.” “그래서 이걸 발견한 거야.” 전상국 의원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보여주었다. HIT 인베스트먼트 대표와 최지훈이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 “……!” 이형운 차장검사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거면 확실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해서 100%라고 봐야지. 이 사진이 촬영되고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전상국 의원은 턱짓으로 자료를 가리켰다. “HIT 인베스트먼트로 그 돈이 들어왔거든. 한두 푼도 아니고, 출처가 제대로 증빙되지 않는 돈이 100억이나 말이야.” 사실, 법적인 근거로 쓸 물증이 없다뿐이지, 최지훈이 운용하는 돈이라는 건 매우 신빙성이 높았다. 아무리 대한민국에 부자가 많다고 해도, 이런 정황을 보면, 우연일 가능성은 현저히 적으니까. “그래서 최일그룹에선 지속적으로 추적을 하고 있는데, 최지훈이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돈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돈의 흐름이 막혀서 추가적인 증거 자료를 못 구하는 모양이야.” 전상국 의원은 한숨을 팍 내쉬었다. “이번 선거에 참전하면서 자금을 쓸 줄 알았는데, 전혀 안 썼다고 하더라고.” “아…… 제가 들어보니, 이번 선거 자금은 지한그룹에서 후원하는 것 같던데요?” “그래. 녀석이 지한그룹을 물었으면, 개인 비자금을 쓸 필요도 없잖아.”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다시 말하면 그 자금은 앞으로도 몇 년간 묶여 있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최지훈과의 연결고리가 오래지 않아 사라진다는 뜻이었으니까. 검은 돈이란 게 그렇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돈에 묻어있던 새까만 흔적은 점점 희석이 되어 다른 돈에 섞이게 되니까. “그러면 의원님께서는…….” 이형운 차장검사는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 이 건을 터뜨리길 바라시는 겁니까?” “그래야지.” 전상국 의원은 등받이에서 몸을 떼어내며 눈을 사납게 빛냈다. “아끼다간 어차피 물거품 되거든.” 물론, 속내는 달랐다. 최일그룹에서도 이미 몇 년 간 최지훈에 대해 추적을 하면서 적지 않은 자금을 써 왔기에 더 자본이 들어가는 건 막고 싶어 했고. 또, 이번 선거에서 최지훈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에 서둘러 싹을 잘라야 했으니까. 아직까진 간격이 벌어져 있으나, 선거 당일까지 남은 기간을 보면 충분히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떻게 처리하길 바라십니까?” 이형운 차장검사는 충성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하시는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구속.” 전상국 의원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 자식 구속시킬 수 있나?” “음…….” 이형운 차장검사는 신중하게 생각에 잠겼다. “물증이 확실하진 않은데…… 언론으로 흔들어서 여론만 자극한다면 가능합니다.” “며칠이나?” “최소 이틀, 길어야 사나흘 정도입니다. 저희가 들고 있는 자료를 알게 되면, 최지훈 측에서도 가만있지 않을 거라서요.” “이틀이라…….” 전상국 의원은 거칠게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 정도면 충분해. 일단 구속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민들의 인식을 바닥으로 떨어뜨려 놓을 수 있거든.” “알겠습니다. 그러면 언제 진행하면 될까요?” “최대한 빠르게.” “이번 주 내로 바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참, 그리고 이 차장.” “예, 의원님.” “기왕이면 조용할 때 구속하지 말고, 선거유세하고 있을 때 잡아가.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그래야 더 빨리 퍼지고 여론이 더 흔들리니까.” “알겠습니다.” * * * “오늘은 어디로 간다고 했지?” “삼청동입니다. 오늘 후보님께서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하셔서 일부러 유동 인구가 적은 곳으로 골랐습니다.” “잘했어.” 오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하자, 선거 유세 트럭 몇 대와 도우미 직원들이 미리 준비를 마치고 서 있었다. 마돈나에게 옷매무새를 정돈받고 힘차게 시민들 앞으로 뛰어갔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나는 힘차게 외쳤다. “기호 2번, 민국당 최지훈 인사드립니다!” 몇 주 간의 유세운동 덕분에 물 흐르듯 연설을 이어갔다. “가장 중요한 정책은 첫째가 교육. 그렇다고 해서 자녀가 없으신 분들을 신경 쓰지 않느냐. 그건 또 아닙니다. 청년 정책 또한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종로는 상업지구기에 젊은 층이 많으니까. “20살부터 35살.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서러운 나이대죠. 밑으로는 어린학생들, 위로는 어르신들을 챙긴다고 제대로 대접도 못 받잖습니까?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어낸다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청년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한창 연설을 하던 도중. 부우웅-. 검은색 차량 3대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유세 차 앞에 멈춰 섰다. “뭐야?” “쟤네들 조심해.” 강선우 보좌관이 경호원들에게 지시하며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나는 못 본 척, 모르는 척 연설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것이 무색하도록, 차량에서는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내리더니 우르르 몰려왔다. 그 중에서 제일 앞장 선 남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판사의 직인이 찍힌 문서를 들이밀며 유세차 위로 올라왔다. “최지훈 씨. 당신을 현 시각 부로 불법 뇌물수수 및 제삼자 뇌물공여죄, 금융거래법위반죄로 인해 체포합니다. 변호인 선임 및 체포적부심을 청구할 수 있으며, 변명할 말씀이 있으면 지금 바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강선우 보좌관과 마돈나가 다급하게 앞을 막아섰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워.” 그러나 검찰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공무집행 방해입니다. 나와 주세요.” “갑자기 무슨…….” 강선우 보좌관이 눈을 부릅뜨고 막으려 했으나. “됐어.” 나는 차분하게 그들을 막아섰다. “영장까지 나왔으면 가야지.” “아니, 후보님!” 강선우 보좌관이 무언가 따지려했으나. 마돈나는 입술을 질끈 물며 그를 막았다. 여기서 소란을 피워봤자,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 그녀는 나를 보며 주먹을 꽉 쥐고 말했다. “바로 체포적부심 청구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술렁거리는 시민들을 뒤로하고 검찰의 차에 올라탔다. * * * “이름 최지훈, 나이 26살. 1999년 3월 5일생 맞으시죠?” “맞습니다.” “이제부터 진술이 녹화 및 녹음될 겁니다. 동의하십니까?” “아니요.” 타자를 두드리던 검찰은 멈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거절하신다고요?” “예.”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끄세요.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 대답에 검사는 심기가 불편한 목소리를 냈다. “……알겠습니다.” 내 말에 그는 스위치를 눌러 전원을 끄는가 싶더니. “아버지가 대통령이라고 이렇게 버러지 같은 짓을 하면 쓰나.” 순식간에 돌변했다. 기록이 남지 않으니 막 나가는 것이지. “최준석 대통령이 나랏일에 힘쓰느라 가정교육을 개판으로 했네.” 이럴 줄 알았다. 남자의 정체는 대충 알고 있다. 오태훈 검사. 이형운 차장검사 라인 소속. 다시 말해 전상국 의원을 뒤에 끼고 있다는 것이지. 사실, 모르고 있다고 해도 바로 눈치챘을 것이다. 아무리 나의 범죄 사실이 확실하다고 한들, 일개 검사가 청와대 사람인 나에게 함부로 대할 깡을 가질 리 없으니까. 애초에 내 혐의가 확실할 리도 없으니 더더욱 그렇지. “비자금 어따 숨겼어?” 쾅! 그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듯 조서판때기로 철제 책상을 세게 내리쳤다. “HIT 인베스트먼트 100억이 전부는 아닐 거 아니야? 아니, 그 100억은 출처가 어디야?” “…….” “하여간 있는 새끼들이 더해요. 국민들 혈세 빨아다가 자기 배때기 채우는 거 아니야.” 녀석은 쯧쯧 혀를 차더니. “그렇게 하라고 배웠나? 집안 내력이야? 아버지는 독재에 아들은 비자금…… 어휴. 있는 새끼들이 더하다니까.”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더니. “어쭈, 어린 새끼가 눈 안 깔아? 너 구속됐어, 인마. 너 X된 거라고. 아직도 세상이 네 발아래 있는 것 같아? 아무리 네놈 아버지가…….” 쿵!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넘어지며 큰 소리가 났고. 오태훈 검사는 움찔했다. 그러나 쫄지 않은 척 어깨를 치켜세웠다. “뭐. 왜. 어쩔 건데?” 나는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짜악! 녀석의 뺨을 후려갈겼다. 쿠당탕탕! 그대로 오태훈 검사가 바닥으로 엎어졌다. 내 손은 수갑에 묶여 있었으나. 뺨 한 대 때리는 건 아무 지장이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그는 짐짓 당황한 모습을 숨기고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새끼가 미쳤나! 나 대한민국 검사야, 너 이 새끼 이거 검사 폭행이 얼마나…….” 짝! 다시금 녀석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는 바닥에 쓰러진 녀석을 향해 말했다. “내가 여기 있으니까 만만해 보여?” 서슬 푸른 눈으로 차갑게 그를 내려다봤다. “이 상황이 될 걸 내가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아?” “…….” “묻잖아. 내가 모르고 있었을 것 같냐고.” 싸늘하게 오태훈 검사를 쳐다봤다. 무언가 잘못된 걸 깨달은 그는 입을 꾹 닫았다. “알고 있었어.” 난 녀석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다 알고 있었다고.” 공포감을 느꼈는지 오태훈 검사는 질겁하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려 했다. “어디 가?” 난 녀석의 머리채를 끌어 잡았다. “똑바로 들어.” 침을 꿀꺽 삼키는 그를 향해 한 음절, 한 음절 똑바로 말해 주었다. “난 너 같이 하찮은 졸개들이랑 급이 달라.” 몸을 숙여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라인 좀 타면서 주변에서 개천에서 용났다, 개룡남이다 소리 좀 들으니까 뭐라도 된 것 같아?”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넌 일개 장기말에 불과해. 난 수를 두는 기사고.” 오태훈 검사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분수를 알아야지.” 잡고 있던 머리채를 밑으로 훅 던지듯 밀었다. “아, 어차피 상관없으려나?” 나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오늘이 네가 검사로서의 마지막 근무 일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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