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전벽해 (1)2022.02.25.
제22대 총선. 2024 국회의원 총선거는 이전에 치러진 다른 선거에 비해 더 많은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진 건 아니지만, 우리 최 씨 집안에서는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 그 중에서도 가장 임팩트가 강한 건 대통령의 아들 중 세 명이 총선에 출마하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는 둘째 최지원의 출마. 그는 어제 막 예비 후보자로 등록을 마쳤다. 처음엔 서울시 중구 을에 출마해 원내대표 차명건과 경쟁하는 듯 했으나. 한 발 물러서 양천구에 출마를 선언했다. 경쟁자는 민국당의 고하송. 보나마나 결과는 뻔할 것이다. 양천구야말로, 강남 대치동에 이어 서울에서도 가장 학구열에 불타는 도시 중 하나. 한국대 법대 출신에 늘 교육 문제를 중요시하던 성격과 더불어 최지원의 엘리트적인 이미지면 지방대 출신 고하송을 누르기엔 충분할 테지. 대한당 내에서 최지원의 당선은 기정사실화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다음은 셋째 최지곤. 그가 출마한 도봉구는 청와대에선 물론이고, 각 당에서도 가장 주목하고 있는 지역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만세당의 떠오르는 샛별 성문종이 정확히 최지곤의 지역구인 도봉구 갑에 출마를 선언했으니까. 이쪽은 치열한 혈투가 벌어질 예정이나, 성문종의 우세가 점쳐졌다. 그리고 나 또한 성문종을 지원사격할 예정. 성문종을 상대로 최지곤이 낙선하면 그는 아버지의 눈 밖에 나게 된다. 최은실과 무슨 작당을 꾸미는지 모르겠으니, 일이 터지기 전에 차라리 이번 선거를 통해 아예 후계구도에서 지워 버릴 생각이었다. 경기도 화성시 을. 이곳은 각 당의 주목을 받지는 않으나, 내가 눈여겨보고 있는 지역구다. 민국당 이치현 의원의 지역구였던 곳이자. 한유라 보좌관이 새롭게 대한당의 공천을 받아 예비후보자로 등록을 하며 공식적인 출마를 선언했으니까. 아직까지는 박빙으로 보고 있으나, 결과는 미래 문자로 이미 보았다. 특별한 이변이 없다면, 아마 한유라가 금배지를 달게 되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울시 종로구. 내가 출마하는 지역구다. 경쟁자는 무려 대한당의 당 대표이자, 8선에 도전하는 전상국 의원. 쉽지 않을 것이다. 아니, 승리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고 보는 게 정상적인 시선일 것이다. 예비 후보자 등록을 시작한 지금까지도 내가 출마한다는 사실조차 민국당 내부에서는 여전히 중진의원들만이 알고 있고, 당 내부에서는 쉬쉬하고 있는 상태. 그래서 대한당에선 어떤 슈퍼루키가 나오냐며 베일에 싸인 내 정체를 궁금해 한다고 하지.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전상국 의원이 나를 견제할 만한 카드를 미리 구하지 못하도록 시간을 끌어야 하기도 했고. 또 아버지의 당부대로 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전상국 의원에게 직접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단순히 최 씨 집안과의 관계뿐만이 아니라, 추후 내가 권좌에 오를 때를 대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지. 당연한 일이다. 전상국 의원은 이번에 도전하는 게 8선. 지금까지 무려 7선이나 해먹은 의원이다. 28년 동안 국회에서 한 번도 쫓겨나지 않은 인물. 단순히 이번 총선에서 내가 승리하는 것만으로는 그를 무너뜨릴 수 없다. 패배하더라도 보궐선거를 통해 피닉스처럼 분명 재기할 테지. 당 대표의 자리를 다시 차지할 수 있을진 모르나, 대한당의 주역에서 빠지지 않으리라는 건 확실했다. 게다가 이번 총선을 위해 일부러 전상국 의원과 둘째 형 최지원 사이에 이간질을 시켜두었다. 둘의 자존심을 보면, 아마 쉽게 화해하지는 않을 터. 둘 중 하나가 무너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앙숙으로 남을 게 분명하다. 그러면 추후 내가 대선에 도전할 때는 전상국 의원이 내 편에 설 확률이 높아질 테니, 단순히 이번 선거의 결과만으로 서로 등 돌리지 않도록 밑밥을 깔아둘 필요성은 있었으니까. 지이잉-. 휴대폰의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인은 전상국 의원. “크흠.”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통화를 수락했다. “네, 최지훈입니다.” -어, 최 비서관. 전화했네? 내가 씻는 중이라 벨소리를 못 들었어.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야? “다름이 아니고, 오늘 저녁에 괜찮으시면 같이 식사 한 끼 하셨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으십니까?” -나야 환영이지. 어디로 갈까? “제가 문자로 장소 찍어 드려도 될까요?” -그럼, 당연하지. 그렇게 해. 이따 보자고. “예. 들어가십시오.” * * *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어, 최 비서관 왔나?” 전상국 의원은 반갑게 손을 내밀며 반갑게 인사했고. 나는 두 팔을 뻗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앉게.” “제가 더 일찍 왔어야 되는데, 죄송합니다.” “아니야. 늙은이가 일찍 왔지.” 약속시간보다 일부러 15분이나 일찍 왔는데도 그가 먼저 도착해 있어서 조금 놀랐다. “그나저나 오랜만이네. 잘 지냈나?” “네. 의원님께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예끼,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는 클클대며 내게 참치눈알주 한 잔을 따라주었다. “그나저나 사회 초년생한테 이런 고급 일식집은 부담될 텐데.” “저 그래도 많이 법니다.” “하하하, 그런가?” 전상국 의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말씀 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말해 보게.” “다름이 아니고, 이번 총선 때문에 말입니다.” “혹시 공천을 바라는 건가?”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일찍 왔으면 좋을 것 같은데…… 어지간한 지역구는 이미 다 결정이 되었거든. 그래도 자네가 원한다면, 지방에서 한 지역구 정도는…….” 내게 호감이 있다는 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허나, 지금은 그런 게 중요치 않았다. “그런 게 아닙니다, 의원님.” “그러면?” “종로구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 왔습니다.” 순간, 전상국 의원의 눈썹이 들썩였다. “혹시 민국당에서 누가 출마하는지 알고 왔나?” 정보를 바라는 흥미로운 듯한 눈빛. “예, 알고 있습니다.” “말해 줄 수 있나?” “의원님.” 나는 비장한 눈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종로구에 제가 출마할 예정입니다.” “……뭐?”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민국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후보는 저 최지훈입니다.” “…….” 잠깐 미간을 찌푸리더니. “진심인가?” “그렇습니다.” 이내 실소를 터뜨렸다. “하하하하, 아무리 알아봐도 도저히 알 수가 없던데, 상대가 자네라니…….”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네, 재미있어.”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게 뭐가 있나.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니고, 정정당당하게 붙는 건데.” 최소한의 예의를 차렸을 뿐이다. “오히려 미리 말해 줘서 고맙지.”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니 다행일 따름입니다.” 전상국 의원은 삽시간에 웃음기를 거두고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선거는 진지하게 임할 생각이지?” “예.” “그렇다면…….” 순간, 그의 눈빛이 살벌하게 돌변했다. “나도 봐줄 생각이 없다는 거 알지?” “네. 저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그래. 당연히 그래야지.” 전상국 의원은 눈썹을 들썩였다. “원래 선거란 게 쉽게 이기면 재미가 없는 법이거든.” “맞습니다. 다만, 어떻게든 이겨야 재미가 있죠. 지면 재미없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최 비서관 내가 알던 그 순둥이 막내가 아니야. 다 컸어.” 그는 대견하다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예비 후보자 등록은? 이제 며칠 안 남았던데.” “내일 바로 등록할 생각입니다.” “왜 미뤘나?” “다른 분도 아니고, 의원님의 지역구시잖습니까?”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최소한 말씀을 드리고 출마를 발표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고맙네.” “아닙니다.” 문득 전상국 의원은 장난기를 거두고 물었다. “하나만 부탁해도 되겠나?” “말씀하십시오.” “정정당당하게 하자고. 각하께 부끄럽지 않게.” 네거티브는 지양하자는 소리다. 정치만으로 싸우고, 사생활이나 가족들의 흠 같은 부분은 건들지 말자는 뜻. “제가 바라던 바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그를 봐왔고. 또 아버지께 충성한 걸 안다. 그렇기에 누가 이기든 간에 오래도록 정계에서 얼굴을 마주 볼 사이. 서로에게 흉터를 남길 필요는 없지. “좋아.” 그는 테이블 위로 먼저 손을 내밀었고. “잘해 보자고.” 나는 가볍게 웃으며 그 손을 맞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이제 끝난 건가?” “예, 맞습니다.” 마돈나는 감회가 새롭다는 듯한 눈으로 날 올려다봤다. “축하드립니다, 도련님.” “축하는 무슨. 이제 시작인데.” 이제 막 공식적인 예비 후보자 등록을 끝마쳤다. 남은 건 총선까지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것뿐. “다음 장소로 모시겠습니다.” “그래.” 청와대엔 내가 제출한 사표가 정확히 어제부로 수리되었다. 그리고 내가 향하는 곳은 팩트체커의 공식 기자회견 장소. 보통 출마 선언은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대대적으로 발표하는 게 옳으나, 종로라는 정치 수도에서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통령의 막내아들인 나였기에 널리 알리지 않았다. 팩트체커 김태원 기자에게 기사를 독점적으로 주더라도. 화제성을 따지면, 어차피 삽시간에 전국으로 퍼질 테니까. “스탠바이 되셨으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네. 됐습니다. 가죠.” 나는 카메라 앞에 섰다. 잠시 후. “큐!” 사인과 함께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왔고. 나는 준비해둔 출마 선언문을 낭독했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최지훈입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는 비장한 목소리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국민 여러분께 저는 최지훈이라는 사람보다도 대통령의 막내아들로 더 잘 각인이 되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누군가의 아들이나 어떤 이의 가족이 아닌. 국민 한 사람. 최지훈이라는 이름으로 종로구민분들 앞에 섰습니다. 여러분, 지금까지의 대한민국은 어땠습니까? 올바르고 정의롭다고 생각하십니까? 권력은 사유화되고. 배움에서조차 빈부 격차가 생겼으며. 돈은 곧 힘이 되는 그런 사회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사회는 정의롭지 않습니다. 고쳐야 합니다.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저 최지훈은 쇄신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혁신하겠습니다. 저들의 밥그릇 챙기던 태반의 국회의원들과 다른 사람이 되겠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국민들께 머리 숙이고. 또 당선이 되면 나 몰라라 식으로 빳빳이 고개 들고 뒷짐이나 진 채로 엣헴엣헴 눈치나 주는 게 일상인 국회의원들, 지겹지도 않으십니까? 종로구민 여러분들께서 찾기 전에 먼저 다가가서 귀 기울이고. 또 진지하게 고쳐 나가겠습니다. 버스비 기본 요금 1200원. 지하철 1250원. 대중교통 환승하는 방법도 모르는 국회의원들이 진정 서민 여러분께 공감하고 마음 깊이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저 최지훈은 군대에서 또 사회에서 높으신 양반들이 아닌, 평범한 국민분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갔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현 상황을 더 잘 알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지난 4년. 아니, 대한당을 뽑은 16년 간 종로는 어땠습니까? 발전했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허나, 최선은 아니었습니다. 강남이 눈부신 발전을 하고 한강변의 용산, 성동구, 마포가 강남의 뒤를 따라 서울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는 동안, 종로는 그저 과거의 찬란한 영광에 취해 그간 쌓아 둔 아성을 조금씩 무너뜨려갈 뿐이었습니다. ‘과거의 영광’이라는 단어를 이젠 털어내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영광, 미래의 영광을 창조할 시간입니다. 서울의 중심은 종로입니다. 위치상으로도 또 역사적으로도 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저 최지훈이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누군가의 후광을 받아서가 아니라. 제 힘으로 그렇게 해내겠습니다. 종로의 새로운 역사를 쓰도록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한다, 열심히 하겠다. 이런 소리 하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