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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고 속이는 (1) (109/200)
  • 속고 속이는 (1)2022.02.17.

    “어떻게 오셨습니까?” “면회 신청했는데요. 최지훈입니다.” “잠시만요.” 모니터를 쳐다보며 몇 번 마우스를 움직이던 직원은 친절한 얼굴로 손짓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대기하시다가 이름 호명될 때 들어가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며 안내받은 곳으로 들어갔다. 교도소 면회는 처음 와 본다. 면회자와 내부에 있는 사람이 모두 들떠 있는 군대 면회와 달리. 이곳의 면회자들은 굉장히 표정이 암울해 보였다. 그렇겠지. 수감자들과 만난다는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무거울 수밖에 없으니까. 내가 만날 사람은 이치현 의원이었다. 국회에 처음 입문했을 때 나를 끌어준 인물이자, 정치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준 인물. 그는 현재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 사실, 실형이 확정되면 구치소가 아닌, 교도소에 수감되는 게 맞지만. 의원직이 상실되었더라도 국회의원 출신이라는 특성 때문에 이곳 서울동부구치소에서 형을 만기까지 채운다고 들었다. 사실, 그가 수감된 이유는 의한회에서 들었지만, 누명을 썼기 때문이다. 그의 보좌진들과 가족이 힘을 썼지만, 결국 실형을 받았다. 대한당뿐만 아니라, 보좌진 중 하나인 한유라가 함께 짠 거미줄에서는 오롯이 그의 힘으로 빠져나오긴 글렀으니까. 민국당에서도 도와주지 않았기에 더욱 더. 물론, 이치현 의원은 항소하여 2심을 진행 중이긴 하나, 질질 끌고 있기에 무죄 판결이 나더라도 아마 이번 총선이 끝나고 난 뒤일 확률이 높다. 당연한 말이지만, 무죄가 되든, 유죄가 뜨든 앞으로 정치 활동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야지. 정치적으로는 사형에 가까운 판결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했다. 그렇기에 진즉에 찾아오고 싶었지만, 사실 그동안은 올 수 없었다. 대한당의 시선도 있고. 또 판결 직후에는 국회의원 출신인지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을 테기에 괜히 찾아갔다가는 논란에 휩싸일 수 있기에 거리를 뒀어야 했으니까. 홀로 지난 추억에 잠긴 채로 얼마나 기다렸을까. “최지훈 씨.”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3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변호사 접견이나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일반 면회였기에 다른 이들이 면회하는 모습도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몇 걸음 더 걸어가 3번 책상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끼익-. 철문이 열리며 이치현 의원이 등장했다. “누군가 했더니만…….” 문득 그의 입가엔 옅은 미소가 걸렸다. “잘 지내셨어요?” “잘 지냈지.” 말과 달리, 그의 얼굴은 홀쭉해져 있었다. 안 그래도 말랐는데 더 여위어진 모습에 그에게 보이지 않도록 이를 꽉 깨물었다. “사식이라도 넣어 드릴게요.” “됐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집사람이 와서 영치금 넣고 갔어. 충분해.” 괜히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나도 모르게 말이 와다다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그냥 다른 국회의원들처럼 나 몰라라 외면하고 버티시지. 그러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텐데. 왜 굳이 불리한 상황을 만드셔서…….” “당당했거든.” 이치현 입가엔 인자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잘못한 게 없었으니까.”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을 알기에. 또 내막이 어떠했는지 알기에 더욱 더. “강선우 보좌관이 너에게 잠깐 연락했었지?” “……알고 계셨네요.” “한참을 혼냈다. 아무리 그래도 너한테 연락해선 안 되는데.” 테이블 밑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왜 안 돼요, 제가 의원님이랑 얼마나 친했는데.” “그렇긴 하지.” 이치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새해 이튿날부터 여기 오다니, 너도 어지간히 할 일이 없구나.”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네. 할 게 없어서 의원님 뵈러 왔죠.” “아직도 애인은 없고?” “정치하느라 바빠요.” “얼른 괜찮은 여자 하나 만나. 그래야 나처럼 이렇게 되었을 때 영치금이라도 넣어주지.” “이런 조언도 해주시고. 참 좋은 선배님이시네요.” 그는 끌끌 웃음소리를 냈다. 수척해진 몰골과 달리, 멘탈은 좋아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건 그렇고 올해는 어떻게 하려고? 출마할 거야?” “예상하셨어요?” “그럼. 네 아버지가 괜히 너를 국회로 보냈겠어?” 그는 코를 찡긋했다. “내 밑에서 짧은 시간 있었던 것도 아닌데, 딴 사람은 몰라도 난 알지. 내가 눈썰미가 좀 좋거든.” “그 눈썰미로 본인 좀 살피시지 그러셨어요.” “청와대 가더니 머리가 컸어. 비꼬기도 다 하고.” “……죄송합니다.” “농담이야.” 그는 찡긋 눈웃음을 지었다. 이치현 의원이 파리해진 얼굴로 애써 웃고 있는 모습을 계속 봤기 때문일까. 머릿속엔 한유라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오기 전까지 한참을 고민했지만, 차마 결론을 짓지 못했다. 그가 이곳에 끌려오게 된 전후사정. 그리고 한유라가 대한당에 가담하여 그의 지역구에 공천을 받으리라는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늠이 오질 않았다. 말한다고 믿을지도 모르겠고. “지훈아.” “예, 의원님.” “그 의원이라는 호칭 좀 버려라. 이제 의원도 아니야. 편하게 삼촌이라고 해.” “됐어요. 그냥 이게 편해요.” 그는 못 이긴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여하튼 국회에 가게 되면, 우리 보좌진 애들 좀 잘 챙겨줘. 갑자기 실직해버리는 바람에 다들 놀랐을 거야. 먹고 살기도 막막할 거고.” 이치현 의원은 부탁한다는 어조로 말했다. “만약 총선에 나가게 되면 선거 캠프에서도 일 잘할 거야. 물론, 네 인력들도 있겠지만, 빈자리가 있으면 써도…….” 보좌진을 챙기라는 이야기를 듣자, 속에서 격하게 감정이 일었다. 그래서 차마 숨길 수가 없었다. “의원님.” “또 왜?” “지금 거기 계시는 이유 중 가장 큰 원인 제공을 한 사람이 한유라 보좌관인 건 아세요?” “…….” “단순히 중간책이 아니에요. 설계까지 대한당이랑 같이 했다고요. 차기 총선에서 대한당 공천까지 받을 거고요.” 이치현 의원은 살포시 눈을 감았다. 당황한 표정은 아니었다. 잠시 후, 그의 입에선 예상치도 못한 말이 터져 나왔다. “알아.” “……뭐라고요?” “안다고.” 그는 지긋하게 내 눈을 바라보았다. “한유라 보좌관이 설계한 거 다 알고 있어.” 말문이 턱 막혔다. 눈빛을 보니 확신하는 것 같았다. 꿈에도 몰랐다. 이미 알고 있을 줄이야. 나도 모르게 굳어 버렸다. 알고도 당하다니. 혼란스러웠다. 동시에 떠오르는 미래 문자의 기억 한 조각. 잠깐만. 동영상에서는 한유라가 금배지를 달고 찾아와 그를 빼내겠다며 명연기를 펼쳤다. 그때도 이치현 의원은 그저 고맙다고만 이야기했고. 시간상으로 보면, 그건 당연히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치현은 한유라가 자신을 배신해 국회의원직을 얻은 걸 알면서도 온화하게 그녀를 맞이하리라는 것. 머릿속에 마구 혼란이 일었다. “내가 정치 경력은 짧아도 검사 짬은 오래 먹었어. 그런 것도 모르겠니?” 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온후했다. “근데 왜 가만히 있으셨어요? 왜 당해 주셨고.”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게 있어. 너는 아직 이해하지 못할 거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될 거다.” 이치현 의원은 코를 찡긋했다. 모를 것이다. 아니, 굳이 알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고. “그래도 너는 그러지 마라.” “본인은 그러셔 놓고 저보곤 하지 말라니, 무슨 도둑놈 심보예요?” “나는 힘이 없어서 당한 거잖아. 넌 그러지 말라고.” 이치현 의원은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당당하고 정직하게 살아. 그렇게 정치를 해. 그게 정치인의 제1 미덕이니까.” “…….” 이치현 의원이 존경스러웠다. 그는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었으니까. 삐-. 그 말을 끝으로 면회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부저 음이 들려왔다. 차마 그의 마지막 말에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 “뭐 해? 얼른 가.” 나는 머뭇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또 올게요.” “오지 마라. 뭐가 좋은 곳이라고 또 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훠이훠이 손짓했다. “잘 쉬고 있어. 다음에 내가 나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멀어지는 이치현 의원의 뒷모습을 보고 난 뒤에야 구치소를 빠져나왔다. 주차장에 있는 차에 올랐음에도 쉽게 핸들을 잡지 못했다. ‘도덕성 함양. 준법정신. 질서 확립.’ 저 멀리 보이는 문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도덕, 준법, 질서는 어떤 것일까. 정부가 가리키는 올바른 길이란 무엇일까. 상념들 사이로 머릿속에 이치현 의원이 남겼던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당당하고 정직하게 살아. 그렇게 정치를 해. 그게 정치인의 제1 미덕이니까.’ 아니. 난 그렇게 살 수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 내 가치관에 맞게. 또 정의롭게 살고 있다고는 하나, 그렇게 해서는 결코 권좌에 오를 수 없으니까. 아무리 내가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한들, 이 험한 정치판에서는 청렴해서는 결코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오를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먹잇감만 될 뿐이지. 간혹 ‘부당한 방법으로 오르는 건 의미가 없다’고 떠드는 소년 만화, 영화 따위는 말 그대로 허구 속 이야기일 뿐이다. 현실은 더 냉혹하고 무서우니까. 내가 원하는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권좌에 올라야 한다. 정권을 거머쥐어야 정녕 올바른 대한민국을 확립할 수 있을 터. 나는 올라가야만 한다. 반드시. * * * -도련님. 임지현입니다. “어, 지현 씨. 무슨 일이야?” -저번에 말씀하셨던 미원제약이요. 최지곤 의원이 투자했던 그곳. “조사한 거 정리됐어?” -예. 방금 메일로 보내 드렸고 간단하게 전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우스를 움직여 자료를 모니터에 띄웠다. -수익을 내는 건 신약보다도 주로 복제 약이었습니다. 다만,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 최지곤이 투자한 건 주로 줄기세포와 관련된 연구 쪽이었는데요. 그런데 이게……. 마돈나는 잠깐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상식선을 넘어서가지고요. “어떤데?” -굉장히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많았습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조직 회복 및 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살아 있는…… 그러니까 멀쩡한 양의 눈을 빼내서 자신들이 개발한 인공 눈을 삽입하거나, 건강한 쥐에게 췌장암을 유발시키기도 하고요. 쥐가 생물학적으로 인간과 유사하기에 배아에서 췌장암을 유발하는 요소를 빼낸다는 핑계로 실험을 진행한 것 같더라고요. “…….” -그 외에는 물고기들의 뇌 이식이라든지……. “됐어. 그 정도면 충분해.” -예, 도련님. “그 외에 알아야 될 건?” -연구 항목이 굉장히 특이하고 윤리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없습니다. “전부 허가는 받은 거고?” -네. 줄기세포와 유전학의 특성도 있고, 과학적으로 교묘하게 말장난을 친 덕분에 정부 허가는 받은 걸로 확인됩니다. 자세한 건 메일에 써 두었습니다. “그래, 알았어.” 전화를 끊고 마돈나가 보내온 보고서를 천천히 살폈다. 역겨웠다. 아무리 인간이고 상대가 동물이라고 한들, 이런 행위를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 그저 보고서를 보는데도 거북할 지경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 문제는 나의 셋째 형, 최지곤이 이 연구소를 운영하는 미원제약을 후원한다는 사실. 제일 큰 의문은 ‘왜?’ 미친 게 아니고서야 설명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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