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략과 괴락 (5) (108/200)
  • 계략과 괴락 (5)2022.02.16.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부들부들 떨던 전상국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 대표님, 일단 고정하시고…….” 눈앞에 있던 국회의원 하나가 그를 만류하려했지만. “김 의원, 놓게.” 차분하면서도 강압적인 전상국의 목소리에 김 의원은 저도 모르게 손에서 힘을 살포시 풀었다. “지금 최지원이 그 자식 어디 있어?” “아마 최고 위원실에 있을 거긴 한데…….” 전상국 의원은 김 의원이 말릴 새도 없이 당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성큼성큼. 그의 발걸음엔 일말의 망설임도 담겨 있지 않았다. 전상국 의원의 콧바람은 점점 더 거세졌다. ‘서울시장 떨어지고 나가리 될 놈을 구해 줬더니, 내 자리까지 빼앗으려고 해?’ 물에 빠진 놈을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꼴과 다를 게 없었다. 아무리 최지원의 입지가 좋다고 한들,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했을 때는 그에게도 커다란 위기였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후계자라 믿고, 전폭적인 지지를 해 줬건만, 돌아온 거라고는 당 대표를 약탈하려고 한다는 소식이라니. ‘천하의 이런 몹쓸 놈을 보았나!’ 걸음에 걸음을 더할수록 그의 분노는 더욱 더 차올랐다. 상대는 대통령의 둘째 아들 최지원. 어지간한 일은 신사답게 해결해야만 한다. 게다가 이렇게 부딪쳐서 득이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차마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기에. 쾅! 그는 최지원이 있는 최고 위원실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당 대표님?” 영문을 알 리 없는 최지원은 눈을 꿈뻑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와서 담소를 나누던 다른 의원들도 당황한 눈으로 몸을 일으켰다. 전상국 의원이 이토록 화를 낸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뜻이었으니까. “무슨 일 있으십니까?” 다른 의원들까지 있었기에 그는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노를 꾹 누르며 말했다. “최 위원, 나랑 이야기 좀 하지.” 그 이야기를 들은 다른 이들은 자연스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둘만 남은 사무실. “차는 어떤 걸로…….” “차는 됐고.” 최지원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전상국 의원은 최지원을 노려보며 말했다. “자네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 나가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나?” “……예?” “아니, 다시 묻겠네. 원내대표를 하려는 생각이 있나?” 최지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내대표 자리라…….’ 당 대표를 잇는 당내의 2인자 자리다. 당연히 시켜만 준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예. 당연히 있죠.” 원내대표를 다시 말하면, 당 대표가 되기 전에 딛는 디딤돌 같은 자리로도 볼 수 있다. “…….” 전상국 의원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렇게 뻔뻔하게 나올 줄이야. 대통령을 등에 업고 있다고 한들, 이런 식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물론, 최지원은 그 속내를 알 리 없었다. 전상국 의원이 자신에게 화낼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그였기에. 오히려 전상국 의원이 분노에 찬 이유를 오해했다. “혹시 원내대표님과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던 겁니까?” “뭐?” “그런 거라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최지원은 오히려 눈에 야욕을 담아 빛냈다. “원내대표님 약점 한두 개 정도는 들고 있거든요.” 전상국 의원은 기가 찼다. 기다렸다는 듯이 원내대표의 약점을 꺼낼 줄이야. 원내대표는 전상국 의원과 굉장히 끈끈한 인물. 그의 약점까지 들고 있다는 건, 아주 오래 전부터 결심하고 준비했다는 뜻이었다. 배신감까지 들 정도. 물론, 최지원의 생각은 이와 달랐다. 굉장히 가까운 사이인 원내대표를 밟을 만한 트러블이 생겼다고 판단했으니까. 그리고 그 자리엔 다른 이들도 인정할 만한 사람. 즉 자신이 올라가는 게 맞고, 또 전상국 의원이 그렇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을 찾아와서 이러한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자료들 필요하시면 넘겨드리겠습니다.” “…….” 전상국 의원은 차갑게 머리를 식혔다. 무려 원내대표의 약점까지 쥐고 있는 녀석이다. 게다가 이렇게 뻔뻔하게 나올 정도면, 분명 자신의 먼지 한 톨이라도 쥐고 있음에 분명할 터. 여차했다가는 오히려 녀석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자네 그러면 총선은 당연히 나갈 생각이겠구먼.” “예, 맞습니다.” “지역구는?” “따로 생각한 곳은 없었습니다만…….” 그의 입가엔 씨익 미소가 걸렸다. “아무래도 중구로 가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서울시 중구 을. 대한당의 現 원내대표 차명건의 지역구였다. 최지원은 당연히 그 자리를 본인이 빼앗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이는 전상국 의원에게는 적잖은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저런 식으로 분명 내 자리도…….’ 허나, 이미 다 드러난 만큼 그는 속내를 숨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이를 꽉 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에게 정말 실망했네.” “……예?” “원내대표 차명건 의원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첫째 최지만보다도 자네를 지지했어. 그런데 그렇게 쉽게 배신할 줄이야.” 그제야 최지원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고 물었다. “당 대표님께서 제게 원내대표 자리를 넘기려 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이미 다 아는데도 그렇게 뻔뻔하게 나올 셈인가?” 전상국 의원은 최지원을 내려다보며 호통을 쳤다. “원내대표가 되면, 그런 식으로 내 자리도 뺏을 생각 아닌가!” 최지원이 느끼기에 이 상황은 잘못 되어도 단단히 잘못 되었다. 전상국 의원의 목에 핏대까지 세웠다.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받아주는 게 아니라고 하더니만……. 쯧쯧쯧.” “의원님, 아무래도 지금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됐네.” 그는 최지원이 잡는 손길을 뿌리쳤다. “자네가 형에게 서울시장 공천을 양보할 때부터…… 아니, 그리고 나서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을 때라도 알아챘어야 하는데.” 전상국 의원은 모멸감과 배신감이 뒤섞인 눈으로 최지원을 내려다보았다. “권력 맛을 보면 사람이 달라진다더니…… 자네라는 사람을 신뢰한 내 눈이 낙담스러울 정도야.” 그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최지원은 멍하니 떠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쾅-! 문이 닫힌 뒤에야 최지원의 정신이 바짝 들었다. ‘……X발, 이게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무언가 일이 분명히 꼬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믿고 있는 의원들 중 가장 정보력이 강한 인물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오 의원님. 다른 게 아니라, 하나 여쭤볼 게 있어서요. 요즘 전상국 당 대표님과 관련되어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면, 저와 관련된 소문이라든가…….” -아, 그게……. 오 의원은 잠깐 고민하더니 차분하게 설명해주었다. -최근 들어 위원님께서 당 대표 자리를 노리신다는 소문이 살짝 돌고 있습니다. 100% 정확한 건 아니라서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 “일단 알겠습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지원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금 종전의 대화를 되짚어보았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 정보를 접한 상황에서 자신의 말을 들으면, 당연히 당 대표 자리를 탐낸다고 오해할 수밖에. 오히려 내가 뻔뻔하게 자백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지금 가서 오해를 풀어야 하나?’ 그럴 수는 없었다. 애초에 이제 와서 말해 봤자 전상국 의원이 순순하게 ‘아, 정말 착각이었구나!’라고 받아들일 리 만무했으니까. 오히려 더럽고 질 낮은 계략으로 자신을 괴락시키려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겠지. 분명 후일,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최지원부터 오해하고 견제할 것이며. 이는 멀리 보았을 때, 분명 자신에게 커다란 불이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알려주며 구구절절하게 오해임을 설명한다는즉슨 자신이 전상국 의원을 두려워하고 그의 미움을 받을까봐 걱정한다는 걸 증명하는 셈밖에 되지 않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답은 하나밖에 없다. ‘당 대표. 그 자리에 내가 올라야 한다.’ 오해가 아니라, 현실이 되어야만 한다. 그는 다시금 휴대폰을 들어, 자신의 수족과도 같은 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김 실장. 나야. 지금 바로 들어와. 급하게 처리해야 될 문제가 생겼어.” * * * 2024년. 대망의 새해가 밝았다. 만 25세가 되는 해이자, 내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될 해. 새해 첫날에 만난 인물은 마돈나. 바로 아래층에 전화나 라인 같은 메신저가 아니라, 직접 인사를 왔다.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뭘 또 사왔어?” “아닙니다.” 그녀의 손에는 홍삼 박스가 들려있었다. 크기를 보아하니, 제일 비싼 걸로 산 모양. “이런 거 김영란법 걸리는데.” 그녀는 농담 삼아 말했다. “그러니 저한테 잘하셔야 됩니다. 저 버리시면 신고할 거예요.” “하하하, 알겠어.” 나는 웃으며 홍삼 박스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잠깐만 기다려 봐.” 나는 방에서 작은 크로스백 하나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 “이게 뭡니까?” “집에 가서 열어 봐.” 돈이다. 새해 선물이고 명절 선물이고 할 것 없이 모든 선물 중에 제일은 돈이니까. “감사합니다.” 그녀 또한 내용물을 눈치챈 것 같았지만, 내가 민망할까 싶어 모른 척 화제를 돌렸다. “참, 도련님.” “말해.” “김치호 비서관의 행적이 추적되었습니다.” “어디에 있어?” “현재 태국에 있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국내에 밀항하려다가 걸려서 다시 돌아간 걸로 확인했습니다.” “정확한 위치도 파악된 거야?” “예. 잡으려면 언제든 잡을 수 있습니다. 국정원에 연락할까요?” “아니, 내버려둬. 대신 지속적으로 사람 붙여서 주시만 해. 무슨 일 벌이기 전에 미리 알 수 있게.”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미원제약에 관해서는 여전히 조사 중인가?” 최지곤이 투자한 회사. 국회에서 다루던 관련한 법안은 진즉에 정리가 되었으나, 해당 기업에 관해서는 여전히 마돈나가 조사를 하고 있었다. “네, 도련님. 거의 마무리되어 갑니다. 다음 주쯤엔 정리 끝내서 보고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알았어.” “가 보겠습니다.” 마돈나는 신발을 신다가 문득 멈춰 섰다. “도련님, 혹시 떡국이라도 제가 끓여 드릴…….” “됐어. 떡 안 좋아해.” “알겠습니다.” 그녀는 묵직한 크로스백을 들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것도 잠시. 지이잉-.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인은 다름 아닌, 어머니. “크흠흠.” 목울대를 가다듬었다. 괜히 목소리가 잠기기라도 하면, 어머니가 걱정하시니까. “네, 어머니.” -어, 아들. 통화해도 돼? “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 그래도 제가 전화 드리려고 했는데.” -말이라도 못 하면 밉지는 않지. “에이, 그래도 안 미워하실 거잖아요.” -사회 생활하더니 넉살만 늘었어. 어머니는 잔웃음을 지으시고는 안부를 물어왔다. -밥은 잘 먹고 있고? 떡국은 먹었어? “식사는 잘하고 떡국도 먹었어요.” -어유, 누가 끓여줬어? “요즘 잘 나와요. 완제품으로.” 이 정도는 하얀 거짓말이지. -어유, 그래도 떡국은 직접 끓여 먹어야 되는데. “나중에 만들어주세요.” -그래. 매일 같이 청와대는 오면서 어미 얼굴은 안 보고 가더라. “가면 괜히 직원들 눈치 보이잖아요.” -알고 있다. 어머니는 못내 아쉬운 감정을 감추셨다. -그건 그렇고 설에 따로 약속 없지? “예. 아직 한참 남았는데, 무슨 일 있어요?” -네 아버지가 삼성동 본가에서 한 번 보자고 하시네. 다른 형제들이랑 손주들도 같이. “알겠습니다. 준비해 둘게요.” -그래. 아버지께 안부 전화 한 번 드리고. “예. 쉬세요, 어머니.” -아들도 새해 복 많이 받아라. “고마워요.” 전화를 끊고 다른 이들에게도 천천히 새해 안부 전화를 돌렸다. 그러다 보니 문득 머릿속에는 한 사람이 떠올랐다. 새해가 되었기에 만나고 싶은 인물. 지금은 사회에서 볼 수 없는 남자. 이제는 슬슬 일이 마무리 되었기에 연락해도 괜찮겠지. 국번 없이 1363으로 전화를 걸었다. “예, 면회 신청하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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