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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전벽해 (2) (118/200)

상전벽해 (2)2022.02.26.

똑똑. “고태욱입니다.” “들어와.” 집무실에 들어서며 고태욱 비서실장은 깍듯하게 허리를 접었다. 최준석 대통령은 여전히 펜을 잡은 채 물었다. “무슨 일이야?” “몇 가지 보고 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늘 그렇듯 능숙하게 클립보드를 펼치며 말했다. “막내도련님께서 종로구에 출마를 선언하셨습니다.” 최준석 대통령은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금 문서를 보며 말을 이었다. “봤어.” 그는 가볍게 입꼬리를 휘었다. “출마 선언문도 멋들어지더라고.” “예. 제 정보통을 통해 들었는데, 도련님께서 직접 작성하셨다고 합니다.” “그래?” 최준석 대통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나쁘지 않더니만.” “예. 초선에 도전하시는 만큼, 패기 넘치고 강렬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래. 특이사항은?” “현재 지지율은 높지 않습니다. 전상국 의원이 67%, 최지훈 도련님이 33%입니다.” “더블스코어를 조금 넘어서네.” “네. 출마 선언 초기라 그런 것 같습니다.” 최준석 대통령은 턱을 매만졌다. “고 실장이 보기엔 어때?” “제 주관적인 판단을 말씀드리자면, 6:4까지는……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긍정적으로 봐도 55대 45 정도가 한계일 것 같습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조심스레 덧붙였다. “큰 이변이 없다면 말입니다.” “그렇지?” 최준석 대통령도 동의하는 바였다. 자신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의 힘이 크긴 크더라도, ‘막내’라는 수식어가 주는 철부지 이미지는 지우기가 쉽지 않으니까. “다만, 도련님께서 계획을 짜고 움직이셨을 테니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 평범하게 선거 운동을 하진 않을 거야.” 큰 이변이 없다면, 최지훈이 승리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그가 출마를 했다는즉슨 그 이변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다. 지금까지 최지훈은 확신이 없을 때 객기로 도전한 적은 없으니까. “후원사는? 재계 쪽에서 지원도 어느 정도 받아야 할 텐데.” “메인 후원사는 지한그룹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최준석 대통령은 흠칫하며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지난번 맞선이 잘 된 거야?” “예. 지한그룹에서도 딸이 직접 언급한 사안은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불발 때마다 사유를 들었다고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잘 만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제야 그의 눈이 반짝였다. “교제까지 시작한 건가?”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흡족스러운 듯 최준석 대통령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피어났다. “지훈이 그놈 닮은 손주, 떡두꺼비 같은 손자 하나만 보면 소원이 없으려니만…….” “아직까진 꽤 이르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이제 20대 중반이니까. 첫째 놈은 그때 애를 낳았는데…….” “요새 젊은 사람들은 서른은 넘어야 애를 낳잖습니까?” “그래. 넷째 그놈도 작년이 되어서야 결혼을 했잖아.” “천천히 기다리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내가 버틸 수 있을는지 모르겠어.” 최준석 대통령은 담배 하나를 꼬나물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주었다. 대통령이 한 모금을 마시기도 잠시. “쿨럭!” 기침소리가 집무실에 울렸다. “요즘 건강이 안 좋아지신 것 같습니다.” “괜찮아. 별 거 아니야.” 최준석 대통령은 손을 휘휘 저었다. 고태욱 비서실장은 안쓰러운 눈빛도 잠시 이내 포커페이스로 돌아왔다. “도련님께 따로 전할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지한그룹에서는 어떤데?” “네. 남녀문제라 그쪽에서도 따로 관여하지는 않고 관망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맞아. 젊은 놈들 연애에 늙은이들이 끼면 풀릴 일도 안 풀려. 내버려 둬. 알아서 잘 하겠지.” “알겠습니다.” 최준석 대통령은 담뱃재를 떨며 물었다. “그래서 아들놈 말고 또 보고할 사안은?” “정재계 간의 사적 모임이 하나 발견되어서 추적 중에 있습니다.” “대한당이야, 민국당이야?” “그게…….” 고태욱 비서실장은 심각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섞여 있다고?” 최준석 대통령의 얼굴에 노여움이 피어올랐다. “대한당에서 민국당 놈들이랑 짝짜꿍을 벌이고 있다고?” “아직 확실한 건 아닙니다만,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목록은?” “국회의원부터 장차관까지 몇몇 있는 것 같습니다.” “규모가 상당하나 보네.” “예. 100명에서 200명 내외로 추정 중입니다.” “흐음…….” 최준석 대통령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내 목소리를 낮추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고 실장.” “예, 각하.” 그는 허리를 숙여 대통령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몇 년 전에 파라과이 소금호수 기억하나?” “태무그룹과 최일그룹에서 가져간 거 말씀하시는 거라면, 따로 정리까지 해 두었습니다.” “그게 상당히 묘했거든. 당시에 워낙 정신이 없어서 넘어갔다만…… 관련 법안에서 수상한 놈들 중심으로 한 번 추적해 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법무부장관한테 조만간 한 번 들어오라고 해.” “민종근 장관에게 의심 가는 건이라도 있습니까?” “그런 건 없지. 다만…….” 최준석 대통령은 눈을 반짝였다. “내가 정치 오래 하면서 늘은 게 딱 하나 있는데 뭔지 알아?” “…….” “눈치야. 척 보면 척이거든. 찔리는 게 있는 녀석들은 스스로 제 발을 저려 해. 얼마 전부터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낑낑대는데…… 모를 수가 있나.” 고태욱 비서실장은 파악하지 못한 사실이다. 그만큼 최준석 대통령의 정치력은 압도적이었다. “관련해서 자료 준비해 놔.” “알겠습니다.” * * * 2월 하순. 예비 후보자 등록이 끝났다. 만세당에서는 종로에 ‘최하나’라는 한 명의 후보를 냈다. 소규모 여성 단체에서 활동하는 인물이나, 인지도가 있거나 인맥이 있는 건 아니었다. 당비만 조금 기부 받고 보여주기식으로 공천해준 것이지. 지역구 후보를 내는 것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력 후보 두 명이 전상국 의원과 대통령의 막내아들인데 어지간한 후보면 출사표를 내기도 겁나니까. 선거캠프는 분주하게 돌아갔다. “후보님, 오늘 점심 식사는 동문시장에서 진행하실 예정입니다.” 동대문역 근처이긴 하나, 동대문구가 아니라, 종로구에 들어간다. 투표에서는 서민들 마음을 사로잡는 게 핵심. “순대국밥으로 하려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예. 내장도 다 먹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후엔 혜화동에서 짧은 연설 후 저녁엔…….” 선거 캠프 내의 사무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강선우 보좌관. 그가 선거 캠프의 메인으로 합류했다. “……하시고 저녁엔 중소기업 대표들과의 면담 자리 준비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몇 시에 출발하면 되죠?” “15분 뒤에 출발하셔야 합니다.” “시간 맞춰서 나가겠습니다. 준비해 두세요.” “예, 후보님.” 강선우 보좌관은 깍듯하게 머리를 숙이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똑똑. 뒤이어 들어온 인물은 마돈나. “후보님.” 도련님이라는 호칭도 이제 후보님으로 고쳤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본격적인 유세 운동에 들어간 이상, 보는 눈이 많았으니까. “오늘 공식 선거 시간 이후에 태무 그룹에서…….” 강선우 보좌관은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반적인 공식적인 활동을 관리한다면. 마돈나는 굵직한 기업들 및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 스케줄을 잡아주고 있다. 이렇게 업무가 확실히 분담되어야 부딪칠 일이 없다. 불협화음이 나면 오히려 내 발을 잡을 수도 있는 법. 국회에 입성한 이후라면 몰라도, 선거 캠프에서는 협동이 잘 되어야 당선에 도움이 된다. “알았어. 이번 주 토요일에 박무원 의원 만나는 건 연기됐어?” “아직입니다. 박무원 의원 측에서 빠른 시일 내에 만나고 싶어 합니다. 아무래도 다른 기업 측에서 연결을 부탁받았나 봐요.” “그러면 차라리 내일모레 저녁에 보자고 해. 11시 이후에 잠깐 시간 낼 수 있다고.” “알겠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꾸벅이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출발까지 남은 시간은 5분. 나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네, 비서관님.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신혜지. 그녀는 여전히 청와대에 남아있다. 내 사람이 되었기에 데리고 나올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그곳에 남겨 두었다. 이유는 두 가지. 국회의원의 보좌관 자리는 둘. 그런데 신혜지까지 오면 강선우와 마돈나 중 하나가 빠져야 한다. 그럴 경우엔 오히려 자신의 자리를 걱정하느라 선거에 집중할 수 없으니, 서로 견제할 여지를 없애버리는 게 낫지. 또한, 신혜지는 청와대에 남아 있어야 그곳의 정보를 효율적으로 빼올 수 있을 테니까. 제3자를 통해서 듣는 것보다도, 직접 전달받을 수 있다는 건 정보의 정확도에 엄청난 차이가 있는 법. 청와대에 발을 걸쳐놓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 효과가 있으니까. -선거 준비는 잘되어 가십니까? “네. 본격적인 선거에 돌입하기 전에 처리해야 할 건이 있습니다.” -저번에 말씀해 주셨던 그건가요? “맞습니다.” 도봉구의 선거. 최지곤 vs 성문종의 구도부터 정리를 할 생각이다. 나 또한 총선에 출마한 터라, 투표 당일에 다가갈수록 굉장히 촉박해지고 바빠질 테고, 자연히 그쪽에 신경을 쓸 수 없어질 것이기에 미리 처리를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야 이후에 내 선거에 집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또 초장에 둘 사이의 차이를 벌려두면, 성문종이 급 차이로 찍어 누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최지곤에게 반격의 여지가 없어진다. “혜지 씨가 나설 시간입니다. 계획대로 진행해주세요.” -네. 오늘 내로 성문종과 접촉해보겠습니다. * * * “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호 3번 성문종 파이팅하겠습니다!” 그는 시민들을 향해 힘차게 외치며 차에 올랐다. 문을 닫기 무섭게. “소독제 줘.” 성문종은 불결하다는 듯이 재빠르게 손을 마구 비벼댔다. “어휴, 방금 저 상인들 손톱에 때 낀 거 봤어?” “…….” “얼른 출발 안 하고 뭐 해?” “알겠습니다.” 띠리리리-. 성문종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신혜지. ‘선거 시즌에?’ 성문종은 미간을 찌푸리기도 잠시, 태연하게 목소리를 바꾸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신혜지입니다. “어, 무슨 일인데?”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요즘 선거철이라 굉장히 바쁜데…….” -안 만나시면 후회하실 텐데요. 신혜지는 성문종이 혹할 만한 목소리를 냈다. -최지곤에 대한 자료를 갖고 있습니다. 순간, 성문종의 눈에 욕심이 차올랐다. “어디로 가면 돼?” -오늘 오후 스케줄 언제 끝나십니까? “10시에 방학동.” -11시까지 초안산 생태공원으로 가겠습니다. “그래. 그때 보자고.” 그 말을 끝으로 짧은 전화는 마무리되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던 오재욱 보좌관이 슬쩍 룸미러를 보며 물었다. “신혜지입니까?” “어.” “지금까지 자료 준 걸 보면 믿을 만하긴 한데…….” 신혜지는 그들에게서 어느 정도 신뢰를 얻고 있었다. 그녀가 최지훈과 함께 머리를 짜며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는 정보를 공유한 덕분. 다만, 문제는 성문종과 그의 보좌관이 그녀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번에 최지훈이 선거캠프 가면서 버리고 간 거 아니었습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아. 목소리에 자신감이 찬 거 보면 뭔가 있나 본데?” 성문종의 입꼬리가 거칠게 비틀어졌다. “한 번 만나보지, 뭐. 밑져야 본전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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