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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4) (120/200)

상전벽해 (4)2022.02.28.

성태현 前 대통령과 최준석 대통령은 아주 끈끈한 사이였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라인’에 소속된 인물들이었으니까. 정확히는 당시의 성태현은 서울시장 출신의 대통령, 최준석은 검사였다. 성태현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최준석이 굉장히 큰 활약을 했었고. 그 보상으로 검찰총장 자리를 약속했으나. 성태현은 최준석의 영향력을 두려워 해 그를 배신하고 검찰총장 자리에 김구본이라는 평범한 검사를 앉혔다. 그러나 최준석은 무너지지 않고 재기하여 기회를 노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성태현이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중, 당시 청와대에 스포츠 트레이너를 하나 영입했다. 문제 되는 사항은 아니었다. 대통령의 건강을 관리하는 건 단순히 주치의뿐만이 아니라, 운동을 도와주는 트레이너들이 상주하는 건 일반적인 일이니까. 특이한 게 있다면, 트레이너가 여성이라는 점과 또 전공 과목이 바로 필라테스였다는 점 정도. 당시 한국에는 필라테스가 운동 문화로 정착되기 전이었지만, 청와대에서 선진 운동을 영입하는 건 특별하다고 볼 수도 없었다. 초기에는 체력단련실에서 운동을 하는 등 건전하게 대통령의 건강을 위한 활동을 해 왔지만.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둘은 불륜으로 발전을 해 버렸다. 그러다가 그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는 바람에 국민들로부터.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인데 가정도 못 다스리는 게 무슨 정치냐?’ ‘집무실에서 바람이나 피우라고 대통령으로 뽑은 게 아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는 동안 너는 청와대에서 그 짓거리나 하고 있던 것이냐?’ 등의 야유를 받았다. 1990년대 당시엔 간통이 형사 처벌의 대상이기도 하고 굉장히 큰 사회적 문제 중 하나였으니까. 이 불륜 사건을 밝힌 게 바로 서울중앙지검 소속이었던 최준석 검사. 그는 이를 기반으로 성태현을 탄핵시키는 데 성공한다. 결국 복수에 성공한 것이지. 일각에서는 그 필라테스 강사를 최준석이 섭외해서 심어 놓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지만, 불륜녀였던 강사가 ‘사랑이 죄인가요?’라는 말로 일축하며 말 그대로 의혹은 의혹으로 끝나버렸다. 이후, 최준석은 인기를 몰며 대통령이 되었고. 자연히 성태현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최준석의 성격상 당연한 말이지만, 성태현이 사망한 뒤에도 배신자였던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현충원에도 묻히지 못하도록 내쫓아버린 것이지. 또한, 최준석은 대통령이 된 직후, 자신이 몸을 담았던 ‘라인’을 모두 해체해버렸다. 자신 몰래 담합하여 대항하는 건 언제든 위협이 될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최준석 몰래 등장한 게 바로 의한회. 고태욱 비서실장이 그 꼬리를 잡고 추적 중인 상태였다. 여기까지가 최 씨 일가와 성문종 및 그의 아버지 성태현의 이야기.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가면. “간통죄가 위헌 판결을 받는 과정에서 헌법재판관들에게 대통령이 압력을 넣었다고 생각해도 되는 겁니까?” “아닙니다.” “방금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는데요. 헌법재판관의 판결이 곧 대통령의 의견이라는 것처럼 말이죠.” 성문종은 아버지의 사건을 토대로 셋째 최지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는 삼권분립에 위배되는 행위입니다. 민주주의의 꽃을 짓밟아버리는 행위죠.” “시간이 오래 흘렀으니 아버지의 의견이 바뀔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치관이 바뀌는 건 당연한 일 아닙니까?”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그는 치아를 꽉 물었다. “현재의 법을 기준으로 하면 저의 아버지, 성태현은!” 책상까지 쾅 치며 언성을 높였다. 이는 단순히 토론만이 아니라, 보는 이로 하여금 아들로서 울컥하는 심정이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탄핵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답변해 주십시오, 최지곤 의원님.” 최지곤은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최준석 대통령의 입장에선 애초에 이러한 주제를 꺼내는 것 자체가 불편할 테니까. 그렇다고 해도 쉽게 말려들 생각은 없었다. 선을 잘못 타면 멸망하는 법이니까. 그는 말리지 않기 위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대답했다. “사실, 법이라는 게 천편일률적일 수는 없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또 지역과 문화에 따라 다르게 형성되는 게 법이니까요.” 그는 말을 돌리려 했으나. “질문에 대답해 주시죠.” 실제로 성문종은 흥분하고 있었기에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탄핵되었어야 합니까, 말았어야 합니까!” “그건…….” “의원님의 생각이 듣고 싶습니다. 저는 단순히 총선 후보가 아니라, 도봉구에 사는 한 명의 구민으로서. 또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묻고 있는 겁니다.” 당연히 성문종의 페이스에 최지곤도 말려 가고 있었다. 최지곤의 성격 상 이런 상황에서 냉정하고 차분하게 이겨내는 편이 아니었다. 다혈질이었기에 오히려 상대방을 따라 언성이 높아지는 스타일. “그때 최준석 대통령은 검사셨습니다. 당시의 법에 따라 수사하고 죄를 밝힌 것뿐입니다.” “대통령의 가치관을 묻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때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법을 따라 집행한 거라고 봐도 되는 겁니까?” “악법도 법이니까요.” “……그러면 당시 법이 악법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순간, 최지곤의 미간이 구겨졌다. 말렸다. 제대로 말려 버렸다.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지금 저랑 말장난하십니까?” “이게 장난처럼 보이십니까?” “오늘은 도봉구 국회의원 선거에 대해 토론하는 자립니다. 왜 지난 일을 들추십니까? 저희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아니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시잖습니까? 최준석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받지 않으신다는 겁니까?” 외통수였다. 여기서 이어받지 않는다고 하면, 최준석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이 실망할 것이고. 또 이어받는다고 하면, 끝나지 않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 최준석 대통령은 이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를 꺼려한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늘어날수록 불편해할 수밖에 없을 터. “그러면 이걸 물어보죠.” 성문종은 다시금 눈을 부라리며 입을 열었다. “불륜은 잘못되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아버지는 잘못하신 게 맞습니다. 그건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당시 논란이 되었던 사실 중 하나가 불륜녀를 최준석 대통령이 직접 심었다는 건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아버지께 직접 물어보시죠.” “……무덤에 계신 제 아버지한테 말입니까? 누구 때문에 현충원에도 묻히지 못한 제 아버지요? 아무리 탄핵을 당했다지만!” 성문종의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다. 아주 기가 막힌 연기였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보기엔 그저 눈시울이 붉어진 효자 한 명이 있을 뿐이었다. 최지곤도 이대로 마무리가 되면 안 된다는 걸 깨닫고 엉덩이까지 들썩이며 입을 열었다.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대통령께서 심어 놓았을 리 없죠.” 그는 조바심 때문에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만약 그랬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는 거니까요.” 말해 놓고 그는 움찔했다. ‘……제기랄.’ 실수했다. 아버지에게 대통령 자격이 있네, 마네 언급하는 것부터가 엄청난 월권 행위였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최준석 대통령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최지곤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감히 아버지한테 그따위 소리를 해?’, ‘아버지 잘 만나서 금배지 단 녀석이 무슨 자격으로?’,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이라는 등의 호통을 칠 게 뻔히 보일 정도의 발언이었으니까. 아버지 또한 괘씸하게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터. 이에 그치지 않고 성문종은 한 발 더 나아갔다. “만약에 사실이라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거죠?” 그는 건수를 잡았다는 듯 바로 카메라를 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검찰에 정식으로 요청합니다. 당시 탄핵 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말입니다.” * * * “이런 개X끼들, 아주 지랄을 하고 있네.” 최준석 대통령은 TV를 향해 리모컨을 집어던졌다. 퍼석!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LED 기판이 박살나는 것도 모자라 벽걸이 브라켓까지 흔들릴 정도. “고정하십시오, 각하.” 고태욱 비서실장이 다가가 그를 만류했지만, 최준석 대통령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성문종이야 자신에게 악감정이 있는 걸 알았고 또 그런 녀석이라는 걸 알기에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셋째 아들 최지곤이었다. 녀석은 무례하고 발칙한 걸 넘어 괘씸했다. 감히 자신에게 대통령 자격을 운운하다니. “최지곤 그 새끼는 뭐 하는 거야?” “며칠 전부터 계속 청와대에 들어온다는 걸 막고 있습니다.” “집무실에 발 딛는 순간, 내가 고 실장 가만히 안 둬.” “……반드시 못 오도록 막겠습니다.” “이런 못난 놈 같으니…….” 최준석 대통령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물었다. “만세당 지지자들은?” “의혹이 있다면 재조사를 하는 게 어떠냐는데…… 괜찮습니다. 이건 제 선에서 사그라뜨릴 수 있습니다.” “됐어.” 최준석 대통령은 치아를 꽉 깨물었다. “조사하라 그래.” “……예?” “어차피 나올 것도 없는데 조사해서 무슨 의미가 있어?” “그래도…….” “보여주기라도 해. 괜히 의혹 남겨서 좋을 건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부들부들 떨리는 대통령의 팔을 붙잡으며 진정시켰다. “일단 고정하십시오, 각하.” 그의 말에 따라 최준석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어느 정도 안정이 된 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지지율은 어떤데?” “최지곤 도련님의 지지율은 4할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성문종은 6할에 육박하고요.” “반등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입니다. 아무래도 각하 지지층에게 외면을 받은지라…….” 최준석 대통령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그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처리해.” 고태욱 비서실장은 움찔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들이었기에 그 말이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그러나 최준석 대통령은 냉정하게 덧붙였다. “총선 끝난 직후에 아예 대한당에서 날려버려.” “알겠습니다.” * * * “허어어…….” 신혜지는 낮게 감탄사를 흘렸다. “결국 처음 의도했던 상황대로 되었네요.” “그렇죠.” 모든 건 내가 예상했던 그림으로 흘러갔다. 성문종의 언변. 다혈질 최지곤의 분노 및 휘말림. 게다가 민감한 주제로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실수. 모두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만든 각본대로 움직이고 있다. 아버지가 분노하거나 불편해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최지곤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또한, 그 표출 방향이 셋째에게 갈 테기에 나쁠 것도 없지. 게다가 어차피 과거의 일이기에 아버지는 이를 처리하는 방법을 잘 알고 계신다. 이 정도 일로 흔들리실 분은 아니라는 뜻이지. 아마 지금쯤이면 아버지는 고태욱 실장을 불러 최지곤을 정리하는 방 안을 정리하고 있을 터. 굳이 아버지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대한당 차원에서 그를 제명하려 들 것이지만, 아마 확실한 방법을 선택하시겠지. “그러면 최지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신혜지의 물음에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끝이지, 뭐.” 당연한 말이지만, 그가 야당에 들어갈 수는 없다. 그간 민국당을 찍어 누르며 배척해 온 역사가 있었기에 절대 받아 줄 리 없을 터. 결국 이번 총선에서 패배하는 것으로 셋째 최지곤의 정치 인생은 끝이 나게 된다. 그래도 인맥은 어느 정도 있는 데다가 안암대학교 출신에 회계사 자격증도 있는 걸로 알고 있기에 국내에서 일하면 떵떵거리며 살 수는 있겠으나. 쪽팔려서 해외로 도망갈 가능성이 많다. 어차피 직업은 보여주기식이고, 모아둔 비자금이 적지 않을 테니까. 이를 다시 말하자면. 후계 구도에서 최지곤은 아웃이라는 것. “셋째 형 쪽은 이제 신경 쓸 것 없고.” 이제 본격적으로 나의 선거.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움직일 시간이다. “여의도 갈 준비 해야지.” 전신거울 앞에 섰다. 조심스레 가슴팍에 달려 있던 사랑의 열매 배지를 떼어냈다. 이 자리를 금배지로 채울 시간이다. “전상국 찍어 누르고 종로 접수하러 가자고.” 여유롭게 입꼬리를 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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