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략과 괴락 (4) (107/200)

계략과 괴락 (4)2022.02.15.

-보낸 이: 24 -[Web 발신] 649-02-185***. 한왕은행. 07/04. 17:25. 500,000,000원 송금완료. 잔여한도 (일): 250,000,000원. “흐음…….” 깊은 고민에 잠겼다. 미래 문자 형식엔 제한이 없는 걸 알고 있다. 지금까지 사진, 동영상 그리고 음성 메시지까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정보를 전달해 왔으니까. 그러나 이런 텍스트 형식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미래 문자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형식. 마치 누군가에게 도착한 문자를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기 한 것 같은 느낌. 물론, 보낸 이가 24면 작년에 일어난 일이기에 미래가 아니라 과거겠지만, 그건 크게 중요치 않다. 우선, 문자가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포스트잇에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한 글자도 빠짐없이, 틀리지 않았는지 검수를 끝내자마자. 틱-. 휴대폰 화면이 꺼졌다. 오랫동안 터치하지 않아서 대기 모드가 된 모양. 휴대폰의 잠금을 풀자, 역시나 문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형식은 다르지만, 미래 문자인 건 틀리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마돈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도련님. “지현 씨. 방금 문자 하나 보냈는데 해당 계좌 한 번 확인해 주실래요?” 나는 포스트잇에 적어 놓은 미래 문자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 그녀에게 건넸다. “어떤 내용인지 한 번 파악해주시면 됩니다. 계좌가 ***로 가려져 있긴 한데, 어렵진 않을 거예요.” 은행명과 시간 그리고 날짜와 금액까지 전부 표기되어 있기에 추적망을 좁히기엔 수월할 테니까. -예,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빠르면 이틀 내로 처리하고 연락드릴게요. “고마워요. 늘 고생이 많아요.” -아닙니다. 그녀는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계좌 정보는 머지않아 그녀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그때 가서 추가로 알아봐도 늦지 않을 터. 문제는 총선이다. 2024년에 벌어진 차기 총선.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는 나에게는 물론이고 대한당과 민국당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선거라고 봐야 한다. 그렇기에 민국당에서는 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종로에 출마해서 전상국 의원과 겨룰 만큼 강력한 후보도 없을뿐더러. 누군가를 키우고자 하여도, 나보다 파급력이 클 만한 신인 정치인은 없을 테니까. 그렇다고 민국당의 수장인 백태성 의원도 차마 경쟁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중진 의원들이 굳이 종로에 출마하려는 위험 부담을 안을 필요도 없고. 정치 수도에 공천을 해 달라는 제안에 백태성 의원이 한 번 생각해본다는 듯이 답변을 해왔으나, 너무 빠르게 손을 잡으면 쉽게 보일 수 있으니, 당의 위엄을 지키는 차원이라고 보면 될 테지. 그렇기에 내가 할 일은 민국당에게 로비를 하는 게 아니라. 다음 총선을 대비해서 현재 종로를 차지하고 있는 전상국 의원에 대한 견제. 서서히 준비를 해야만 다음 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벌써부터 내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 미리 준비한답시고 전상국 의원에게 이빨을 드러냈다가는 오히려 그가 짓누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니까. 지금 할 일은 다른 사람을 통해 흔들어서 그의 혼을 쏙 빼놓는 것. 허나, 쉽지 않다. 전상국 의원은 무려 7선 의원. 현직 국회의원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정치를 해 왔고. 또 가장 오래도록 국회의사당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인물이기에 어지간한 사건으로는 크게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어떤 게 좋을까. 그를 흔들 만한 인물은 누가 있을까. 천천히 고심한 끝에 머릿속에는 한 명의 남자가 떠올랐다. 그래.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을 터. 나는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 의원님, 오늘 저녁에 혹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예.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네, 좋습니다. 제가 여의도로 가겠습니다.” * * * “어유, 최 비서관. 오랜만이야.” 남자는 반갑게 웃으며 내게 팔을 뻗었다. “의한회 밖에서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요?” “그러게. 그래서 그런지 더 반갑네.” “저야말로 그렇습니다.” “일단 앉을까?” “그러시죠.” 내 맞은편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인물은 현종성 의원. 의한회에서 내게 정보를 공유해 주던 인물. 이 바닥에서는 정보에 굉장히 빠삭한 사람이다. “한잔하시죠.” “아, 좋지.” 나는 그의 소주잔을 채워 주며 자연스레 이야기의 포문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고, 제가 이상한 소문을 하나 들어서요.” 소문이라는 단어에 현종성 의원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나 이런 종류에는 환장하는 인물. “어떤 건데?” 나는 모르는 척 밑밥을 깔았다. “저도 확실한 건 아니고, 주워들은 건데…….” “아, 괜찮아. 괜찮아.” 그는 이해한다는 듯 손짓했다. “그런 건 다 이해하고 들을 테니 편하게 말해 봐.” “알겠습니다.” 나는 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다른 건 아니고, 저희 둘째 형님 최지원이…… 아, 이걸 말해도 되나.” 현종성 의원의 주의를 더 집중시키기 위해 짐짓 망설이는 척 연기하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차기 당 대표 자리를 노리는 것 같아서요.” “당 대표?!” 아니나 다를까, 그의 눈썹이 들썩였다. “대한당 당 대표 자리를 말하는 건가?” “예. 지원이 형님이 다른 당에 갈 일은 없으니까요.” “그렇지. 당연히 대한당에 남겠지.” “물론, 헛소문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확실하다는 게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겼다. “저도 우연히 들은 거라서요.” “아니 뗀 굴뚝에 연기 나겠어?” 그럼에도 현종성 의원은 무언가 납득이 되었는지 연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깐만.” 순간, 그는 무언가 떠오른 듯 손뼉을 치더니. “그러고 보니 최지원이 이번에 서울시장 보궐선거에도 출마를 안했잖아?” “네. 지만이 형에게 양보를 했다고 했는데…….” “그건 명분이지.” 현종성 의원의 목소리에선 옅은 흥분기가 느껴져 왔다. “큰 그림을 그리고 일부러 안 나간 거 아니야?” “그런가요?” 나는 모르는 척 물었다. “원내대표라면 몰라도, 당 대표가 되려면 굳이 배지를 달 필요는 없잖습니까?” “원내대표를 노리는 걸 수도 있지. 원내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이라는 자격이 필요하잖아?” “그렇죠.” “그런데 최고위원에서 바로 당 대표가 되기는 힘들잖아. 그래서 일부러 원내대표 자리를 디딘 다음에 당대표를 달려고 하는 거겠지.” “아, 그렇네요!” “그래!” 현종성 의원은 이미 결론이 나왔다는 듯 씨익 입꼬리를 휘었다. “이야, 최지원이 야심 있는 건 알았지만, 그런 흑심을 품고 있었을 줄이야…….” 그는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서울시장도 떨어진 마당에 최고위원 올려준 게 전상국 의원님인데 그걸 배신하려 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 “그래도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니까요.” 나는 그를 만류하는 척했다. “벌써부터 의심하긴 이르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다만, 의심하기엔 정황이 너무 충분하다는 게 문제지.” 현종성 의원은 연신 헛웃음을 흘리며 술잔을 들이켰다. 그러다가 문득 나를 바라보더니. “최 비서관.” “예, 의원님.” “혹시 어디서 들은 건지 물어봐도 돼?” “아, 그게…….” 나는 곤란한 척 말을 늘였다. 그러자 그는 이해한다는 듯 손을 저었다. “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돼.” “죄송합니다.” “괜찮아. 이런 건 당연히 말 못 할 수 있지.” 당연히 말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 들은 게 아니었으니까. 출처는 내 머릿속이다. 허나, 현종성 의원이 느끼기엔 이렇게 말을 못한다면, 굉장히 주요한 인물이라고 추정할 터. 그게 아니더라도 최지원의 측근이라고 생각하겠지. “의원님.” “응?” “혹시나 말씀드리는 건데, 전상국 의원님께는 꼭 비밀로 부탁드립니다.” 현종성 의원은 입이 싼 인물은 아니다.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이 아니면, 어지간한 사실은 혼자만 알고 있을 뿐, 공개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가 수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니까. 따라서 그가 전상국 의원에게 ‘직접’ 말할 리는 없다고 봐야 할 터. 허나, 이것을 다시 말하면 주요한 인물이고 막중한 사건이라면, 정보를 얻기 위해 발로 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의 발이 넓다는 것과. 또 전상국 의원이라는 당의 주역이 연관이 되어 있으면 본인의 이익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사실을 생각하면 홀로 며칠 동안 알아보기 시작할 터. 그러다 보면, 현종성 의원이 직접 흘리지 않더라도 자연스레 전상국의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테고. 그러면 결국 내 목표대로 전상국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 “에헤이, 최 비서관 나를 뭐로 보는 거야?” 그는 걱정도 말라는 듯 자신의 가슴을 탕탕 쳤다. “걱정 마. 절대 이야기 안 할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래. 술이나 한 잔 더 하자고.” 자연스럽게 술자리를 이어갔다. 주요한 내용은 대한당의 근황과 의원들의 계획. 굳이 내가 물어보지 않아도 그는 술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물론, 어느 선 이상으로 중요한 정보는 그의 선에서 컷하였지만. 동태를 파악하기엔 충분한 자료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참, 최 비서관.” “예, 의원님.” “몇 년 전에 자네가 이치현 의원실에서 일했었지?” “맞습니다.” “혹시나 최근에 그쪽에서 접촉한 일 있어?” 강선우 보좌관에게서 연락이 온 적이 있다. 숨길까 하다가 아무래도 정보를 더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아 솔직히 말했다. “얼마 전에 그쪽 보좌관과 잠깐 만나긴 했습니다. 설마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아무래도 조만간 정리될 것 같으니까 최대한 엮이지 말라고.” 스읍. 씁쓸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 그렇습니까?” “곧 마무리되는데 괜히 접촉이라도 하면 골치 아프잖아. 안 그래? 이미 구속까지 된 마당에 말이야.” “알겠습니다.” 나는 천천히 소주잔을 기울였다. 괜히 소주에서 더 쓴 맛이 느껴졌다. * * * -도련님. 저번에 보내주신 계좌 정보 확인했습니다. 역시 마돈나다. 채 24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확인해낼 줄이야. “어떻게 됐어?” -계좌 주인은 ‘오한열’입니다. 다만, 오한열 씨 본인의 경제 활동이 전혀 없는 걸로 보아, 노숙자나 부랑인으로 추정됩니다. 다시 말하면 차명계좌라는 뜻이지. “그래. 더 알아낸 건?” -우선, 송금처는 미원제약 연구실입니다. 아마 투자금으로 추정이 되는데 확실하진 않습니다. 미원제약이라……. 단순히 약품만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현재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줄기세포 및 유전자 복제와 관련된 기업으로 이번 법안의 직격타를 맞을 만한 회사. “아마 차명계좌의 진짜 주인은 셋째 형일 거야.” -아, 그렇습니까? 그러니 이번 법안에 최지곤이 그렇게 날뛴 거겠지. 다만, 문제는 최지곤이 그곳에 왜 투자를 했냐는 것. 의대 출신인 첫째 최지만과 달리, 셋째 최지곤은 제약은 물론이고 의학 쪽에도 전혀 관심이 없는 인물. 시기를 보면, 단순히 돈 때문에 투자한 건 아닐 터. “지현 씨가 알아볼 수 있겠어?” -가능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내부자와 한번 접촉해 보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 줘.” -알겠습니다.

16557382716561.jpg

0